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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녀전선] 백랑의 눈 1~3

으르르르(59.23) 2019.01.28 19:03:24
조회 942 추천 24 댓글 5
														

-시스템 재시작.

-인공 뇌파 부활-데이터 베이스 활성화. 수면 완전 종료.

-Unknown server code : 0010010110110(해제)

-마인드 맵 닉네임 : AK-12 승인합니다.

-유사 생명 활동 개시



"흐흠, 좋은 아침."



받아주는 이 하나 없음에도 그녀는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들었다.


외로움 타는 히키코모리마냥 터덜터덜 몸을 일으키는 것은 꼴사납다고 생각한 듯, 평범한 사람처럼 화사한 아침을 맞이한 모양새를 내는 그녀는 팔과 벽 사이에 연결되어 있던 코드를 아무렇게나 뜯어냈다.



"어머, 역시나 타버렸네. 새걸 구해야 되나?"



팔에서 뜯어낸 코드는 과부화로 인해 속에서부터 매캐한 탄 냄새를 내뿜었다.

손가락으로 코드를 잇고 있는 전선을 열어보니 이미 사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전술 인형의 기본적인 동력원은 기본적으로 전력이다. 어떤 인형은 음식을 포함한 유기체를 섭취해서 체내의 동력 프로토콜로 연계해 전력원으로 사용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기본적으로는 전류가 인형의 최대 동력원이기에 직접적으로 체내에 전류를 충전할 필요성이 있다.



"기왕이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은데, 어디보자...아! 있다. 있어."



시간은 새벽 4시 30분, 대서양 인근의 섬에선 아직 태양 조차 뜨지 않은 시각이다. 덕분에 그녀가 위치한 집 안은 시커먼 어둠이 가득했으나, 불을 킬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어두워도 인간과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른 그녀가 사물을 식별하는데 있어선 어둠 따위는 별 장애가 되진 않는다. 


수면 활동을 하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그녀는 냉장고를 열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 집의 주인은 꽤나 미식가인 모양인지 꽤나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가 냉장고에 가득했다. 대서양 인근에서 잡힌 싱싱한 해산물부터 육류, 외국에서 수입한 야채류 까지도 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행히 그녀가 원할만한 음식을 만들 정도의 재료는 되었다.


아쉬운 점은 그녀의 메모리에서 저 싱싱한 해산물을 요리할 데이터는 현재 없는 상태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다른 데이터도 다운로드 받고 올 것을 그랬다며 아쉬움이 담긴 한숨을 쉬었다.



"조금 지겹지만, 베이컨 크림 스파게티로 만족해야겠네."



뭐 시험 삼아 데이터없이 막무가내로 시푸드에 도전해볼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 자체가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날이 밝으면 인간들의 시선이 어찌 됐든 몰릴 가능성이 있는 이상. 간단하고 빠르게 식사를 마쳐야 할 것이다.


그녀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전류만 공급되면 활동은 가능하지만, 그 상태는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포도당 주사를 꽂아놓은 상태라고 보면 될것이다. 말 그대로 배만 고프지 않은 상태는 문화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그녀의 입장에선 식사는 가능하다면 즐기고 싶은 일이리라.



"아 참. 이제 이 전 이름은 더이상 못쓰려나. 새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윽고 미간을 살짝 찌뿌렸다. 인간처럼 취미가 있고, 사고를 하며, 호불호 또한 존재하는 그녀지만. 평소 자신이 하던 '익숙한 일'이외에는 마음가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여전히 망설여진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발치에 놓인 덩어리를 발끝으로 툭툭 두들겨 깨우기 시작했다.



"이봐, 잠깐 일어나줄래?"

".........."

"아, 깨어났구나? 기절한 척 하고 있는 것은 호흡 소리로도 구분 가능하니까. 쓸데없는 수고는 피하자고 서로서로?"

"....으읍.."



그녀의 발치에서 몸을 일으킨 덩어리를 보며 그녀는 작게 조소했다.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꺽여 있고, 아킬레스건은 잘려 있으며, 무릎은 둔기같은 것에 강하게 얻어 맞은듯 으스러진 채 피떡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꼴에는 어딘가의 조직 수장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그녀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이제 곧 죽을 고깃덩이의 같잖은 자존심 싸움 같아 꽤 볼만한 모습이라 생각했다.



"자, 일단. 의자에 앉아 줄래?"

"으극!!!!"



재갈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리건 말건, 그녀는 덩어리 취급하던 인간을 한 손으로 붙잡아 부엌 의자에 앉혔다. 혹시나 힘이 빠져 녀석이 쓰러질까봐 각도도 조심스럽게 맞추다가 이윽고 똑바로 덩어리가 의자에 앉을 수 있게되자 그녀는 만족한듯 입가를 살풋 올렸다.


그럼, 가정용 인형도 아니고. 민수용 인형은 더더욱 아닌 그녀는 외톨이들의 더치 와이프처럼 주방용 앞치마를 둘렀다. 앞치마를 두른 이유는 별거없다. 아무리 매사에 만전을 기하는 그녀라 할지라도, 요리할 때 잡다한 물방울이 옷에 묻거나 튀는 기름을 일일히 회피하는데 연산 능력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때? 이러니까 꽤 숙련된 주부같아 보여?"

"...큽...!"

"음, 기절시킨 상태로 가만히 내버려 둬도 되는데 왜 깨웠냐고? 회사원들이 일하고 나면 버릇마냥 커피 한 잔을 하는 여유랑 비슷한 이유겠지?"



그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묶으며, 말을 이었다.



"커피 한 잔의 여유같은 시답잖은 소릴 하긴 했다만, 사실 별건 아니고. 약간의 조언이 필요해서 말이야."

"........"

"이번 의뢰를 완수하게 되면, 이전에 쓰던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순 없거든. 그래서 혹시 다음에 쓸 이름은 뭐가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신을 깨워본거야.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지성체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내가 요리를 끝내기전까지 당신의 뇌에서 좋은 생각이 나왔으면 좋겠어. 라며 머리를 다 묶은 그녀는 다시 주방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식칼을 손에 쥐었다.


자아, 우선 양파를 채 썰고. 베이컨은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블랙올리브는 보기 좋게 링 모양이 나도록 썰고. 그린빈스는 손가락 마디 길이로 자른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깐 새우와 양송이를 볶고. 슬슬 면도 준비해야....



"아, 페투치네가 없네?"



크림파스타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널찍한 면인 페투치네가 좋지만, 아쉽게도 주방에서 발견한 면이라고는 일반적인 스파게티면뿐이었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써야지. 그래, 1인분에 80g이니, 160g이면 되겠네.


다른 재료를 준비하는 동시에 소금 2스푼을 넣은 물에 스파게티면을 8분간 삶아준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어 약불로 볶는다. 양파가 타면 쓴맛이 난다고 하니, 조심해서 볶고. 채 썬 양파를 넣은 뒤 이번엔 중불로 볶는다.

베이컨은 서로 들러붙을 수 있으니, 한 장 한 장 펼쳐서 따로 넣고 함께 볶고. 맨 나중에 그린빈스와 블랙올리브를 넣고 센 불로 팬을 흔들어가며 살짝 볶는다.



"으, 으읍..!"

"조용하면 안되니? 지금 요리라는 신성한 행위를 하고 있어서 집중해야 돼."



요리를 하던 와중에 덩어리가 무어라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것 같지만, 그녀에겐 별 신경쓸만한 가치가 없었다.


다시 요리로 눈을 돌려 아까 소금물에 삶던 스파게티 면을 다시 팬에 넣고. 눌러붙거나 타기 전에 볶듯이 면과 재료를 함께 돌리며 볶는다. 이 과정에서 면에 묻어나온 면수가 스파게티 면에 배어들어 딱 좋은 간이 된다. 면수가 배어들면 생크림과 우유를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적당량 부어 면과 재료에 소스가 베도록 볶는다.


소스가 걸쭉해져 재료와 소스가 하나되어 뻑뻑해지면, 완성이다.


남은 것은 기호에 따라 후추나 소금을 넣어 간을 하고 나면....



"완성이다."



겉보기에도 꽤 먹음직스러운 크림 파스타가 완성되자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덩어리의 앞에 한 그릇을 내밀었다.



"자, 내 솜씨야. 타인에게 자랑해본 적은 처음인데 어떠려나?"

"......."

"그러고보니 내 새 이름. 좋은거 떠오른 거 있어?"



그녀가 무어라 말하든 덩어리는 그저 악의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목숨을 구걸 한다던가, 듣기 싫은 소음을 계속 내지르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나름 한 조직의 수장까지 지냈던 그에겐 어떤 선택을 하던지 눈앞의 여자 모양을 띄고 있는 녀석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 미안. 재갈을 물려놓고 있었지. 자, 이젠 말 할 수 있어. 내 새 이름은 뭐가 좋을것 같아? 새 의견은 언제든 환영이야."

"...........빨리 쳐 죽여. 썅년아."

"음, 별로 안 예쁜 이름인데 '썅년'이라....자주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긴 있었는데, 뉘앙스나 뜻이 좋지는 않잖아? 그거 말고 다른건 없어? 다른거?"

".....미친년."

"그것도 별론데. 인간들은 생각보다 상상력이 부족하구나."



이 미친년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아차렸다만, 생각한 것보다 더 한 대답이 돌아오자 남자는 그저 입을 닥치고만 있었다.



"배 안 고파? 같이 먹자고 만들었는데."

"......조까 씨발년아."

"흐음, 그럼 나 혼자 먹어야지."



손가락 10개를 전부 부러뜨려놓고 스파게티를 먹으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라는 생각을 하던 덩어리를 담담히 무시한 그녀는 새하얀 손가락으로 포크를 들어 자신이 요리한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주변 상황과 별개로, 그녀가 하는 포크질과 음식을 넘기는 모습 하나하나는 교양서적에 나올듯 우아하기 그지 없었다.



"우움, 생각보다 짜네. 다음엔 소금을 줄여야 겠구나. 아니, 이곳의 소금이 예상보다 더 짠건가? 평소 요리할때랑 같은 량을 썼는데, 역시 재료는 늘 쓰던것이 익숙한 것 같네."



그래도 맛은 있네.


스스로의 음식을 자화자찬하던 그녀는 문득 눈앞의 덩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엉망진창으로 찢긴 옷가지 사이사이로 피부위에 새긴 문신이 보였다. 뒷골목 조직의 수장인만큼 문신은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데, 웃기게도 하트로 장식된 누군가의 이름을 새긴 것이었다.



"아내? 아니, 딸의 이름이야?"

"......."

"말을 걸었으면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어."

"......."

"말하기 싫어?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끝까지 침묵을 고수하는 덩어리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력은 이미 이 집안과 근방의 전류를 끌어모았지만, 역시 식사를 해서 얻을 수 있는 미각적 기쁨은 마인드맵마저 때때로 흥분시킬만큼 특별한 것이다. 겸사겸사 예비 동력도 마저 채우고.



"흠흠, 잘 먹었다. 아, 이제 헤어질 시간이지만 당신에게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해두고 싶어."

"....뭐가?"

"덕분에 무슨 새 이름을 쓸지 정할 수 있었거든. 팔에 새긴 문신, 소중한 사람의 이름인 것 같네. 마일리 스튜어트."

".......너!"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눈이 희번득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제야 그녀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마치 기계처럼 무감정하고 섬뜩하게 찢어졌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눈동자를 중심으로 퍼졌고. 동공이 위치한 부근엔 늑대의 눈동자마냥 시뻘겋게 충혈된 색을 띄었다.


남자는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육식동물을 눈앞에 마주한듯 오금이 저려오며 온 몸이 경직되었다.


그런 남자의 반응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며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이 전 주인은 아무래도 그 이름이 불필요하겠지?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그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으면 나만이 쓰는게 좋을것 같거든. 어때?"



무슨 말이냐고? 니 딸 죽이고 그 이름 내가 쓸거라고.



"야이 개 씨발년아! 만약 내 딸 건드리면 가만 안놔둔다! 동유럽 개새끼들한테 결박시켜 팔아서 임신 강간 비디오 100편 찍고 산채로 땅바닥에 묻어 죽여버릴거다 이 씨발년아!"



그녀는 비웃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음, 그 행위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아쉽게도 0 퍼센트야. 이유가 세개 있는데 알려줘? 우선 하나, 당신은 꼼짝도 못하고 약 32분 뒤에 죽을 거야."



그녀는 고개짓으로 남자의 뒷편의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기 저 타이머보여? 아, 폭탄은 아니야. 그냥 32분 뒤에 라이터가 켜지는 타이머야. 담배불이나 붙일 수준의 작은 불씨가 주방이랑 지하실에 내가 손수 따 놓은 가스들과 함께 좋은 합주곡을 만들어 내겠지. 그리고 둘, 난 땅바닥에 묻어도 안죽어. 셋, 나를 땅바닥에 묻어버릴 수 있을 만한 건 이 세상엔 없어. 음 방금은 비유적인 표현이었나?"

"이 씨발, 이 개같은년아!! 내 딸 진짜 건들기만 해봐! 죽어도 지옥에서 쫓아와 네년을 물어 뜯을거.....커읍!?"

"너무 시끄럽잖아."


-콰득!


"끄, 끄브으아, 갸아아악!!!?"



느릿한 맨손이 덩어리의 입술을 순식간에 뜯어냈다.



"어머, 미안. 힘조절을 잘못했네. 고쳐주고 싶지만, 시간도 다 됐고. 작별할 시간이라... 뭐, 다음에 또 만난다면 그땐 제대로 고쳐줄게. 다음이 있다면 말이야."



여전히 눈을 감은채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덩어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딸이 어딨는지는 모르지만, 곧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해. 방금 암스테르담 3번 지구 36번 카메라에서 당신 딸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검색했거든."

"....읍!! 으읍!! 으그으읍!!"



36번 카메라? 아니, 암스테르담이라고?! 이년이 내 딸이 거기있는건 어떻게 안거지?! 분명 철저하게 신원도 위조시켜 도주시켰는데!


덩어리가 무슨 생각을 하건말건 그녀는 밝은 미소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의뢰 하나에 지금 쓰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니. 수지가 너무 안맞는 일이라 생각해. 물론 내가 당신한테 특별히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뢰를 한 인간은 당신한테 꽤 큰 원한이 있는 것 같더라구. 그래도 당신에겐 감사를 표할게. 내가 쓸 새 이름은 꽤 마음에 드니까."



그녀는 덩어리에게서 멀어지며 말했다.



"잘 있어. 내 이름은 이제 마일리 스튜어트야. 영감을 줘서 고마워. 고기덩어리."

"으그으읍!!! 으브...이 씨발년아!!! 이 죶같은년아아!! 멈춰! 씨발! 죽여버리게 돌아오라고오!!"



덩어리의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이 어느샌가 풀려버린 것인지.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괴성이 집안에 울려퍼졌다.


그녀, 아니. 마일리는 앞치마를 뜯어 한쪽 구석에 던진 채. 새 이름이 마음에 든듯 늘 무표정한 입가가 한껏 올려져 있었다.



"마일리 스튜어트...음음, 좋아. 마음에 들어."




ㅡㅡㅡㅡㅡㅡㅡ




창밖의 구름을 보며 마일리는 작게 미소지었다.


평화롭기 그지 없는 한 때, 비지니스 석에 앉아 커튼을 내려보니 그 여유는 더더욱 극대화 된다.


인간들이 말하는 쾌감이나 여유, 그외의 하잘것없는 감정들을 한 때는 천시하고 경시하던 마일리였지만, 어느덧 스스로가 생각해도 인간처럼 비효율적인 감정들을 무수히 소유하게 된 지금은 설명조차 하지 못할 부분에서 일상의 기쁨을 느끼곤 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점심 식사를 하며 읽는 신문. 긴 여행 버스에 올라타 창밖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스케치하던 소소한 즐거움. 호숫가에 앉아 계절의 바람을 느끼며 깜빡 잠들고 마는 한 때. 그 모든것이 마일리에겐 하나 하나가 새로운 즐거움이었고. 지금 비행기를 타는 이 순간도 그녀에겐 소소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그러면 지금은 정확히 무엇이 행복하냐고?


우선 마일리는 1등석이다. 이코노미석에서 인간들이 받는 모든 것들을(서비스든, 기내식이든 뭐든) 마일리가 더 나은 버젼으로 받는다. 일단 1등석은 그냥 다 좋다. 뭐든지 다 좋아. 1등석은 가장 먼저 앉는다. 1등석 자리는 마일리가 모조리 사버린지 오래라 이 넓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마일리 혼자 뿐이었다.


가장 먼저 앉아 다리를 꼬고, 한 손엔 샴페인 들고 앉은채. 땀 삐질삐질 흘려대는 비참해 보이는 싱글 엄마들이 한 손엔 유모차들고, 다른 한 손엔 아기들고 있는 거 보면서 "것 참 무겁게 생겼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네. 안됬구마안." 하면서 기만할 수 있다고.


아 뭐 그래. 예전이었다면 인간을 돕기 위해, 혹은 인간을 위해 특정한 목적을 갖고 설계된 '나'라는 존재는 당연히 저 비참해보이는 짐덩어리를 들어줄 용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이야. 나랑 뭔 상관이야? 하고 키득거리면서 샴페인이나 더 열어재낄 뿐이지. 뽕하고 말이야. 와! 맛있네! 그래도 취하는건 꼴사나우니 알코올 필터는 꺼놔야겠다.



"음음, 전문적 나쁜년이 내 직업이었던가? 푸훗."



그래, 그보다 어울리는 직업이 없네?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정말이지 아주 '프로패셔널한 뻐킹 비치년?' 아주 자랑스러워.



마일리는 기내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기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는 인간들에게 시선을 한 번 줬다가 다시 창밖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눈을 감은건 여전하지만, 아주 잘 보인다. 


목적지인 태국에 도착하려면 아직 7시간이나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너무나 머나먼 거리였지만 마일리는 지루하진 않았다. 작은 일상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질릴틈이 없으니까.



"실례하겠습니다. 기내식이 준비되었습니다만, 지금 들겠습니까?"

"어머, 벌써 그런 시간인가요?"


 

이제 막 한 병을 딴 참이것만, 타이밍이라도 잰 듯 마일리에게 단아한 여 승무원이 다가왔다. 위에서 무슨 언질이라도 받았는지 약간 긴장한듯 자세가 뻣뻣하기 그지 없었지만, 마일리를 바라보는 승무원이 얼굴은 이상하리라만치 붉었다.


마일리는 우아한 손짓으로 여승무원의 손을 잡았다.



"....!"

"제 전속 승무원으로 배정되신거죠?"

"아, 아닙니다. 그저...."



아니긴, 지난번엔 예쁘장한 소년을 승무원이랍시고 배정시켜 놓고는.


이 비행기의 주인인 제노폴트 항공사와 마일리가 긴밀한 관계인 것은 마일리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마일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세계는 '자신의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마일리처럼 전 세계를 자신의 안방마냥 돌아다니는 입장에선 항공사라는 것의 유용성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마일리가 스스로 말한 '전문적 나쁜년'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유용성과 덧붙어 기밀성과 안전성이라는 조건까지 따져 특정 항공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가 긴밀하다고 한들 이런식으로 대놓고 집중 관리를 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눈에 거슬렸다.



'뭐, 귀여우니 봐주지.'



쭈뼛쭈뼛하는 여승무원의 모습에 기분이 어느정도 풀린 것은 사실이다.


마일리가 항공사에 제공했던 것은 간단하다. 저들은 무슨 수를 써서도 가질 수 없지만, 자신은 손쉽게 내어줄수 있는 것을 아주 조금 제공한 것 뿐이나 그것만으로도 제노폴트 항공사는 스스로 마일리에게 '긴밀한 관계'를 자청했다.


그 긴밀한 관계 덕분에 이 비행기를 포함하여 제노폴트 항공사의 모든 비행기에는 조종사가 없었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 비행기는 조종사없이 항행중인 비행기였다. 아마 현 시점에서 전 세계에 유일한 민간 무인 조종 항공기일 것이리라. 본래라면 승무원마저 필요없는 완전 자동 제어 시스템이다만, 어째선지 비지니스 석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마일리에게만 승무원이 다가온 것이다.



"거짓말이 능숙하진 않네요. 그래....그러면 우연히 비지니스 석에 들른 승무원중 한 분이라고 칠테니, 잠시 이 민폐 손님의 투정에 따라주실래요? 혼자서 이 넓은 곳에 있으면 조금은 심심하답니다?"

"......."



승무원이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반대편에 앉아 마주보게 한 마일리는 씨익하고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실제로 승무원은 항공사에서 마일리를 집중 마크하라고 파견된 사람중 한 명이었다.

기본적으로는 협력 관계인 개인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이라면 사측에서는 마일리에게서 무언가 더 얻을 만한 것은 없는지 간이라도 보고 오라는 것이리라.



"한 잔 할래? 아, 승무원은 음주 절대 금지였나?"

"네, 항행중 음주는 금지되어 있어서...."

"그래? 그래도 마시렴."

"......그, 그런.."



승무원을 앉힌 마일리는 어느새 경어체마저 내다 버린채 오만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은 사실이지만, 마일리의 외모는 인간을 벗어났다.

비유적 표현으로든 사실적 표현으로든 말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쁘고 멋지게 디자인 된 외형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동성임에도 여승무원은 자꾸 마일리를 볼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이는?"

"....2, 26살입니다!"

"어리네."

"어, 어려서 죄송합니다..."

"풋,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만, 뭐 말을 해도 딱히 들어먹을것 같지는 않네."



세세한 개인 정보는 모두 불명.

외형상 20대 중반의 러시아계 여성이며, 신상 정보에는 의료 산업계 1인 상장 기업 바이어로 활동 중.

현재 [마이어 스튜어트]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은 시시때때로 필요에 따라 바뀐다.

다중 국적을 보유중이며, 필요에 따라 그녀의 국적도 바뀐다.

개량된 AK-12소총을 항시 휴대하고 다니며, 위법이지만 항행시 바이올린 케이스에 보관한 상태로 휴대하는 것을 허용. 승무원의 집중 마크로 그녀를 밀착 관리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것.


가장 중요한 것, 그녀의 말에 가능하면....복종할것.


저것이 여승무원이 사측에서 받은 마일리에 대한 대략적인 주의 사항이었다. 웃기겠지만, 진짜다.



'그런데 눈을 항상 감고 계시네...'



장님인것 같지는 않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 치고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자연스러우며, 테이블위에 뒀던 샴페인을 꺼내드는 모습도 앞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일리가 건낸 샴페인을 잠시 물그러미 쳐다보던 승무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잔을 받아들었다. 원래라면 항행중에 승무원이 손님에게 술잔을 받는 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마일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특별한 존재만큼은 예외였다.


항행 규칙 따위, 잠시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



"그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응, 응."



꽤 귀여운 얼굴이다. 옅은 블론드 색 머리를 승무원 스타일로 깔끔하게 묶어올렸고. 26살이라지만 실제론 더 어려보이는 인상이다. 아직 어린데다 성격도 그리 냉정하고 이성적인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애가 사측의 지시를 직접 받아서 당황했었을 꼬락서니를 상상하니 마일리는 속에서부터 웃음이 흘러나왔다.


비웃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앞의 어린 여승무원이 귀여워 보일 뿐이었고. 그 모습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찾은듯한 느낌이었다.



"이름은 뭐니?"

"....아, 안토니아 구스티 사라스바티입니다."

"흐응, 그렇구나. 예쁜 이름이네. 이름은 프랑스? 사라스바티라는 성은 인도쪽인데."

"네. 증조 할아버지가 인도분이라고 해요. 명망있는 사제 가문이라고 들었지만, 지금의 저하고는 상관 없지만요."



마일리는 한 손을 괸채 창밖으로 얼굴을 향했다. 눈은 여전히 감은채 여유로운 미소만을 짓고 있었을 뿐임에도 안토니아는 마일리가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경계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본적이 있던가?"

"아, 아뇨. 저도 이 비행기에 배정된 것은 처음인지라."

"흐응."



마일리는 마저 샴페인을 비우곤 잠시 뒷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지니스 석에서 다른 객석과의 연결 통로는 전부 문으로 닫혀 있었다. 1등석 전체를 사들인 마일리의 입장에선 이곳 전체를 개인실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주변 신경을 아예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자 마일리는 의자 깊숙히 몸을 묻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측에서 나한테 뭘 얻어 오라고 했나? 새로운 제어 시스템, 아니면 보안 장벽?"

"네..넷!? 아, 아니요! 그런 일은...!"

"넌 거짓말을 하면 다 티가 난단다. 호흡이나 맥박은 둘째치고, 벌써부터 그렇게 얼굴이 새빨게지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할걸?"

"....아, 앗...그.."



푸훗, 당황하는 것도 꽤 귀엽다. 만약 제노폴트 사에서 나의 개인적인 취향마저 철저하게 조사해서 일부러 이 승무원을 보낸것이라면 그것도 꽤 당해줄맛도 난다.


일단 노력이 보이지 않은가? 하잘것없는 마일리라는 존재의 취향을 알아내려고 별에별 짓거리를 했다는 것일테니까. 겨우 그딴 제어 알고리즘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과거엔 내가 사측에 무인 제어 알고리즘을 넘겨 줬었지. 직접 시범도 보여줬었고. 그 결과가 지금 기장도 없이 항행하는 이 항선이지. 제어나 보안쪽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라고는 했고. 그럼 이젠 나노 엔진 기술이라도 알려줘야 하나? 왜 차라리 달에 가고 싶다고 하지 그래?"

".......그, 그게에..."

"난 분명 아직 너희들한테는 이른 기술이라고 말했어. 그리고 나도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만, 애초에 나는 연구자나 개발자가 아니라 '전문적 나쁜년'이 직업이라 전 세계적으로 꽤 바쁘다고?"



마일리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은 안토니아는 부모에게 혼나는 사람마냥 어깨가 잔뜩 움츠러 들었다.



"예전엔 분명히 내가 원할때가 아니면 기술 관련 거래는 꺼내지도 말라고 했는데."



마일리가 입을 열면 열수록 안토니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마치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뭔가 심각한 이야기같고. 게다가 나같은 일개 사원이 이런 역할을 맡아도 되는지, 아니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라는 울상에 가까운 모습에 마일리는 다시금 입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갔다.



"무서워라 무서워. 평범한 항공사라 생각했는데, 이젠 자진해서 산업 스파이같은 짓을 해야 하다니. 이러다가 나한테 빨아먹을게 없으면 청부업자라도 고용해서 죽여버리는거 아닌가 몰라."

"에, 예엣?!? 산업스파이...? 아니, 청부업자요??"

"어머 몰랐니? 이 바닥에선 꽤 흔한 이야기지 않니? 내부 고발자나, 산업 스파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술집에서 방사능 맥주를 먹고 죽어버리는 정도의 이야기. 네오폴트 항공사 정도의 독점 체재 항공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겠니?"

"지, 진짜요....?"



이제보니 괴롭힐 맛도 나는 인간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이 비행기가 태국에 착륙하면 가이드가 아니라 왠 권총든 시커먼 남자들한테 둘러싸여서 어딘가로 끌려갈지도 모르겠어."

".......아, 아앗..."

"흐응, 그럼 넌 날 밀착 마크한다는게. 어디 도망 안가나 사측에 일일히 보고하는 역할인거구나. 이제보니 완전 영악한 녀석이구나?"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전 그렇게 사람을...!"

"응, 알고 있어. 농담이야."

".........노, 농담이셨나요...휴우..."



체한것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도 연기라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겠다만


애초에 마일리는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사측이 마일리라는 단 하나의 존재 때문에 그런 병신같이 과대망상적 조치를 할 거라 생각도 안 되고.


눈앞의 안토니아라는 승무원은 그냥 단순히 사측의 배려에 지나지 않았다.



"후후, 사과할게. 혼자서 지내다보면 쓸데없이 심심해져서 농담의 수위가 조금 높아지네."

"괜찮...아요. 사측에선 마일리님에게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하셨으니까요."



뭐, 마음껏 즐기라는 의도는 뻔히 보인다만.

그냥 이렇게 놀리는게 재밌다. 마일리가 인간과 농담 따먹기 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거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없으니까.



-쿵...!



한창 즐거운 시간에 울려퍼진 미약한 소리. 안토니아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마일리의 청각 센서에는 이질적인 소리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선반에 올려놓은 단순히 물건이 떨어진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둔탁하고, 금속성이 강한 소리.



"......."

"마일리님?"

"이러언,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항상 감겨 있던 마일리의 눈이 아주 살짝 뜨여진 것을 본 안토니아는 숨을 들이켰다.


미세하지만, 살짝 들려진 눈꺼플 사이로 비춰진 것은 인간의 눈동자라기엔 지나치게 형형한 보랏빛이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동자인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마일리는 다시 눈을 감았지만, 아주 짧은 순간 안토니아의 머릿속에 마일리의 눈동자는 깊은 인상을 새겨주었다.



"안토니아라고 했지?"

"아! 네. 혹시 시키실 일이라도? 기내식을 가져 올까요?"

"아니, 그건 됐어."



손에 들려 있던 샴페인 잔을 내려놓으며 마일리는 의자 옆에 놓여져 있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어올렸다.



"혹시 귀마개 있니?"

"예, 귀마개라면 선반위에."

"그럼 그거 쓰렴."

"예?"



수면이라도 들려는 줄 알았다만, 난데없이 승무원에게 귀마개를 쓰라는 마일리의 말에 안토니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거든."



-찌익.



"인간은, 근거리에서 총소리 몇번만 들어도 귀에 이명이 생긴다고 하잖니."



-철컥.



"!"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나온 시커먼 금속의 무언가를 본 순간 안토니아의 두 눈이 커졌다.



"잠깐, 언니 갔다 올게?"


-살상 시스템 승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등석의 문을 열어 재낀 마일리는 승무원들의 정비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당연하다. 애초에 제노폴트 항공사의 완전 무인 민항기를 만들어준것이 마일리 본인이다.

모든 관제, 조종부터 심지어 서비스 시스템과 긴급 의료 시스템까지 무인으로 작동되도록 만든것이 바로 이 제노폴트 항공사의 민간기다. 덕분에 제노폴트사의 주가와 자본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었다.


안토니아라는 승무원이 탑승한 것은 어디까지나 항공사측에서 마일리의 집중 마크를 위함이다. 원래라면 마일리조차도 이 비행기에 탑승할 필요도 없었다.


마일리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다른 객실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 안토니아에 움직임을 멈췄다.



"안됩니다!"

"따라오지 말고 귀마개나 쓰라니까?"

"마일리님, 하지만 전 승무원으로서 마일리님이 총기를 휴대한 채 나서는 것을 막아야하는 입장입니다!"



질질짜는 쫄보같은 인상과는 다르게 안토니아는 무슨 결연한 의지라도 다잡은듯 마일리의 앞을 막아섰다.


안토니아 본인은 마일리가 항공기를 납치하거나 손님들에게 위협이라도 가할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눈앞의 인간이 난데없이 가방에서 총을 꺼내들고 다른 손님들이 있는 칸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누구라도 위험한 상상정도는 하겠지.


뭐 마일리는 헛웃음소리를 낼만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사측에선 너네 항공 법규보다 내 말을 더 우선시하라고 말 안해줬니?"

"해줬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에요 마일리님! 아무리 마일리님이라고 해도, 이건...!"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니?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일은 없단다."



뭐 총기를 들고 있는 꼬락서니는 영락없이 9.11테러를 일으키려는 테러리스트나 다를바 없지만 말이다.


마일리는 잠시 자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한 발자국도 못나가요!'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안토니아를 보았다. 마일리의 눈은 여전히 감긴 상태였지만, 앙다물어진 안토니아의 입술이 은근 고집이 쌔보인다는 것은 충분히 보였다.


할 수 없이 마일리는 안토니아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럼 총 놔두고 갈게. 그럼 됐지?"

"...네? 아니, 총을 놔두시면 다른 객실로 이동하는건 별 문제가 없지만.....아니, 마일리님은 지금 이 항공기를 하이잭하려는 것이 아닌가요?!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시려고!"

"너 은근 망상이 대단하구나?"



하이잭은 그렇다 치고. 그 뒤쪽은 뭐니?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참은 마일리는 이따금씩 드는 강렬한 폭력적인 충동을 참느라 인내심을 할애해야 했다.

애가 귀여워서 즐겁긴 했다만, 귀여운것을 넘어서서 슬슬 답답함이 모습을 드러내면 꾸욱하고 눌러주고 싶었다.



"그런 일 없단다. 오히려 그 반대지."

"아, 아니셨나요...?"



안토니아의 올라갔던 어깨가 추욱 늘어지자 마일리는 속으로 한대 쥐어박을까 말까하는 망설임이 생겼다. 아니라고 말했잖니. 인간들은 뭐이렇게 의심이 많을까?



"그래, 그냥 날 만나러 온 사람들이 꽤 잔뜩 있어서 다른 승객들한테 민폐끼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에, 그거 설마...?"

"소리가 들려서 말이야. 여기 1등석이라 방음은 잘된다만, 나한테는 들렸거든."

"소, 소리라뇨 그치만 아무런 소리도...."

"하아....그럼 저거 부터 볼래?"



마일리가 고개짓으로 승무원 칸에 설치되어 있는 CCTV 카메라를 가리키자 안토니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것이 평범하게 항행을 하며 앉아 있어야할 승객들이 전부 무릎이 꿇린채 의자 옆 복도에 앉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중인 시커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도 말이다. 하나같이 총을 들고 있었고, 거친 손길로 승객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이 말이다.



"이, 이거언..."

"내 직업은 '전문적 나쁜년'이라서 말이야. 그러다보면 이래저래 귀찮아지는 일도 간혹 있거든. 벌레가 간혹 꼬인다거나, 그외에 이러저러한 일도."



여기까지 말하자 안토니아는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듯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었다.


제노폴트 사의 무인 항공기의 특징중 하나는 하이잭을 당하더라도 AI의 시스템으로 항행하기에 어딘가에 테러를 가할 수 있는 확률은 낮다. AI가 할 일은 정해진 프로그램내에서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 스스로 건물에 들이박아 빌딩을 테러하려는 짓거리는 하질 않는다. 심지어 승객이 테러범에게 총을 맞아 죽는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무인 항공기에 테러가 있을 만한 일이라면 아주 극소수의 경우 뿐일 것이다.

이를테면, 항공기에 실린 '특정한 물건, 혹은 승객'을 노린 경우라던가 말이다.



"그래, 이제 알아들었지?"



그 말을 끝으로 마일리는 승무원에게서 고개를 돌린채 들고 있단 개량형 AK-12를 건내주었다.



"내거니까. 소중히 들고 있으렴? 귀마개는 꼭 하고."

"하, 하지만! 마일리님도 위험..."

"마지막으로 말할게."



살짝 눈꺼플을 들어올린 마일리의 자색 눈동자가 한 바퀴 돌아가며 안토니아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귀마개를 쓰고, 아까 그 자리에 앉아 있으렴. 내가 잠시 맡겨놓은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잠시동안 소중하게 품에 껴안고 있고."

"........네."



그래, 이렇게나 말했으면 이젠 이해했겠지 뭐.


그렇게 마일리는 더이상 승무원과 할애할 시간은 없다는 듯 문을 열어재꼈다.



-지잉.


"어라? 이쪽에도 객실....커억!!!"

"아!?"

"어...."



문앞에서 서성거리던 인간이 보이길래 무심코 마일리는 그대로 그 인간의 옆구리를 손으로 뜯었다.


원래는 옆으로 밀칠셈이었다만, 완력 제어 시스템은 현재 작동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의 힘이 인간의 살점따위는 손쉽게 뭉개버릴 정도의 흉기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



"내, 내 옆구리가아....어거, 쿨럭!"



내장까지 뜯겨버린건지 녀석이 쓴 복면이 핏덩이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일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시선들에 어깨를 으쓱였다.



"어머나, 다들 모여서 뭐하고 계셨어요?"

"꺄아아아악!!!"



무릎 꿇려진채 앉아 있던 승객들은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듯 저마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곧 그 비명소리는 다른 객실까지 퍼졌다.



"뭐야!?"

"무슨 일인데! 함부로 사람죽이지 말랬잖아!"

"야, 이 새끼 왜 쓰러져 있어?!"



그리고 그 비명소리는 마일리가 아까 말했던 이따금씩 꼬이는 벌레들도 함께 불러들였다.


문너머에서 복면을 쓴 인간들이 하나 둘 도착하자. 마일리는 약간 곤란하다는 듯이 뺨을 긁적였다.


마일리에게 있어서 복면을 써도 누군지 알아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눈동자나 체형만 확인해도 정확도는 100퍼센트를 빗나가질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완전 처음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누구니? 제 메모리칩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들인데."



누구냐 물어도 복면을 쓴 자들은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마일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곤란했다. 누구지? 설마 정말로 자신이 인간마냥 치매나 건망증에라도 걸린것인가? 란 생각에 이른 마일리의 얼굴이 흑빛으로 물들었다.

에이, 설마...



"저 여자가 맞아! 은발에, 눈을 감고 다니는 러시아계 20대 여자! 사진이랑 인상착의가 똑같아! 의뢰주가 말한 년이 틀림없어!"

"음?"



아, 내가 본적이 있는데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청부업자같은 인간들이었구나, 휴 다행이네. 그러니까 내 메모리에 존재하지 않는 녀석들이었지.

그제야 인간보다는 유연하지 못한 자신의 사고가 조금 원망스러운 마일리였다. 굳이 본적이 없더라도 인간들이 자신의 외모를 특정해서 자신과 마주한적 없는 청부업자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못하다니...



"생각보다 일은 금방 끝나겠군."



생각에 빠진 마일리에게 복면을 쓴 자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일리의 얼굴이 안 좋아진것이 겁이라도 먹었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거기 여자. 얌전히 따라와라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거든 말이야."



어느덧 마일리의 눈앞으로 복면을 쓴 자가 다른 복면을 든채 마일리에게 다가왔다. 뭐야, 저거 씌우려고? 패션적으로 완전 테러리스트인데...?



"우리도 일이라서 너무 원망하진 말라고?"



원망 따위, 마일리가 할리가 없다. 착각은 자유니까.



-빠각!


"히이익!?"

"뭐야?"

"꺄악!!!"

"살려줘!"



물론 뚝배기가 깨지기 전에는 말이다.



"잭!!!!!"

"이런 미친!?"



한 손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복면의 머리를 으깨버린 마일리는 완력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홀로 있을때, 정비를 하면 어디 망가지지 않을까 불안하던 차였는데, 다행히도 완력 시스템에선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총 쓰지마! 선체에 구멍이 뚫린다!!"

"하지만. 저년이!"

"쏘지 말랬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제압해!"



복면을 쓴 녀석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마일리는 머리통이 깨져나가 눈앞에 쓰러진 복면을 내려다 보았다. 즉사했다.

아까 옆구리가 뜯긴 녀석은 과다출혈과 내장 파열로 숨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니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해보니 너무 힘을 쓴 것인지, 사방으로 피가 튀어 있었다.

머리가 깨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터져나가 인질로 잡힌 승객들에게도 잔뜩 피가 튀어 있었다.

승객들은 복면을 쓴 테러범보다 마일리에 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구석으로 잔뜩 몰려 있었다.



"나이프! 나이프나 충격봉을 써라!"

"씨발년, 죽이지만 않으면 된댔지?!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주마!"



의자를 너머 뛰쳐오는 여러명의 복면들에 마일리는 잠시 고민했다.


완력 시스템을 낮출까 말까.


아무래도 낮추는 쪽이 낫겠다. 한방에 신체가 터져나가면 자신의 옷에도 묻을테고, 이래저래 미관상에도 보기가 좋지 않다. 적당히 함몰되거나 파열되는 수준이면 충분하겠지.


생각을 마친 마일리는 왼편에서 다가오는 나이프를 한 손으로 잡아 부러뜨렸다.



"미치..컥!!!"



부러진 나이프를 다시 주인의 턱에 박아 되돌려준다.


이번엔 오른편에서 충격봉을 휘두르는 두명을 살짝 고개를 꺽어 피하고 한 명의 팔을 꺽어 제압.

다른 한 명은 복부를 빠르게 걷어차주니 저만치로 나가 떨어졌다. 입에서 각혈을 하는 것을 보니, 갈비뼈가 부러져 폐에 박힌 모양이다.

다시 일어서려는 복면의 목을 가격하고 발 뒷굼치로 걷어차주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것참 인간은 때리는 맛이 좋기는 한데, 너무 쉽게 행동불능이 되버린다.



"아, 아악! 아파! 이거 놔 개년아!!"

"놔달라고?"



여전히 팔이 꺽여 제압된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진채 비명을 지르면서도 버둥거리는 모습에 마일리는 입고리를 올려 그 인간의 머리에 신발을 올렸다.


-퍼억!!!


머리에서 피와 섞인 하얀색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한 마일리는 남아 있는 복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 안오는거....."


-탕!!!!



그때, 마일리는 이마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잠시 고개가 뒤로 살짝 꺽였다가...



"미친! 총쏘지 말랬잖......"



...돌아왔다.



"아파라. 비행기에서 총 쏘면 구멍뚫린다니까. 조심해야해."



갑자기 쏴서 깜짝 놀랐잖아. 일단.


이마에 맞은 총탄이 찌그러진채 바닥에 툭하고 떨어지는 순간, 복면들은 일제히 각자 총기류를 꺼냈다.



"야..야...야 지금, 시발 저거 이마에 총맞았는데...뭐야 시발!!?"

"총 꺼내 전부!!!"

"방탄판같은게 아니야 뭐야 저년!!!"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다 총꺼내면, 진짜 비행기에 구멍 뚫리는데......


비행기에 구멍이 뚫리면 다른건 다 그렇다쳐도 시끄러운 소음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




"하아. 할 수 없네."



작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마일리의 눈이 떠졌다.

톱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하학적 문양의 보랏빛 눈동자가 차가운 공기를 만나 발광한다.



목을 꺽고. 손목을 꺽는다.


날아오는 총알의 궤도를 읽어 일부러 손으로 잡는다. 


총알의 궤적과 속도마저 읽어내는 동체 시력과 예측 연산 능력이 감정 센서를 오프하고 메모리를 잡아먹는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아 바닥에 널부러진 녀석을 발로 밟아 죽인다.


남아 있는 타겟들을 확인하고 다시 움직인다. 


눈 잃은 총알들을 잡아채고 다른 손으로 심장을 강타하자 피를 토하며 숨이 끊긴다. 발로 다리를 걷어차니 그대로 무릎이 접히며 바닥에 쓰러진다.


마치 가속되는 시간속에 움직이는 것마냥, 마일리의 시각은 사방을 감지하며 사각지대에서 쏴지는 총알을 다시 손으로 잡아챈다.


다시 죽인다. 주먹을 친것만으로 내장을 파열시키고 뼈를 으스러뜨린다. 


한 번이라도 그녀의 손이 거친것만으로 인간은 고깃덩어리가 되서 널부러진다.



-쨍그랑.



"어머나."



어느덧 자신의 손에 잡힌 인간의 목을 꺽기 직전.


마일리는 이 녀석이 마지막 남은 복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흐음, 마저 죽일까. 아니, 사전 청취나 의뢰주가 누구인지도 확인 해야 하는데....흐음.


약간 고민된다만, 그래. 일단 기절시키고 볼까.



-빠악!!!


"커헉!?"



손날로 목을 가격하자 복면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실신했다.

상황이 정리된 듯 하자. 마일리는 허리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반인 사상자는...뭐, 없는것 같네. 있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지. 이 복면 녀석들의 책임이지.



"우으응...!"



개운하다는 듯 기지개를 펴는 마일리는 손에 들려 있던 총탄들을 주먹을 펼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행히 놓친 총알은 없다. 기내에 구멍이 뚫렸다간 여행내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해야 하니까.


마일리는 문득 수많은 승객들의 겁먹은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즐거운 여행 되세요 여러분~"



저 핏덩이들은 내가 치울 몫이 아니거든요.




ㅡㅡㅡㅡㅡㅡ



아 빨리 민달팽이레섹쓰고싶다.


여기에 왜 올리냐면 민달팽이레섹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민달팽이레섹씬이 안나왔으니 나중을 기대하라구. 아니 기대하지마 나도 언제 쓸지 모르겠어.


PS. 백합물에서 남자는 다 저런 용도로 써야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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