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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모녀백합) 꿈에서 깨어나

BB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2.30 23:11:57
조회 1010 추천 28 댓글 4
														

1. 우리 생각이 같지 않기를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332689)

2. 우리 생각이 같기를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333444)

3. 하루의 막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334968)

4. 꿈에서 깨어나



꿈은 깨기 마련이다.


하루의 막간, 져가는 태양이 저녁 하늘에 붙인 꿈의 불길은 온 세상을 태워 각자에게 낭만과 소망을 남기고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곧 어둠이 남았고, 어둠을 피하기 위해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자 사람들이 만든 현실의 빛이 우리를 비추었다. 꿈의 불길 앞에서 연인으로 비쳤던 우리는 현실의 빛 앞에 모녀가 되었다.


이제 잠들 때까지 뭐가 남았을까. 엄마가 식사를 준비할테고, 식탁에서 우리는 모녀로서 서로를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TV를 보거나, 필요하다면 숙제를 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에게 인사와 입맞춤을 남기고 하루를 끝낼 것이다. 스스로를 속여가면서까지 해낸 방금의 입맞춤이, 마치 엄마가 알지 못하는 꿈 속의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것이다. 결코 다른이에게 보이지 않을 꿈 속의 기록 한켠에 한 단락이 추가될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갑자기 허무해졌다. 홀가분해졌다. 아무 일도 없는 양 엄마에게 다가가 식사 준비를 돕기로 했다.


"도와줄게."


"오늘은 엄마 일찍 왔으니까 혼자서 해도 괜찮은데..."


엄마는 일상에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를 속인 것처럼 키스의 의미를 모르는 앳된 아이의 어리광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냥 기다리고 있기 심심하니까, 뭔가 돕고 싶어."


"그럼 저기 생선 굽는 거 보고 뒤집어줄래?"


"그럴게. 어라, 탄내 난다."


"어, 그랬어?"


"응, 타버리기 직전이었네. 내가 도와주는 게 맞았지?"


마치 부부같은 이 느낌.


"정말, 지영이는 감이 좋은 건지... 덕분에 살았네."


"헤헤."


그 느낌에 취해 표정이 풀어지려는 게 느껴졌다. 마음을 다잡고 딸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지영아. 찬장에 소금." "응."


"냉장고에 깨 있는 거 갖다줘." "여기."


"찌개 간 볼래?" "어."


"어때?" "적당한데."


"적당하게 말 하는 거 아냐?" "아니, 정말로 더 말할 거 없을 정도로 간이 잘 됐는데."


"그럼 식사는 다 됐고...수저는?" "아, 바로 놓을게. 물도."


꿈은 지나간지 오래고, 어둠은 더 깊어지며, 창 바깥에서도 전등의 불빛이 더더욱 들어찬다. 우리도 점점 일상적인 모녀관계를 회복한다. 이걸로 됐어. 우리는 식탁에 앉아 엄마와 딸로서 서로를 마주본다. 엄마가 엷은 미소를 띈다. 가슴의 미미한 두근거림이 이 편안한 순간에 비집고 들어오려고 했지만, 금방 잠재운다.




꿈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을 곱씹는다. 노을진 현관에서 입술을 포개었을 때를 다시 떠올린다. 엄마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어리광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입술이 한데 모이자 자연스레 엄마의 눈을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검은 눈동자 안에서, 나는 어릴적 내게 미소지어주던 그 때와 같은 빛을 보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은 엄마에게 결코 피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눈동자 속의 그것은 여전히 시간에 상처받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있어서 우리는 살아올 수 있었다. 그 눈은 그 때처럼 내게 모든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을 다시 내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 나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다.


엄마는 아빠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 사랑을 나를 향해 쏟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 빛은 분명 아빠를 향하고 있다. 나는 그저 그 표정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 빛 또한 내게 약속된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 나와 입을 맞추면서도 엄마는 여전히 아빠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분명, 어리광이라 생각하면서도 엄마는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엄마는 내게서 아빠를 보고 있지만, 나는 절대 아빠를 대신할 수 없다. 아빠를 가능한 한 흉내낼 수는 있을 테지만, 나는 서투르다. 나는 오만하다. 살아있을 때는 존재조차 모르던 아빠를 완벽히 닮을 수는 없을 것이고, 엄마는 그 때마다 아빠의 부재에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엄마와 입을 맞추고 눈을 맞추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엄마가 나를 봐주기를 소망했다.


그러자 그 빛이 흔들렸다.


엄마가 나를 보게 된 것일까? 엄마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알아챈 것일까? 순간의 기쁨 후에, 공포가 밀려들어왔다. 어쩌면, 가장 숨기고 싶은 내 안의 죄악감마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엄마를 구해주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하고, 그런데도 엄마에게 사랑받는 아빠를 질투하고 있었다는 걸. 분명 엄마를 슬프게 만들 그 사실까지 엄마가 보고 만다면, 어쩌면 돌이킬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이 내 눈을 통해 읽히는 것 같은 기분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이 마음을 몰라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 때 아빠를 질투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엄마를 향한 마음을 고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랑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저마다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중에는 동성에 대한 고민도 있다. 그것까지는 용인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엄마라면? 엄마를 사랑해서 살아있지도 않은 아빠를 질투해버렸다는 고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줄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는 할까?


결국 혼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온전히 내 안에만 있으리라 생각했던 꿈을 현실로 끄집어낸 것은 엄마였다.


"...지영아."


"응?"


"방금 전에 뽀뽀한 거 말인데."


분명 내 표정이 굳어졌을 것이다. 엄마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할까. 알아버린 것일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오랜만이네, 입술을 맞대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건가?


"지영이도 어렸을 때에는 엄청 애교 많은 아이였으니까. 7살 때 설날에 친척들이 뺨 말고 입술에다가도 해달라고 했던 거 기억하니? 엄마는 별로 좋게 생각 안 했었는데, 지영이가 너무 귀여워서 친척들 안 볼 때 엄마가 해버렸잖아."


...맞아, 그런 일도 있었다. 사람의 뺨은 거친 일도 있었지만 입술은 부드러워서 입을 맞출 때마다 간지러운 기분에 더욱 입을 맞췄다. 물론 그 때의 엄마는 어느 쪽이든 부드러웠지만.


"생일날 기억하니? 그때 좀 더 어리광 부려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나서 요즘 많이 안겨 왔잖아. 근데 입맞춤은 뺨에만 하니까... 사실, 지영이가 그새 부끄러움이라도 타게 됐나, 아니면 한동안 엄마하고만 같이 살아서 엄마 도와주겠다고 어리광도 못 피우게 됐나, 걱정했거든. 근데 오늘 입술에 뽀뽀해오는 걸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네."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면, 오늘의 키스는 어리광이었다는 걸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엄마는 역시 어른이다. 내 말도 안되는 투정도 감싸안는다.


"...응. 그런 기분이 요즘 자주 들게 되네."


"지영아, 어릴 때 못 했던 어리광, 지금 엄마한테 마음껏 부려도 괜찮으니까. 괜히 이상한 걸로 속앓이하다가 엇나가진 말아줘."


엄마의 말은 편안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게 가시처럼 찔러오는 대목이 있어 죄의식을 자극한다.


"...그럴게."


"그리고 말이지."


응, 얘기해줘. 사랑스러운 엄마.


"지영이가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니까 받아주는 건데..."


엄마가 살짝 얼굴을 붉힌다. 반사적으로 나도 몸이 뜨거워진다. 엄마는 스스로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런 키스는 그런 사람한테만 하는 거야."


맞아, 이 키스는 지금도 앞으로도 엄마한테만 향할테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는, 엄마가 받아줄게."


"...응."


엄마, 고마워. 엄마를 좋아하는 이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면, 그 때는 이런 핑계 없이 엄마한테 키스할 거야.


아직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키스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아빠의 빈 자리를 내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지금 엄마를 구해줄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엄마의 사랑이 온전히 나를 향하게 된다면... 그때는 아빠를 미워했다는 죄책감을 씻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엄마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테다. 오늘 같은 자식의 어리광이 아닌 연인의 키스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날의 나머지는 모든 죄책감을 한켠에 치워놓고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데에 대한 기쁨으로 채웠다. 굿나잇 키스는 뺨에 했다. 현실의 빛 아래에서, 입술에 입을 맞추기에는 내 마음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뺨에 입을 맞추며 잠깐 엿본 엄마의 눈동자 안에서, 그 빛은 유유히 흔들리고 있었다.




강렬한 노을이 꿈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고, 전등의 빛이 현실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내 방의 전등을 끄자 이제 현실의 빛은 더이상 그 곳에 없다.


언젠가 꿈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본 일을 떠올린다. 현실과 다른 사람의 꿈 속을 넘나들면서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는... 요원? 전문가에 관한 것이었다. 꿈 속의 세계는 사람이 바라는 것들로 되어있어서 얼핏 보면 현실과 구분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현실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로 그 안을 해메어야 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주인공은 자기가 꿈 속에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팽이를 사용했다. 팽이가 기울어 넘어지지 않고 영원토록 돌아간다면 그곳은 꿈 속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것을 끝내고 가족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주인공이 다시한번 팽이를 돌린다. 영화는, 이윽고 주인공이 아이들의 부름에 그 팽이를 잊고 나간 뒤 넘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돌아가는 팽이를 클로즈업하면서 끝났다.


깨어있으면서 꿈과 현실을 오가고 나서 혼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팽이를 대신할 물건을 찾았다. 그건 이번 생일을 맞고, 그 다음날 엄마가 사다준 자이로스코프였다. 자이로스코프에 실을 감고 돌린다. 자이로스코프는 한동안 마치 지금 여기가 꿈이라는 것처럼 기울지 않고 돌아갔다. 정말 지금 내가 꿈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팽이를 일부러 기울여보기로 했다.


팽이는 기울었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자이로스코프는 축이 기울어진 상태로 계속 돌아가면서 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실에 이런 물건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에 다시한번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현실이 우리를, 나의 사랑을 기울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사랑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울어진 가운데에서도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 마음이 내게 빈 공간을 만들지 않도록 소중히 해야지. 엄마의 빈 공간을 좀 더 빈틈없이 채울 수 있게 되면, 이 마음을 전해야지. 그리고 엄마와 연인으로 지낸 그 날의 꿈을 현실로 가져와야지.


그렇게 나의 하루가 끝났다.



안녕 여러분 4편이야


3편하고 시간적으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야


키스가 임팩트있는 사건인 건 맞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소재로 쓰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써봤어


생각한 바가 글로 잘 쓰여졌기를 빌면서 올려봄


잘 읽고 즐겨주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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