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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토모히마카오치사] 마음 두드리기 12.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7.02 00:54:12
조회 654 추천 29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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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 편 들 모 음.


 12. 다시 한 번 마음 아파하기.


 조금, 잠에 빠졌던 것 같다.


 “다녀왔습니다!”


 귀를 괴롭혔던 세탁기 소음은 어느새 물이 내는 소리로 바뀌었고, 미처 닫지 못한 창문 틈새 사이로 으슬으슬한 가을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자면서 땀을 꽤 흘렸는지 담요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머리는 아직도 지끈지끈 아파왔다. 감기 하나는 정말 제대로 걸렸구나.


 “언니, 방에 있어? 들어갈게!”


 “거기 아니라 여기...”


 토모에가 간신히 현관 쪽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뗄 떼마다 목이 아파왔다. 집안 내력인지, 가족들 모두 감기가 올 때는 항상 목 쪽으로 오곤 했다. 그렇다 보니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토모에의 힘겨운 목소리를 들은 아코의 발걸음도 다시 거실로 향했다.


 “어, 언니! 괜찮아?!”


 이내 아코의 목소리는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담요를 어떻게든 덮어보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이, 아코의 눈에는 너무나도 처량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다녀왔어?”

 

 “다녀왔어가 아니잖아! 옷은 제대로 입지도 않고, 얼굴은 왜 또 이래! 몸은 또 불덩이잖아!”


 불덩이 같다는 말은 비교적 진부하지만, 토모에의 이마에 손을 얹어본 감상이 딱 그러했기에 아코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태평한 토모에의 모습에, 아코는 벌컥 화를 냈다.


 눈가는 잔뜩 부어있고, 그에 맞게 한바탕 울었는지 볼에는 눈물 자국이 자욱했다.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이불을 꺼낼 정신도 없고, 심지어 울 정도로 아프면 미리, 미리 연락을 했어야지. 전혀 느껴본 적 없는 생소한 답답함이 아코의 마음을 부루퉁하게 감쌌다.


 “감기 옮으니까, 너무 가까이 오지 마.”


 “그런 소리 하지 마.”


 저도 모르게, 아코는 쌀쌀한 말을 했다. 토모에의 시선과 아코의 시선이 잠깐 맞닿았다가, 팽팽히 당겨진 실을 자른 것처럼 툭, 떨어졌다. 해소 되지 않는 감정에 주먹을 꽉 쥐었다.


 언니는 체력이 좋았다. 그 흔한 잔병치레도 해본 적이 없고, 오히려 너무 건강해 조심성이 없어 탈이란 말을 항상 뒤에 달고 살았다.


 언니는 저보다 항상 컸다. 저보다 몇 뼘이나 더 커서, 두 사람이 같이 걸을 때는 토모에가 항상 아코의 발걸음에 맞춰주곤 했었다. 드럼도 언니가 중학교 때 라이브를 한 것을 계기로 시작했고, 또 언니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시작한 것이었다. 항상 앞서 나가는 걸,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다.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냐? 언니?”


 “괜찮아, 괜찮아.... 병원은 무슨.”


 토모에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닥이 꺼지랴 기침을 한번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코의 마음이 더욱 착잡하고 음울한 색깔로 물들어갔다.


 그 강하고 멋진 사람이, 한 순간에 이렇게 약해질 수도 있구나.


 “일단 약부터... 아니, 우선 옷부터 입자. 아코가 부축해줄게.”


 말을 끝낸 아코는 제 작은 어깨를 저의 큰 언니에게 내주었다. 고개만 들어 간신히 아코의 모습을 살피던 토모에도 얌전히 부축에 따랐다. 뜨거워진 체온 속으로 여동생의 흰 목덜미가 느껴졌다. 하지만 토모에의 머릿속엔 화를 내는 아코의 모습이 여전히 계속해서 아른아른 거렸다. 제대로 말 안 해줬다고 화난 건가. 아픈 건 난데, 화는 왜 지가 내는지. 아, 아프니까 화를 낸 건가. 더 아프지 말라고. 그럼 역시 기특한 동생이다.


 “파자마... 파자마... 찾았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토모에를 침대 위에 앉히고, 아코는 서랍 속에서 파자마를 찾아 언니에게 건네주었다. 파자마를 손에 든 언니의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게, 많이 어지러운 모양이다.


 “약 사왔으니까 물이랑 같이 가지고 올게. 옷 제대로 갈아입고 있어야 돼?”


 “응응, 고마워.”


 “다 갈아입으면 약 먹고 어깨까지 제대로 이불 잘 덮고 푹 자기! 아까처럼 새우잠 자지 말고!”


 마치 어린 애를 다루는 것 마냥, 아코의 목소리엔 잔뜩 힘이 담겨 있었다. 평소보다 신경을 쓰이게 한 것 같아, 토모에는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왠지 미안하네.”


 “...왜 사과하는 거야? 이상해, 언니.”


 화를 낸 건 저였는데. 언니는 미안하다며 저에게 되려, 사과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코는 일부로 등을 돌렸다. 저가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지금 언니에게 제 표정을 아코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


 다만, 언니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럼 약 가지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바로 올게.”


 “응, 그럼 잘 부탁해.”


 토모에의 목소리 위에 문 닫히는 소리가 함께 덮였다. 아코가 주고 간 파자마를 토모에는 입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인가. 언제나 내 뒤를 따라오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코도 어느새 다 커버렸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보는 건 내 역할이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다 커버렸네. 어쩌면 로젤리아 덕분일지도 모르겠어.”


 학교 선배이기도 한 미나토 유키나란 이름은, 아직 학생 밴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프터글로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아코가 미나토 유키나의 밴드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엔 그저 놀랍기만 했는데, 아코도 로젤리아란 틈바구니 안에서 점점 부딪히며 성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변하지 못한 사람은, 나뿐인가.”


 하다못해 아직 중학생인 여동생도 나아가려고 하는데, 나만 여전히 제자리. 우다가와 토모에, 너는 정말 답도 없고, 약도 없구나.


 “언니, 약 먹자~”


 아, 약은 있네.


 “응.”


 아코의 말에 토모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코는 토모에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약봉투를 살짝 찢어, 숟가락에 가루약을 타고 그 위엔 또 물을 살짝 뿌렸다. 그러자 물과 가루약이 섞여, 요상한 형체가 되어 숟가락 위에 살짝 둥둥 떴다.


 “아, 가루약은 싫은데.”


 “이게 효과가 좋대.”


 효과가 좋다는 말에 토모에도 결국 눈을 딱 감고 약을 넘겨버렸다. 목에 살짝 달라붙는 느낌과 메스꺼운 느낌에 토모에도 얼굴을 찌푸렸다. 아코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언니, 뭐 또 시킬 거 있어?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아코한테 바로 말해줘.”


 “고마워. 근데 지금은 괜찮아. 그보다도 좀 더 자고 싶어.”


 “응. 아플 때는 자는 게 최고니까.”


 더 이상의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아코도 침대에서 벗어나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그 말대로 감기에는 약과 잠이 직빵이다. 필요한 것도 없다고 하니, 슬슬 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저기, 아코.”


 나가려는 아코의 그림자를 토모에가 붙잡았다.


 “왜, 언니?”


 아코도 등을 돌려 문에 살짝 기댔다. 열렸던 문이, 다시 찰칵 하고 닫혔다.


 “혹시, 기억나? 아코가 아직 어렸을 때, 지금 나처럼 감기에 걸려서 꽤 열이 높았던 적이 있었잖아?”


 토모에가 갑작스레 꺼낸 화제는, 아코에겐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코는 토모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파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 생각이 조금 나는 모양이다.


 “그랬었나?”


 “그랬었어. 그때 네가 ‘언니, 머리 아파.’ ‘언니 목 아파.’ ‘언니, 배고파.’ 하고 울면서 계속 나한테 안기더라.”


 “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


 토모에의 일방적인 기억에 아코의 얼굴도 후끈거렸다. 지금도 언니한테 안 달라붙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나는 더 대단했구나.


 “그래서 결국은 그 날 같이 잤거든. 그랬더니 다음 날...”


 “아, 언니한테 감기가 옮았지?”


 파노라마처럼 흘러 지나가던 기억의 끄트머리를 아코는 붙잡았다. 토모에의 말대로 분명 그런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의 이야기였다. 엄마가 어찌어찌 침대로 데리고 가려고 해도, 언니 옆에서 자겠다며 고집을 부렸었다.


 “기억하네, 다음 날은 정말 고생했어.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목이 아프니까, 뭘 넘길 수도 없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못 먹으니 배는 또 엄청 고프고... 그게 가장 컸지.”


 그 결과, 내 감기가 언니한테 옮아버렸다. 잘 생각해보면 언니의 감기도 목으로 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물론 아코는 싹 나아서 건강해졌지만 말이야.”


 은근한 표정으로 토모에는 말했다. 아직 힘들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럼에도 선명한 장난기가 살짝 섞여 있었다.


 “힘들게 해서, 미안.”


 “뭘 또 사과를 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고, 그냥 아코가 그만큼 다 컸다는 거. 난 그걸 말하고 싶었어.”


 토모에는 아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작지만, 이제는 다 커버린 동생.


 “내가 이렇게 아파도, 제대로 간호해줄 수 있을 만큼... 정말 믿음직해졌네, 아코.”


 반면 몸뚱어리만 어설프게 커버린 나. 이젠 진짜 언니실격이구나.


 “언니, 잘도 예전 일을 기억하고 있네.”


 아코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그런 옛날 일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살짝 감정이 벅차면서도, 뭉친 게 그대로 내려앉는 듯한 기분.


 “아코에 관한 건데, 다 기억하고 있지. 아, 옛날 얘기하니까 아코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아, 언니! 옛날이야기는 그만 해도 돼! 그것보다도 언니는 지금 아프니까, 푹 자기나 해! 자자, 얼른 눈 감아.”


 토모에의 이야기 주머니가 터지려고 할 무렵, 더 이상 듣기엔 수치심도 들고, 언니의 건강도 걱정이 되어 아코는 일부러 문을 벌컥 열어보였다. 그러자 토모에도 빙긋 웃으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몸을 지탱해주는 푹신한 느낌에 조금 살 것 같았다. 역시 소파보단 침대가 더 편하구나.


 “잘 자, 언니.”


 “응, 아코.”


 문을 닫기 전, 아코가 먼저 토모에에게 잘 자라며 인사를 건넸다. 토모에도 아코의 말처럼 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눈인사를 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딱 오늘만은 아코의 말을 그냥 얌전히 듣기로 결정했다.


 “얼른 나아, 언니.”


 믿음직한 동생의 간호는, 받아둘 수 있을 때 받아두는 게 좋으니까.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코는 문만 살짝 열어, 토모에가 자고 있는 걸 제 눈으로 확인했다. 숨소리까지 새액, 새액, 내고 있는 게 꽤 편해 보여 다행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금방 상태가 좋아질 것 같았다.


 “누가 왔나?”


 언니의 자는 모습을 한껏 눈에 새기고 있을 때, 거실 쪽에서 인터폰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면 시라사기 씨도 집 주소를 물어봤었지, 설마 벌써 스케줄을 끝마치셨나.


 소리가 안 나게 토모에의 방문을 닫은 아코는 곧바로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문을 열자, 아코에게 보인 사람은 두 명이었다. 아직 모습이 영 눈에 익지 않은 시라라기 씨와 어릴 때부터 종종 놀아 저에게도 친근한 츠구찡이었다.


 “아, 오셨네요! 츠구찡도!”


 시라사기 씨가 온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츠구찡이 온다는 건 예상외여서 아코는 입가에 미소를 활짝 걸었다. 친한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실례합니다.”


 치사토는 신고 있던 신발을 살짝 벗었다. 기품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연예인은 아우라 자체가 다른 종족이라고들 하는데, 시라사기 씨가 그런 느낌이었다. 유키나 씨의 멋짐, 그리고 언니의 멋짐. 그리고 시라사기 씨의 멋짐. 굳이 따지자면 언니와도 좀 다르고, 유키나 씨의 멋짐과 비슷하다.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본질적으로 좀 더 다르겠지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토모에 짱은 오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역시 걱정돼서 와버렸어.”


 “아냐, 아냐. 츠구찡. 언니가 알면 분명 기뻐할 거야!”


 본의 아니게 큰 목소리를 냈다가, 아코는 다시 합죽이라도 된 것처럼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그런 아코의 반응에 치사토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토모에는...”


 “아, 아까 막 잠들었어요. 그러니까 일단 이쪽으로...”


 토모에의 방 문 앞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래서, 아코는 두 사람을 거실 쪽으로 데려가려 했다.


 “아, 그전에 이거.”


 츠구미가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아코에게 내밀었다. 내용물을 바라보던 아코가 킁, 킁, 하고 장난스럽게 냄새를 맡아보였다.


 “생강 홍차야. 토모에 쨩의 감기는 목으로 오잖아? 생강은 목에 좋거든. 이거, 정말 맛있는데다가 몸도 따뜻해지니까 감기 같은 건 금방 나을 거야. 아, 그리고 키타자와 정육점에서도 하구미 쨩이 닭고기 완자를 잔뜩 챙겨줬어.”


 “정말, 정말 고마워~! 츠구찡.”


 츠구미의 검은 비닐봉지를 아코가 반색하며 받아들었다. 닭고기 완자는 스프에 넣는 게 좋겠지! 오늘은 스프에도 한번 도전해보는 걸로!


 “챙겨온 게 없어서 뭔가, 미안하네...”


 월간지 인터뷰 스케줄이 끝나고 바로 온 터라, 뭘 더 챙겨올 여력이 없었다. 병원 병문안이라면 밑의 매점에서 평범하게 비타민 주스 박스라도 하나 사갔을 텐데. 하필 집에서 아픈 사람이라 그런 것도 애매하다.


 “괜찮아요, 괜찮아. 언니는 마음만이라도 충분히 기뻐할 거예요!”


 그런 치사토의 마음을 아코가 활기찬 목소리로 달래주었다. 치사토는 아코의 얼굴을 그제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전혀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닮은 구석이 하나 있었다.


 웃을 때는, 송곳니가 보일 정도로 저리 활짝 웃는 게 토모에랑 많이 닮았다.


 “근데 요상한 조합이네, 츠구찡이랑 시라사기 씨는.”


 같은 밴드도 아니고, 같은 학년도 아니고, 같은 학교도 아닌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같이 오는 게 뭔가 이상해서, 아코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런 말을 했다.


 “아, 요 앞에서 만났어. 치사토 씨도... 토모에 쨩 집을 찾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카논한테 길치의 기운이 옮은 모양이야.”


 분명 주소를 들었건만, 저 건물이 저 건물 같고 이 건물이 이 건물 같았다. 카논은 항상 이러한 느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걸까, 저랑 같은 나이의 동급생이 오늘따라 더욱 걱정되는 치사토였다.


 “아, 집에 주스가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따라 드릴게요!”


 “괘, 괜찮은데... 아코 쨩.”


 벌떡 일어난 아코를 본 츠구미는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차마 “날 치사토 선배와 단 둘이 두지 말아줘.” 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츠구미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금색 머리카락을 길게 흐트러트린 치사토 선배.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만, 어딘가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토모에, 학교에서도 많이 아팠니?”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저희한테는 워낙 티를 내지 않아서...”


 “그랬구나.”


 공통된 화제가 없는 탓일까, 말이 또 다시 툭 끊겼다. 츠구미가 “제발 아코쨩!” 하고 마음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아코도 쟁반에 스포츠 드링크가 담긴 컵 세 개를 들고 다가왔다.


 “아침엔 분명 주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또 없네요.”


 착각했나봐요, 하고 아코가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기껏 찾아온 손님들이었는데, 최소한의 대접도 하지 못한 게 영 껄끄러웠다.


 “난 괜찮아, 목말랐으니까.”


 “나도 괜찮아, 아코 쨩!”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동시에 컵을 들었다. 그러자 츠구미의 눈이 치사토의 눈치를 보려 좀 더 가늘어졌다. 혹시,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치사토 씨도 지금 자기를 어려워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치사토 씨도 아코 쨩을 기다렸다거나, 뭐 그런.


 “아, 그... 연극 준비는 혹시 잘 되어 가세요?”


 좋을 대로 넘겨 짚은 츠구미가 치사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연극 이야기를 먼저 꺼낼 줄은 몰라서 치사토는 살짝 토끼 눈을 했지만, 이내 여배우답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나는 잘 되어 가는데, 토모에 쨩은 어떨지 모르겠네.”


 들으라는 듯, 토모에의 이야기를 치사토는 일부러 덧붙였다. 그러면서 게X레이가 담긴 컵을 우아하게 든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앗, 시라사기 씨! 혹시 저희 언니도 이번 하네오카 연극에 참가해요?!”


 처음 듣는 소식에 아코가 눈을 반짝 빛냈다. 하네오카 연극은 중등부에서도 제법 유명한 행사여서, 아코도 중등부였던 히마리와 토모에와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학생에 신분에 맞지 않게 큰 연극이라 엄청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언니가 직접 그 연극에 참여한다는 것이 아코는 잘 믿기지 않았다.


 “어머, 토모에 쨩이 아코 쨩한테는 말해주지 않았구나. 비중도 거의 주연급이면서.”


 “주, 주연급이요?!”


 시라사기 치사토가 하네오카 연극에 출연한다는 것은 소문이 이미 퍼져 알고 있었지만, 언니의 출연소식은 아직 중등부였던 아코에겐 금시초문이었다.


 “토모에도 부끄러워서 그랬던 모양이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렴. 아코 쨩.”


 “네, 당연하죠!”


 언니가 하는 하네오카 연극이라니, 무조건 보러 가고 싶다. 그때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근데 어떤 연극을 하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건....”


 아코의 연이은 질문에 치사토의 말이 좀 늘어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지만, 이것 또한 자연스레 화제를 꺼내기 위한 연기였다.


 “저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할게요, 제발!”


 본인이 알고 있는 작품인지, 아코는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모르는 작품이라도 즐거이 볼 테지만, 만약 저가 알고 있는 작품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아코 쨩이 그렇게 말하니, 나도 어쩔 수 없네.... 이번 하네오카 연극에선, 조금 특별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기로 했어.”


 “로미오와 줄리엣....”


 아코의 목소리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달콤히 울렸다. 아코의 상상 속에선 이미 어설프게 그려진 로미오의 모습이 토모에로 덧칠되어 있었다.


 “츠구미 쨩은 로미오와 줄리엣, 읽어본 적 있어?”


 탁구처럼 서로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 그러나 갑자기 대화의 바톤이 저에게 넘어오자, 츠구미는 살짝 당황해버렸다. 들고 있던 컵을 쟁반 위에 놓은 츠구미가 치사토의 질문에 답을 주었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토모에가 연극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도서관에 찾아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대출해 읽었다. 많이 긴 얘기는 아니어서, 하루를 투자해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럼 알고 있겠네, 파리스의 마지막도.”


 치사토의 말에 츠구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의 파리스와 이번 대본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파리스’ 의 파리스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원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어줬던 관계성이, 이번 연극에선 철저히 비틀어져버렸다.


 가령 츠구미가 본 토모에의 오디션 장면만 봐도 그러했다. 원작대로라면 파리스 백작은 로미오의 손에 죽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연극의 파리스는 죽기는커녕, 오히려 제 손으로 로미오를 죽인다. 그렇다면 홀로 남은 파리스는 도대체 어찌 되는 걸까.


 “무너질지도 몰라.”


 치사토는 말했다. ‘몰라.’ 라고 말했지만, 사실 거의 확신감이 있었다. 멀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에서 치사토는 토모에의 눈물자국을 떠올렸다. 위태롭고, 감정이 까맣게 죽어버린 모습. 지금도 위태위태한 우다가와 토모에가, 파리스로 분해 연극을 하게 된다면 그땐 정말 확실히 무너진다. 상처를 어디 풀지도 못하고 모두 끌어안은 채,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지금의 토모에처럼, 마치 해변 위의 모래성처럼.


 “그때 지탱해주는 사람들은, 꼭 너희여야 돼.”


 내가 막지 못한다면, 이란 뒷말은 사족인 것 같아 치사토는 그냥 삼켜버렸다.


-


 “아코, 있어~?”


 토모에는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보았다. 1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감기로 무거워진 몸으로 침대에 계속 누웠더니, 역시 좀 찌뿌둥하다. 몸을 좀 움직이고 싶었지만 누워 있지 않으면 아코가 또 화를 낼 것 같아, 토모에는 그냥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응, 뭐 불편한 거 있어?”


 토모에가 그리 크지도 않은 목소리로 불렀는데,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냥 아코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거실에 너스 콜이라도 달린 건가. 아코 간호사님 굉장한데.


 “딱히 불편한 건 없는데, 목이 좀 말라. 혹시 아이스크림 있어?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밥도 안 먹었는데, 아이스크림?”


 “이, 입맛이 영 없어서.... 밥은 내일 먹을래.”


 아코가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하자, 토모에도 흠칫 목소리를 더듬었다. 아플 때의 동생은 참 무섭구나. 언니도 막 혼내고.


 “언니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이 아코 님이 직접 빙하계의 마법을..... 뭐였더라? 아무튼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왔지.”


 “민트초코는 없지?”


 “당연하지. 그런 마귀의 침같은 아이스크림이 있을 리가 없잖아?”


 “오오, 역시 내 동생. 그럼 눈 딱 감고 기다리고 있을게.”


 “아~”


 토모에는 말 그대로 눈을 감고 아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여전히 눈은 감은 채 입만 벌려 소리를 냈다.


 “뭐야, 일어나서 먹어. 언니.”


 언니의 색다른 모습에 아코가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솔직하면 좀 좋으련만. 더군다나 ‘손님’까지 있는데,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는지.


 “먹여줘. 아코가 아이스크림을 먹여준다면, 다시 잠이 솔솔 올 것 같아.”


 “정말.... 언니, 왠지 나보다 어려진 것 같아.”


 “조금쯤은 괜찮잖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응석부려 보겠어.”


 분명 아플 때가 아니면 응석 부리기가 쉽지 않은 게 맞긴 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 이런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아코는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푼 채 생각했다.


 “언니~ 아이스크림이야. 자, 아~앙.”


 “아~앙.... 맛있다.”


 혀 위로 초콜릿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주는 대로만 받아먹으니, 온 감각이 모두 혀에 쏠렸다. 갑자기 다가온 냉기에 등골이 오싹오싹하기도 했다. 눈감고 먹으니 뭔가 굉장히 기분이 이상한데.


 “방금 펐던 맛.... 한번만 더.”


 숟가락만 들어가게끔, 입을 살짝 벌렸다. 이번엔 숟가락이 좀 무지막지하게 들어왔다. 제 끄트머리까지 다 핥으라는 듯, 격한 숟가락이었다. 저가 숟가락을 찾는 게 아닌, 숟가락이 저의 혀를 찾아 괴롭혔다. 입술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모두 바른 숟가락은 다시 아이스크림으로 향했다.


 “아, 아코~ 조금만 살살, 차가워~”


 투덜투덜 내뱉는 토모에의 불평에, 아코는 이번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터질 것만 같은 제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대신 손님이 숟가락을 들고, 다시 한 번 토모에의 입가에 숟가락을 대었다.


 “뭔가 개같네, 토모에.”


 그 말과 동시에 손님은 숟가락을 토모에의 입안에 넣었고, 그제야 토모에도 눈을 떴다.


 “맛있어?”


 지금까지 봤던 웃음 중에, 아마 지금이 가장 활짝 만개한 웃음이 아니었을까. 남을 괴롭히는데 저런 미소라니,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전형이다.


 “자, 자, 자,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 잠깐! 왜 치사토 선배가 여기 있는 건데요?!”


 아픈 것도 잊고 토모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열 때문에 붉어졌는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에 붉어졌는지... 그래도 여전히 입엔 분홍색 아이스크림 수저를 문 채였다.


 “후배가 아픈데, 선배가 있을 수도 있지.”


 토모에의 질문에 치사토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빈틈이 없는 정론에 토모에도 손등으로 제 이마를 탁, 쳤다. 시라사기 씨도 이 근방의 아이돌 밴드니까 아코에게 안면이 있었겠고, 그리고 나를 팔아서 아코에게 문을 열도록 유도했구나.


 아니, 그보다는 방 안에 있었던 게 더 문제였다. 설마 동생이라서 보여준 추태를, 치사토 선배가 모두 본 건 아니겠지? 그거야 말로 끔찍하다.


 “어, 어, 언제부터 있었는데요.”


 토모에의 질문에 치사토가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이내 두 팔을 활짝 벌려보였다.


 “괜찮아, 토모에. 이 치사토 ‘언니’한테는 실컷 응석부려도 되니까.”


 몇 주 보지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사람, 백퍼센트 나를 놀리려고 저러는 거다. 아니, 대사부터가 딱 그래.


 “하. 돼, 됐어요.”


 부끄러움으로 올라온 김이 천장까지 뚫어버릴 것만 같아서, 토모에는 이불을 제 얼굴까지 덮고 귀만 쫑긋 세웠다. 그러자 치사토 선배와 아코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럼 치사 선배, 얘기 잘 나누고 계세요.”


 “응. 고마워, 아코쨩.”


 “별 말씀을요!”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냐고, 두 사람...”


 솟아오르는 동생에 대한 배신감에 토모에는 몸을 떨었다. 오늘 계속 믿어왔던 동생에게, 이렇게 배신을 당했다. 감히 날 이런 식으로 치사토 선배에게 팔아 넘겨버리다니. 아코... 다 나으면 반드시 혼내줄 테다.


 키득키득, 웃던 치사토는 이불을 덮고 저를 바라보지도 않는 토모에에게 좀 더 다가갔다. 침대 위로 올라가진 않고, 바닥에 앉아 침대를 등받이 삼아 말을 건넸다.


 “마음정리는 좀 됐니, 토모에.”


 치사토의 고개는 천장으로 향한 채였다. 토모에에게 마음정리라 함은 역시 그 날 있었던 오디션에 관한 일이었다. 치사토는 그 날 토모에의 눈물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얼추요.”


 “언니한테 오늘따라 불퉁하네.”


 “아, 선배....”


 토모에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가라앉았다. 치사토가 다시 자그마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농담 따먹기 할 정신도 있고, 많이 아프진 않은 것 같네.”


 “진짜 아팠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땀을 있는 대로 다 빼고, 한바탕 울고, 약까지 제대로 챙겨 먹었더니 어느 정도 몸에 기운이 돌아오긴 했다. 물론 아직 다 나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무리 할 필요는, 없지 않니?”


 “뭐가요?”


 “연극 말이야.”


 치사토의 말에 토모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리고 지금 그녀가 어떠한 말을 하려고 하는지도 알았기에, 토모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불편한 정적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끝이 안 보이는 수심의 호수 위를 걷듯,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침묵이었다. 그러나 이내 치사토가 먼저 그것을 깨었다.


 “토모에, 혹시 페르소나란 단어 알아?”


 대답을 바라지 않은 것인지, 치사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진지한 목소리였다.


 “주로 심리학 용어로 쓰이는 단어지만, 연기자들 사이에선 주로 배우와 감독의 ‘가면’이란 말로 통용되곤 해.”


 가면. 저에게는 파리스가 그러한 가면일까. 치사토의 말에, 토모에는 이를 악물었다.


 “이따금씩, 가면은 사람들의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눌러 붙어 그 사람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 사람을 계속해서 좀먹고, 빠져 나오는 데에만 몇 개월, 몇 년이 걸려. 결국엔 내가 누구였나, 하며 자아까지 잃어버리고 말아.”


 치사토의 말은 흡사 경험담처럼 들렸다. 아니, 어쩌면 간접적인 경험담일지도 모른다. 시라라기 치사토, 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가면에 먹혀버린 사람을, 나는 한 명 알고 있어.”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귀신을 무서워하고, 키도 지금보다 훨씬 작고, 작은 소리만 나도 제 등 뒤로 숨었던 그러한 사람. 서로 쨩이란 호칭까지 불러가며 연모하던 그 사람은, 이제 변했다. 키도 저보다 커버렸고, 작은 소리가 나도 숨지 않고, 저 하나를 지키는 것도 모자라 수많은 사람의 기대를 등에 업는다.


 “너까지 그렇게 변할까봐, 네가 더 상처 받을까봐 난....”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본질은 그대로일 거라며, 아직도 연약한 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거라며, 그렇게 생각한 치사토였다. 그래서 토모에 또한 가면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봐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게 어떻다는 건데요.”


 “뭐?”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오지랖으로 느껴졌을까, 토모에는 바라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제 마음에 비수를 꽂듯, 치사토 선배에게도 비수를 나눠주듯 모난 말을 했다.


 “지금 제가.... 아니, 내가 어떤 감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배역에 임하고 있는지 선배는 모르잖아요.”


 정말 되는 대로 내뱉는구나, 너는. 솔직히 말해 치사토 선배가 모를 리가 없다. 그도 그럴게 이 배역을 권한 사람이 치사토 선배였고, 치사토 선배도 짝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왜.


 “토모에.”


 “잘 알지도... 진짜, 하나도 모르면서.”


 선배의 안타까운 목소리마저 끊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다. 본인도 본인을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모에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파리스 백작, 꼭 할 거예요. 치사토 선배도 그렇게 알고 계세요.”


 일방적인 통보 뒤에, 토모에는 이불을 귀까지 덮었다. 너무 세게 당겨 올린 터라, 발이 살짝 삐져나왔지만 그냥 듣기 싫다는 듯, 이불로 귀를 막아버렸다. 예의에 어긋나는 축객령이었지만, 치사토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더 약해질 것 같았다. 이대로 모두 놔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은 변해야 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토모에.”


 그러나, 그럼에도 시라사기 치사토는 우다가와 토모에의 이름을 불렀다. 오래 전 전승처럼, 토모에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몸조리 잘해.”


 못난 선배가 못난 후배에게, 치사토는 자리에 일어서서 토모에를 한번 보고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사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리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시라사기 치사토는 그렇게 멀어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그리고 그 뒤로 몇 분이 흐르고서야 토모에는 다시 등을 돌릴 수 있었다. 미처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방의 온기에 녹아가고 있었다.


 “정말 밥 안 먹고 가도 되겠어요?”


 문 앞에 선 아코가 치사토를 보며 말했다. 기껏 와줬는데, 뭐라도 더 대접하지 못한 게 마음에 쓰인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듯 했다.


 “응, 괜찮아. 권해줘서 고마워.”


 치사토의 등 뒤로 해가 완연히 저물었다. 황혼의 빛도 모두 아스러지고, 석양빛을 받던 그녀의 금빛머리카락 또한 빛을 잃었다.


 “다음엔 저녁 드시고 가세요.”


 저의 손을 꼭 잡는 아코. 치사토는 아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역시나 토모에처럼 올곧았다. 왜 진작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걸까.


 “...다음 기회가 있다면, 꼭 그렇게 할게.”


 아코의 얼굴에서 못난 후배를 떠올리며, 치사토는 그렇게 말했다. 현관 등에도 밝게 보이는 치사토의 미소에 아코도 마음을 한결 놓았다.


 “꼭이요!”


 그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도 쾅 닫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코는 활짝 웃은 채였다. 그녀의 웃음에 지고 싶지 않아 치사토도 쭉 미소를 유지했다. ‘우다가와’ 라고 쓰인 문패를 한번 보고, 치사토는 그대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조금, 미움 받을지도 모르겠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치사토인가. 이런 시간에 어쩐 일이지?”


 내 감정을 일렁이게 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렸다.


 “카오루.”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 또한 들렸다.


 “부탁이 하나 있어.”


 계단에서 들려온 탓일까, 목소리가 조금 어그러진 채 들렸다.


 “파리스 백작의 대타, 지금 연극부에서 구할 수 있을까?”


 너에게 멀어지는 소리 또한, 들려버렸다.



-

슈퍼 벤츠 시라사기 치사토.. 이제 나도 그녀의 벤츠력이 무 섭 다!

근데 이거 뭐 쓸 때마다 길어지는 것 같다. 저번에 60%라고 했던 거 취소임.

이제 반 정도 쓴듯.... 아...ㅋㅋ... 7월안에 완결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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