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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토모히마카오치사] 마음 두드리기 7.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6.21 23:32:57
조회 662 추천 3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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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6.


 7. 마음 엇갈리기.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다. 언젠가 들었던 노랫말 중 그러한 문장이 있었다. 


 하자와 츠구미는 현재 그 말의 뜻을 여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선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그러하면 본인에게 주의가 쏠릴까 싶어 그러지도 못했다. 게다가 아직 치사토 씨에게선 하네오카 문화제 연극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토모에가 어떠한 이유로 문화제 연극에 참여하게 됐는지도 츠구미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쉬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토모에가 어제의 일로 츠구미를 껄끄럽다고 바라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자와 츠구미는 성실했다.


 “아아, 기다리고 있었다. 치사토.”


 카오루가 자연스레 팔을 교차하며 과장스런 어투로 말했다. 치사토는 그런 카오루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가를 찌푸린 채 팔짱을 끼었다.  


 “연극에 관한 이야기라면 문자로 다 보내줬을 텐데.”


 “그렇지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이렇게 널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스마트폰은 장식이구나.” 


 “세상엔 문명의 이기만큼 덧없는 게 없다. 즉, 그런 거지.”


 카오루는 치사토의 말을 넉살좋게 받아넘겼다. 날카롭게 가시를 곤두세운 치사토의 언행엔  토모에도 살짝 기가 꺾였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저리 틱틱 대는 것도, 치사토 선배에겐 나름의 사랑법인 모양이다.


 “토모에엣!”


 아, 남 생각할 때가 아니었네. 


 “뭐야, 뭐야, 뭐야!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연극은 또 뭐야?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히마리, 좀 천천히 말해. 천천히.”


 토모에는 저의 팔에 달라붙은 히마리를 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필요 이상으로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히마리의 눈빛에 토모에는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난 얘를, 이 사람을, 우에하라 히마리란 사람을 절대로 미워할 수 없겠구나.  


 정작 오늘 아침엔 말을 걸고 싶었던 걸 꾹 참았으면서, 결국 갑작스런 연극 출연을 계기로 걱정이 빵 터진 듯 했다. 이런 격한 반응을 보면 모카와 싸웠다는 걸 다른 애들한테 다 들은 모양인데, 그건 좀 곤란하네.   


 “괜찮아, 괜찮아~ 내 컨디션은 내가 제일 잘 체크하는 거, 히마리도 알고 있잖아?”


 “그래도...”


 히마리는 토모에를 바라보았다. 분명 토모에는 웃고 있었지만 같이 있었던 세월이 얼만데, 그 미소가 억지 미소란 사실을 그녀는 모를 수가 없었다. 무언가 큰 고민이 있는데, 그걸 자신에게만 말해주지 않아 히마리는 답답했다. 저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걸까. 물론 믿음직한 모습은 주로 제 몫이 아닌, 토모에의 몫이긴 했지만.


 최근, 토모에는 키가 조금 더 큰 듯 했다. 항상 함께 했었는데 저 혼자 훌쩍 커버려서, 익숙함보단 위화감이 앞선 그러한 느낌. 그래, 요즘의 토모에는 무언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아아, 히마리쨩. 제 아무리 친한 친우라고 하여도, 그렇게 달라붙는 건 역시 나 또한 질투가가... 으음, 이런 게 소위 말하는 ‘잘못된 만남.’ 이런 건가. 이것 참 덧없구나.”


 “카오루, 소름 끼쳐.”


 무언가에 눈을 뜨려 하는 카오루를 치사토가 푹 꺼진 눈빛으로 보았다. 장난으로 “야, 소름 끼치니까 그만해~” 하는 말이 아니라, 치사토의 눈빛에선 진심으로 ‘혐오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걸 바라보던 토모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니, 이 사람 진짜 세타 선배 사랑하는 게 맞긴 맞냐고. 방에서 엉엉 울었다며. 


 “저, 저도 두 선배님들한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츠구미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박수를 두어 번 쳤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가장한 대화가 네 사람을 넘나들었지만, 츠구미는 은근 눈치가 빨라서 지금 이 상황이 그저 살얼음판을 걷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본인에게 이목이 집중되도록 눈길을 끌었다. 제각각 다른 눈동자들이 저를 바라보자, 츠구미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학교인 치사토 씨가 어떠한 경위로 하네오카 연극에 출연하게 됐는지, 그리고 연극부도 아닌 토모에는 어떻게 연극의 주연을 맡게 됐는지가 궁금해요!”


 그리고는 물어봐야 될 요점을 딱, 딱 짚어, 질문을 한 문장으로 압축시켰다. 역시 학생회다 싶은 깔끔한 질문처리에 치사토도 츠구미를 바라보았다. 


 “그래, 학생회인 츠구미쨩에겐 설명을 해줘야겠지.” 


 그녀의 시선은 카오루를 바라볼 때와는 달리 봄과 같은 파릇파릇한 생기가 흘러 넘쳤다. 그녀가 북풍한설처럼 차갑게 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세타 카오루란 존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사실 하네오카 연극부 측에서 계속 연락을 받았거든.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게스트가 필요하다며...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하네오카 교장 선생님이나 연극부분들도 진심으로 부탁을 해주셔서, 제 아무리 나라도 어쩔 수 없었어.”


 “역시 연극부의 정식 요청도 있었군요.”


 츠구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에 간단히 참고사항을 적어놓았다. 


 “후후, 몇 번이나 거절해서 솔직히 마음을 많이 놓았건만... 아아, 치사토 넌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한 여자구나.”


 “조용히 해, 카오루.”


 놀리듯이 한 카오루의 그 말엔 토모에 역시도 동감이었다. 전에 스튜디오에서 얘기를 했을 때엔, 처음부터 해줄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으면서. 저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치사토 선배는 솔직하지 못한 면이 많았다.  


 “츠구미쨩한텐, 생각지도 못한 짐을 얹어줘서 미안하게 생각해.”


 “아뇨, 짐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그냥 간단히 수정 작업이 필요해서 그랬어요!”


 허리를 깊이 숙인 치사토의 모습에 츠구미는 손을 설레설레 저었다. 츠구미의 당황하는 모습에, 치사토도 살짝 웃어보였다. 같은 밴드의 히카와 히나가, 하자와 츠구미를 ‘인간 비타민’이라 표현한 이유를 좀 알 것 같았다. 


 표정에 생동감이 있어서 재밌다. 


 “그리고 토모에는...”


 치사토는 말을 흐렸다. 토모에란 단어가 들리자, 히마리는 저도 모르게 오른손에 힘을 꽉 주었다. 츠구미 또한 앞으로의 애프터 글로우를 위해 치사토의 말에 경청했고, 가만히 치사토를 바라보고 있던 토모에도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존의 작품을 살짝 재구성 시킨 내용이야. 그래서 시나리오도 필연적으로 재구성 시킬 수밖에 없었고, 영감을 받은 작가님께서 직접 힘을 써주셨지.”


 “연극 쪽이라면 내가 아는 작가님일지도 모르겠군.”


 “아, 카오루가 아는 분은 아마 아닐 거야. 그 분은 무대보단 브라운관 체질이니까.”


 카오루가 중얼거리며 한 말에 치사토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하고 있는 ‘거짓말’에 디테일을 조금 더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나한텐 이게 살면서 처음으로 쓴 극본이라 했거든. 그런데도 막상 받아보니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완성되어 있어서, 나는 작가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지. 근데 마침 저에게 영감을 준 페르소나가 존재했다며, 그 작가님도 얘기를 술술 꺼내지 뭐야?”


 치사토가 말한 ‘술술’ 이란 단어는 토모에가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던 단어였다. 물론 토모에도 지금 치사토가 하고 있는 말들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잘 알았다. 물론 이전부터 생각해둔 이유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리 술술 말하는 그녀가 토모에는 그저 신기했다. 


 “그 영감의 주체가 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 토모에. 애프터글로우의 상점가 라이브를 우연히 본 작가님은 그 날 밤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던 시나리오의 초고를 완성시켰다고 했어.”


 거짓말을 어떻게 저리 자연스레 하지. 저게 다 연기라면, 저것도 직업병 아닐까. 


 “로미오와 줄리엣에 걸맞은, 운명적인 이야기군.”


 “맞아요, 저희가 공연할 때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카오루 선배도, 츠구미도, 히마리도, 치사토 선배의 거짓말에 완벽히 속아 넘어갔다. 선망을 띈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츠구미의 눈빛에, 토모에도 어설피 웃어보였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지 않으려면 일단 치사토 선배의 거짓말에 호흡을 맞춰줘야 했다.


 “연극을 상연하는 날엔 작가님도 직접 와서 본다고 했으니, 토모에를 이번 연극에 참여 시킨 거야. 순전히 내 억지를 들어준 토모에에겐 나도 감사하고 있어.”


 “여, 연기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그래도 치사토 선배의 사정을 들은 이상, 안 할 수가 없더라고!”


 갑작스레 넘어온 바통에 토모에도 머리를 긁적이며 답해주었다. 살짝 어설픔이 남은 웃음도 함께였다.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더니, 토모에의 송곳니도 그대로 드러났다. 잘 대답해준 게 맞나, 티는 나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이 자꾸만 들었다.


 “토모에 쨩은 그래서...”


 츠구미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상한 눈빛으로 토모에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연기를 한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기에, 더욱 츠구미는 토모에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토모에는 그러한 츠구미의 눈빛을 마음에 담아두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 받은 시나리오는 어때, 카오루. 마음에 들어?”


 “아아, 얼마 확인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들고야 말고. 명작의 재해석은 언제나 우리 배우란 족속들을 흥분케 한다.”


 대본을 어제 받았을 텐데도, 자신 있는 태도로 미루어 보아 카오루는 이미 어느 정도 숙지를 한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 본 건가, 카오루 선배의 지명도면 충분히 선생님들도 허락해줄 것 같기도 하다. 


 “치사토, 너의 사연은 잘 들었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듯, 우리도 우리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그러나 카오루도 의욕적인 표정에서, 조금은 곤란하단 표정을 했다. 


 “토모에 쨩에겐 미안하지만, 연극부에서 간단한 연기 테스트를 해볼까 해.”


 테스트. 다른 말로 풀어 쓰면 시험. 이 세상 어디에 ‘테스트’란 단어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토모에도 시험이란 단어에는 역시 부담감이 꽤 컸다.  


 “카오루 선배~? 테스트까지 하는 건 좀 가혹한 거 아니에요?”


 “내 인선을 못 믿겠다는 거야?”


 히마리와 치사토가 각각 말을 꺼냈다. 그러나 카오루는 곰곰이 생각하다가도, 다시 고개를 휙휙 가로 저었다. 그리고는 과장된 내용과는 다르게, 좀 더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연기를 해왔던 치사토의 안목은 믿는다. 그러나 그건 오직 나만이 보았고, 그리고 나만이 겪었던 그대의 안목....”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는 말에 치사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토모에도 이 사실은 처음 듣는 거라, 카오루의 말에 조금 관심이 갔다. 치사토 선배는 좀처럼 제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연락을 텄을 때도, 본인 이야기가 아닌 파스파레의 이야기라든가, 요즘 찍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토모에 쨩은 인기가 많지.”


 그래서 귀를 경청하고 있었더니, 뜬금없는 소리가 토모에의 귓가에 들어왔다.  


 “제가요?!”


 바람 빠진 웃음을 지은 카오루가 작게 낸 목소리에 토모에는 더욱 큰 목소리를 냈다. 곧게 핀 검지는 저의 얼굴을 가리킨 채였다. 입까지 크게 벌린 게 어마어마하게 놀란 듯 했다. 


 하기야 인기 많기로는 둘이라면 서러울 하네오카의 왕자님한테 직접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화, 확실히요. 토모에쨩은 인기가 제법 있죠.” 


 “매년 발렌타인마다, 바구니 하나 정도는 너끈히 채울 정도니까.”


 츠구미와 히마리의 증언이 연이어서 이어졌다. 


 “저번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랑 마야가 체육관 뒤로 자재를 옮기고 있었던 차에, 연극부의 모 아기 고양이 회원들이 나랑 토모에쨩을 이렇게, 저렇게...”


 “카오루 선배도 참!”


 “그, 그만 놀리세요!”


 토모에는 붉어진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고, 히마리도 얼굴이 잔뜩 붉어져 카오루의 팔을 퍽, 쳤다. 그게 꽤 아팠는지, 카오루가 눈물을 조금 글썽였다. 사귀면서 알아간 카오루 선배는 저의 생각 이상으로 주책 맞는 면이 많았다. 


 그런 점이 가끔은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와 더 좋았지만. 


 “아무튼 토모에 쨩의 비주얼은 제법 인정해주고 있다는... 즉, 그런 거지. 그러나 제일 중요한 연기는, 아직 연극부내에서도 토모에쨩을 미지수 분류로 생각하고 있어.”


 방금까지 장난스런 목소리를 짓던 카오루의 목소리가 다시 진지하게 변했다. 카오루를 본 토모에는, 그녀가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토모에 쨩의 진심마저, 폄하될지 몰라. 개인적으로도 그런 광경은 별로 보고 싶지 않군.”


 카오루는 조금 답답한, 그리고 마땅찮은 목소리를 냈다. 시라사기 치사토와는 어릴 적부터 연기를 해오며 알았던 사이다. 지금은 비록 무대와 TV로 가는 방향이 서로 달라졌지만, 옛적부터 연기에 대해 생각하는 치사토를 카오루는 알고 있었다. 


 우다가와 토모에는 연기에 대해 깐깐하다 못해, 고지식한 치사토가 선택한 ‘배우’였다. 치사토의 선택이 틀릴 거라고, 카오루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었고, 카오루 또한 그것을 존중했다. 


 “그래서 우리는.... 토모에쨩에게 오디션을 권유하는 거다.”


 치사토의 친구이기 이전에, 세타 카오루는 연극부의 부원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공평한 방법인, ‘오디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카오루의 생각은 잘 알겠어.”


 카오루의 말을 듣던 치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바꾼 것도 저였는데, 배역 자리 하나를 비워달란 것도 저였다. 이정도면 카오루의 연극부에서도, 엄청 사정을 봐준 거겠지. 다른 연극도 아닌, 하네오카 문화제 연극인데. 


 “토모에는 어때?”


 여기선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치사토 개인적으로도 한 발 빠져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무조건 수락해.’ 라는 눈빛을 치사토는 토모에에게 보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해볼게요.”


 치사토의 질문에 토모에는 시원스레 답했다. 여기까지 꾸역꾸역 온 이상, 토모에도 치사토 선배가 저에게 준 기회를 걷어찰 수 없었다. 차려진 밥상을 제대로 먹진 못할망정, 흘리진 말아야지. 


 “좋아.”


 토모에의 대답에 카오루도 시원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카오루는 토모에를 향해 특유의 표정으로 산뜻하게 웃어주었다. 토모에는 카오루의 웃음을 피했지만, 본인도 조금 어설피 웃어보였다. 두 사람의 웃음에 치사토의 기분도 한층 나아졌다. 분명 성격도, 얼굴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서로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정해진 이상, 그 다음부턴 일사천리였다. 


 “기한은?”


 “일주일 뒤가 딱 좋을 것 같다. 그때는 전체적인 연기의 합을 한번 맞춰볼 예정이니까.” 


 “씬은 특별히 정해둔 거 있어?”


 “테스트를 하는 입장이니 이쪽은 어떠한 장면도 괜찮다. 토모에의 역할인 파리스 백작이 돋보이는 장면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군.”


 “그렇게 알아둘게.”


 잘 들었지, 하며 치사토는 토모에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토모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주었다. 일주일 뒤에 테스트인가, 벽을 만들어둔 것 같아 겁은 나지만 그래도 그걸 또 한 번 넘을 생각하니 토모에는 피가 끓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토모에는 열혈계였다.  


 “엇, 카오루 씨!”


 익숙한 목소리에 치사토도, 카오루도 고개를 돌렸다. 체육복을 입고, 얼굴엔 각진 안경을 낀, 아이돌답지 않았지만 분명히 아이돌인 파스파레의 야마토 마야가 그곳에 있었다.   


 “마야! 연극부에 가는 중인가!”


 마야가 들고 있던 상자를 카오루는 대신 받아주었다. 한사코 저가 들겠다며 사양을 해도 늘 카오루는 억지로 상자를 뺏어갔으니, 마야도 이젠 얌전히 상자를 카오루에게 넘겨주었다.  


 “네, 아! 치사토 씨도 여기 계셨네요! 치사토 씨, 하네오카에 오신 걸 환영해요!”


 “극진한 대접인걸, 마야쨩. 마야쨩이 있어서 안심이 돼.”


 손까지 흔들며 환영해주는 마야 덕에, 치사토도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서 내뿜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파스파레는 그녀의 소중한 있을 곳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야마토 마야란 사람에게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이 야마토 마야가 연극부까지 극진히 모셔드리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마야짱. 토모에랑 나는 개인연습할 거니까.”


 그래도 오늘은 마야의 호의를 칼같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연극부가 반기지 않는 손님도 저에게 있었고. 


 “으으, 아쉽네요. 다음에 꼭 오세요. 이번 연극은 제가 조감독으로 참여해, 여러 가지 연출을 담당하니까요!”


 연극부의 선배가 진학으로 일찍이 은퇴해, 마야는 좀 더 일찍 조감독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선배의 이른 은퇴는 안타까웠지만, 조감독의 특권이었던 소품들을 만지는 것이 마야는 마냥 행복했다. 심지어는 무대의 전체적인 연출에도 관여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래서 마야에게도, 이번 연극은 굉장히 중요하고 흥분되는 연극이었다. 


 “기대되는 걸, 마야쨩.”


 마야의 기대가 몸에 전해져왔는지, 치사토가 부담스런 미소를 지었다. 마야는 분명 착한 아이지만, 가끔 제 멋대로 폭주하는 부분이 치사토는 조금 두려웠다. 


 “토모에, 우리도 응원하고 있으니까...”


 “응...”


 츠구미가 작은 목소리로 토모에의 교복 옷깃을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로 인해 일어난 감정의 일렁임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듯 했다. 토모에도 좀처럼 츠구미를 잘 바라볼 수 없었다. 


 츠구를 볼 때마다, 자꾸만 저의 팔을 부여잡고 울던 츠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게 토모에를 죄스럽게 했다.


 “애들 데리고 꼭 연극 보러 갈게! 토모에, 파이팅!” 


 그러나 히마리는 그러한 사정을 몰랐기에,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애프터글로우의 모토처럼 ‘평소대로’의 모습을 토모에에게 보여주었다. 토모에가 부담 가지지 않도록, 항상 활기차고, 활짝 웃는 저의 모습을, 히마리는 보여주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토모에를 더 괴롭힌다는 것을 히마리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래, 히마리도 그...” 


 토모에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히마리는 ‘평소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저는 그래줄 수 없었다. 그게 너무 한스럽고, 미칠 것 같았다. 츠구미가 불안한 눈빛으로 저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떠한 말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채, 결국 토모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자, 토모에.”


 그 답답한 광경을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던 치사토는, 그녀는 되려, 토모에의 손을 잡았다. 솔직히 그게 전혀 아프진 않았지만, 어딘가 마음을 가라 앉혀주는 것 같아 토모에는 그냥 치사토의 손에 이끌렸다. 그녀는 여전히 완연한 미소를 얼굴에 내뿜고 있었다. 


 “속 편해서 좋겠다, 우에하라 씨는.”


 치사토는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히마리의 얼굴을 확인할 순간도 없이, 토모에는 그냥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끌려갈 뿐이다. 분명 저보다 훨씬 작은 사람인데, 어쩐지 오늘은 조금 더 커보였다. 물론 저만큼은 아니었지만.


 “치사토, 난 너를 믿는다.”


 막 자리를 뜨려 했을 때, 카오루는 치사토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카오루의 말에 치사토의 발걸음도 잠시 멈췄다. 도대체 뭘 믿는다는 걸까. 연기일까, 인선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 일까. 


 “...그것 참 고맙네.”


 치사토는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주어진 연기를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건 진짜에요?”


 토모에의 제안대로 연기 연습은 옥상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곧 가을이지만, 아직 여름의 열기가 은근 남아 있어 저녁에도 그럭저럭 있을만한 곳이었다. 


 그리고 토모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곳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토모에는 치사토와의 연기 연습장소를 옥상으로 골랐다.  


 “시나리오니 어쩌니 했던 그거요.” 


 토모에는 청산유수 쏟아지던 치사토의 거짓말의 출처를 캐려했다. 거짓말은 어느 정도 진실을 섞어놔야, 진짜 같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사토의 거짓말엔 베이스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치사토는 계단 난간을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겠니?” 


 깔보는 듯한 말투와는 다르게, 조금은 장난스런 미소를 그녀는 입가에 띠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토모에도 한껏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입 꼬리에 걸었다.   


 “결국 시나리오를 준 사람은 누군데요.”


 “그냥. 업계 아는 사람. 아, 보러온다고 한 건 사실이야.”


 그렇게 말한 치사토는, 접근금지라고 적힌 표시 줄도 가뿐히 넘고 옥상 문 또한 확 열어버렸다. 고층 특유의 세찬 바람이 두 사람에게도 들이쳤다. 방과 후가 지난 터라, 조금은 서늘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게 버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보다 너 거짓말 더럽게 못하더라.”


 치사토가 또 다시 말했다. 여전히 장난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언중유골이라고 그 속엔 분명한 뼈가 있었다. 옥상을 막 뒤따라 올라온 토모에가 치사토를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고생길이 훤해.”


 시라사기 치사토도 우다가와 토모에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그렇게 서로 겹쳐 들어갔다.  


 -


 어느덧 7화네요. 다음주에 오겠다고 했는데... 어제 술을 못 마셔서 그냥 후다닥 써서 올려요.


 후딱 후딱 써서 올리니, 점점 루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ㅋㅋ 다른 분들은 재밌게 보고 있나 슬슬 걱정되는 타이밍이네요.


 저 나름대로는 절정을 향해 빌드업을 쌓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부분들은 그게 그렇지 않을 테니.


 연재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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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6011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322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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