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일반] 하나메르하나 - 집 3-1

검은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22 12:11:55
조회 1752 추천 39 댓글 5
														
박사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벌써 3일이 되었다.
일요일이라 오전 10시까지 늘어지게 잠을 잔 하나는, 일어나자마자 현관으로 가서 박사의 신발이 있는지를 살폈다. 오늘도 역시 박사의 구두는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부엌으로 향했다.


3일 전 강남에서 과속을 하던 트럭과 신호를 받아 직진하던 버스가 충돌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박사가 몸담고 있는 병원 근처에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박사는 사고로 실려 온 환자들을 응급 처치하느라 연락이 뚝 끊겼다. 그날 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오늘은 못 들어간다고, 미안하다는 문자가 한 통 왔다. 하나는 늦어지는 박사를 기다리느라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기에, 괜찮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바로 답장을 보낸 뒤 잠을 자러 갔다.

이튿날이면 퇴근할 줄 알았던 박사는 그러나 사흘이 되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집에 들르지 못할 정도로 바쁜가 싶어, 하나는 박사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거실에서 박사가 귀가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매일 매일 언제쯤이면 집에 도착한다는 문자를 꼬박꼬박 보내던 박사가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할 정도면 얼마나 바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최대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퇴근해 같이 밥을 먹던 박사가 없으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우유에 시리얼을 타 대충 아침을 때운 하나는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 게임 스크립트라도 짜면 시간이 잘 갈 텐데, 이상하게 아무런 의욕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어느새 5월, 박사와 같이 살게 된 지 3개월이 흘렀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집을 지키던 적이 많던 하나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에 박사와의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 그래서인지 박사가 없는 며칠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박사는 종종 당직을 서곤 했기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드물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는 일은 처음이었다. 걱정도 되고 혼자 있는 집이 불안하게도 느껴지고, 박사의 부드러운 미소도 보고 싶어서 침울해하고 있는데 방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뜀박질하다시피 방으로 뛰어 들어가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박사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 여보세요!”
- 아, 하나 양. 잠 잘 잤어요?

3일 만에 듣는 박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나긋했지만, 어딘지 지친 듯한 기색이 있었다. 하나는 얼른 대답했다.

“네, 잘 잤어요. 박사님은 좀 주무시고 계시는 거예요?”
- 조금씩 쪽잠은 자고 있어요. 미안해요, 집에 혼자 있는 거 무섭죠?
“애도 아니고… 괜찮아요.”

실은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꾸했다. 박사에게서 어린애 취급 받고 싶지 않았다. 박사가 수화기 너머에서 잔잔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쯤 집에 오시는 거예요? 많이 바쁘세요?”
- 음, 앞으로 며칠은 더 병원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하나 양.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을까요?
“네, 뭐든 말씀하세요. 어떤 부탁이신데요?”
- 그게… 갈아입을 옷 좀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네네, 물론이죠! 일요일이잖아요. 시간 많아요. 바로 가져다드릴게요.”
- 정말 고마워요. 드레스 룸에 있는 걸로 아무거나 가져다주면 돼요. 아, 병원 오는 길은 알아요? 모르겠으면 택시타고 와요.
“아뇨, 알아요. 지하철 2호선 타면 되죠? 얼른 챙겨서 갈게요.”
- 미안해요, 하나 양도 바쁠 텐데.
“놀고 있었어요. 그런 걱정 마세요.”

그렇게 대답하다 하나는 곧 작은 의문을 떠올렸다. 갈아입을 옷만 필요한 걸까?

“그런데 박사님, 속옷은 안 챙겨가도 돼요?”
- 아…….

박사는 난처한 듯한 목소리를 내고서 잠시 말이 없었다.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럴 때는 속옷도 같이 가져다달라고 하지 않나? 박사의 말을 얌전히 기다리는데 나직한 한숨소리와 함께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러면 속옷도 같이 가져다줄래요? 드레스 룸 맨 오른쪽 옷장 두 번째 서랍에 있는데.
“걱정 마세요. 두 벌 정도 챙겨 가면 될까요?”
- 네, 그렇게 해주세요.
“지금이 10시 반이니까… 12시 정도에 도착할 거예요. 가서 전화할게요!”
- 고마워요, 하나 양.
“뭘요. 이따 봬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세수는 일어나자마자 했지만 한 번 더 한 뒤 가벼운 화장도 하고, 치마도 꺼내 입고, 하얀 셔츠 위에 분홍색 카디건도 걸쳤다. 지지난주에 박사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샀던 옷들이었다. 옷차림을 거울에 꼼꼼히 비춰본 다음, 하나는 만족한 기분으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박사가 즐겨 입는 스타일의 진회색 블라우스와 하얀 블라우스를 하나씩 챙기고, 검은 슬랙스도 챙겼다. 그리고 맨 오른쪽 옷장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속옷이 가지런히 채워진 속옷함을 보고 하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대체로 무채색인 속옷들이 많았는데, 하나의 것보다 두 컵은 더 커 보이는 검은 브래지어를 보자 왠지 부끄러워져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하나는 최대한 고개를 외면한 채로 세트로 보이는 속옷 두 벌을 챙겨 종이백에 집어넣었다.

현관으로 향하려다, 문득 어제 냉장고에 넣어둔 것들이 생각났다. 다른 종이백을 가져다가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준비를 다 끝마치고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50분 정도 남아 있었다. 휴대폰 어플로 도착시간을 조회해보니 40분이면 충분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

하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꺾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대형병원은 그 위세만으로 하나를 압도시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나는 원체 건강한 체질이라 어릴 적부터 병원에 간 적이 드물었고, 남자의 학대를 받을 적엔 다친 것을 숨기기에 바빠서 병원에 들를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늑골에 금이 갔던 날은 박사에 의해 의식이 없을 때 병원에 옮겨졌으므로, 실제로 이 대형병원을 제대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인지 병원 부지 내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곧, 박사의 난처해하는 목소리가 떠오르자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병원 로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병원 로비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 55분이었다. 바쁜 박사에게 연락을 하기가 꺼려져서 12시 10분까지는 기다리기로 하고, 로비에 있는 빈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무과에 접수하는 사람들, 환자복을 입은 채로 어디론가 걸어가는 환자들,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심각한 얼굴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의사들, 병문안을 온 것 같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눈에 들어왔다. 병원이 커서 그런지 사람이 유난히 많은 듯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일하는 박사가 많이 피곤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하나는 오른쪽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얀 가운에 검은 터틀넥을 입은 박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박사 주위를 지나가던 다른 의사들이 박사에게 인사하고, 박사가 그들에게 답인사를 해주는 모습이 고등학교 3학년인 하나의 눈에는 뭔가 아주 멋있게 보였다. 하나는 박사에게 얼른 다가갔다.

“박사님!”
“아, 하나 양. 오래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빨리 오려고 했는데.”
“아니에요. 방금 왔어요, 정말이에요.”

3일 만에 박사를 본 하나는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보통 3일간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로 바빴으면 사람이 피폐해지고 찌들어 보이고 그러지 않나? 그러나 박사는 안색이 살짝 창백해서 피곤해 보이는 것만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살짝 흐트러진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려서 섹시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가 부주의하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당황하는데 박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샀던 옷 입었네요. 화사한 색상이 하나 양에게 잘 어울려서 정말 예뻐요.”

정작 예쁜 건 자기면서 누구더러 예쁘다고 하는 건지. 하나는 두 볼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허둥지둥 오른손에든 종이백을 내밀었다.

“박사님, 여기 갈아입을 옷들이에요.”
“고마워요. 지하철에 사람 많아서 오기 힘들었을 텐데……. 미안해요.”
“아니에요. 아, 그리고 이것도 받으세요. 바쁘셔서 제대로 식사도 못 하실 것 같아서 간단히 먹을 것 좀 챙겨왔어요.”

왼손에 든 종이백을 내밀자 박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건네받았다. 안을 들여다보는 박사가 놀란 표정을 했다.

“이게 다 뭐예요?”
“이건 꿀이 들어간 마즙인데 흔들어서 드시면 되고요, 이건 유부초밥에 닭가슴살 샐러드인데 허기지실 때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 넣었고요. 그리고 이건 과일 좀 가져온 거예요.”

실은 어제 늦은 밤에 박사가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만들어둔 것들이었다. 결국 박사는 오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전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사는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움찔거리지 않고 얌전히 그 손길을 받아내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서 하나는 살짝 웃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같이 점심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니에요. 바쁘시잖아요. 어서 가보세요. 괜찮아요.”

박사가 미안해하는 것이 보고 싶지 않아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박사의 주머니에서 삐삐, 하는 소리가 막 울리는 차였다. 박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하나를 보고서 말했다.

“…이만 가봐야겠어요, 미안해요, 하나 양.”
“괜찮다니까요. 저도 할 일 있어서 가보려고 했어요. 저 먼저 갈게요. 박사님, 건강 챙기면서 일하세요!”

이대로 있으면 언제까지고 박사가 미안해 할 것 같아서 하나는 인사를 하고 후다닥 병원 입구로 향했다. 유리문을 나서기 전 힐끔 돌아보니 박사가 종이백들을 들고 등 돌려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점심시간인데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구나 싶어 박사가 안쓰러워졌다. 의사가 생각처럼 마냥 좋기만 한 직업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박사에게 할 일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청소도 빨래도 이미 해놓은 뒤였고, 박사를 기다리며 학교 숙제도 다 끝내놓은 상태였다. 병원 입구에 멍하니 서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핸드폰이 진동했다. 보자, 친한 친구들끼리 만든 단톡방에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럼 1시까지 D백화점 앞 커피숍에서 보자]
[송하나 올 수 있음? 아까부터 폰을 안 보네]
[전화해 봐]
[내가 할까?]

하나는 얼른 문자를 입력했다.

[그럴 필요 없어. 갈게]
[ㅇㅋ 이따 봐]

일단 간다고는 했지만 뭣때문인지를 몰라 대화창을 올려보니, 이번 주 목요일에 있을 수학여행에서 입을 옷을 사러 가는 모양이었다. 하나는 굳이 수학여행을 위해 옷을 살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처럼 박사를 만나러 병원에 올 때가 또 있을 수도 있으니 쇼핑을 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버스를 탔다.


2개월 전, 박사가 하나의 해방 기념을 축하해 준 뒤로 하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사만큼은 진심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흔들리던 발밑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생기니 날카롭던 성격도 점점 누그러지고 얼굴에 웃음도 조금씩 돌아왔다. 학교생활은 늘 그렇듯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듯 똑같았지만, 날카롭게 곤두세웠던 가시를 치우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곧잘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을 쇼핑에 나온 것도 박사의 영향이었다.
백화점 근처 커피숍으로 향하자 몇몇 친구들이 벌써 모여 있었다.

“와. 송하나, 오전부터 데이트 있었어? 오, 화장까지 했네.”
“거 봐, 내가 요즘 하나 남친 생긴 것 같다고 했잖아.”
“사진 있어? 보여주라.”

앞 다투어 떠드는 친구들에게 그런 거 아니라고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하나는 변명해봤자 안 통할 거란 걸 알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캐물어도 나오는 게 없자 이 주제에 시들해진 아이들은 대화 주제를 휙휙 바꿔대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친구들이 도착해서 한 무리를 이룬 채로 백화점으로 향했다.


6명이서 백화점을 캐주얼 매장을 다섯 바퀴나 돌고 나서야 모든 쇼핑이 끝이 났다. 박사를 만날 때만 해도 기운이 넘쳤었는데, 2시간 만에 하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간단하게 셔츠와 치마 한 벌씩만 사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이것저것 추천해보며 입어보라는 바람에 여름옷까지 사버렸다. 덕분에 남자가 보내주는 돈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 동안 박사가 주는 용돈이며 남자가 다달이 보내는 돈이며 하는 것들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었으나, 너무 충동적으로 돈을 써버린 것 같아 하나는 반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사가 이 옷들을 입은 저를 보고 또 예쁘다고 해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해사하게 미소 짓는 박사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하나는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송하나, 뭐해? 메뉴 시키라니까 뭘 혼자 웃고 있어?”
“남친 생각하나보지 뭐. 오전에 남친 만나고 왔나 봐. 얘 치마 입은 거 나 처음 본 듯.”
“아니라니까. 그냥 볼 일 있어서 그런 거야.”

부정했지만 또다시 하나의 남친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잘 생겼냐, 키는 몇이냐, 어디 학교냐, 집은 잘 사냐 등등 질문이 쏟아지자 하나는 결국 박사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아는 분 뭣 좀 가져다 드리러 병원에 잠깐 들렸다 온 거란 말이야.”
“뭐? 병원? 넌 왜 하필 만나도 환자를 만나냐? 어디가 아파서 입원한 거래?”
“환자 아니고 의사야.”

저마다 제 말을 하느라 시끌벅적했던 패밀리 레스토랑 테이블 위로 갑자기 침묵이 내려앉았다. 변해버린 분위기에 하나가 의아해하는데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의사면… 몇 살?”
“어? 서른…….”

여섯, 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주위에서 헐! 하고 경악하는 소리가 하나의 말을 끊어먹었다.

“야! 너무 나이가 많잖아! 서른이라니!”
“도둑놈이네. 서른이면 10살도 넘게 차이나잖아? 변태 아냐?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뭐가 아쉬워서 고등학생이랑 만나겠어?”
“송하나, 정신 차려! 우리 아직 수능도 안 본 미성년자란 말이야!”

너무 흥분한 나머지 급기야는 하나의 멱살을 잡아 짤짤짤 흔들어댈 기세였다. 하나는 대화가 꼬인 것을 눈치 채고 얼른 손사레를 쳤다.

“남친 아니라니깐! 아는 분이라고 했잖아. 게다가 그분은 여자란 말이야!”
“아, 그랬어?”
“어우야, 진짜 깜짝 놀랐다. 송하나가 서른 먹은 아저씨랑 사귀는 줄 알고…….”
“심하게 아저씨 취향인 줄 알고 기겁할 뻔 했네.”

마지막 말에 인상을 구기며 하나가 대꾸했다.

“누구더러 아저씨 취향이래? 그런 거 아니야.”
“연상 취향인 건 맞지 않아? 저번에 1반 축구부 부장 고백 거절한 거 보고 나 확신했잖아.”
“확신은 무슨……. 그냥 관심이 없어서 그래.”
“어떻게 그렇게 잘생긴 애한테 관심이 없을 수가 있어? 진짜 얼굴이 아깝다. 아, 혹시 너 막 여자 좋아하는 거 아냐? 막 나 좋아한다든가?”
“지랄.”

웃음기 어린 농담에 절로 욕지기가 터져 나오자 테이블이 웃음소리로 떠내려갈 듯 시끄러워졌다. 반사적으로 욕을 하긴 했지만 하나는 내심 조금 뜨끔했다. 아까 병원에서 박사를 보고 가슴이 뛰었던 일이 떠오른 탓이었다. 살짝 흐트러진 블라우스 깃 위로 잔머리가 흘러내린 박사의 금발을 떠올리자 다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하나는 앞에 놓인 찬물을 급히 들이켰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박사에 대한 것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야 이렇게 편하게 친구들과 밥도 먹고 놀기도 하지만 박사는 지금쯤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괜히 죄책감이 느껴져서 식욕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박사는 제게 그 나이 또래가 누려야 할 것들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박사 본인은 누려야 할 것들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과 집만 왕복하고 집에 와서는 논문을 들여다보는 박사의 삶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른이니까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조금씩 의문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박사의 삶에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에 대한 생각으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시간이 끝나고, 노래방을 가자는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한 뒤 하나는 집으로 향했다. 피곤해하던 박사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전에는 대가없는 호의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박사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면, 지금은 지친 박사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기껏해야 집 청소와 저녁식사 준비가 다인데, 그 중 후자는 박사가 집에 오지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하나는 박사가 집에 올 때까지 계속 박사에 대한 것만을 생각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

박사가 집으로 돌아온 날은 그로부터 이틀 후인 화요일이었다.
하교 후 거실에 앉아서 의욕 없이 스크립트를 짜던 하나는 도어락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서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며 이틀 전보다 더 파리하게 질린 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사님! 괜찮으세요?”
“아… 하나 양. 네, 조금 피곤한 것 빼곤 괜찮아요.”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박사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휘청이는 발걸음을 보고 하나는 얼른 박사를 부축했다. 박사가 흠칫 몸을 굳히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박사를 이끌고 침실로 향했다. 박사를 침대 위에 앉힌 후에 겉옷을 대신 벗겨주는 사이 박사는 멍한 눈길로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주무세요. 많이 피곤해보이세요.”
“…네. 그럼 조금만 잘게요. 3시간 후에 깨워줄래요?”
“더 주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연락해야 할 곳이 있어서요.”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하나 양.”

박사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며칠 새에 더 말라 보이는 박사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준 뒤, 하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박사가 집에 오면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지친 박사를 보니 마음이 심란했다. 하나는 왠지 모를 초조한 느낌에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이 다 상하는 느낌이었다. 휴대폰을 꺼내 '피곤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해 검색했다. 비타민을 사주라거나 과일을 사주라거나 하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개중에는 한약을 먹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서양인인 박사에게 한약이 통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인터넷을 검색한 후에 하나는 보양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대형마트에 가서 장어를 샀다. 전에 두어 번 만들어 본 적은 있었으나 요리방법을 확신할 수는 없어서 담당 직원에게 장어구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물은 뒤, 그 외 잡다한 쇼핑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3시간 후에 깨워달라고 했으므로 7시까지 저녁식사를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하나는 노트북을 방으로 가지고 가서 6시가 될 때까지 열정적으로 스크립트를 짰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6시 알람이 울리자 부엌으로 가 최대한 소리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요리를 했다. 다행히도 7시가 다 될 때까지 박사는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7시가 되자 하나는 침실 문을 노크한 다음 살짝 문을 열어 방으로 들어갔다. 미등이 침대 위에 누운 박사의 모습을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하나는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박사를 깨우고 싶은데 어떻게 깨워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박사는 천장을 향한 채로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똑바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을 잘 때도 참 바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원래도 젊어보였지만, 잠자는 박사의 얼굴은 순해 보이고 앳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나는 뭐에 홀린 듯 한참을 그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귓가에 울리는 쿵쿵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침실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심장 뛰는 소리마저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어쩐지 열이 오른 얼굴에 손등을 대어 식히면서, 이제 그만 박사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조용히 박사를 불렀다.

“박사님, 7시예요. 일어나셔야 해요.”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아서 하나의 귀에도 들릴락 말락 했다. 기절한 듯 지쳐 잠자고 있는 박사를 깨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목소리가 절로 줄어든 것이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왠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하나는 한참을 박사의 얼굴을 보며 입술만 씹다가, 연락해야 할 곳이 있다던 말을 떠올리고 팔을 뻗어 박사의 어깨를 짚었다.

“박사님, 일어나세요. 7시가 넘었어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깨의 감촉이 생경했다. 어깨에 닿은 손에 자꾸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차마 흔들어 깨울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는데, 박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파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박사님. 깨셨어요?”

후다닥 손을 거두며 하나가 당황해서 말했다. 박사는 잠이 덜 깬 몽롱한 시선으로 하나를 쳐다보며 몇 차례 눈을 깜박이더니 곧 정신을 차렸다. 부드러운 미소가 박사의 입가에 걸렸다.

“…깨워줘서 고마워요, 하나 양.”
“뭐, 뭘요. 연락하실 곳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랬었죠.”

박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에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박사는 또다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하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불을 켜고서 침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박사가 거실로 나왔다. 피곤해 보이는 건 여전했으나 아까처럼 힘겨워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가 물었다.

“박사님, 바로 다시 주무실 거예요?”
“아니요, 12시까지는 깨어있으려고요. 콜이 올 수도 있고, 흐트러진 생활 리듬도 다시 잡아야하니까요.”
“그럼 저녁 드실래요? 방금 다 됐는데.”
“그럼요, 먹어야죠.”

누가 만든 건데요, 하고 잇대며 웃는 박사의 모습에 다시 볼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하나는 서둘러서 식탁 위에 식사를 차렸다. 박사가 차려지는 음식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물었다.

“웬 장어예요?”
“이게 보양음식이라고 하더라고요. 박사님 요 며칠간 계속 무리하셨잖아요. 그래서 한번 만들어봤어요.”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나직한 박사의 말투가 꼭 2개월 전에 해방 기념 축하의 날에 들은 그것과 비슷했다. 하나는 저도 모르게 식탁 밑으로 내린 손을 꽉 쥐었다. 어째서 박사가 웃을 때나 목소리를 낮출 때면 이렇게 반응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는 뭐라 해얄지 알 수 없는 마음에 그냥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잘 먹을게요, 하나 양.”
“아, 네. 잘 먹겠습니다.”

요리하면서 간을 보긴 했는데 박사의 입맛에 맞을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박사가 장어를 한입 먹고 음, 하며 미소 짓는 것을 보고는 걱정이 무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절로 나오는 저 행동에 대해 박사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함께 한 3개월 동안 박사를 유심히 살펴본 하나는 잘 알고 있었다. 뿌듯한 마음이 차올랐다. 한결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진행됐다. 박사는 즐거운 표정으로 장어를 먹었고, 그걸 지켜보는 하나도 따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식사를 마친 후 서로 나눠서 뒷정리를 끝내던 중, 하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님, 저 이번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집에 없을 거예요.”
“네? 무슨… 아, 그래요. 모레부터 2박 3일로 수학여행 간다고 했죠?”
“네. 제주도로 가요.”
“재미있게 잘 놀다와요. 사진도 많이 찍고요. 아, 용돈 줄게요.”
“아니에요, 저 돈 충분해요. 달마다 주시는 용돈도 대부분 못 쓰는 걸요.”
“그래도 막상 가면 쓸 데가 많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박사는 지갑을 가져와 오만 원 짜리 여섯 장을 하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안 받으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어디 놀러 간다고 해서 용돈을 따로 받아본 적 없는 하나로서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남들과 비교해 본 적은 없지만 액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박사는 그런 하나를 보며 웃었다.

“대신 사진 많이 찍어와야 해요. 알았죠?”
“……네.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재미있게 놀면 그걸로 됐어요.”

거부해봤자 소용없을 것을 알아서, 하나는 최대한 알뜰하게 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돈으로 박사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싶었다. 바쁜 박사의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될 무언가를 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나는 박사를 따라 미소했다.

*

written_by_blmt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39

고정닉 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6045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3258 25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446 14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907 32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375 25
1331450 공지 공지 [3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0356 43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917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1141 27
1464483 일반 요캇따 해도 욕먹을판에 요싴ㅋㅋㅋㅋ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0 26 3
1464482 일반 프리큐어에 백합이 참 많구나 ㅇㅇ(118.219) 04:16 15 0
1464481 🖼️짤 부모님이싸워서슬픈젤리쨩 포션중독용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1 31 0
1464480 일반 해리포터 백합 팬픽아는사람? [2] ㅇㅇ(124.53) 03:56 51 0
1464479 일반 카노 작중 시간으로 일주일 틀어박힌 거래 [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8 210 12
1464478 일반 ㅅㅂ 포치상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 포션중독용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7 59 0
1464476 일반 종트 이번화 넘 잼있다! 천사세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2 32 0
1464475 일반 안돼! [3] 치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7 64 2
1464474 🖼️짤 요루안욱 짤...?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2 92 2
1464473 일반 흐어엉 숨막혀ㅠㅠㅠ [2]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7 55 0
1464472 일반 ㅠㅡㅠ [3] 응애여아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2 37 0
1464471 일반 야 뚝백붕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9 41 0
1464470 일반 ㅋ 벼응신 ㅋ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9 239 12
1464469 일반 드디어 죽었나 백갤 [5]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99 0
1464468 일반 백붕이 한시간만 [2]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48 0
1464467 일반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애 낳음? [2] ㅇㅇ(59.13) 02:26 119 0
1464466 📝번역 [번역]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90화 [7] 유동(P)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8 453 36
1464465 일반 게임에 주인공이 있을 필요가 있나 [4]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6 109 0
1464464 일반 여주인공 고정 하면 또 헤번레인데 ㅎㅎ [1] rwbyro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70 0
1464463 💡창작 늠검) 결국.... 잘렸어.... 우우 백부이... [11] sabr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9 348 13
1464462 일반 ㄱㅇㅂ) 와 더워서 잠이 안 오네 [8] 씨사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130 0
1464461 일반 백바... 살아서 보자... [2] 후에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57 0
1464460 일반 애웅... ㅇㅇ(114.108) 01:50 57 0
1464459 일반 이거 갓에넬 아니냐 [3] ㅇㅇ(218.154) 01:49 145 0
1464458 일반 ㄱㅇㅂ) 잠 다 깼는데 그냥 작업이나 할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9 88 1
1464456 일반 왜 섭종이 확정되고 나서야 마기아레코드가끌리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6 60 0
1464455 일반 악리 센세는 ㄹㅇ 호감이네 아오바모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5 69 0
1464454 일반 백붕들 안뇽안뇽 [6]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43 0
1464453 일반 이치사키 보구가 [4] 초코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67 1
1464452 일반 소전 스토리에 보이스가 없는게 좀크다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65 0
1464451 일반 간만에 왔는데 진득하게 볼 거 없나 [3] 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69 0
1464450 일반 분명 10화 요루카노 대박쳐서 앞화 몰아봤어야됐는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102 0
1464448 일반 ㄱㅇㅂ 개졸리네.... [9]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1 156 8
1464447 일반 솦갤펌) 소전의 백합관계도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97 4
1464446 일반 카노안욱벌써 야짤나왓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55 0
1464445 일반 진짜 백합작가들 트위터들어가면 맨날작품들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92 0
1464444 일반 사람의 상상력이란 대체 뭘까 [2] 나리유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93 1
1464443 일반 밤해파리 자막은 보아하니 오늘도 글렀구만 ㅇㅇ(220.85) 01:33 84 0
1464442 일반 사사코이 애니화도 안됐는데 언급 왜이리 활발하지 ㅇㅇ(222.110) 01:32 287 19
1464436 일반 키황인데 왜 키위아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9 76 1
1464435 일반 꺄아아아아악 레즈마왕이야!!!!! [1] 키타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8 99 0
1464434 일반 키황 씹간지네... [2] ㅁ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121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