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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미사치사 - 3

ㅇㅇ(182.212) 2019.04.18 23:05:55
조회 680 추천 20 댓글 8
														

좀 짧읍니다 

-


"먼저 들어가 있어, 먹을것좀 가져올게."


깨끗한 미소를 지으며 치사토는 미사키를 자신의 방으로 보냈다. 안녕하세요, 미사키는 아무도 없을 방에 인사하며 방문을 살짝 열었다. 이럴 일은 없을것이라고 평소엔 생각했지. 꽃 향내가 문을 열자마자 훅 하고 풍겨나온다. 노란 꽃 몇개가 꽃혀있는 병 하나가 창가에 보인다. 아도니스, 노란색의 꽃. 꽃말은 영원한 사랑. 치사토씨의 탄생화일까. 저런걸 찾아보는 타입이구나. 역시 잘어울린다. 노란색의 이미지도, 꽃말도. 치사토씨 다워. 방에서 그 밖의 특별한 것들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어렴풋이 치사토씨의 방이라면 연기와 관련된 책이라거나, 대본으로 가득 쌓여있는 약간은 답답한 방이 아닐까- 이리 생각했었는데. 예상 밖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연예인이건. 배우건... 어차피 치사토씨는 고등학생이니까, 그리 다르지도 않을텐데 말이다. 선입견의 폐해라고 해야할까. 


뭐, 적당히 좋은게 좋은것이 아니겠는가? 방의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정도면 충분할것이다. 알수없던 시라사기 치사토라는 사람의 일면을 언뜻 들여다본것같은느낌. 자신이 나서서 진열해둘정도면 딱히 숨기는것은 아니겠지만... 미사키는 그마저도 자신에겐 좋다고 생각해서, 약간은 기분이 좋아지는것 같았다. 어쩌면, 계속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저 치사토씨와도 친해질수 있지 않을까. 완벽하게 불편한 사이보다는 역시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수 있는 관계가 좀더 편하겠지. 이렇게 된 이상 그럴것이다. 그런 낙관적인 사고에 빠져있던 참이였다. 치사토가 간단한 과자 몇개와 음료수, 잔 두개를 쟁반에 담은채 그녀의 방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내 방, 마음에 들어?"


"아, 네, 예뻐요."


"고마워. 그쪽에 앉으면 돼."


책상에 쟁반을 놓고 그녀는 바닥의 한곳을 지목한다. 꽃 무늬가 새겨진 카펫 하나가 있다. 각져있는 카펫은 어느 한 곳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놓여있다. 내가 이 공간을 망치는건 아닐지. 미사키는 순간 든 걱정에 가방을 조심조심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놓고 교복 차림 그대로 치마 밑단을 손으로 살짝 들어 털썩 카펫에 앉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푹신하네. 그 옆에 치사토가 따라 앉았다. 미사키는 순간 숨이 멎는것 같았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옆에 앉으셔서."


얼굴이 가깝다. 숨소리가 들려온다. 방은 이렇게나 큰데 당신은 어째서 내 옆에 있는것일까. 목소리가 흔들리는게 들킬까 무섭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거죠?"


"말했잖아? 내 상대역."


"그렇게 말해도,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걸요. 세타씨랑 다르게."


거기서 미사키는 놓여있던 과자를 하나 들어 맛봤다. 치사토씨에게서 별 다른 반응은 없다. 설마 이런것까지 뭐라고 하진 않을텐데, 나는 어째서 눈치를 보게 되는걸까. 미사키는 작게 탄식했다. 과자는 꽤나 맛있었다. 포장지에 적혀있던 문구를 들여다본다. '야마부키 제과점' 역시 여기였나. 다음에는 나도 하나사볼까... 


"미사키? 듣고 있어?"


"네, 네?"


생각에 빠져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던걸까, 채 다 넘어가지 않은 과자를 급하게 삼키곤 미사키는 대답했다. 옅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귀가 간지러웠다. 미사키는 치사토가 생각하는 자신이라는 사람의 평가가 한껏 낮아지는게 눈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과자가 맛있긴 하지.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았다.


"... 한번만 다시 말할게. 아까 봐서 알겠지만... 내가 나왔던 작품이 막 끝난 참이라서, 좀 있으면 곧바로 다음작품에 출연할 준비를 해야하거든. 나는. 이제 곧 성인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영 미덥지가 않아서, 내 연기를 봐주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던 중이였어."


"카오루씨, 같은."


"그래, 보통의 경우라면 카오루를 불렀겠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어도 그러질 못한단 말이야. 네게 말했던것처럼. 다른 사람이라면... 파스파레쪽은, 음.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미사키를 찾아온거고."


치사토가 침음을 삼킨다. 확실히, 히나 선배나 아야 선배. 이브씨, 마야씨라면... 연기와는 관련이 없을법하다. 히나 선배라면 곧잘 하겠지만, 그 방식이 치사토씨와 맞을지도 의문일테고. 그래서 나였나. 치사토씨의 인간관계도 꽤 좁은가싶다. 나만 아니였다면.


"제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맞아, 네가 필요해. 그것도 꽤나 중요할정도로."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요?"


단언하듯이 내뱉는 말투는 사뭇 단단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무슨 연기를 해야하길래 저렇게까지 치사토씨는 말하는걸까. 그녀가 실긋 웃는다. 옆에서 보인 입꼬리가 약간 휘어진다. 꽃 향내가 다시금 풍겨온다. 컵의 물기로 젖은 손바닥이 미끌미끌하다. 아니, 땀일지도. 잔을 놓쳐버릴것만 같아서 미사키는 음료가 담긴 컵을 그냥 내려놓았다. 저번의 안좋은 추억이 떠올라, 입 안에 무언가를 머금고 있는 행동은 삼가하고 싶었으니까. 


"멜로."


"...예?"


정말, 다행이라고 미사키는 먼저 생각했다. 음료를 먹고있었다면 또 다시 치사토씨에게 뱉어버리고 말았을거야. 그와는 별개로 정말 알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미사키는 자신이 점차 지쳐가는걸 느꼈다. 된다고 한다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침대에 누워서 자고말았을텐데. 미사키는 그 충동을 억누르느라 온 힘을 쏟았다. 쓰러질것만 같았다. 코코로와는 다른 의미로, 피곤한 사람이다. 정말로. 치사토가 또 다시 입을 연다.


"왜. 당황했어?"


"당황하지 않게 생겼어요...?"


아직도 치사토는 웃고있는 표정이다. 그 미소에 짜증이 난다. 최대한 숨기고 싶었음에도 어이없음이 마음을 뚫고 새어나온다. 말소리가 높아져서 닿지 않을것처럼 둥둥 떠오른다. 머리속은 차갑다. 멜로? 장난해? 그나마 이 억지같은 얘기를 계속 듣고 있었던건 치사토가 핼로 해피월드의 바보 3인방들과는 확실히 다른 상식인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말을 듣자니 기가 찼다. 연기의 상대역, 좋다. 해줄수 있다. 해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단지, 멜로? 무슨, 억지도 정도가 있어야지. 단지 그녀를 놀리는게 아닌가. 몸이 달아오르는것이 확연히 느껴질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다만, 화는 내지 않을것이다.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그래. 아무일도 없는듯이 거절하고, 자리를 나오자. 그리고 웃음소리가 작게 들린다. 약간은 우스운것처럼, 치사토가 입을 작게 벌리고 웃고 있다. 


"이게 웃겨요?"


"아, 미사키. 멜로라고 해서 착각한거야? 미안, 미안."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끓어오른 열이 단숨에 증발한다.


착각?


"아. 잠시만요..."


"눈치챘어?"


"아니, 아니..."


"내 배역은 당연히 그런 역이 아니지. 나를 뭐라고 생각한거야?"


"으, 아뇨. 아뇨... 순간, 그런 말을 들어버리니까 약간."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 나는 그런걸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미사키는?"


휘어진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것에 미사키는 힘이 빠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손가락이 다가온다. 턱, 손가락. 또. "축축하네, 미사키의 손은." 왜 화를 내버린걸까. 마음을 뒤집어 훤히 드러낸것만 같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 아니, 얼굴이 빨개진걸까. 쥐구멍이 보이지 않아. 어떡하지. 들켰을까? 그녀의 얼굴이 다가온다. 다가온다, 뒤로, 또. 귓불이 뜨겁다. "멜로 연기 말이야." 건드려진 부분이 쿵쿵, 하고 진동한다. 숨소리, 심장소리. 쾅쾅, 입술. 빨갰지. 무슨 맛일까. 웃음, 한 줄기 꽃. 또.

"시라사기 치사토인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거야?" 당신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아뇨."


그녀는 살풋 웃는다.


"괜찮아, 어느 정도는 놀리는것도 맞았으니까. 화는 안내. 잠깐, 여기 대본."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것일까, 치사토씨는 잠깐 미사키를 바라보곤 옆의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미사키에게 건냈다. 미사키는 뻣뻣한 몸짓으로 치사토가 건낸 대본을 받아든다. 아무일도 없던것처럼. 손가락이 마주 닿았다. 꽤나 거친 자신의 것과는 다르게, 백옥을 갈아넣은것처럼 광이 난다. 순간 미사키는 그 손가락을 흝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빠질뻔했다. 진정하자. 한번 크게 뛴 마음이 아직도 쿵쾅대고 있어서 이러는거니까.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제목이 없네요?'


"대다수의 작품이 그래. 뭐, 이야기만 있으면 대본으론 충분하니까. 가제를 써놓거나, 아무것도 안써놓거나."


꽤나 손이 많이 간듯이 손때가 첫장부터 온갖곳에 묻어있다. 미사키는 아직도 울리는 탓에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에 침을 조금 바르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등장하는 사람이 꽤 많네. 익숙한 이름도 몇몇이 눈에 들어온다. 막연하게 드라마나 연속극을 생각했건만, 규모가 커보인다.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당연한가. 자꾸만 그녀에게 향하는 시선을 붙잡아 종이로 향한다. 가만히 있어, 제발!


"집주인의 딸, 시라사기 치사토."


"맞아, 그게 이번 내 역이야. 약간은 소심하고, 말도 거의 없지만. 짝사랑하는 여자아이가 하나 있어."


"일반적으로 치사토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니네요. 뭘 보고 이런 역을 제안한걸까요?"


"일반적으로라면, 어느 쪽을 말하는걸까?"


평소의 말소리와는 약간 다른, 높아진 성조. 툭 내뱉은 말에 아차 싶다. 말을 생각없이 뱉어내다 코너에 몰려버렸다. 약간 찡그린 눈이 움직여 미사키를 바라본다. 미사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시선의 존재를 확인한다. 변명의 시간이 필요했다. 느릴정도는 안돼, 다만 천천히. 시간을 끈다는걸 들키면 안돼.


"당연히, 평소의 치사토씨를 말하는거죠."


"흐응."


어떻게든 되었나. 치사토로서도 더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는듯이 그걸로 끝. 미사키는 고개를 다시 내려 대본을 좀더 읽어내려갔다. 얼굴을 숙이고, 또. 내 심정을 가리고.


"그거, 멜로영화니까 당연히 청소년 관람불가야."


"네?"


"아니, 네가 열심히 읽고있길래. 나도 찍기만 할뿐이지 극장에서는 못볼걸.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라면 다르겠지만."


"헤, 불합리하네요..."


"뭐, 원래 그렇지. 난 익숙해."


"제가 해달라는 역은?"


"아, 거기 앞부분에.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야."


"으음... 주인공이네요?"


"맞아. 진짜 주인공은 당연히 아니지만."


방긋방긋 웃는 미소, 저건 놀리는거군. 컵이 손에 잡힌다. 미사키는 대본을 내려놓았다. 하필 이런 역이다. 짝사랑.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속이 타는것 같았다. 음료수를 꼴깍 삼킨다. 몸 안에 들어온 당분이 뇌를 대강 일깨운다.


"카오루씨한테 부탁할수 없다는 이유도?"


"대충 미사키가 생각한 대로. 굳이 말 안해도 되지?"

 

"네에.. 뭐, 이런 이유라면 이해가 가네요. 알았어요."


치사토는 미사키를 향하던 시선을 시계로 옮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사키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옮기고, 들고있던 대본을 다시 닫아 치사토에게 건낸다.


"좀 늦었네요."


"그러게, 다음번엔 어쩔까."


"음... 그러네요. 그럼 다음엔 제가 먼저, 치사토씨 쪽으로 갈까요?"


"아냐, 학교에서 만나는건 부담스럽지?"


"하하... 조금, 은?"


"그럼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다음주 화요일날 학교끝나고 교문에서 만나자, 어때?"


"예, 그렇게해요."


자신을 배웅하는 그녀를 뒤로한채로 미사키는 걸음을 옮겼다. 다만 혼자서 바라보고 있는 그런 사이가 좋았는데. 어쩔수 없이 엮여버렸다. 야옹, 길고양이가 작게 울었다. 아까의 대화가 떠오른다. 카오루씨. 소문마저 탐탁잖아 하던 치사토씨였다. 저번의 연극때에도 질색을 하며 카오루씨를 피하던데, 그런 오해를 또다시 받기는 싫다는걸까. 그런 사이. 그런 사이? 입술을 얕게 깨문다. 카오루씨와는 안된다. 그럼 나는?


'나는, 괜찮고?'


가로등이 툭 소리를 내며 불빛을 잃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


미사키가 치사토를 피해왔던 이유가 대단한건 아닙니다


2. 후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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