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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야클로- La fierté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6.27 18:59:08
조회 556 추천 16 댓글 1
														

무언가 쓰고싶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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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처음으로 배운 단어는, 아빠도 엄마도 아닌 무대였다.


 갓난아이 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곧장 극장으로 데려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그랬다. 아직 젖살이 가득한 아이를 한 품에 껴안고 무대 1열의 의자에 앉는 그들의 사진을 보자면. 확실히 그랬다. 텐도 마야라는 아이는 가족이라는것을 배우기도 전에 먼저 무대에 빠져버렸다. 


 저녁을 준비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것보다 무대에 올라 짙은 분장을 한채 감정을 토해내는 사람들을 보는 일들이 나에게는 더 익숙한 풍경이였고, 새 동화책의 종이 냄새보다는 낡은 연기대본을 들췄을때 풍기는 퀘퀘한 냄새가 훨씬 기꺼웠다. 의자에 씌워진 벨벳을 검지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면 붉은 결이 생겼고, 무대의 환하디 밝은 조명이 얼굴을 뒤덮는게 알맞아 웃음을 지었다. 내가 웃을때마다 부모님도 따라 웃었다. 그리하여 내 어린시절의 기억들은 가면쓴 연기자들의 꾸며냄으로 곳곳이 점철되어 있었다. 


 풀밭에서 뛰놀며 나비를 보고 팔을 흔드는 5살의 텐도 마야가 있었고, 조악한 몸짓과 얼굴흉내로 이별의 전기를 따라하며 어른들에게 자랑한 8살의 텐도 마야가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면 쪼르르 달려가 배우가 되고 싶다며 조르는 텐도 마야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럴때마다 웃음을 지으며 날 껴안아 들어올려 내게 배우가 되고싶으냐 물었고, 나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 문답은 시도 때도 없어서 지금 생각해보자니 아버지가 지쳤을법도, 조금은 짜증났을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싫은 티를 낸적은 한번도 없었다. 9번째의 해를 지내던 겨울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배우가 되고싶으냐 물었고. 무슨 말로 대답했던걸까. 


 내게서 치기어린 진심을 엿보았던건가. 아니면. 아버지가 또 다시 미소지었고, 9살의 텐도 마야가 처음으로 연기 학원에 갔다. 들뜬 마음으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던 소녀가 있었다.


 그해의 겨울은, 유난히, 참으로 추웠다.


-


"클로딘. 걱정되지는 않나요?"


"하, 걱정하는거야? 그럴거면 네 상태나 신경쓰는게 어때."


 나와 겨루는 날의 그녀는 사납다. 그것이 오디션이든, 같은 배역이든. 연습에서의 활동이든.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털을 빳빳이 세운 고양이처럼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해 크게 날뛴다. 클로딘이 갸르릉거렸다. 침대에 누운채로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깔끔히 정리해놓은 이불이 들썩였다. 휘날리는 먼지에 나는 눈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죠, 언제나."


 우리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서로를 쳐다봤음에도 눈길은 엇갈렸다. 엇갈리고 겹쳐 어지럽게 흔들렸다.


몇번을 서로 쳐다봤을까. 얼굴을 찡그렸던 그녀가 몇번 우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게 텐도 마야니까."


 그럼에도 그녀를 역시 나는 닮고싶어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한번에 털어내는것은 그래. 재능의 영역이니까. 나는 노력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들을 너무 많이 알고있었다. 지금도 쌓이고 얽혀 단단하게 뿌리내린 것들이 마음속에 고여 심장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줌의 재능으로 올라와 앉은 왕좌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으나, 표정으로 태를 내어선 안되었다. 텐도 마야는 언제나 당당하게. 어느곳, 어느때에건 마음속에 긍지를 가지고. 


 텐도 마야, 걸음은 조신하게. 무겁게 옮겨라. 발끝에 무게를 실어라. 팔은 낭창거리게 흔들어. 깃털의 가벼움은 알고 있어? 상상해. 떠올려.

텐도 마야, 너는 더 할수 있어. 더, 갈망해. 올라갈수 없다면 끌어내려. 모두가 끌어내려지면 결국 평균이라는 단어는 바뀌기 마련이다.

텐도 마야, 너는 송곳이 되어야 한다. 드높게 찔러올리는 송곳. 하늘을 뚫어 규격외의 존재가 되어라. 모두를 뛰어넘으면 질투는 경외로 바뀐다.

텐도 마야, 텐도란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 네 성에 긍지를 가져라. 

텐도. 텐도. 하늘의 길을 걸어라. 텐도.

나는, 텐도 마야는, 무대.


 긍지.


"서로 최선을 다해요. 후회하지 않도록."


"후회? 나는 후회같은것 해본적 없어."


"...그런가요. 다행이군요."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기질적인 벨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오디션의 시작을 공지했다. 휴대전화 화면의 안에서 기린이 빙글빙글 돌고있었다. 침묵속에서 혼자만이 살아있다는듯이 빙글빙글 돌고있었다.


"가자."


"그럴까요."


 클로딘이 먼저 일어서 당당히 걸었다. 흔들리는 손에서, 내뻗는 발에서 단단히 뭉친 자존심이 드러났다.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걸을수록 그녀는 더욱 반짝였다.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걸었다. 나보다 먼저 걸어가, 나중에 도착했다. 모두 자신의 선택이였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있을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당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우리는 버튼을 눌렀다. 엘레베이터가 그녀와 나를 동시에 삼켰다. 나는 꿈틀거리는 철의 괴물속에서 부유감을 느꼈다. 시원해서, 이 순간이 참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웃었다. 


-


 거기서 나는 생각을 멈췄다. 하늘에서부터 땅을 내려찍던 발끝도 동시에 멈췄다. 가볍게 착지해 그녀가 한 바퀴를 굴렀다. 신형이 한없이 낮아졌고, 그녀는 그 자세에서 곧바로 칼을 내질렀다. 은색 빛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올곧게 제련된 칼끝이 어깨를 지나갔다. 허공이 터져나갔다. 머리 사이로 찔러넣은 검날에 스스로의 얼굴이 비쳤다. 귓가를 스치는 철의 비명소리는 가까워,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위로 오르려는 자의 외침.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레뷰의 무대속에서 우리는 어떤 등장인물로 존재하는것일까. 그녀가 크게 외쳤다. 


"나에게 집중해, 텐도 마야!"


 크게 외쳤지만 멀리서 들렸다.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그녀는 나와 멀고도 가까웠다. 동시에 조명이 갉아먹은 어둠이 진득히 내려앉고, 스포트라이트가 비췄다. 유백색 빛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옅은 노란색의 머리칼이 그것을 흡수해 그믐달처럼 반짝였다. 세게 내리쬐는 빛에 얼굴의 음영이 없어 마치 유령과도 같은 모습이였다.


"예, 나의 클로딘. 집중하겠습니다."


"하, 그렇게 나와야지!"


 오른손에 쥔 레이피어를 단단히 붙잡았다. 손잡이에 손가락이 끈끈이 달라붙었다. 떨어트리지 말아야한다. 설령 손이 잘리더라도. 자세를 고쳐잡자 금방 숨이 차올랐다. 그저 내려 흔들거리는 왼팔의  근육이 움찔거렸다. 땀에 젖어 머리칼이 번들거렸다. 정리해두었던 앞머리가 시야를 가렸다. 바닥은 딱딱해 한번씩 크게 뛸때마다 척추가 흔들렸다. 목구멍에서 치고 솟아오르는 숨을 꾹 억눌러 삼켰다. 속에서 불이 날것만 같았다. 그녀가 계단을 박차 뛰어올랐다. 어깨서부터 크게 휘둘렀다. 빛이 반짝이고, 우리는 다시 멀어졌다.


"벌써 지친거야?"


"그럴리가요."


 그래, 그럴리가. 아직이야. 나는 아직 지지 않았어요. 지칠지언정, 포기 한적은 한번도 없었어. 계단을 뛰어내려가 검을 찔렀다. 그녀가 찔렸다. 그녀가 찔렀다. 캉, 숨죽인 비명이 터졌다.

 검격을 주고 받았다. 나는 그녀가 찌를곳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내가 찌를 곳을 알고 있었다. 캉, 손과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받아넘겼다. 쉬이 그것을 나는 받아냈다. 나는 그것을 쉽게 받아낼수 있었다. 캉, 나는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일격, 그녀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공간을 점했고 어깨를 찔렀다. 흰색 털이 휘날렸다. 그녀가 휘두르는 팔이 느려졌다. 몸을 움직이기 편해져 과감히 움직였다.


 이격, 옆구리를 찌르는 칼을 튕겨냈고. 되갚듯이 그녀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그녀가 멈췄다. 느리고 느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선을 걸었다. 나는 그녀보다 빨랐다. 그것이 조금이였고 전부였다.


 삼격, 그녀의 단추가 떨어졌다. 망토가 하늘에서 펄럭였다. 그리고 무대의 막이 내려갔다.


 그녀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포지션, 제로."


 숨을 길게 고르고, 표식에 칼을 박아넣었다.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바닥을 두부처럼 가르고 박혔다.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This is, 텐도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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