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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희희낙락 1.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1.24 00: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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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면 좋지만 딱히 안 봐도 좋을 1부 링크. - 



 나의 향길 원해 모두가. 바보처럼 왜 너만 몰라. 정말 미친 거 아냐, 넌. 


 왜 예쁜 날 두고 가시나. 




 들리던 노랫소리가 멀어졌다. 그 대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그녀는 이어폰을 빼고 줄을 대충 정리해 클러치 백에 넣어두었다.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민희는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다. 지하철역 2번 출구 가로등 밑에서, 누군가 민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반가움이 느껴지도록, 격한 손짓이었다. 


 “남민희!”


 잘못 들은 게 아니었는지, 그 사람은 큰 목소리로 민희의 이름을 불렀다. 실외에서 불어온 살짝 차가운 바람이 민희의 볼을 비껴 지나갔다. 민희의 볼이 날 선 바람에 에여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완전한 겨울이라 그런지, 부쩍 싸늘해진 요즘이었다. 


 “언니.”


 민희의 붉은 입술에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민희는 흔들리는 인영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더 기다릴세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안았다. 맞닿은 서로의 품에선 각각 다른 냄새가 났다. 일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얼마만이야, 이게!”


 “그러게.”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민희를 기다려준 사람은 그녀의 언니인 민화였다. 민희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피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자, 이젠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민화는 가로등보다, 더 환한 미소로 민희를 맞이해주었다. 민희는 어딘가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 기다렸어?”


 “얼마 안 기다렸어. 나야말로 괜히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얼마 안 기다렸다고 말하는 민화의 얼굴이 붉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선경덕에, 두 사람의 피부는 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하얗다. 그래서 겨울엔 조금만 빨빨거리며 돌아다녀도, 두 사람 모두 감기라도 걸린 듯 볼이 새빨개지곤 했다.


 추운 겨울. 바깥에 오래 있을 때는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아니야.”


 그래서 민희는 민화가 더 부담 느끼지 않게, 대답대신 괜찮다고 한번 웃어주었다. 민화는 민희의 손을 잡았다. 괜히 머쓱해진 민희가 차갑다며 놓으라고 했지만, 민화는 실실 웃으며 계속해서 민희의 손을 잡아 챌 뿐이었다. 


 손을 잡겠네, 안 잡겠네하며 벌인 힘겨루기에서 먼저 포기한 사람은 결국 민희였다. 민희와 민화는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 쪽으로 들어갔다.  


 “뭐 먹을까?”


 “이 주변에 라멘 맛있게 하는 데가 있거든. 거기 갈까?”


 “괜찮네.”


 마땅히 정해둔 메뉴도 없어서, 민희는 그냥 민화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잘 어울리는 메뉴이기도 해서 크게 불만은 없었다.


 민화는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겨울 밤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잡고 있던 손이 시려서, 두 사람은 손을 놓고 각자의 주머니에 콱, 박았다.  


 원래 두 사람이 오늘 만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퇴근 직전이었던 민희의 폰으로 민화는 오늘 만나고 싶다는 톡 하나를 보냈다. 조금 갑작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의 근무지가 비슷한 곳이어서 민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라멘 집 안에는 누가 불렀는지 모를 엔카가 흘러나왔다. 일본풍의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좋았다. 살짝 계절감이 없다고 느껴졌을 벚꽃 장식도 조명을 잘 받아 운치가 있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하고 손님이 다가왔다. 들어왔을 때엔 일본말로 인사했으면서, 주문은 한국어로 받는 건가. 그 모습이 민희는 퍽 우스웠다. 


 “돈코츠 라멘 두 개 하고, 생맥주는...”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던 민희가 민화를 바라보았다. 민화는 깜빡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아, 난 술은 됐어.”


 “그럼 생맥주는 한 잔만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종업원은 떠나갔다. 민화가 술을 안 마시다니. 뭔가 의외였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땐 반주라도 꼭 하곤 했던 사람이 민화였기 때문이다.


 민희는 은근히 놀리듯 민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술고래가 술을 마다하고.”


 평소 같았으면 무슨 소리냐고, 기운 좋게 맞받아쳤을 민화. 그런 민화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아, 그게... 있잖아.”


 늘 화끈했던 민화가 오늘따라 유독 몸을 비비 꼬았다.


 어쩔 줄 몰라하는 민화의 반응에 민희도 이상하다는 듯, 민화를 바라보았다. 민화는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두 손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깍지를 꼈다. 


 “저기, 나... 임신했어.” 


 민화의 귀에 걸려 있던 금색 귀고리가, 조명 빛을 받아 살짝 빛났다.  


 민희가 기억하는 민화의 모습은 언제나 철딱서니 없고, 집 안에서 알아주는 말괄량이였다. 


 두 살 터울의 이 언니는 중학교 때는 아무도 모르게 염색을 해서 엄마 속을 뒤집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사귀던 남자 친구와 덜컥, 가출을 해 엄마 속을 또 뒤집었다. 성인이 되던 해에는 또 덜컥, 그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해서 집 안을 또 다시 뒤집었다. 


 “이건 남편도 아직 모르는 따끈따끈한 특급 정보. 오늘 산부인과 갔다 왔거든.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역시 너라고 생각했어. 근데 막상 폰을 들고 나니까 덜컥, 겁이 나지 뭐야. 얼굴 보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건데, 그래도 좀 낫다.”


 그런 민화 언니가 이번엔 임신을 했다고 한다. 


 “이런 거... 이상해?”


 상대는 고등학교 때 같이 가출도 하고, 성인 때엔 같이 동거도 한 그 남자친구였다. 결혼도 그 사람이랑 했으니까. 


 “놀랐어?”


 민화는 민희를 향해 살며시 웃어보였다. 민화의 얼굴은 늘 장난스러웠다. 지금이나 그때의 얼굴이나 한결같았다.  


 “추, 축하해.”


 그게 너무 행복해보여서. 


 순간 민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 흘러 내렸다. 닦을 생각도 못한 채, 민희는 그저 눈물을 눈에서, 볼로 그리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계속 흐르는 눈물에 고개를 숙였다.  


 “야. 왜 울어.”


 장난스럽게 키득키득 웃는 민화. 맥주가 담긴 잔을 들고 오던 종업원이 흠칫, 하고 멈춰 섰다. 민화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양해의 눈빛을 종업원에게 보냈다. 눈치는 제법 있었는지, 종업원은 맥주잔을 옆 테이블에 두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옆에 있던 냅킨을 민희는 살짝 뜯었다. 민희는 민화의 볼을 적신 눈물들을 냅킨으로 살짝, 살짝, 찍어냈다. 눈물로 젖은 민희의 얼굴이 민화에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민화는 민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척 하며, 제멋대로 흐트러트렸다.   


 “음, 분위기는 좀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대신 울어줘서 고마워.”


 민화는 민희의 마음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웃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웃음에 민희의 죄악감은 더욱 타들어갔다. 처음 민화의 목소리를 듣고 민희가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이란 것이 예상치 못한 소식에 당혹스럽다거나, 평범하게 자신의 혈육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축하한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눈치를 보던 종업원이 라멘이 담긴 두 그릇과 생맥주가 담긴 잔 하나를 쟁반에 담아서 들고 왔다. 민화는 그릇을 두 손으로 잡아 국물을 살짝 들이켰다. 민희는 먼저 생맥주를 한 모금 입에서 굴린 뒤, 목으로 흘러 넘겼다. 


 어째선지 맥주는 평소보다 훨씬 더 쓴 것 같았다. 


 “눈물 날 정도로 부러우면 너도 빨리 결혼해. 중호랑은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냐?”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 민화는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민희는 정말 진심으로 웃어줄 수 없었다. 억지로 입가에 건 웃음은 더욱 그녀에겐 아파오기만 했다. 


 부럽다거나, 그런 게 아니야. 언니. 


 있지... 난 언니가 임신했다고 해서, 사실 안심해버렸어. 언니가 임신했으니까... 난 애 안 낳아도 된다는 생각에, 난 이제 해방이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말았어. 엄마한테 덜 미안해질 거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만 거야. 


 민희의 눈물은 언니의 행복에서 자신의 이득을 느낀 얄팍한 눈물이었다. 민희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눈물은 악어의 눈물보다 더욱 천박하고, 부끄러운 눈물이었다.  


 평범한 자매보단 서로가 조금 더 친하다고 생각하는 민화와 민희. 민희는 그런 민화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하나가 있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민희는 민화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봐!”


 응. 하고 대답할 시간도 없이, 민화는 버스 안으로 쏙 들어갔다. 버스 창밖으로 민화가 손을 흔들었다. 민희도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민화를 태운 버스가 저 멀리 사라지자, 그제야 혼자라는 느낌이 더더욱 실감이 났다. 


 바람이 차가웠다. 초겨울의 싸늘한 냉기에 입고 있던 옷깃을 더욱 여미고, 민희는 귀로를 향했다. 예상치 못한 민화의 소식에 민희는 마음이 영 심란했다. 


 가까운 바에 들러서, 조금 더 마시다 들어갈까.  


 그냥 집에 들어갔다간 오늘 느꼈던 자기 혐오감에 먹혀서 잠을 제대로 못 잘 것 같았다. 그렇게 민희의 발길은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쪽이 아닌, 조금 더 거리가 있는 큰 길로 향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화려한 불빛들이 민희의 눈에 띄었다. 이 부근엔 골목 상권이 강세여서, 술집 겸 음식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 된 몇 개의 술집이 있었다. 네온사인이 켜졌다, 꺼졌다하며 깜빡거렸다. 


 큰 길쪽으로 걸어가던 민희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네온사인 밑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구경하는 듯, 제각기 수군수군 거리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야, 놔! 이거 안 놔?!”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남성의 굵고 거친 목소리가 그 뒤를 따라갔다.  


 민희의 키는 작은 편이어서, 몰려든 인파들 때문에 큰 목소리를 낸 그 사람을 쉬이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하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했던, 꿈에도 그렸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이런 곳에서 들릴 리가 없는데도. 


 평소 같았으면 싸우는 목소리가 들려도 그냥 제 갈길 갔을 민희. 하지만 익숙했던 목소리 탓인지 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웠다. 인파들 틈 사이로 민희가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처럼 몰려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민희는 간신히 고개만 내밀었다.


 “야 이 씨발년아. 사람도 많은데 적당히 하고 좀 들어가자. 어?”


 얼굴에 칼집이 있는, 한 눈에 봐도 “아, 그쪽 계열이구나.” 싶은 얼굴이었다. 영화에서 볼 법한 깍두기가 한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여자의 하얀 손목에서 이어지는 팔은 가늘었고, 가는 팔과 더불어 다리도 깡말랐다. 계절감엔 어울리지 않는 딱 붙는 옷을 입어서 여자의 체형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련하다. 라는 느낌보단, 앙상하다. 란 느낌이 강한 여자의 몸이었다. 


 예전엔 분명 그러지 않았는데, 건강했으면 건강했지 삐쩍 마른 느낌은 아니었는데.   


 민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와주세요!”


 여자는 애타는 얼굴로 자신을 둘러싼 인파를 훑어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그랬다. 그러나 그 순간 여자는 자신을 바라보던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엄청나게 놀란 듯 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 사람, 민희를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여자는 미처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여자는 그대로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지하로 내려갔다.  


 여자의 얼굴은 이런 저런 세월에 겹쳐, 어딘가 많이 변했다. 그러나 기억 어딘가에서, 그 여자를 민희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가 밑으로 끌려가자, 재밌는 구경을 했다는 듯 모였던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졌다. 경찰에 연락을 취한다거나, 따라서 들어간다거나...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진짜.”


 몇 분 동안 고민하던 민희는 결국 우는 소리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리고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흩어진 군중 속이 아닌 보랏빛 조명이 비추는 지하로 사라진 두 사람을 따라서. 


 - 


 2008년에서 2017년으로.


 드디어 급식 감성에서 벗어나는 구나. 


 '희와희' 란 제목으로 조아라에서 1부 연재 중에 있습니다.


 문장 첨삭도 하고, 어색한 부분도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선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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