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니지만, 나 우다가와 아코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연애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어. 그도 그럴것이, 연애는 좀
말랑말랑하고 몰캉몰캉한 느낌이라 아코가 추구하는 ‘멋있음’하곤
거리가 멀잖아?

그래서였을까?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같이 있는 두 사람을
봤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 그 충격에
비하면 최종 보스인 마왕이 사실 자기 아버지였고, 파티의
마법사가 숨겨진 흑막인 대마왕이었다는걸 알게 된 용사의
충격도 아무 것도 아닐거야.

린린, 언제나 함께 해온 나의 단짝은 밴드 동료인 사요 씨와 함께
진열된 악세사리들을 보고 있었어. 악세사리를 하나씩 고르며
서로 얘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은 정말 사이좋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당장 달려나가서 묻고 싶었지.

린린? 언제부터 사요 씨랑 그렇게 친해졌어? 왜 그동안 나한테는
둘의 사이를 한번도 얘기해주지 않은 거야? 둘은 정말로...

...좋아하는 거야?

그 말을 가슴 속에서 하자마자 아코는 깨달았어. 아코는 린린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하지만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 지금 린린
옆에 있는 사람은 아코가 아닌 사요 씨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눈에 눈물이 차더라고. 그래서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뛰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그만

누군가와 꽝, 하고 부딪혀 버린거야. 다행히 내가 넘어지기 전에
상대방이 내 허리에 손을 뻗어서 잡아주었어.

“이런, 정말로 성급한 아기 고양이로구나. 실내에서 뛰면 안돼지.”

이럴수가! 아코랑 부딪친 사람은 다름아닌 카오루였던 거야.
우리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기인이고 아코의 언니와
대등하게 멋있는 사람인 그 카오루!

“카오루, 미안. 아코는...”

“괜찮아. 일단 그 흐르는 보석부터 어떻게 하자.”

카오루는 손수건을 꺼내 아코의 눈가를 부드럽게 닦아줬어.
그리고는 아직도 훌쩍이던 아코의 손을 잡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 주더라고. 카오루는 진짜 멋있는 사람이야, 그치?

휴게실의 벤치에 앉아 카오루가 사준 음료수를 간간이 마시면서
아코는 아까의 상황을 설명했어. 카오루는 아코 앞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어줬지.

“아코 짱은 같이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질투했구나.”

“응. 하지만 아코가 더 슬펐던 건, 둘이 정말 잘 어울렸다는거야.”

그래. 아까 본 린린이랑 사요 씨는 정말로 잘 어울려 보였어.
어른스러운 외모의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으니 마치 한 장의 게임
일러스트를 보는 느낌이었지.

하지만 아코는? 린린과 사요 씨가 주인공이라면 그 옆에 서 있는
아코는 마스코트야. 작달막달하고 떼만 쓰는 유치한, 그런 캐릭터.

“...카오루는 좋겠다. 아코도 카오루처럼 멋있었으면 이러지
않을텐데.”

“아니, 그렇지 않다.”

카오루는 아코 옆에 앉으며 말을 이었어.

“나라고 해서 아코 짱과 크게 다른건 없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으면 질투의 화신, 그야말로 녹색 눈의
괴물이 된 나를 발견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보다 그 사람이 더
옆에 어울리지 않나 싶어 주눅이 들고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는
사람, 그것 또한 나다.”

“에, 카오루처럼 멋진 사람도 그런거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강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없는 법.”

어딘지 모르게 허무한(하지만 그것조차 꽤 멋있는) 미소를 지은
카오루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치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사람처럼 포즈를 취했어.

“하지만 아코 짱, 이 세상은 연극이고 우리들 모두는 배우다.
리허설 없이 바로 본공연이고 관객들이 주시하고 있지. 겁이 나서
연기가 뻣뻣할 수도 있고, 대사를 잊어먹어 버벅일 수도 있지만...”

허공을 맴돌던 카오루의 손이 아코 앞에 내밀어졌어.

“...연극을 멈춰서만은 안된다.”

더 쇼 머스트 고 온. 카오루의 분위기를 타서 아코도 모르게
중얼거렸어. 그러자 갑자기 속에서 힘이 솟는게 느껴지는 거야.
마치 최고급 MP 포션을 마신 것처럼.

아코는 카오루의 손을 잡고 일어났어. 그리고 들고 있던 음료수
캔을 쓰레기 통에 버리고선  조언을 해준 카오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지.

“고마워, 카오루! 덕분에 뭘 해야 할지 깨달았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단다, 아코 짱. 답은 언제나 네 가슴
속에...”

카오루가 또 뭔가 멋있는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아코는 당장
린린을 만나야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나가서 그 뒤는 듣지
못했어.

그 뒤로 아코는 린린을 찾아 쇼핑몰 곳곳을 돌아다녔어. 사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금새 찾을 수 있었겠지만, 아코의 가슴
속에서 이글이글 타는 불꽃 때문에 그런 생각은 못했지 뭐야.

그래서 아코가 린린, 그리고 사요 씨를 만난건 시간이 꽤 흐른
뒤였어.  두 사람은 쇼핑이 끝난 듯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이제 막
쇼핑몰 바깥으로 나간 모양이더라고.

아코는 서둘러 두 사람을 쫓아가서는 앞을 가로막았어. 그야말로
몬스터 인카운터였지.

“아코 짱?”

“우다가와 씨?”

두 사람이 놀라는 가운데, 아코는 눈을 감고는 큰 소리로 외쳤어.

“린린, 좋아해! 아코는 사요 씨에 비하면 멋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대신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린린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니 아코랑 사귀어 줘!”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어. 침묵과 함께 마치 영원과도 같은 긴
시간이 지났지.

잠시 후, 부드러운 손이 아코의 손을 잡은게 느껴졌어. 눈을 뜨니
린린이 두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고는 울고 있지 뭐야.

“린린?! 괜찮아?”

“괜찮아, 아코 짱. 이건 기뻐서 나오는 눈물이니까...”

그러고는 린린은 나를 꼬옥 안아줬어. 그래서 이 날이 우리의
새로운 1일이 됐지. 알고보니 린린은 훨씬 예전에 아코를
좋아한다는 걸 자각했던 모앙이야. 다만 나이 차가 있다보니
아코가 린린을 좋아해 줄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었다나.

마지막으로 나중에 들은 거지만, 두 사람은 아코의 생일 선물을
고르고 있었던 거라지뭐야. 그래서 사실 전-혀 필요없던 생쇼를
혼자 한 거였지만, 그래도 덕분에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니
잘된거지.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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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 생일 지나가기 전에 밤에 급하게 한 편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