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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토모히마카오치사] 마음 두드리기 3.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6.15 23:15:11
조회 714 추천 3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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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2편


3. 마음 떠올리기.


-

공간엔 알 수 없는 부유감이 있었다.


단편적으로 잘라진 필름을 이어붙인 것처럼, 기억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비가 온 뒤 일어버린 물안개처럼, 제 머리를 뿌옇게 감싸고 돈 것들을 흐트러트리려 토모에는 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한 행동을 취하자,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토모에는 그제야 제 꼴이 어떤 꼴인지 알아 볼 수 있었다.


“뭐야, 이게...”


한껏 과장된 유럽풍 의상. 바지통은 더럽게 넓고, 위에 걸친 옷은 뽕이라도 넣었는지 어깨가 잔뜩 서있었다. 태클 걸고 싶은 곳은 많고, 많고 너무나도 많은데. 그 중 가장 걸작은 허리춤에 찬 우스꽝스런 레이피어였다. 자신의 취향과는 너무나도 다른 의상 센스에, 결국 토모에도 얼굴을 확 구길 수밖에 없었다.


“아아, 패리스. 결국 이곳까지 따라왔는가?”


고개를 떨어트린 토모에의 귓가에 좀 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모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퍼뜩 들었다.


“세, 세타 선배?!”


세타 카오루. 어쩐 이유에선지 그녀도 이곳에 있었고, 그녀 또한 우스꽝스런 차림으로 우스꽝스런 모습의 토모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토모에가 잘 알고 있는 인물 또한 있었다.


현 세대에서 줄리엣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모습보다 ‘올리비아 핫세’가 연기한 줄리엣을 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가령 그것은 토모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카오루의 뒤에 숨은 줄리엣도 올리비아 핫세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특히 가슴이 그랬다.


“히마리...”


애프터글로우의 베이스 담당이자, 토모에의 소꿉친구 히마리가 세타 카오루의 옷깃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히마리는 토모에를 못 알아보았는지, 그녀는 카오루의 등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언뜻 엿본 시선에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그런 히마리를 바라보던 토모에도 감정 하나가 쿡, 하고 제 가슴으로 박혀 왔다.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히마리는, 토모에도 처음이었다.


“세타 선배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혹여 당신이 날 잊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내 이름은 로미오! 열애를 위해 몬태규란 가문까지 버려버린, 내 이름은 로미오다!”


그렇게 외치며 카오루는 허리에 찬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토모에를 향해 겨눴다. 카오루의 굳센 눈빛이 토모에의 가슴에도 부딪혔다.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강한 의지 표명이었다.


“패리스. 그대에게 유감은 없지만, 우리를 가로 막으려 한다면 나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네. 그대도 사내라면 검을 들게나. 우리 서로 검을 들어, 우리를 줄리엣의 앞에서 증명해보이게.”


레이피어의 끝이 달빛에 빛났다. 그러나 토모에는 카오루가 내뱉은 어떠한 ‘단어’ 하나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카오루가 비춰낸 선명한 적대감 표시보다, 더욱 충격을 준 단어.


“우리인가.”


히마리. ‘우리’라는 단어는 애프터 글로우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었어? 세타 선배도 너의 ‘우리’인 거야? 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아닌 거야?


토모에는 여전히 떨고 있는 히마리를 향해 애달픈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히마리는 토모에와 시선을 마주치자, 그대로 그녀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초점 없는 가녀린 시선이 계속 히마리를 괴롭혔지만, 그녀가 그 시선에 화답을 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렇겠지.”


토모에는 짐짓 억지웃음을 좀 내뱉고는, 허리에 찬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난생 처음 들어본 검은, 순간 날붙이란 사실을 잊어먹어 버릴 정도로 무게감이 없었다. 제 아무리 레이피어라 하여도, 이정도로 무게감이 없을 리가...


“오너라, 패리스!”


토모에의 상념을 카오루의 외침이 깨었다.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드셨는지 더럽게 시끄럽다. 세타 선배.


“갑니다, 가요.”


토모에도 레이피어를 세타에게 겨눴다. 레이피어의 끝은 본인이 흉기라고 밝히는 것처럼 예리하다. 펜싱은 살면서 해본 적이 없지만, 뭐... 될 대로 되겠지.


어차피 다 기합이다, 기합!


반면 카오루도 흥분했는지, 본인의 레이피어를 허공에 휙휙 휘둘렀다. 본인 나름대로 준비동작인 것 같긴 한데, 과잉이라 느낄 정도로 그 동작이 과했다. 카오루는 레이피어를 다시 토모에에게 겨눈 채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다.


“그래, 좋아아아아! 패리스, 자네와 나! 우리 이 기나긴 악연에 종지부를, 끄헉!”


히마리가 카오루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토모에가 좀 더 벙찐 눈으로 바라보니, 히마리는 또 아니었다.


“뭘 멋대로 신나하는 거야, 카오루. 맞고 싶어?”


익숙하지만, 익숙한 것보단 아직은 조금 낯선 목소리가 카오루의 말을 끊었다. 모란꽃처럼 분홍빛을 띤 히마리의 머릿결이, 태양을 연상케 하는 황금빛으로 탈바꿈했다.



-


“흐억!”


토모에는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사라지고, 고결한 석양빛만이 그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토모에는 다시 제 자리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제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을 내뿜듯 편히 내뱉었다.


무서운 꿈이었다.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히마리의 모습이 갑자기 치사토 선배의 모습으로 바뀌는 꿈을 꿨다. 특히 마지막의 광경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싸늘했다. 내 꿈이니까 평소에 생각했던 두 사람의 이미지일 텐데, 두 사람은 내 안에서 그런 이미지인가.


그러고 보면 세타 선배도 제 꿈에 등장한 게 의외라면 의외였다. 세타 선배는 그동안 이야기를 몇 번 나눠본 게 다인데. 아. 히마리의 집에서 본 것도 포함하면, 남에게 못 보일 꼴을 본 것도 있긴 하다.


“이거, 때문인가.”


토모에는 제가 베고 잔 책의 이름을 한번 손으로 쓰다듬었다. 하네오카 여학원의 도서관이 워낙 오래된 곳이라, 판본은 사람들의 손때를 타 제법 많이 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이름은 벗겨지지 않고 여전한 묵빛을 내뿜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저자는 영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불리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극부에 소속된 세타 선배가, 특히나 좋아하는 극작가이기도 하다.


몇 주 전 치사토의 명령 아닌 부탁을 들은 토모에는 셰익스피어의 극본을 조금씩 읽고 있었다. 사실 치사토의 생각을 들어 줄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왜 그러한 부탁을 했는지는 토모에도 좀 알고 싶었다.


“토~모~에!”


열린 미닫이문은 부서질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그러나 교실에 막 들어온 히마리는 그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었다.


“깨있었네?”


히마리는 의자를 살짝 끌어 토모에의 옆에 앉았다. 황혼의 끄트머리가 히마리의 머리자락에 내려앉았다. 석양꼬리를 바라보던 토모에도 몸을 풀어보려,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나도 방금 깼어. 그보다 히마리, 수업 끝났으면 그냥 좀 깨워달라고.”


쭉 편 허리에선 뚜둑, 하고 소리가 났다. 최근 잠을 제대로 못 자는 터라, 가끔 수업시간에 기면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픽 쓰러지곤 했다.


“그치만, 그치만 토모에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자도록 둘 수밖에 없었어.”


잘했냐는 듯 저를 올망졸망 바라보는 히마리.


“하여간...”


그 사랑스런 모습에 토모에도 바람 빠진 웃음을 짓고는, 책상 고리에 걸어뒀던 크로스백을 어깨에 걸었다. 히마리도 제 가방을 손에 들고 토모에의 옆을 따라왔다.


“사진집, 만화 말고 다른 책을 읽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나?”


“응.”


“다른 책도 많이 읽거든?”


“토모에가?”


“무시하지 말라고~”


두사람의 목소리가 흘러 다니는 하네오카의 복도. 토모에는 걷고 있는 대리석 바닥이 마치 천사의 날개를 잡아 늘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새라도 된 것처럼 제 옆에서 지저귀는 히마리 또한 귀여웠다. 새삼 사람 마음이 참 대단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다른 애들은?”


“모카랑 란은 먼저 스튜디오에 갔고, 츠구도 학생회 일이 끝나면 금방 따라온다고 했어.”


폰을 만지작거리던 토모에의 시선이 액정 상단의 시계로 향했다. 하교시간이 이미 제법 지났다.


“그게 언젠데?”


“한 30분전?”


히마리의 말에 토모에는 아차 싶었는지,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탁 쳤다.


“완전 지각이네, 란 또 엄청 툴툴거리겠어.”


“히마리, 토모에. ...너무 늦은 거 아냐?”


“와, 지금 소름 돋게 똑같았어.”


두 사람은 남몰래 키득, 키득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토모에도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제 감정을 틀어쥔 여자가, 저의 즐거움을 허락해준 것처럼 편히. 뙤약볕 아래에서 노역중인 죄수에게 허락하는 물 한 모금처럼, 그 감정은 토모에가 쉽사리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벅찼다.


그래도 그 감정이, 그 일렁임이, 두둥실 떠오르는 그 기분 너무 좋아서, 토모에는 이 시간이 좀 더 오래갔으면 했다.


“카오루 선~ 배애!”


그 사람이 조금만 더 늦게 등장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오오, 내 사랑 히마리. 그리고....”


세타 카오루는 자신의 등을 껴안은 아기 고양이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특별히 경애를 담아, 그녀에겐 저의 사랑이라는 호칭을 주었다. 확실히 제 것이라 여기는, 수많은 팬들과는 조금 다른 호칭. 하지만 이윽고 다가온 토모에는 역시나 껄끄러웠는지, 카오루는 좀처럼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안녕하세요, 세타 선배.”


그래서 토모에는 저가 먼저 인사를 하기로 했다. 카오루는 좀 더 어설프게 토모에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얼굴에 너무 빤히 드러나는데, 이 사람 진짜 연기 천재가 맞나. 그냥 바보 같은데.


“그... 아기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라고 하기엔, 전 너무 큰데요.”


“토모에~!”


카오루에게 달라붙었던 히마리가 장난스럽게 토모에의 팔을 툭 쳤다. 너무 모난 반응은 하지 말라는, 그녀 나름대로의 제재였다.


“그때 일은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저도 그냥 잊기로 했으니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토모에는 일부러 더욱 톡 쏘는 반응을 내비쳤다.


“이, 잊기로 한 것 치고는, 너무 청산유수하구나...”


토모에의 목소리를 받아치는 카오루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제 아무리 철판을 깐 사람이라도, 그러한 꼴은 역시 좀 그런 모양이다.


하긴 어지간히 꼴사나웠어야지.


“카, 카오루 선배는 어디 가시는 중이셨어요?”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를 완화시키려, 히마리가 카오루의 팔에 더욱 매달렸다.


그 꼴을 바라보고 있자니, 토모에는 더욱 열이 확 올랐다. 우다가와 家 특유의 송곳니가 다 갈릴 정도로, 이를 빠득하고 갈았다. 창밖에서 들리는 운동부의 고함 소리가 커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아, 연극부의 대본이 정해져서, 강당에서 막 연습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오루의 손엔 클립으로 꿰어진 종이뭉치가 하나 들려 있었다. 연극부의 대본이 정해졌다는 건, 치사토 선배의 이름도 저기에 분명히 있을 터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치사토 선배는 피할 생각은 없고 정면돌파를 강행할 모양이다.


새삼스럽지만... 강한 걸 넘어 좀 억척스럽다, 치사토 선배는.


“연습이요...”


대본이란 말에 왼쪽, 연습이란 말에 오른쪽. 히마리의 눈빛이 마치 별빛이 흘러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빛났다. 정말이지, 누가 봐도 가고 싶은 표정이다. 늘 그렇지만, 히마리는 항상 다 표가 났다. 선명하다보다는, 투명하다란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아아, 히마리. 행여나 시간이 된다면 내 덧없는 연기를 견학하지 않겠나?”


“그, 그렇지만 저도 배, 밴드 연습이...”


눈치를 보는 그 모습이 섭섭하게 느껴진다면, 난 못된 사람인 걸까? 그깟 연기보단 이게 더 덧없다. 덧없고, 덧없으니, 모든 것이 덧없도다.


“아아, 아쉬운 감정 또한 참으로 덧없구나.”


토모에의 마음을 읽었는지, 저에게 손을 교차한 카오루 선배가 또 덧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시무룩한 히마리의 표정. 토모에는 괜히 마음이 답답해져 제 머리를 한번 꼬다가, 이윽고 히마리의 귀에 입을 댄 채 바로 후회할 밀어를 속삭였다.


“보러 가, 란한텐 내가 얘기해줄게.”


토모에로서는, 그 망할 ‘덧없음’의 연쇄를 어떻게든 끊고 싶었다.


“그래도.”


“견학 끝나면, 데이트라도 하고 와. 자.”


그렇게 말하곤 토모에는 저를 바라본 히마리를 카오루의 곁으로 밀었다. 여전히 떨어질 줄 모르는 히마리의 시선에, 토모에는 빙긋 웃고는 괜찮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안심이 됐는지, 히마리도 카오루의 손을 잡고 나란히 섰다.


키 차이 마저 바람직한 두 사람의 뒷모습이 조금 속에 쓰렸다.


아니, 사실은 좀 많이.




치마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웅, 하고 울렸다. 액정에는 문자가 하나 찍혀 있었고, 문자 표시와 함께 뜬 이름을 확인한 토모에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오루 선배도 카오루 선배지만, 이 선배도 참... 타이밍 하나는 짠 것처럼 기가 막혔다.


[이번 주까진 확실한 연락을 줘.]


“확실한 연락을 달라고 해도...”


토모에는 스마트폰을 다시 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답장을 주지 않았더니, 스마트폰은 두 번 울지 않았다.



혼자 하굣길을 나서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학교를 나설 때, 네 명중 한 명은 꼭 함께 같이 나가곤 했다. 그래서 ‘혼자’ 라는 단어는, 서로가 소꿉친구가 된 이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단어였다. 적어도 토모에에겐 그랬다. 아, 란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겠네. 혼자 반이 떨어진 적도 있으니까, 그땐 그랬었지.


저녁놀은 사람으로 하여금 추억을 꺼내게 만든다. 지금의 토모에도 그러했다. 하네오카 여학교 중등부 시절, 란이 혼자 반으로 떨어진 일. 츠구의 제안으로 밴드를 만든 일. 석양을 바라보며, 영어사전을 찾아보며, 중2병 귀신이라도 단체로 들렸는지, 멋진 단어를 밴드 이름으로 붙였던 일. 란이 가사를 쓴 스칼렛 데이즈를 축제에서 불렀던 일.


그리고 처음으로 머리를 기르기로 결심했던 일도.


‘토모에는 머리 왜 안 기르는 거야?’


어느 날, 그녀는 그렇게 물었다. 짜증스럽게도, 궁금한 것도 아닌, 오늘 아침은 뭘 먹었어? 하고 묻듯, 그냥 평범히.


생각해보면 분명 어렸을 적엔 머리를 길렀었는데, 언제부터 싹둑 잘랐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운동하기 불편하고, 여름엔 달라붙으니까.’


그래서 나 또한 그렇게 답을 주었다. 운동하기엔 좀 많이 불편하고, 여름엔 땀으로 달라붙는 게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평범히 답을 주었다.


‘그럼 한번 길러보자.’


‘싫어.’


‘에에엑, 왜? 왜?’


‘관리하기 귀찮잖아.’


이것도 사실이다. 여동생인 아코의 머리를 묶어준 건 항상 나였기에, 나는 절대 머리를 기르지 않겠다고 마음속에서 정했다.


‘그렇지만 아까운걸. 토모에 머리카락 엄청 예쁘고.’


‘그, 그래?’


멋지다는 말은 질릴 정도로 많이 들었는데, 예쁘다는 말은 어른들을 제외하곤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예쁘다보단 멋지다라는 소리를 더 듣는 나였기에.


‘토모에가 머리를 기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예쁠 것 같아.’


그땐, 그게, 그렇게 설렜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지금도 좋네.’


그녀는 그렇게도 말했다. 지금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처럼 고심하는 목소리로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참 욕심쟁이였다.


‘뭐, 뭐야, 하나만 해.’


‘지금 토모에는 멋져서 좋거든.’


예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멋지다는 말도 색달라서 좋았다. 그리고 그때 난 확신했다. 친구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어느새 내 마음을 크게 두드렸다는 사실을. 오늘이 아닌, 이전부터 이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만약 토모에가 남자라면, 난 절대 놓치지 않았을 텐데.’


덧붙여 내 마음이 보답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그때 확신해버렸다. 확신하면 안 됐어야 할 것을, 확신해버렸다.


첫사랑은 시작과 함께 끝이 났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토모에는 교문을 나서기 전, 학교 건물을 한번 뒤돌아보았다. 혹시나 그녀가 뒤따라 나왔을까, 기대해보며. 그러나 그녀는 뒤따라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그녀는 제 사랑과 함께, 실습동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추억은 사랑을 닮아, 토모에는 떠나가는 내내 자꾸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엔 아직도 그녀가 있어서, 토모에는 자꾸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저답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던 게 눈에 가득 차올랐다. 토모에는 교복자락으로 그것을 닦았다. 닦아줄 사람도 없고 교복은 하필 하복이었던 터라, 그녀는 제 어깨로 제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더욱 서럽게 느껴졌다.

“거짓말쟁이.”


그래서 우다가와 토모에는 투정을 부리듯,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


'추억은 사랑을 닮아' 라는 노래를 부르며 썼습니다.


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데, 퇴고도 귀찮고 팬픽이니까 뭐...


연재 주기는 며느리도 모름. 뼈대만 정해둔 글이고... 퀄리티도 그래서... 그냥 꼴릴대로 쓸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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