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느낌으로
아니 대체 몇번째 재업이람 글자제한이 몇개여
***
엘리자베스는 정신을 차렸다.
뒷통수에서 저릿함이 느껴졌고, 필름이 군데군데 끊겨 있었기에,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는 대신 자신의 기억을 되읊었다.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발렌시아 벨탄 라비안느. 벨탄 제국의 11번째 황녀. 그리고 백금 기사단의 창설자. 그리고 단장. 좋아, 정체성은 멀쩡하고. 가장 최근에 했던 일은......남부 곡창지대에 마족을 숭배하는 사교단체를 토벌하는 작전에 참여. 미리 잡입시켜놓은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갔었고, 그리고......'
약속장소에 만나기로 했던 단원들 대신, 악마들이 있었다. 몇십을 베어넘기고 단원들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거기서부터 기억이 끊겼다.
코 끝에서 썩는 냄새와 유황 냄새가 났다. 찬 공기가 옷 사이로 숭숭 들어왔다. 등이 차가운 걸 보니 돌로 된 제단 같은것에 누워있는 듯했다. 두 손목이 밧줄 같은 것에 묶인 채 머리 위에 고정되어 있었고, 의외로 발목은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주위에 인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옆에 누구지? 분명 악마일 텐데, 왜 죽이지 않은 거지?'
왜 악마들이 자신을 바로 죽이지 않았는지 엘리자베스는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알아낼 것도 없었기에, 엘리자베스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려 했다. 혹시나 간수나 지킴이 같은 것이 있을까봐, 또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뚫린 지붕 너머에 있는 달이었다. 아직 한밤중인지, 보름달이 확실히 떠 있었다. 곁눈질을 하니 쌓여 있는 짚단과 쇠스랑 등이 보였다. 안은 어둑어둑 했지만, 횃불 몇개가 켜져 있어 그런 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발끝 너머로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다.
"어머, 명성에 비해 너무 늦게 깨어나신 거 아니야, 공주님?"
그림자가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신의 여인으로 변했다. 엘리자베스는 여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전에 봤던 모습과는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또 몰라볼 수도 없었다.
"앤."
***
앤은 천조각을 비벼 손톱 사이에 끼인 찌꺼기를 떼어냈다. 역겨운 짐승들이 자신이 잡아온 전리품을 함부로 만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귀한 전리품에 짐승의 살점이 묻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침상에 누워 기절한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고 느꼈다. '언제 일어나는 거야? 내가 너무 세게 쳤나?'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니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럭저럭 몸에 묻은 피와 살조각을 닦아내고, 지저분해진 머리칼을 휩쓸어 넘기고, 관자놀이에 자라난 뿔을 한번 매만지고, 꼬리를 몇번 긁고 나서야 엘리자베스가 눈을 떴다.
"어머, 명성에 비해 너무 늦게 깨어나신 거 아니야, 공주님?" 앤이 빈정거렸다.
손목이 묶인 채 속바지와 붕대만 입고 있는 상황임에도, 황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눈빛으로 앤을 쳐다보았다. "앤."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앤은 담담하게 쳐다보는 황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이 떠났던 제인 대런과 비비안 마들렌은 어디 있나?"
두 동기의 안부를 묻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그 둘? 뭐...살아는 있어. 이름 두개인 것들이야 살아있으면 어디다 써먹지 않겠어? 몸을 조금씩 조각내서 갖다주면 대단하신 애비애미들이 징징 짜면서 간이고 쓸개고 내줄 텐데, 안 그래?"
"역겹군."
"지금 중요한 건 안부 따위가 아닌데, 공주니임?"
앤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엘리자베스의 쇄골을 긁었다. 손톱이 가는 대로 하얀 살갗에 빨간 생채기가 그어지더니, 이내 피가 흘러나온다. 앤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겨울에 피어난 동백꽃처럼, 흰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아름다웠다. 황녀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 꺄악-같은 소리는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좀 동요해야 하는 거 아냐? 매일 얼음 공주님 같은 소리만 듣다가 진짜 눈사람이 되어 버린거야?"
"기사의 의무를 저버리고 마에 홀린 너에게, 내 감정을 내보일 생각은 없다."
"아, 그러셔?"
앤은 엘리자베스의 머리채를 잡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웨이브가 진 기다란 금발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목을 뽑아낼 것처럼 흔들다가, 돌제단에 머리를 부딫치게 만든다. 결국 황녀는 신음을 내뱉고야 만다.
"으윽..."
"잘만 내보이는데, 안 그래?"
고통과 어지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앤을 노려보았다. 앤은 그 모습이 아까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우악스런 손길로 황녀의 턱을 움켜쥐고는 이리 저리 돌려본다.
"공주님 신세를 알라는 거지. 지금부터 공주님의 예쁜 눈을 뽑을 수도, 입을 찢을 수도 있다고? 어디가 마음에 들어? 눈? 코? 입?" 자신의 손톱을 얼굴 여기 저기 가져다댄다. 엘리자베스는 단도같은 손톱이 눈가에 아른거려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협박따위로 무서워할 것 같나."
"역시, 말보단 실천으로 사시는 공주님이야. 그럼...이건 어때?"
순식간에,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처럼 엘리자베스의 목을 세게 물었다. 순간적으로 엘리자베스는 숨을 들이켰다. 날카로운 이빨이 피부를 누르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물고 있는 그 자세 그대로, 앤의 이빨 너머로 엘리자베스의 숨결, 목젖이 진동하는 느낌과 침이 넘어가는 것까지 전부 느껴졌다. 물론 살이 뜯길 정도로 억세게 물지는 않았다. 앤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쿨럭, 쿨럭..."
"어머, 아파? 아파서 어떡하지? 아픈건 지금부턴데~?"
"...흥."
목에 잇자국이 남아도 계속 평정심을 지키려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앤은 오히려 자신이 안달나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묶여 있고 아프고 답답한 쪽은 그쪽일 텐데. 엘리자베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황녀의 포커페이스를 깨트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앤은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못 움직이는 쪽은 공주님이고, 나는 몇날 며칠이고 계속 이럴 수 있잖아? 계속 괴롭히면 공주님도 사람인데 못 버티겠지. 뭐 계획을 바꿀 필요도 없네.' 앤은 본 목적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여흥은 이쯤 하고, 본 내용으로 들어가지."
"무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앤은 엘리자베스의 속옷을 찢어버렸다. 칭칭 감겨있던 붕대와 속바지를 찢자, 기사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꽤나 볼륨 있는 몸매가 드러났다.
"역시 좋은 몸이네 공주님? 누구랑 다르게 좋은거 먹고 잘 자라서 그런가?"
"어떤 좀도둑보단 잘 먹고 다녔으니, 당연하다."
성공적인 도발이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묶여 있는 신세. 입을 놀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처지에 불과했다.
"예쁜 입술인데, 혀는 차갑기 그지없네......좀 닥쳐줘야 겠어."
엘리자베스가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앤은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에 우악스럽게 문댄다. 이를 꽉 문채 저항하는 그녀의 턱을 억지로 벌리고 혀를 밀어넣는다. 뱀처럼 갈라진 앤의 혀가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오자, 엘리자베스도 저항을 포기한다. 그러자 앤은 본격적으로 입 안을 탐한다. 황녀의 혀를 한두바퀴 휘감고는, 송곳니 사이를 훑다가, 입천장을 툭툭 건드려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타액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황녀의 호흡이 가빠지더니, 서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호흡곤란이 오든 말든 앤은 더욱 열정적으로 키스를 해 대었다. 엘리자베스가 더 버틸 수 없었는지 꺽꺽거리는 소리가 나자, 앤은 그제서야 붙잡았던 턱을 놔주었다. 두 입술 사이로 달빛을 받은 은색 실이 길게 늘어졌다. 황녀는 가쁜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허억 헉......앤, 정도도 모르나?" 숨이 넘어갈 것 같아도 할 말은 하는 황녀였다.
"하하...길바닥 출신이라 정도 같은건 모르거든. 좀도둑과 함께한 키스 맛은 어떠신가? 내가 알기론 이게 첫 키스인걸로 알고 있는데, 어때?"
"그런 처음 따위에 의미를 두는 건 사춘기 애들 뿐이다."
"글쎄, 과연 그럴려나?"
앤은 앨리자베스의 알몸을 내려다보았다. 황녀의 알몸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닐뿐더러, 종종 봤었다. 기사단의 목욕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다들 기사단 장원 안에 있는 목욕탕을 이용하곤 했다. 황녀에겐 기사단장으로써 개인 숙소가 있지만, 종종 단원들이 쓰는 목욕탕에 같이 들어가곤 했다. 단원들은 목욕하는 황녀를 몰래 흘깃흘깃 쳐다보다가, 황녀가 떠나고 나면 단장의 몸이 예쁘다는 둥 미인이라는 둥 닮고 싶다는 둥 상사에게 불경스럽게 들릴 수 있는 말들을 시시덕거렸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몸과 비교하며 서로를 놀리거나 좌절감에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단원들에게 악의는 없다. 다들 황녀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사단에 입단한 소녀들이니까.
앤 자신도 몇번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로지 황녀에 대한 정복욕으로 가득한 채 엘리자베스의 몸을 어루만졌다. 촉감이 마치 우유처럼 하얗고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이리 저리 만지는 보람이 있었다. '따뜻하네...' 사슴 같은 목, 우아하게 뻗은 팔, 톡 도드라진 쇄골, 탄탄한 옆구리와 복근......여기 저기를 매만지고, 쓰다듬고, 손톱 자국을 내고, 핥고, 깨물어 맛을 본다. 앤의 거친 손놀림에 엘리자베스의 몸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피어 오른다. 황녀는 붉은 꽃이 피어날 때마다 입술을 깨문다.
"누구랑은 다르게, 참 예쁜 몸이야. 그치?"
"...말이 많다."
"참 나, 예뻐해 줘도 문제야."
그러고는 손을 엘리자베스의 가슴에 가져간다. 손에 꽉 차게 들어오면서도 도담한 가슴. '내거랑은 많이 다르네...' 앤은 마치 사과를 베어 물듯 엘리자베스의 가슴을 크게 물었다. "윽!" 황녀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빨간 입자국이 나고, 피가 살짝 배어나오더니 선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린다. 앤은 그 피를 핥아 먹더니 이윽고 젖꼭지를 세게 문다. 혀를 이리 저리 굴려 가면서, 이로 잘근잘근 건드린다. 엘리자베스는 신음이 나오는 걸 막으려 몸을 바르르 떤다. 여태껏 보여준 반응 중 가장 재미있는 모습이었는지, 앤은 더욱 신이 나서 황녀를 괴롭힌다. 손으로 다른 쪽 가슴을 붙잡고, 꼬집고, 튕기고, 비튼다. 이를 꾹 다물던 엘리자베스는 간신히 신음 소리를 참아내었다.
"우와, 공주님, 너무 잘 버티는데?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말야." 황녀를 약올리기 위해, 과장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쓸데없는...말 하지 마라."
"쓸데 없긴, 공주님이 싫어하는 말이 얼마나 쓸모있는 말인데." 빈정거리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의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을 핥아먹고는, 앤은 공주의 아래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정갈하게 잘 정리된 음부가 눈에 띄었다.
"오? 깔끔하게 되어 있잖아. 매일 갈고 닦는 건 검만이 아니었나봐?"
"시끄럽다."
"쓸 일도 없었을 텐데 말야. 누굴 위해 준비를 하셨나? 혹시, 나?"
시끄럽게 나불대면서, 앤은 엘리자베스의 음모를 만지작거렸다. 황녀가 다리를 오므리려고 하자, 앤은 자신의 꼬리로 다리를 붙잡아 벌린다. "뭘 부끄러워 하고 그래?" 그리고 황녀의 음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엘리자베스는 다리가 고정되자 허리를 이리 저리 비틀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변태로군."
"악마한테 그건 칭찬인데?"
"벌써 인간이길 포기했나?"
"시끄러. 닥치고 구경이나 하시죠, 공주님?"
앤은 험한 말을 내뱉고는 허벅지 안쪽을 손톱으로 쿡쿡 누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상태를 떠올린다. 길게 돋아난 손톱, 손톱이라기보단 단검이라고 해야 할 것이 영 거슬렸다. 어쨌든 자신도 여자고, 이 흉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걸 그대로 집어넣다간 볼 재미고 뭐고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망설이지 않고 검지와 중지에 자라난 손톱을 뽑아낸다. 검붉은 피가 줄줄 흘렀지만 앤은 개의치 않았다.
"뭘 한 거냐?"
"하, 쓰....아파라. 아, 별건 아니고, 이게 당신 몸 안에 들어갈 거라 좀 다듬었어. 공주님이 좀 깨끗하게 해줘."
"읍..."
피가 나는 손가락을 그대로 엘리자베스의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뜨듯한 피가 황녀의 입안에 머금었다. 손가락 너머로 엘리자베스가 피를 삼키는 것이 느껴지자, 앤은 손가락을 빼내고는 깨끗해진 모습을 바라본다. 악마의 힘인지 손톱이 뽑혀나간 자리는 금새 아물고 그 자리를 살이 채웠다. 손톱이 없는 손가락에 조금 위화감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제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앤을 즐겁게 했다.
새로운 손가락과 함께, 앤은 엘리자베스의 음부의 입구 근처를 이리 저리 비비고 만져댄다. '다른 사람거는 처음 만져보는데...내꺼 할 때처럼 하면 대충 되겠지?' 여기인가 싶은 곳을 툭 건드리자, 황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는다.
"으읏!"
'어? 오, 흠, 좋았나?' 꽤나 큰 신음소리에 엘리자베스보다 앤 자신이 더 놀란다. 반응이 생각보다 다채롭자, 앤은 당황하면서도 자신감이 생겼는지 애무도 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곧바로 집어넣는다. "으, 읏..." 손가락을 꽈악 조여오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대로 앤은 손가락을 이리 저리 놀려대지만, 영 어설픈지 황녀의 입에선 아파서 내는 신음소리가 흘려나온다.
"앤, 너..."
"아, 아니 그러니까, 음, 이건 한번 해 본거야, 그니까 준비를 좀..."
엘리자베스는 앤을 노려본다. 단순한 미움보다는 더 복잡한 감정을 담은 눈빛이었다. 앤도 그 눈빛에 잠깐 움찔한다. 황녀는 뭔가 마음을 먹은듯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목, 풀어다오."
"네? 아니, 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손을 묶은 밧줄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거 풀어주면 당연히 도망갈 거 아냐, 내가 미쳤다고 그걸 풀어줘?"
"어차피 여기는 마굴 한가운데고 나는 비무장 상태다. 도망도 갈 수 없고 널 공격할 수도 없지. 안 그런가?"
"아니 뭐, 그렇긴 한데..."
"풀어 줘."
'어, 이게 아닌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에, 앤은 투덜거리면서도 밧줄을 풀어 준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거리가 딱히 떠오르지도 않았다. 밧줄이 풀리자, 엘리자베스는 한숨을 내쉬고 손목을 이리 저리 접었다 폈다, 팔을 몇번 빙빙 돌리더니, 앤의 목을 붙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아까와는 전혀 다른 말의 황녀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입으로 해줘. 부드럽게." 무뚝뚝한 단장의 어투가 아닌, 요염하고 미끄러지는 말투였다.
'뭐? 입으로?' 갑작스럽게 달라진 말투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요청에 앤은 속으로 당황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있고, 자존심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서는 엘리자베스의 다리 사이에 입술을 맞대었다. 아까보다 더욱 흥건히 젖어 있었고, 왠지 달콤한 향기가 나는 듯했다. "하읏..." 딱딱해진 클리토리스를 이로 툭툭 건드리면서 혀로 휘감는다. 둥글게 부풀은 살을 머금고 빨때마다 엘리자베스의 허리가 바들거린다. 그러면서 손으로 앤의 머리를 감싸며 헤집는다.
앤은 엘리자베스를 올려다보았다. 붙잡아두고 실컷 괴롭히려는 속셈이었지만, 오히려 봉사해주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모두에게 경애와 찬사를 받던, 그래서인지 모두에게 차갑게 굴던 그 황녀를 애무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면서도 엘리자베스가 기분 좋게 신음을 내뱉을 때마다, 자기 머리를 감싸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 때마다 받았던 설움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의 허벅지가 조금씩 경련하면서 머리를 조여오는 듯 했다. 내뱉는 신음소리가 거의 외침에 가까워지면서 머리를 감싸는 손길도 점점 격해졌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갈 거 같은데?' 하는 순간, 황녀는 앤의 머리를 밀쳐냈다.
"어, 뭐야?"
"하아, 하......후으, 그쯤 하고, 이리 올라와."
'올라와? 어딜?'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앤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엘리자베스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를 슬쩍 끌어당겼다. 아까처럼 앤이 엘리자베스를 덮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공주의 손목이 묶여있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공주님, 겉으로는 성실한 척 하더니 이거 완전..."
엘리자베스는 앤의 말이 많아지는 걸 원치 않았다. 대답이나 반박 대신에, 앤의 목을 휘감고는 슥 잡아당겼다. 그리고 앤의 입 주변에 묻은 자신의 애액을 핥아 주고선 입을 맞추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황녀의 혀가 적극적으로 앤의 입을 탐하기 시작했다. 앤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뱀처럼 갈라진 혀를 들이대었다. 서로의 것이 얽히고 섥히더니 이내 뒤섞였다. 결국 숨이 달리기 시작한 공주가 먼저 물러났다. 그러고는 앤에 귀를 깨물듯이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손으로 해줘...앤, 얼굴 보면서...하고 싶어."
분명 덮치는 쪽은 자신인데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멀쩡히 기사단으로 돌아가서 공주님이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안다고 하면, 다들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겠지.' 오른손이 황녀의 다리 사이로 내려가다가 이내 입구 앞에서 멈췄다. 아까처럼 급하게 밀어넣지 않고, 음부 옆에 두덩을 슬슬 매만졌다. 검지와 중지로 클리토리스를 살짝 꼬집기도 하고, 빙글 빙글 돌리며 툭툭 치다가, 입구 근처에서 애를 태우듯 그 주변을 문질렀다. 손가락 끝이 조금씩 축축해져 갔다. 어느정도 되었다 싶자, 검지와 중지를 조금씩 밀어넣었다.
"하읏..!" 아까보다 훨씬 듣기 좋은, 비음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엘리자베스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끝까지 다 들어가자, 약한 부분을 찾아 손가락을 빙글 빙글 돌렸다. 황녀의 반응에 맞춰서 이곳 저곳을 매만지고 꾹꾹 눌러대었다. 참을 수 없다는 듯 공주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여기 저기 손가락을 지분거리기를 수 차례 반복하다가, 엘리자베스가 유독 약한 소리를 내뱉는 부분을 찾아내었다. 이윽고 손가락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황녀는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앤의 날갯죽지를 세게 움켜쥐었다. 앤은 오직 손가락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그녀를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엘리자베스는 계속 앤의 이름을 흐느꼈다. 황녀의 신음이 앤의 귀에 너무나 감미롭게 들렸다. 스스로도 흥분된 나머지, 앤의 손가락이 격해져만 갔다. 공주의 등이 활처럼 휘더니, 거의 매달려있는 모습이 되었다. 자신에게 매달린 공주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항상 한대 먹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엘리자베스의 다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져 갔다. 지금 있는 곳이 마굴 한복판이라는 걸 잊었는지, 서로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와 신음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황녀의 허리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고, 손가락이 거의 등을 후비듯 파고들었다. 앤도 곧 끝에 다다를 것을 직감했다.
"아읏...! 하윽...앤...!앤..."
거친 신음을 내뱉으면서, 짜릿한 감각이 엘리자베스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앤도 지친 나머지 공주 위에 풀썩 쓰러졌다. 아직도 여운이 남았는지, 등과 허리가 계속 움찔거렸다. 공주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앤의 등과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가쁜 숨소리와 함께, 둘은 서로의 이름을 계속해서 속삭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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