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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형사취수

ㅇㅇ(125.179) 2019.03.27 00:28:24
조회 1328 추천 3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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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인정한 순간으로부터 5년. 정신없이 사랑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태우던 어느 날. 자취방에 고기며 과일이며 한 보따리 끌어안고 찾아와 서프라이즈를 외치던 엄마에게 보여줬던 마치 클리셰와도 같았던 진짜 서프라이즈.

그저 사랑하는 게 좋았을 뿐. 그 무엇도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길로 선 자리에 나가 그를 만났다.

유복한 집안에 번듯한 직장. 선하고 강직한 성품과 몸에 밴 예의. 그리고 그 단정한 얼굴까지. 누가 봐도 최고의 상대였고, 사랑 없이도 함께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사랑을 했다. 그와 함께하며 얻은 경제적, 정서적 안정감에 대한 만족감은 사랑이라 바꿔 말해도 크게 틀림은 없으리라.


하지만 참 허망하게도 가버렸다. 이틀 동안의 철야에 지친 졸음운전이라니.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괴롭지 않게 갔을 거란 이야기가 그나마의 위안거리.


이제 장례를 마치고 한 달. 그 좋은 사람의 부모답게 나에겐 아무런 부담도 책임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아직 어린 나를 걱정하며 미안하다 눈물을 흘리실 뿐. 내게 남겨진 책임은 함께 살던 그의 동생을 다독이는 것 뿐이었다.


매일 서럽게 울던 아이는 이제 조금 살이 빠진 것을 빼면 말갛게 반들거리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 이 아이와도 헤어질 때가 된 것일까.


"정민아, 이제 집으로 들어갈래? 나랑 있는 거보다 엄마아빠랑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나 보내고 그 여자 만나러 갈거에요?"


알고 있었구나.

나 대신 우리 엄마에게 뺨을 맞고도 의연하게 자신을 따라와 달라던 그 사람. 그 내민 손을 잡지 못하고 안정을 찾아 도망치듯 끝낸 사랑은 미련으로 남아 나의 치부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따뜻한 온기가 아닌 타는 듯한 뜨거움이 그리울 때면 그녀를 찾아 몸을 섞었다. 


"알고 있었구나.."

"전에 휴강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왔을 때, 언니 전화하는 거 들었어요."


아이는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라, 집에 온 줄도 모르고 야한 농담을 지껄였던 그 날이다.

다 알었어.. 그런데 왜.


"미안해.. 제대로 끝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어. 근데 왜 오빠나 나한테 말 안했니?"

"지키고 싶었어요. 오빠도 언니도, 그리고 나도.. 저는요, 저는 우리가 같이 사는 이 집을 사랑했어요."


벽에 기대어 담담하게 털어놓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가슴을 찌른다.

그래, 시동생이란 어색한 이름을 가진 너는 참 좋은 가족이었다. 

그리 살갑진 않았지만 따스함이 느껴지는 태도와 나를 향한 사소한 배려들. 그리고 그를 닮은 얼굴은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하늘하늘 길고 가녀린 체구. 옅은 색의 머리칼 사이로 곧게 뻗은 긴 목. 각이 진 어깨와 가는 발목까지 좋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건 그의 얼굴이 아니라 너를 닮은 그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을 너는 알까.

네가 썼던 컵에 입을 대며 얼굴을 붉히던 나를, 벗어놓은 네 옷가지를 끌어안고 했던 상상들을, 또 너의 칫솔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는지, 남편으로도 그 사람으로도 채울 수 없던 가슴 속을 온통 너로 물들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알까.

당연히 알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죄인이고 아이는 내 죄로 인해 상처 받았을 거다. 더 큰 죄로 더 큰 상처를 줄 이유는 없다.


"나 그래도 오빠 사랑했어. 그리고 너도... 나한테도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고 집이었어."

"...오빠한텐 들키지 않았으니 끝까지 좋은 아내였을 거에요. 그래서 이제 어떡할래요?"

"그 사람한테는 안 갈 거야. 그건 그냥 미련.. 타다 남은 재 같은 거였어. 짐 정리하고 다음주에 친정으로 갈게."

"나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오빠가 떠난 자리에 남은 무언가?"

"아니야. 왜 그렇게 말해..."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너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잠시 후 아이가 내 뺨을 치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게서 그를 지워내다 보면 언젠가는 이 아이도 지워질테지. 더는 말을 잇지 못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묘한 표정을 지으며 툭 던지듯 물어온다.


"혹시 형사취수라고 알아요? 뭐 언니 공부 잘했으니까 당연히 알겠다."

"무슨 소리야?"

"가지 말고 여기 있어요. 나랑."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혼자 남기는 싫었던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내게 의지해 준다는 게 조금 기뻤다. 얼마든지 함께 있어 줄 거다. 사랑하는 내 시동생...이니까.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할게. 그래도 형사취수는 좀 이상한 것 같아."

"내가 언닐 취하지 않아서요?"


묘한 표정이 묘한 미소로 변한다. 바람을. 그것도 여자와 바람을 피운 나를 책망하는 걸까? 그런 죄를 지어놓고도 함께하잔 말에  잠깐이나마 기뻐했던 내가 수치스럽다. 나는 어차피 죄인이다. 이런 조롱보다는 차라리 욕을 하고 뺨을 때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바람 피운 것도 맞고, 여자를 만난 것도 맞아. 그래도 그렇게 비꼬지는 말아줘. 당장 나가라면 나갈게. 정말 미안해.."

"비꼰 거 아닌데."

"그럼 왜...."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한 걸음 다가 와 섰다. 혹시 뺨을 때릴까 겁이 나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곧 뺨에 아이의 손이 닿는다. 부드럽게 감싸 오는 손의 온기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잠깐 같이 있자는 거 아니에요. 누구 만나지도 말고, 재혼도 하지 말고, 계속 여기 있어요."

"응?"

"너무 외로워지면 내가 안아줄게요. 어떻게 하는 건진 모르지만.. 내가 해줄게요."

"아니야! 너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정민아.. 나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 아니야.."

"그럼 이제 오빠도 없는데 우린 뭐에요? 아무것도 아닌 사이인데 계속 내 옆에 있어 줄 수 있어요?"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 다 알아요. 언니 나 좋아하잖아요. 아니... 사랑하잖아요.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와닿던 따뜻한 시선이 왜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예쁘다 쓰다듬던 그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렇게 뜨거웠는지, 가끔 나를 꼭 끌어안고 우리 동생 너무 말랐다며 등을 쓸어 올 때면 왜 온몸이 심장인 것처럼 뛰었는지.. 다 내 착각이에요?"

"난... 예쁘고 착한 동생이 생겨서 좋았던거야. 니가 나 여자 만나는 걸 알아서 그렇게 느낀 거야.."

"그래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네... 내가 사랑하는 거네!! 그러니까 같이 있어요. 그 사람 만나지 말고, 재혼도 하지 말고.. 어디  가지말고 나랑 있어요!"


이어져 있었다. 너와 나는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기뻐할 겨를은 없다. 애초에 이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거의 울부짖듯 사랑을 토해낸 아이가 입술을 부딪혀온다. 몸부림에 가까운 입맞춤에 오히려 가슴이 싸늘해져 단박에 밀쳐냈다. 우리 이러면 안 돼.


"정민아, 이러면 안 돼. 나도, 너도 오빠한테 이러면 안 돼... 우리 진짜 이러지 말자. 지금까지 잘 참았잖아?"

"오빠 없잖아요. 오빠 대신 내가 지켜줄게요. 다른 사람한테 가는 것보다 내가 지켜주는게 오빠한테도 좋잖아요. 나 오빠보다 머리도 좋고 뭐든 잘 할 자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돈도 벌 거고.. 내가 언니 지켜줄게요. 사랑해요..."


사랑해.. 나도 사랑해. 싸늘해진 가슴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흐느낄 틈도 없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네 말대로 온 몸이 심장인 것 같아. 너무 세게 뛰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아. 이대로 네게 매달려 곧 세상이 끝날 것처럼 안기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이대로 끝나지 않는 걸.


"누구한테서 뭘로 지켜준다는 건데!! 우리가 그러지 않으면 나한테도 너한테도 지켜야 될 건 하나도 없어!"

"처음 봤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어요. 오빠랑 언니 상견례 날엔 먹은 것도 없이 체해서 이틀을 앓았어요. 무슨 감정인 줄도 모르는데 갈수록 더 이상해져만 가고.. 오빠 결혼식날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나도 몰랐어요. 그러다 언니가 그 사람이랑 통화하는 거 듣고 알아버렸어요. 좋아하는구나. 사랑하는구나. 내가 너를 사랑하는구나.."


이를 악물고 한마디 한마디 피를 토하듯 뱉어낸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다.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정민아 제발... 


"더 이상 말하지 마. 우리 제발 그만하자. 여기서 그만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래도 오빠니까 참았어요. 오빠가 미워져도.. 언니랑 같은 방에 들어가는 오빠가 죽이고 싶을 때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오빠니까 괜찮았어요. 오빠 때문에 사랑하는 언니가 여기 있는 거니까 참았어요. 근데 이제, 이제 내가 왜 참아야 되는데!!"


절규와 함께 다시 한 번 시작되는 키스. 더는 참을 수 없어 입을 열어주었다. 막무가내로 가슴팍을 움켜쥐는 손과 입속을 난폭하게 휘젓는 혀에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다. 네가 닿는 곳마다 불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 뜨거움을 참을 수 없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네게 매달렸다.

이 몸부림이 끝나면 나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욕망에 욕망을 얹고 죄에 죄를 얹어버린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 지켜줘. 

니가 나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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