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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퇴마사 메르시와 새끼 구미호 하나 1

검은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2.17 12:00:22
조회 1433 추천 46 댓글 10
														

시트러스 갤에 하나메르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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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까지만 해도, 남자는 제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산 어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살아온 지 30여년, 가진 것이라곤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만든 허름한 집 한 채와 투박한 박도, 그리고 나무로 만든 활 뿐이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사냥에 재능이 있던 남자는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산을 뒤지며 사냥을 다녔고, 종종 허탕을 치는 날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두 손이 무겁곤 했었다. 남자는 제 마을에서는 솜씨 좋은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조용하고 한적했던 마을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산 중턱에 위치한 바윗골에 요괴 한 마리가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닭이나 개 같은 가축이 없어지더니, 달포 전에는 마을 어귀에 사는 언년이네 막내딸을 시작으로 벌써 어른 세 명이 밤사이에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갔다.

마을 사람들은 안 되겠다 싶어 돈을 모아 퇴마사를 부르기로 했으나 원체 작고 가난한 마을이라 모인 돈의 액수가 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고 있던 그 때, 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냥꾼들이 그 소리를 듣고 저희들끼리 한번 나서서 잡아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요괴든 뭐든 산짐승이나 다름없다는 호기로운 소리를 덧붙ㅇI기까지 했다.

제 마을에서는 실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남자는 그 말에 솔깃하고 말았다. 같이 가보진 않겠냐는 사냥꾼들의 말에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사냥꾼들로는 안 되고 퇴마사를 불러야 한다고 했으나, 젊은 혈기에 휩싸인 사냥꾼들의 귀에 그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남자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마을 노인을 보며 성급히 나선 것을 약간 후회했지만, 아무렴 실력 쟁쟁한 사냥꾼이 다섯이나 모였는데 별 일이 있겠냐는 생각에 걱정을 떨쳐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남자는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쿨럭, 쿨럭.”

활은 어느샌가 절반으로 뚝 부러져 있었고, 박도 역시 두동강이 난 지 오래였다. 같이 산 속으로 들어섰던 사냥꾼은 모조리, 시커먼 어둠 속에 삼켜져 죽어나간 이후였다. 남자는 터져나오는 기침소리를 죽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바닥을 기었다. 여기저기 튀어나온 나무뿌리와 날카로운 돌조각에 쓸려 온 몸에 상처가 났지만 아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당장,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했다.

치르르르-

공기가 진동하는가 싶더니 남자의 머리 위로 뚝, 하고 진득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흐으, 흐아아!”

입에서 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힘이 풀린 다리를 어떻게든 채찍질해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무거운 수십개의 다리가 연달아 산바닥을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일어서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운이 좋게도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이나 땅바닥에 구를 뻔 하면서도 그는 허겁지겁 내달렸다. 다른 사냥꾼들처럼 상반신과 하반신이 동강, 잘라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친 곳이 하필이면 몇 시간 전, 그때는 아직 살아있었던 다른 사냥꾼들과 발견했던 커다란 동굴의 입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동굴은 남자의 뒤를 쫓아오던 괴물이 잠을 자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셈이었다.

사박, 작은 소리가 나자 남자는 급기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사, 살, 살려주십쇼!”

산짐승이 아닌 요괴는 대부분 인간의 말을 할 줄 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인간을 꼬여내어 산채로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어쨌건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살고 싶다는 마음만이 간절했다. 남자는 이마가 깨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닥에 쿵쿵 머리를 찧어가며 애원했다.

“살려주십쇼, 산신님. 이 천한 것이 주제도 모르고 산신님 거처에 기어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바위산을 넘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주십쇼. 산신님,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마세요.”
“아니요,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이깟 절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요!”
“저는 요괴가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공포에 질린 나머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남자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는 몹시도 나긋나긋했다. 제 뒤를 쫓아오던 것이 지네요괴가 아니라 여우 요괴였던 건가 싶어 남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머뭇머뭇 고개를 들었다.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죽립을 쓴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달빛에 의해 윤곽만 보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뿐 사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자락이 팔랑이는 것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누, 누구십니까?”
“저는.......”
“아니, 그보다 저 좀 살려주십시요, 나으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살려주십쇼!”

비명과도 같은 남자의 말에 죽립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사아악,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머리가 1m가 넘고 몸통이 얼마나 긴 것인지, 한눈에는 다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지네가 남자를 따라온 것이었다. 더듬이를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지네 요괴가 몸통을 비틀어댔다.

“이게 웬 횡재야. 한 놈이 두 놈이 됐잖아.”
“살, 살, 살려.......”
“횡재인지 횡액인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죠.”

사근사근한, 그러나 심지가 단단한 듯한 목소리가 남자의 애원을 끊어냈다. 그 말에 차르르르 소리를 내며 지네가 다리를 떨어댔다. 마치 웃는 것 같았다.

“버릇없는 인간이군. 아까 잡아먹은 털복숭이들도 처음에는 기고만장해서는.......”
“말이 많군요.”

타닷, 가볍게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음습한 지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죽립인은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지면을 박차고 지네의 머리로 달려들었다. 그 자살행위를 차마 보진 못하고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주둥이를 한 번씩 벌릴 때마다 일행이었던 사냥꾼들의 팔다리가 툭툭 떨어지던 장면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곧 쿵쿵하고 땅이 울리더니 키에에엑,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근처에 있는 동굴 안으로 웅크러들었다.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퍼걱거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곧 지네가 바위벽에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웅크린 남자가 옆으로 넘어질 정도로 커다란 진동이 덮여왔다. 그리고서 훅하니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지네는 어디가고, 동굴 밖에는 죽립인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몇 번이고 닦으며 바깥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죽립인이 무언가를 밟고 올라서 있었다. 1m가 겨우 넘을까말까 한 검붉은 지네가 뾰족한 지팡이 끝에 찔려 움찔대고만 있었다.

“노,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놓아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말과는 다르게 지네 요괴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작았고 또 떨리고 있었다. 죽립인은 지네 요괴에게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무고한 사람을 여럿 해쳤으니 그럴 수는 없지요.”

죽립인이 품을 뒤지더니 노란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짓밟고 있는 지네의 머리에 그 종이를 붙이자마자, 작아진 지네의 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불이 붙었다. 지네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어댔으나,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불길이 휩싸이더니 곧 바스라졌다.

남자가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이게,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일입니까?”
“희미하게 남아있던 독기를 따라오니 산 어귀에 마을이 있더군요. 듣자하니 요괴가 있다고 해서 요기를 찾아 산에 올랐어요. 그 뒤는 보시는 대로고요.”

죽립인의 설명은 간단했으나 그가 해치운 일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온 몸에 긴장이 풀린 남자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있는데, 산 너머에서 붉은 빛 몇개가 보이더니 점점 다가왔다. 웅성이는 소리도 커졌다. 남자는 반색을 하며 몸을 일으켜 가까워져오는 사람 무리에게 다가섰다.

남자가 살아있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그를 부둥켜 안으며 연신 다행이란 말을 쏟아냈다. 살아남은 기쁨과,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교차하는 바람에 고개를 떨군 남자의 귓가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죽립인이 피범벅인 하얀 뭉치를 품에 안고 동굴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겁하며 물었다.

“법사님, 그게 뭡니까?”
“…여우 요괴입니다. 상처를 입고 많이 약해져 있네요. 제가 쫓아온 독기는 이 여우에게서 나던 것이었나봐요.”

죽립인은 안심이라는 듯 말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요괴면 죽이지 않고 뭘하시는 겁니까?”
“사람을 해친 적이 없는 요괴 같아요.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독기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거 사람한테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이 여우가 내뿜는 독기가 아니에요. 어디선가 아주 질이 나쁜 요괴한테 당한 것 같아요. 치료해주지 않으면 죽고 말 거예요.”
“치료는 무슨 치료랍니까? 이리 주십쇼, 법사님.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한 달 간 요괴에게 당한 것이 있는지라 마을 사람들의 기세가 자못 흉흉했다. 죽립인이 난처한 기색으로 침묵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여 동안 요괴의 소행으로 인해 불안에 떨던 사람들인지라 그들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헤아린 듯, 죽립인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제가 찾아온 목표가 이 여우요괴니, 제가 맡도록 하지요. 여러분께 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숨이 터져나왔으나 남자는 몹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생명의 은인인데 변변찮은 대접도 하지 못한 채로 이 오밤중에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남자가 한걸음 앞서서 죽립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법사님. 그러지 마시고 누추하지만 제 집에서 잠이라도 주무시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물론 저는 다른 집에서 잠 잘 거고요.”
“아니에요. 저도 갈 길이 바쁘니 마음만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라니요, 살려주셔서 제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저기, 법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은인이신데 함자라도 알려주십쇼.”

죽립인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밤 일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없었던 일마냥 다 잊도록 하세요. 그게 나을 거예요.”

죽립인은 그렇게만 말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두운 숲 속으로 발을 들였다.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또 요괴가 나타나거든 사냥꾼들 말고 퇴마사를 부르도록 하시고요.”

법사의 뒷모습은 금세 어둠에 녹아내렸다. 요괴의 생사를 가지고 아직도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하고, 남자는 그저 감사한 마음을 담아 깊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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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놔라, 인간!
“…….”
-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감히 구미호인 나를 이따위로 취급하다니!

앙겔라는 한번 결정한 일을 후회하는 일이 드물었다. 후회를 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상황을 타개할 개선책을 생각하는 게 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에는 과거의 제 선택이 정말 옳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곤 했다. 지금처럼 소매 안에서 가르릉대며 제 손목을 깔짝깔짝 물어대는 새끼 여우의 존재 때문이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독기를 찾아 발걸음을 향했던 곳에서 100년 묵은 지네를 처치한 뒤, 앙겔라는 지네의 소굴이었던 동굴 속에서 독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작디 작은 새끼 여우가 지독한 독기에 깊은 상처를 입고 죽어가고 있었다.

앙겔라는 새끼 여우를 내려다보며 잠시 망설였다. 작은 요괴에게는 사람을 해친 요괴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사악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앙겔라는 독기의 정체도 알아낼 겸 해서 새끼 여우를 치료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며칠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앙겔라의 소매에 들어가 죽은 듯이 잠만 자던 새끼 여우가 정신을 차린 것은 사흘 전의 일이었다. 그 동안 살뜰히 보살피며 독기를 빼내는 해독환을 꼬박꼬박 먹인 덕이었다. 그러나 새끼 여우 요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앙겔라에게 이를 드러내었다.

거동도 못하는 주제에 시종일관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며 사흘 전부터 쉬지않고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탓에 앙겔라는 조금 지치고 말았다. 결국 앙겔라는 팔을 들어 소매를 들여다보았다. 털이 보송보송한 아주 작은 새끼 여우가 까만 눈을 빛내며 앙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어쩔 생각인 거예요.”
- 인간! 너야말로 나를 어쩔 셈인 거냐! 날 놔줘라!
“이대로 놓아주면 어떻게 될 지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나요? 근처를 지나는 요괴에게 한 입에 잡아먹힐 텐데요.”
- …….
“게다가 영력 제어도 못 하면서 왜 자꾸 법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예요. 영기가 새어나가니까 자꾸 요괴가 꼬이잖아요. 법의 안에 있으면 영기가 새어나가는 걸 차단할 수 있단 말이에요.”
- 그치만 답답하단 말이야!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고!
“그건 지금 독기가 다 빠져나가지 않아서 그래요. 법의 탓이 아니라고요.”

앙겔라의 설명에 새끼 여우가 풀이 죽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는 것도 잠깐이고, 조금 있으면 또 대요괴인 저를 이리 취급하지 말라느니 후회할 거라느니 하는 소리를 떽떽이겠지. 앙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한 작은 여우 요괴라고 생각해서 치료를 해주려고 거두었던 새끼 여우는 스스로를 대요괴인 구미호라 칭했다. 미약한 영기 때문에 전혀 그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던 앙겔라는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적당히 치료한 뒤에 산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던 처음 계획이 어그러지는 순간이었다.

구미호는 무서운 요괴ㅇI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성한 영물ㅇI기도 했다. 여우가 가지고 있는 여우 구슬은 이무기의 여의주와 비슷했고, 때문에 종종 다른 요괴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함부로 이 새끼 구미호를 놓아줬다간 여우 구슬을 노린 요괴들끼리 한바탕 커다란 싸움이 일어날 게 뻔했다.

동시에 궁금증이 머리를 쳐들었다. 보통 새끼 구미호는 부모 구미호에 의해 성체가 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 왜 이 새끼 구미호는 치명상을 입은 채로 홀로 떨어져 있었을까? 그리고 그 지독했던 독기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

전자의 궁금증은 차치하더라도, 퇴마사로서 후자의 궁금증은 반드시 풀어야 했다. 그러나 새끼 구미호는 두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고 그저 앙겔라를 잔뜩 경계할 뿐이었다.

“마을에 잠깐 들를 테니까 조용히 있어요. 말 잘 들으면 당과 사줄게요. 기억나죠? 해독환 먹을 때마다 작은 조각 하나씩 먹여줬잖아요.”
- ……진짜 사줄 거냐?
“네, 조용히 있으면요.”
- 약속한 거다!

경계심은 있는 대로 드러내는 주제에 식탐은 있어가지곤……. 앙겔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을 어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주막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야, 여기.”

앙겔라는 주막에 들어서자마자 저를 보고 손을 흔드는 맥크리를 발견했다.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가자, 맥크리 앞에 놓인 상 위에 널브러진 빈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이 불콰했다.

“…임무 중에 또 술을 마시다니. 징계감이에요, 제시.”
“그런 말 말라구. 어차피 안 찌를 거 다 아니까.”
“이번엔 진짜로 본청에 항의할 수도 있어요.”
“오, 그래?”

짐짓 엄격한 어조로 말하는 앙겔라에게 맥크리가 킬킬대며 대꾸했다.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그 태도에 미간을 찌푸리는데, 그가 앙겔라의 소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 찌르면 나도 네가 요괴를 데리고 다닌다는 거 말하지 않을게.”
“……어떻게 알았어요?'
“영기가 그렇게 줄줄 새는데 어떻게 못 알아보겠어?”
“법의를 입었는데도 영기가 샌다고요?”
“너 옷 찢어졌어. 팔꿈치 부분에.”

앙겔라는 맥크리의 말에 팔을 들어 옷을 살폈다. 과연, 조그맣게 찢어진 부분이 있었다. 무겁지만 튼튼한 법의는 웬만해서는 찢어지는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싶어 살피는데, 구멍난 부분에서 까만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마도 새끼 여우가 탈출을 위해 무딘 이로 열심히 물고 찢고 한 모양이었다.

앙겔라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내 팔꿈치에 덧대었다. 당장은 이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인간! 이거 뭐냐! 더 답답해졌잖아!
“자업자득이니까 그냥 참아요. 그리고 당과 안 사줄 거예요.”
- 아! 뭐냐! 그런 말은 없었잖아!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거라고! 시끄럽게 안 굴었는데 치사하다 진짜!
“지금 시끄럽게 굴고 있잖아요.”
- …조용히 하면 사줄거냐?
“지금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요.”
- …….

당장은 맥크리와 이야기를 해야했기에 그렇게 말하자, 새끼 여우는 곧바로 침묵했다. 맥크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먹을 거로 길들이고 있는 거야? 온화한 방법이네. 그냥 편리하게 봉인한 뒤 각인시켜 버리지?”
“다 회복시키고 나서 놓아줄 생각이에요. 아무튼, 제시. 근래에 구미호에 대한 소식을 들은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에 준하는 대요괴에 대한 소식이라도 좋아요.”
“난데없이? 흠, 글쎄……. 이 근방에선 전혀 듣지 못했는데. 궁금하면 따로 알아봐 줄까?”
“부탁해요.”
“좋아, 일 하는 김에 겸사겸사 알아볼게. 그리고 여기, 다음 행선지에 대한 거.”

맥크리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이 마을에서 사흘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마을로 가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육 개월 동안 12명의 사람이 사라졌다는 내용을 보고 앙겔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6개월 동안이나 사태를 방치해놓고 있었단 건가요? 시일이 너무 긴데요.”
“외지인이 자주 드나드는 동네라서 그 사람들을 따라 여행길에 올랐거니 하고 생각했었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외지인을 포함하면 피해자는 더 많겠지.”
“흠…… 알겠어요. 또 주의할 사항은요?”
“한 달 쯤 전에 퇴마사를 불렀던 적이 있어. 그런데 도착하질 않았다고 하더군. 그 때 파견한 녀석하곤 그 이후로 연락이 되질 않고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마을에 당도하기 전에 요괴에게 습격을 당했거나, 아니면 그 마을에 자리잡은 요괴에게 당했거나 했단 말이네요.”
“그래.”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앙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앙겔라는 새끼 여우가 사흘 내내 조잘대는 통에 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피곤을 느끼며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앙겔라를 살피던 맥크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리고 너, 열흘쯤 전에 산골 마을 지네 퇴치를 무상으로 해줬다며? 상부에 보고 올라가 있더라.”
“그건… 하아. 네, 그랬어요. 하지만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그렇게 된 거라고요. 딱히 본청의 체계를 거스르려고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해두는 거야.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사람을 돕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는데, 왜 꼭 보수를 받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네요.”

앙겔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요괴가 출몰하면, 그 마을 사람들은 커다란 마을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는 지부를 통해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 맥크리 같은 연락책이 근처에 있는 퇴마사와 접선해서 임무를 주어 요괴를 퇴치하게 한다. 그리고 무사히 퇴치를 마치면 퇴마사가 그 보수를 받아, 다시 연락책에게 건네주는 것이 보통의 흐름이었다. 앙겔라는 퇴마를 하고서 보수를 받을 때마다 스스로가 속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맥크리가 그런 앙겔라의 마음을 짐작한 듯 입을 열었다.

“모든 일에는 돈이 든다고, 치글러. 당장 무보수로 퇴마를 하면 기분은 좋겠지만, 머지 않아 밥을 사먹을 수도, 찢어지거나 더럽혀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게 된단 말이야. 누가 무보수로 목숨 걸고 요괴를 퇴치하러 다니겠어? 넓게 보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말이죠…….”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자신이 있었다.

“퇴마행에 나선 지가 3년째인데 아직도 순수하구만.”
“놀리는 거라면 사양이에요, 제시.”
“어쨌든 이번 일도 잘 부탁해.”
“알겠어요. 이만 가 볼게요.”

앙겔라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해보이고 평상에서 일어섰다.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맥크리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지금 바로 떠나게?”
“네, 그러려고요.”
“몸 챙겨가면서 하라고. 우리 몸은 우리가 알아서 챙겨야한다니까.”
“제시는 술이나 끊고 그런 소리해요.”
“그나저나 치글러, 뭐 빼먹은 거 없어?”

앙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수는 저번 접선 때 건네주었고, 다음 임무 지령서도 받았고, 맥크리에게 구미호에 대한 정보를 알아달라는 부탁도 했다. 더 이상의 용건은 없었다.

“없는 것 같은데요?”
“네가 데리고 있는 새끼 여우가 당과가 먹고 싶은 모양인데.”
“여우인 건 어떻게 알았……. 하아, 사줄테니까 고개 집어 넣어요.”

어느새 넓은 소맷자락 사이로 고개를 삐쭉 내민 여우에게 그리 말하자, 하얀 털뭉치가 쏙하고 모습을 감췄다. 앙겔라는 작게 인상을 썼다. 허술한 듯 보여도 눈치가 빠른 맥크리라면 새끼 요괴를 데리고 다니는 제가 구미호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한 것만으로도 새끼 여우의 정체를 알아챌 것 같았다. 그래도 이미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앙겔라는 골치아픈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이번에야말로 맥크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


프롤로그는 내가 쓸 테니까 누가 뒷 이야기 좀 이어서 써줬음 좋겠다.
글 쓰고 싶은 의지는 충만한데 쓰다보면 힘이 빠져서 전개 이어나가는 게 너무 힘듦 ㅠㅠ
하나메르에 미쳐갖고 이 소재 저 소재 죄다 끌어다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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