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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희희낙락 6.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2.19 01: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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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2편 3편 4편 5편


-


 마음 놓고 자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을까. 누군가 머리채를 잡지 않을까. 누군가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매일, 매일을 떨었다. 


 도망을 다니는 동안엔 이렇게 편히 잠에 든 적이 손에 꼽았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뜨인 눈이 원망스러웠다. 


 따스한 햇살이 들여보내달라는 듯 반투명 창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차은희는 문득 그런 생각들을 했다. 


 자면서 눈물을 흘린 것인지, 눈을 뜨기가 쉽지 않았다. 따끔거리는 눈가를 팔뚝으로 비비자 더욱 얼얼했다. 아, 아. 하고 은희가 외마디 신음을 흘렸다. 정말, 한결같은 바보짓이다. 


 보일러를 틀진 않았는지 방안이 제법 서늘하다. 그래도 아직 초겨울이라 그런지, 은희는 방 안이 마냥 춥다고 느끼진 않았다. 


 겨울을 맞이해 털 이불도 쓰는 모양이고, 결정적으로 전기장판이 몸을 온기로 덥혀주고 있었다. 


 겨울에 전기장판이라, 은희는 그게 또 감격스러워서 한번 장판을 매만졌다. 그 따스하다기 보단 뜨거운, 그 온기를 느껴본 게 도대체 언제였을까. 


 남들에겐 평범한 것일지라도, 지금의 은희에겐 모든 것이 안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역시 평범한 게 좋다고, 은희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털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은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은희의 눈에 띈 것은, 벽에 걸린 한 연예인 브로마이드였다. 은희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원더걸스의 선미. 원더걸스를 다 좋아한다고 하긴 했지만, 분명 선미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었지. 선미는 아직도 좋아하는 걸까. 


 그 흔한 갈아탐 없이, 참 일편단심이구나.


 은희는 시선을 조금 옮겼다. 그러자 화장대 거울이 보였다. 예전엔 화장대 거울이 없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디서 가져온 걸까. 


 거울을 조금 더 살펴보자 포스트잇 하나가 은희의 눈 안에 들어왔다. 


 은희는 이불을 몸에 돌돌 만 채 움직였다. 그리고 거울에서 포스트잇을 떼었다. 익숙한 글씨체. 과외를 통해 항상 곁에 두었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글씨체였다. 


 은희는 단번에 메모를 누가 남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운동 갔다 올게. 어제는 미안. 깨면 전화해.’ 


 앞면엔 전화번호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고.


 ‘도망가면 죽어.’ 


 뒷면엔 조금 날선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슨... 아수라 백작도 아니고.”


 메모 반쪽 차이로 온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메모의 일교차 때문인지, 보일러를 안 튼 바닥에 발이 시려서 그랬는지 은희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나저나 무슨 짓을 했기에, 직접 미안하다고까지 메모를 남겼는지 은희는 조금 궁금했다. 


 은희는 어젯밤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릿속은 흐릿했다. 그게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한 은희. 다시 한 번 뒤 돌아 보아도 식탁에 앉았던 기억 이후의 조각들이 모두 끊겨버린 것 같았다.  


 술에 떡이 되어도 필름이 끊긴 적은 없었는데, 이상한 시점에서 필름이 탁, 하고 끊겨버리다니. 참 요상한 타이밍이다. 그만큼 이 집에서 안정감을 얻은 걸 증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설마 무슨 실수 같은 걸 한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차은희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은 조그마한 희망도, 결국은 희망인 것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반영하듯, 은희의 배속에선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때에도 역시 배는 고팠다. 은희는 이불을 잘 개어서 침대 한 쪽에 놓아두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뭐든 먹어둬야 한다. 그게 은희가 거지같이 살며 느낀 점들 중 하나였다. 

 

 이런 저런 재료들을 기대하며 열었던 냉장고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였다. 


 분명 사람이 사는 곳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 그게 놀랍기도 하고, 또 안쓰럽기도 해서 은희는 제법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식재료가 없었다. 그나마 보이는 게 김치 통에 담긴 김치 정도일까. 달걀도 몇 알 있긴 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부실한 건 여전하다. 


 아무리 혼자 살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 사는 느낌이 안 나는 냉장고는 참 오랜만이었다. 


 아영 언니네 냉장고가 딱 이런 느낌이었지. 아마. 


 은희는 냉장고를 탈탈 털어 재료를 꺼냈다. 물론 탈탈 털 것도 없긴 하지만, 최대한 뒤져본 게 다일 뿐이다. 


 그 결과 나온 재료는 다음과 같았다. 밑뿌리 부분부터 썩은 파 한 단. 달걀 두 알. 그리고 반찬통에 담긴 김치 정도. 


 혹시나 해서 뒤져본 선반에는 라면 몇 개가 있긴 했지만, 일단 라면은 보류다. 대신 그 옆에 있던 스팸을 한 통 꺼냈다.


 은희는 민희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해준 김치볶음밥처럼, 이젠 자신이 대접하는 의미에서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해주고 싶었다. 


 어제 해줬던 볶음밥은 결국 내가 다 먹었으니, 이렇게 내가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되려, 좋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그게... 그 별거 아닌 게, 참 좋다. 밥을 같이 먹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게 참 좋다. 


 은희의 얼굴이 곧 만들 김치 볶음밥처럼 붉어졌다. 


 왠지 모르게 설레는 아점이다. 


 도마에 햄을 올리고 두 동강을 냈다. 하나는 볶음용, 하나는 구이용으로 해야겠다. 파도 썩은 부분만 일단 칼로 잘라 내었다. 볶으면 단 맛이 더 강해질 테니, 햄과 같이 볶는 게 좋을 것 같다. 


 계란은 다른 프라이팬을 하나 더 꺼내 반숙으로 볶음밥 위에 올리는 것이 좋겠다. 어제의 민희는 스크램블에 가까운 프라이였으니, 반숙을 해주면 더욱 좋아할 것 같았다.

 

 김치도 썰고, 김치 국물도 밥과 살짝 섞었다. 미리 잘라둔 파와 햄도 같이 투하했다. 나무 주걱으로 이리 저리 볶았더니, 밥알들도 점점 발갛게 물들어간다. 


 부풀어간 마음도 참을 수 없이 붉어져만 간다. 


 민희에게 전화를 걸까 했지만, 은희는 그 마음을 그냥 꾹 참았다. 전화를 안 해도 금방 오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고, 민희가 들어왔을 때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아까도 생각했듯, 대접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해주고 싶은 게 은희의 마음이다.  


 한층 달궈진 다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대로 두 개를 깨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익어가는 프라이를 분리시키는 은희. 요리는 은희의 몇 안 되는 특기 중 하나였다. 


 프라이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먹음직한 소리를 냈다. 밥그릇은 따로 꺼내지 않았다. 계란 프라이가 어느 정도 익으면 그대로 프라이팬에 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볶음밥이라고 해도, 고작 두 사람만 먹을 분량이어서 꺼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을 먹는다면 역시 같이 먹는 게 좋다. 먹는 그릇이 같다면 오히려 더더욱 좋다. 


 뒤집개를 이용해, 살짝 익힌 프라이를 볶음밥으로 얹으려고 했을 때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 사이에서 철컥, 하고 열쇠 소리가 들렸다. 민희가 돌아온 걸까. 


 “벌써 왔나~”


 은희는 살짝 콧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은희는 자각하지 못했다. 자각할 수 없었다. 은희는 민희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그저 그것만 생각했다.


 볶음밥을 해준 걸 알면 민희가 뭐라 할까. 또 김치 볶음밥이냐며 툴툴대지 않을까. 어쩌면 말도 안 하고 그냥 먹어줄 것 같은 느낌도 좀 들고. 어쩌면 잘했다고 해줄 수도 있겠네. 


 아, 몰라. 뭐든 좋으니 그냥 맛있게만 먹어줬으면...


 “어?”


 외딴 한 마디와 함께, 은희의 모든 사고가 정지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머릿속이, 한 순간에 하얀 색으로 멎어 들어갔다. 


 지글지글 무언가 익어가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은희는 그대로 정신을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


 어? 라는 한 마디에 이어서, 은희의 앞에 서있던 여자는 또 한 마디를 꺼냈다. 눈물점이 찍혀 있는 눈가를 살짝 찌그러트린 채다. 여자의 그 모습에, 은희는 이곳이 민희의 집이 아니었던 걸까? 라는 착각조차 했다. 


 집에 들어온 사람은 민희가 아니었다. 검은색 롱부츠에 주머니가 달린 핑크 코트를 입은 여자는 민희가 아니었다. 그럼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민희의 친구일까? 민희와 아는 사이라고 보는 게 역시 적당하겠지. 그렇지만 백번 양보해서 친구 사이라고 해도.. 집 열쇠까지 서로 나누는, 그런 친구 사이는 보통 없을 텐데.


 은희의 마음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렸다. 참을 수 없는, 그렇지만 참아야 되는 그런 불안감이란 이름의 구멍이 뚫려버렸다. 


 여자는 자신이 쥐고 있던 열쇠를 한번 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 호수를 확인했다. 물론 이 집이 맞다. 문도 제대로 열렸는데, 아닐 리가 없다.


 “여기... 남선배 집, 맞죠?”


 여자는 살짝 뜸을 들이다 남선배라는 호칭을 들먹였다. 은희는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서 선배의 앞에 붙어있는 성씨인 ‘남’을 ‘남민희’라고 생각해도 될 것인지. 


 “남민희 씨 집은 맞아요.”


 일단 은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이 사람이 민희의 손님이라면, 자신이 쫓아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버린다. 


 이럴 때는 한 걸음 접어주는 게 낫다. 


 “아~ 역시 맞네.” 


 여자는 안심했다는 듯, 부츠를 벗고 실내로 들어왔다. 마치 제 집인 것처럼 안방까지 들락날락거리며 보일러를 켰다. 그러고는 식탁에 앉았다. 


 “평소랑은 다르게, 모르는 분이 있어서.. 잘못 찾아온 줄 알았어요.”


 유독 평소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는 여자의 목소리. 은희는 그게 살짝 기분이 묘했다. 은연중에 뭔가 불순물 하나를 끼얹은, 그런 느낌이다.  


 은희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거북했는지, 여자는 헛기침을 크흠, 하고 한번 했다. 그리고는 자신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남선배 대학 후배예요. 지금은 회사 후배지만.”


 이연지라고 합니다, 하고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덧붙였다. 살짝 눈웃음을 짓는 연지의 그 모습이, 은희의 눈에도 제법 귀엽고 요염하다. 


 그래서 그런지 후줄근한 지금 자신의 모습이 은희는 조금 창피했다. 세수도 제대로 못했는데.


 “차은희라고 해요. 민희랑은...그... 친구예요.”


 은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목소리 또한 개미가 기어들어가 듯 작은 목소리였다. 무슨 사이라고 덧붙일지 고민하다, 결국 친구 사이라고 해두었다. 채무관계 이전에 친구였던 적이 있긴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연지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아... 그.”


 은희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짚이는 게 있는지, 연지는 조용히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다 무언가 신경에 쓰였는지, 다시 한 번 연지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근데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아!”


 연지의 말대로, 그제야 은희는 계란프라이를 그대로 프라이팬에 올려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늦게 계란을 뒤집었지만, 이미 갈색을 넘어 새까맣게 타버린 후다.

 

 “다 탔네...”


 써버린 계란이 아까워서, 억지로라도 먹을까 했지만 역시 너무 탔다. 그리고 옆에 연지도 있는데, 그러한 추태는 좀 자제하고 싶었다. 


 계란 프라이를 꺼내지도 않고, 그대로 물을 틀어 프라이팬을 식혔다. 좀 있다가 설거지를 할 때,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처리를 물어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민희에겐 어쩔 수 없이 볶음밥만 먹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은희가 막 식탁에 볶음밥을 올렸을 때였다. 


 “아, 저 밥 안 먹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혹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연지. 은희가 연지의 눈을 바라보자, 연지는 지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은희의 눈을 맞받아쳤다. 


 “...드세요.”


 결국 기 싸움에서 밀린 사람은 또 은희다. 


 점심을 먹는다면 민희와 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아닌 모양이다. 


 “진짜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전혀 기쁘지 않은 목소리로, 혹은 놀랍지도 않은 목소리로 연지는 말했다. 그 목소리에 은희는 더욱 힘이 빠졌다. 

 

 그런 널널한 마음가짐으로 처먹을 거면, 그냥 안 먹어줬으면 좋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 한 구석에서 숟가락을 꺼내는 연지. 그 모습이 이 집에 한두 번 온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볶음밥이 뜨거운 듯, 밥을 먹으면서 하아, 하고 들숨을 내뱉는 연지. 긴 머리를 살짝 넘기는 그 모습이 또 홀릴 듯 매혹적이다. 


 눈길 하나, 행동 하나에 색기가 흐르는 모습이, 은희는 살짝 불안했다. 연지에겐, 어쩐지 위험한 느낌이 든다. 


 이를테면 ‘언니’와 같은 포식자의 느낌이 들었다.   


 “근데 신기하네요.” 


 숟가락이 프라이팬과 맞닿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 덕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은희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지는 말을 이어갔다. 


 “남 선배한테 친구 있다는 말. 저는 처음 들었거든요.”


 연지의 말에, 은희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답을 바란 건 아닌 모양인 듯, 연지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그런 주제에 남자 친구는 또 있고. 신기한 사람이죠. 남 선배.”


 “민희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 친구’란 단어에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은희 본인도 잘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멜랑꼴리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이기적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남 선배는 제 호기심을 좀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연지는 살짝 컵을 들었다. 물을 넘기자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불같은 성격을 어느 정도 식힐 마음도 좀 있었다. 


 지금 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단 순간에 따박, 따박 올려붙이고 싶은 게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지는 참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그쪽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고.”


 그래서 결국 연지는 터트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사실을, 연지는 꾹꾹 눌러 담아 최대한 담담한 모양새로 터트렸다. 


 “지금 그쪽이 입고 있는 그 옷. 그 옷도 내가 집에서 가져온 거야.” 


 연지의 화를 내지 않는 그 모습은 은희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그쪽, 선배랑은 무슨 관계야? 진짜 궁금해서 그래.”


 “차은희!”


 닫혀있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엔 남민희가 들어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진짜‘남민희’ 가. 


 이런 생각은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듯, 일그러진 민희의 그 얼굴이 모든 것을 은희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은희는 더욱 절망했다. 


 둘의 사이는 항상 엇갈렸다. 


 한 번은 누군가 앞서 나갔고, 한 번은 누군가 뒤처지고를 계속 반복했다. 중간에서 한번이라도 만났으면 했는데,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더니, 딱 그짝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조금이나마 행복했는데. 결국 그것 또한 착각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려앉았다고, 가라앉았다고, 추락해버렸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버렸다. 

-


1부에선 민희가, 2부에선 은희가 공평하게 고통받는 소설.


혹시 레데리2 아십니까? 진짜 갓-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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