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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본격 갑질 당한 썰 -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ㅇㅇ(61.75) 2019.01.25 00:57:13
조회 1439 추천 3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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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번저보이기 시작했다.

정수리가 바늘 찌르듯 아프고 콧대는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뿐인가 관자놀이는 다리가 쪼여 불쾌했다.


".... 또 아프네."

"아란쌤. 수고했어~ 뭐야 또 아파?"

". 이번 주도 가봐야겠네요."

성격만큼이나 호탕하게 진료실 문을 닫으며 폰은정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거 테만 200 짜리잖아! 벌써 몇 주 째 고생하고 있는 거 아니야?"

". 렌즈까지 300 조금 넘었죠. 오늘도 가면 꼭 한 달이네요."

그래 벌써 한 달째다.

의료법 개정에 따라 진단서 작성이 강화되어

작년보다 워드 작업이 많아져서 그런지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도.

시간이 야속한지라 풋풋한 의대생 시절이 벌써 10여 년 전이라는 점

때문은 물론 절대 아니었다.


강아란은 한숨을 푹 쉬고 롱가운을 벗으며 기제를 정리했다.

"아란쌤도 징하다. 그 정도 고생했으면 다른 안경원을 찾아보지그래?"

"아니요. 꼭 거기서 맞출 거예요."

"그래애? 수요일이 조기 퇴근하는 날이라지만 오늘도 점심 모임 빠지면 부원장님이 눈치 줄 텐데?"

"최지원 부원장님한테는 은정 선생님이 말씀 잘 해주세요. 귀여운 후배를 위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살랑거리며 은정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배배 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안경사도 나름 의료 관계자잖아요."

그럼. 눈이 얼마나 중요한데.

네덜란드산 반헷하르 핸드백에 스마트 폰까지 집어넣고 꼭 닫았다.

"그래서 그래요. 도대체 언제쯤 제대로 해줄지 의료인으로서 궁금해서. 내일 봬요, 폰은정 과장님."

아빠는 안전이 제일이라며 롤스로이스를 추천했지만 너무 올드한 차는 몰기 싫었다.

날렵하게 빠진 은색 밴틀리 ES 230 에 시동을 걸며 사강대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오늘은 그 아가씨가 제발 똑바로 일하길 빌며.


점심을 맞이한 강남대로는 택시와 버스로 가득했지만, 감히 벤틀리와 함께 달릴 강심장을 가진 차는 없었다.

안토니오 마르가레떼의 품위 있는 재즈와 함께 베르띠안 백화점 VIP석 주차장에 안착한 아란은

벌써 익숙해진 길을 따라 6층으로 이동했다.

6층 엘리베이터에서 오른쪽으로 3번째 매장.

한국에서 유일하게 옙베스 헤일리그 린드버그를 취급하는 안경점이다.

몸에 두르는 것은 백만원 아래론 생각도 하지 마라라는,

고리타분한 아빠의 말 중 유일하게 동의하는 조언에 따라 알게 된 안경원이었다.

그리고 저 여자.

연락을 받은 모양인지 매장 입구에서 대기하는 3명의 직원 중에서

유일하게 웃지 않는 저 여자가 지난 한 달간의 두통을 안겨 준 여자였다.

"어서 오십시오 강아란님. 오늘도 리피팅으로 오셨습니까?"

마주 잡은 가늘고 흰 손과 핏이 딱 맞는 스커트, 브랜드는 알 수 없지만 고급스러운 금테가

무표정한 미소(아란은 무표정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와 어울리는 여자였다.

알랑거리는 말 따윈 하지도 않고 조용한 검안이 끝나면 그때 "다 됐습니다. 강아란님." 하며

윗입술에 혀를 살짝 대며 입을 때는 여자였다.

발아래에도 두지 않을 사람이

나도 너 따윈 눈에 담지도 않겠다 하며 허리를 꼿꼿이 하는 태도가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흡족하게 결과물을 받으며 항상 속게 되는 아란이었다.

". 물론이에요. 빨리 가죠."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강아란님."

키는 자신보다 조금 더 클까? 하이힐을 감안해도 170cm 은 족히 넘으리라.

허벅지 중간쯤에 떨어지는 스커트 아래로 또각또각 맵시 있게 다리를 쭉 뻗으며 아란을 검안실로 에스코트했다.

아란은 문뜩 안토니오 마르가레떼의 리드미컬한 첼로 솔로가 떠올랐다.


그래. 이번 한 번만 더 믿어보지 뭐.


빨간 열기구가 아니고 샬로모레 신상 구두였다면 이 시간이 조금쯤은 즐거웠을까?

아니면 이 지겨워진 검안기를 보는 게 아니라

저 여자가 얄상한 턱을 쓰다듬으며 신중하게 검안용 렌즈를 고르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신뢰 가지 않지만, 그편이 약간이나마 눈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아란님."


예의 버릇처럼 이번에도 윗입술을 분홍색 혀로 살짝 핥으며 말했다.

"이제 다 된 건가요?"

"잠시만 앉아 계시겠습니까?"


검안기를 한쪽으로 밀고 뭔가 맞은편 자리 서랍에서 검은 무언가를 꺼냈다.

"이걸 눈에 대시면 됩니다. 앞이 보이십니까?"

"두 눈 다 가리면 안 보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대체 뭐가."

그때 테이블에 올려둔 손에 열기로 가득한 뭔가가 닿았다.


"강아란님 그러니까. 괜찮으십니까?"


세상에.

그녀의 손가락이 손등을 뜨거운 혀로 핥듯 간지럽혔다.

애태우듯 손등 위에서 빙글 원을 그리며 쓰다듬었다.

어두침침한 검안실에서 일어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초에 어울리지도 않는 저 경박한 맨트는 뭔지,

이 부적절한 상황에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그런 심정을 한숨 쉬듯 뱉어냈다.


"당황스럽네요."

기구에서 얼굴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간드러지게 미소 지으며 손을 더욱 엉켜왔다.

한 달째 마주한 얼굴이지만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봤다.

게다가 손에 담긴 열기만큼이나 상기된 볼과 확신에 찬 눈빛은 아란을 불편하게 했다.


"제가 말했을 텐데요? 당황스럽다고?"

조금 더 단호하게 말하자 찻잔에 금이 가듯 그녀의 미소가 짜그작 일그러졌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아니 그러니까... 그게..."

항상 당당하던 그녀 답지 지리멸렬하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아란은 더욱 거북해졌다.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아니.......그러니까..."

갈색 빛을 띠는 눈동자는 금테 안경알 속을 부지런히 굴러다녔고

가지런한 윗니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얄따란 팔이 푸들대는 것이 책상 아래 허벅지를 움켜쥐는 것 같았다.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만큼이나 아란 본인도 이 상황이 놀라웠다.

"내가 오해할 만한 여지를 드렸나요? 말씀해 보시죠."


"그러니까... 아란...강아란님이..."

이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웅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항상 밀실로 가자고 재촉하시고."

"애초에 리피팅 때문에 온 거 잖아요?"

"다른 안경원도 있지만, 여기만 오시고..."

"내가 맞춘 테가 다른 매장에도 있을 것 같아요?"

"항상 제 근무 시간에 맞춰 오시고...."

"주중에 조기 퇴근하는 날이 수요일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쪽이 이쪽 분 같아서...."

"? 뭐라구요?"


"....제가 오해를 했나 봐요."

그녀는 '제 근무 시간' 때부터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오해를' 에서는 눈물이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제는 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지 앓는 강아지처럼 끅끅 눈물만 삼켰다.

누가 들을세라 입을 틀어막고 간간이 안경을 들어 눈물을 훔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키를 부드럽게 접으며

무표정한 미소(그래! 이게 정말 중요하다)로 눈을 마주 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교양 없을 수 있을까!

아란은 다른 무엇보다 무례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눈 마주치면 손 잡고 어둥둥 나가는 천박한 곳처럼 행동하는 게 소름 끼쳤다.

호감 가던 그 당당한 태도는 어디로 갔을까?


"... 대체 어디서 어떻게 배우면 그렇게 행동하실 수 있죠?"

"정말..."


코를 한껏 마시더니

"죄송합니다..."


했다.

지영은 안경을 끼지도 않았지만,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좋다. 지금부터라도 기회를 주면 괜찮아 질 거라 생각하자.

꼭 그래야 한다. 한 달간의 애석하게 된 고충을 생각하면.

백을 열고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화부를 띄웠다.


"눈치가 없으면 점잖게라도 시작하세요. 당신 이름이 뭐예요?"

"......지영이요..."


순간 가라앉히려 노력하던 욱한 감정이 쏟아 오르는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참자.

"...성은요?"

"지 씨에요. 지영이."


지영이...영이라...

생각 외로, 아니 생각만큼 귀여운 이름이었다.

"... 그래요 영이씨. 지영이씨 연락처 알려주세요."

"제발! 실장님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저 저번 달 월세도 못 냈어요! 그리고. 그리고 학자금 대출금도 많이 남았어요!"

냉큼 의자에서 내려와 바짓단을 붙들어 맨 영이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가 뭘 물어봤죠?"

영이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움켜쥐고 바닥에 웅크리더니

넋이 나간 목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010...x02xx."

통화 버튼을 누르고 탁 소리 나게 핸드백을 닫고 일어섰다.

잠시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한자 한자 신경써서 말문을 열었다.


"좋아요. 영이씨. 시작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저녁 식사는 기대할게요."

"?"

둥당 다라당 당당당~ 둥당 다라당 당당당~

"지금 간 번호가 제 번호니까 일 끝나면 전화 주세요."

"?...저기?"

"오늘 저녁은 국밥이든 삼겹살이든 소주든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란은 금테 안경알을 꽉 채우려고 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영이를 뒤로하고 검안실을 나갔다.

"...그러니까....이게..."


벌컥.

"...강아란님?!"

"저녁 식사 전에는 그 벨소리는 바꾸고 오시구요."


아란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흘리며 문을 닫았다.







-----------------------


먼저 전국에 계신 지영이씨에게 삼삼한 사죄의 말씀을 올리며

작중 대사와 브랜드는 가상의 창작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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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에 참여해주신 이분들이 지어주신 이름이므로

고소는 이분들께 해주십쇼...



봐주셔서 감사합이다.











참고로 강아란이 까칠 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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