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각이 같지 않기를(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332689)의 다음 이야기.
나의 기억은,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전화기를 들고 홀로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낯선 건물 안에서 기다란 상자를 보았다. 사람들은 상자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 당시의 내게 감정이라는 게 분명했다면, 나도 아마 그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함께 울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바로 그 때 세상 모르는 갓난아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처음 며칠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건물을 나와 언덕에 그 상자를 묻고 나서, 나는 엄마가 울고 있던 바로 그 곳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엄마는 며칠동안 거실 한켠에 앉아있었다. 가끔씩은 내게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더욱 가끔, 며칠 전의 바로 그 모습처럼 울 때만을 빼면 거의 항상 무표정이었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지만, 아무 생기 없는 표정과 울음이 반복되는 그 모습은 내 머릿속 가장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 이후, 엄마는 그런 생기없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렇게 서럽게 운 일도 없었다. 한동안 평온한 나날들이 지나갔고, 짧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가장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건 엄마의 얼굴이었다. 황갈색의 단정한 장발, 보고만 있어도 편안해지는 둥근 눈, 그 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서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빛이 있었다. 나를 바라볼 때마다 엄마는 눈을 반쯤 감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은 미소였다. 내게 모든 걸 줄 수 있다고 약속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뭔가 투정을 부리려고 할 때마다 엄마의 검은 눈 안에서 빛나고 있던 그것과, 그 미소와, 생기 없던 얼굴과, 서러운 울음이 반복해서 뇌리에 떠올랐다. 그리고는 결국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엄마에게서 그 빛도, 미소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 나이에, 나는 분명 모자람 없이 사랑받았을 것이다. 한동안은 엄마에게서 사랑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빠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존재를 알지 못하니 아빠가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내 기억의 처음 순간, 그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6살 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초인이 아니었다. 삶을 이어나가려면 일이 필요한 법이었고, 엄마는 자주 내게서 떨어져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얌전하게' 시간을 보낼 방법을 생각하다, 마침 TV에서 즐겨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의 방영 시간이 다 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조금 일찍 TV를 틀었다. TV는 '엄마'를 얘기하고, 또 '아빠'를 얘기하고, 둘 모두가 있는 가정을 '평범'하다고 말하고, 또 둘 중 어느 하나가 없는 가정을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불행하며 주변의 관심이 필요한지도 얘기했던 모양이다. 그 때, 나는 내가 TV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불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이미 '평범'과는 한참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날 오랜만에 내 앞에서 울었다.
내가 엄마를 울렸다. 감히 엄마에게 울지 말아달라고 할 수 없었다. 가장 두려워하던 그 일을 내가 스스로 일으켰는데 그런 말만으로 책임을 덜려고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이 울고 싶을 것 같은 기분을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엄마를 껴안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되내이기만 할 뿐이었다.
7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었다. 몇몇은 내게 아빠가 없다는 사실 자체를 내가 불행해야 할 이유라도 되는 것마냥 얘기하기도 했고, 내가 자기들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다른 이유로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억지를 그냥 받아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었다.
"지영이 니는 아빠도 없으면서 까불어!"
"아빠 없는 게 뭐? 우리 엄마는 아빠 없어도 날 사랑하는데, 넌 엄마 아빠한테 우리 엄마 한사람만큼도 사랑받지 못하니까 그런 거지?"
보통 말로 날 울리려던 시도는 역으로 그 아이가 울면서 돌아가는 걸로 끝났다. 하지만 아빠가 없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자주 쓰이고, 무겁고, 또 설득력 있는 구실이었다. 날 향하는 매서운 말들에 맞서기 위해 독기를 품는 것조차 '아빠가 없기 때문'으로 단순화되었다.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기도 품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엄마 앞에서 아빠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엄마는 끝도 없이 날 사랑해줄 수 있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충격을 수년 동안 고스란히 받는 연약한 사람이었으니까, 엄마 앞에서는 차분한 딸로 남으려 했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를 원하며 소리죽여 울었다. 새아빠를 들이라고 조를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엄마가 죽은 아빠를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트집잡히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내게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며 나를 괴롭히려던 그 아이는, 아마 멀쩡히 살아있는 양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상실감을 보상받으려고 필사적으로 자기보다 불행한 이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편모가정의 아이인 나는 좋은 상대였을테지만, 그 아이는 거기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그아이는 집에 찾아와 울먹이며 내게 사과했고, 나는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 아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내 삶을 함부로 잣대로 써서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삶은 각자의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당장 내 삶이 멋대로 평가되는 데에 가장 반발했으니까, 그 때문에라도 내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있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시도는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내게 가장 먼저 붙은 평가는 '이해심 깊은 아이'였다. 모두가 내게는 함부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기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보다도 내게 먼저 와서 잘잘못을 가려주기를 청했다. 멀리서 봤을 때 겉도는 것 같고 아무 말도 없던 아이도, 내 앞에서는 기꺼이 입을 열어 친해지기를 청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내 관심은 자연스레 엄마를 향했다. 누구라도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엄마가 대체 왜 그렇게 절망했는지,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어떻게 내게는 그런 미소를 지어보일 수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엄마가 한없이 보내준 사랑에 뭔가 보답할 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빠는 마치 지금의 나처럼 이해심이 깊고 낙관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온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마음으로 아무 부끄러움도 속내도 없이 엄마를 사랑했다고 한다. 내 첫번째 생일에는 엄마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쏟을 수 있었음을, 또 그 사랑을 보답받은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엄마는 잠깐이나마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믿었다고 했다.
온 세상을 넘치게 할 커다란 사랑에 행복해했던 엄마는 절망했다. 아빠가 죽음 너머의 어딘가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위안하기도 했고, 엄마의 것이 아닌 과분한 행복을 받았다가 이제서야 갚을 때가 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도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점점 피폐해지고 죽음까지 생각하다가, 아빠를 다시 떠올렸다고 한다. 아빠에게서 받은 것처럼, 아무 부끄러움도 계산도 없이 내게 사랑을 쏟기로 했다고 한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 또한 내게 의존하고 있었다. 엄마는 결코 내가 생각해온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소중한 것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당장 죽을 수라도 있을 것처럼 우울해질 수도, 울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키우는 힘든 일을 초인이 되어 버틴 게 아니라, 나를 키우는 것으로 다른 힘든 일들을 버틸 힘을 얻은 것이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를 사랑해야 했다. 내게 의존해서 그 세월을 버틴 그 사람은 사랑스러웠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다. 나는 주제넘게도 아빠의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흔히 얘기하는 사춘기의 감성이 독특한 쪽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생일 축하해, 우리 딸."
중학교 2학년. 나의 열 네번째 생일. 그리고 아빠의 기일이기도 했다.
"고마워 엄마."
엄마는 나한테만큼은 끝을 모를 정도로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고 아무리 몸을 혹사시켜도, 오히려 딸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걸 기쁨으로 여길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챙기다가 나를 향해 온전히 사랑을 보여주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왜 내게 사랑을 쏟기로 했는지를 알고 나니 더욱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런 일로 몸을 상하게 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나도 이젠 컸으니까. 내게 조금 소홀해지더라도 스스로를 챙기기를 바랐다. 그래서 약간의 이기심을 담아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리한 건 아니지?"
"엄마가 고마워해야지. 아빠도 없이... 엄마는 지영이를 만족할 만큼 사랑해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커줬잖니?"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엄마는 스스로를 혹사하면서도 딸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걸 고마워하고 또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사람이었다. 무심코 엄마의 행복을 함부로 부정할 뻔 했다. 그래서 나는 대신 엄마가 느끼는 미안함을 덜어주기로 했다.
"엄마가 사랑해준 것만 해도 차고 넘치니까... 그리고 나도 힘내야지. 엄마 혼자 이런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어."
엄마가 눈물을 흘린다.
"엄마... 우는 거야?"
"지영이가 너무 기특해서... 지영이... 아빠가 지영이 이렇게 큰 걸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렇다. 나는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지만, 아빠 또한 이 날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엄마에게 아빠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알고 있다면,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지금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빠를 대신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지금 내 모습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빠가 그랬다는 엄마의 말처럼, 나는 보채지 않고 조용히 엄마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아직 부족한 걸까? 아빠를 대신하기로 마음먹고 아빠처럼 엄마를 사랑하기로 한 이후에도 엄마는 아빠를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걸까? 내가 아빠처럼 행동하기로 했다고 마음먹은들, 엄마를 행복하게 해준 8년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내가 서투르게 행동해서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을까? 여전히 아빠를 그리며 슬퍼하고 있는 엄마에게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만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기쁜 날에... 엄마 울어버렸네... 미안해 지영아."
"미안해하지 마 엄마. 나도 아빠가... 여기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결코 아빠를 대신할 수 없다.
그렇게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내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할 수 없다. 엄마는 평생토록 아빠를 그리며 슬퍼할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엄마를 연민하게 된 것도, 아빠를 질투하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를 슬픔에서 건져올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의 존재가 머릿속에서 깜빡인다. 점점 희미해진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게 슬펐다.
분명 나도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봤을테지.
저 사람을 구해주고 싶어.
"...엄마, 혼자 고생하면서 이렇게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엄마는 내게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를 달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데에서는 어리광부려도 괜찮겠지. 괜찮다. 지금까지 자주 해오던 일이었다. 엄마한테 거부당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사랑해."
엄마의 뺨에 입맞춤하고는 이런 말을 내고 말았다.
"...나도 사랑해."
마치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은 그 느낌에 내가 먼저 기분 좋아지고 말았다. 뺨에 입맞춤까지 당하니까 자꾸 같은 의미인 줄로 착각해버리게 된다.
다시한번 사랑해, 엄마. 의미는 다르겠지만.
잠자리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한다. 이건 분명 연심이다. 그 연심은 엄마를 향하고 있다. 동성애? 주변의 시선이 좀 따갑겠지만 괜찮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건 최대한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하기 마련이다.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들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로 영원토록 내 주변을 떠날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계기가 됐든 결국 그랬을 것이다. 근친상간은? 시선이 더 따가워지겠지만, 익숙하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이것도 감내할 수 있다. 평범한 행복과는 한참 먼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 끌린 나의 사정을 이해해줄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여태껏 내가 사귄 사람들 중에 한 사람 정도는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빠에게 질투심을 느껴버린 죄의식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다. 살아있었다면 나 또한 엄마에게 그랬던 만큼 사랑해줬을 것이 분명한 사람을, 죽고 없어진 뒤에도 엄마를 계속 붙들고 있다는 이유로 한순간이나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해버리고 만 것이다. 거부당할 것이다. 나는 몰라도 엄마는 아닐 것이다. 동성을 상대로, 그것도 십수년 직접 낳아기르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딸이 자신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심지어 그렇게 엄마를 사랑해준 아빠마저 질투할 정도라. 이런 마음을 고백하면 분명 엄마는 슬퍼할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이젠 익히 들어 알고 있는걸. 이 마음에는 익숙해지도록 하자.
그 날 꿈 속에는 엄마가 있었다. 우린 TV를, 인터넷을,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평범한' 연인들이 할법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맛난 음식을 파는 곳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기도 했고, 벤치에 앉아 서로 입맞춤하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다. 우리가 같은 의미의 사랑을 주고받고 있었으리라는 데에는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엄마와 나신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 분명 이것도 원했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서로 손을 맞잡고, 혀를 얽고, 몸을 섞으려는 찰나...
꿈이 영감을 준다는 말이 있다. 오늘부터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엄마는 먼저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모양이다. 뭐, 어제 생일 파티에서 남은 게 있었으니까 별 힘은 들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우린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식탁에서 마주볼 수 있었다.
"지영아."
"응?"
"한번 더 말해도 괜찮을까?"
"어떤 거?"
"이렇게 차분하게, 멋지게 커줘서 고마워."
"뭘 또 그런 얘기를..."
"어제는 엄마가 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제대로 말을 못 했으니까..."
"엄마가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런 엄마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슬픔에서 건져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의 연인이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사라진 슬픔마저 모조리 메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해줄 것이다.
"그리고 엄마한테는 이제 내가 있잖아. 나도 제법 컸으니까... 엄마도 나한테 좀 더 의지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아빠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한테 의지해줘.
"그러니? 지영이도 엄마한테 좀 더 어리광 부려도 괜찮을텐데."
"어리광?"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졸라본다든가, 뺨에 뽀뽀하는 것도 괜찮아."
"갖고 싶은 건... 좀 부담스럽지 않아? 뺨에 뽀뽀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럼 지영이가 너무 기특해서 선물 하나 더 사주는 걸로 하자."
엄마를... 선물로 받고 싶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상관없지만 엄마는 아니니까. 금기를 어긴다는 사실 자체가 엄마를 슬프게 만들면 안된다. 그저 엄마 곁에서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면 되는 것이다.
"그럼... 자이로스코프 같은 것도 괜찮을까? 굉장히 신기한 장난감이었는데. ...좀 매니악하지 역시?"
"아니, 괜찮아. 오늘은 그거 하나 사다줄게. 돈 걱정 같은 건 하지 마. 탈 없이 자라준 지영이한테 주는 상... 같은 거라고 생각하렴."
"응... 고마워."
슬슬 시간이 되었다.
"지영아, 뽀뽀도."
엄마가 먼저 입맞춤을 요구하는 건 처음이었다. 엄마가 조금이나마 짐을 내려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유감없이 내 애정을 모두 담아 엄마의 뺨에 입맞춤했다.
"사랑해, 지영아."
"엄마, 사랑해."
엄마, 우린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를 거야. 엄마의 연인이 되어서 아빠가 없어진 빈자리를 채우고도 넘칠 정도로 사랑해주고 싶어. 이런 감정이 엄마를 슬프게 할지도 모르지만, 엄마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니까, 언젠가 이 마음을 받아주기를 속으로 빌 거야. 딱 하나 이것만큼은, 조금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겠지? 부디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를.
"그럼 다녀올게."
"다녀올게, 엄마."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현관을 나서 다른 길을 걷는다.
다음 이야기에요
딸 시점에서도 써오라고 해서 써왔는데 잘 표현이 됐을지 모르겠어
뭐 못 쓰면 못 쓴대로 깨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부디 읽고 즐겨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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