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유키나는 그렇게 말했다. 마이크를 만지작대던 그녀는 내가 못들은 듯 응? 하고 되묻자 다시 한 번 더 강하게 말했다.

"됐다고. 이제 베이스 치지마. 내가 따로 세션 녹음을 할테니까."

"유키나 갑자기 무슨...."

"베이스 소리가 거슬려서 도저히 연습이 안돼. 넌 방해만 된다고 리사."

  그 날 이후로 난 베이스를 때려치웠다. 울면서 연습장을 뛰쳐나간 그 날 부로 유키나와 연락도 끊었다. 유키나의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도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만, 난 그냥 싸웠다고만 했다.

유키나가 가장 싫어할만한 족속들만 골라서 친구로 사귀기도 했다. 때때로 길거리를 지나가다 서로 마주치면, 유키나는 애써 모르는 척 했고, 난 그런 뒷모습을 쭉 바라보다가 가던 길을 갔다. 내 옆에는 새로 사귄 질나쁜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다. 앞으로 유키나와 엮일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랬는 데.

- 오늘 밴드 연습에 좀 늦을 것 같아. 좀 급한 일이 있어.

나는 오늘 아침 내 휴대폰으로 날아온 문자에 다소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유키나란 이름으로 날아온 문자는 밴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밴드? 내가 밴드를 했던가? 누가 질나쁜 장난을 치는 건가? 어쩌면 잘못보낸 걸지도 몰랐다. 가만보니 핸드폰은 원래 내 기종이 아니었다.

처음보는 기종의 스마트폰이 내 침대 옆에 떡하니 자리 잡고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전화번호부 목록을 뒤져봐도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사요. 히나. 모카.....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랑 바뀐거라면 가서 바뀌었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분명 엊그제 몰래 모여 술마실 때 누가 착각하고 가져갔겠지.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학교 앞에 항상 마중나와주던 친구들이 오늘따라 안보였다. 나는 그런 날도 있구나 하며 천천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어쩐지 주머니가 허전해서 뒤져보니 담배가 없었다.  교복 주머니에 항상 넣어뒀던 거 같았는 데, 친구에게 그냥 빌리자고 생각하며 교실까지 걸었다.

"리사찌! 오늘 언니는 어땠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여자애 하나가 내 손목을 붙잡고 마구 떠들어댔다. 얼떨떨한 얼굴로 응대하면서 생각해보니 얜 히카와 히나였다. 성격적으로 전혀 안맞아서 잘 안엮이고 싶던 애였다.

"뭐야 갑자기?"

까칠한 말투에 옆에 있던 애들이 슥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갑자기 친하게 구는 히카와 히나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리사찌. 빨리 빨리! 언니 이야기 해준다고 했잖아."

"언니? 너 뭔데 갑자기?"

"응? 사요 언니. 리사찌랑 같이 로젤리아하는 우리 언니 말이야."

로젤리아라니. 이게 또 무슨 소릴까. 거기다 사요는 또 누군지 기억이 날듯말듯 했다. 혹시 저번 주에 괜히 시비걸려서 한바탕 싸웠던 마\'사요\'시를 사요라고 말하는 건가?

"아, 거슬려서 반죽여놨는 데."

"....에?"

"아주 자근자근 밟아줬다고. 됐지?"

"....이해가 안되는 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하는 거야. 사요인지 마사요신지 아주 죽사발을 내줬다고."

히카와 히나가 얼굴을 살짝 기울였다.  눈빛이 갑작스레 살벌하게 돌변해서 소름이 돋았다.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보던 애들이 히익! 거리면서 자리를 피했다. 나는 역시 얘는 또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소란을 지켜보고 있었는 지세타 카오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리사. 기분 안좋은 일이라도..."

"너 내가 말걸지 말랬지. 이 기생오라비 새끼야."

예전에 분명히 같은 반이 되자마자 오 나의 피앙세! 이런 소리나 하길래 질색했던 기억이 났다. 카오루는 눈을 끔뻑이더니 자기가 뭘 잘못 들었다는 듯이 엉? 하는 바보같은 소리를 냈다. 주변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핸드폰을 삑삑대는 히나와, 오늘 정말 기분이 안좋나보구나. 하면서 자리를 떠나는 카오루. 그리고 나를 향해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쉬는 시간. 옥상 구석은 우리가 몰래 담배피던 장소였다. 나를 보자마자 담배피던 애들이 흠칫거리며 담배를 뒤로 가렸다.

"야, 갑자기 왜 그래? 나도 하나만 빌려줘."

"응?"

"하나만. 나 오늘 담배 두고왔어."

"응? 뭐?"

"담배 하나만 빌려달라고. 나중에 갚을테니까."

"리사? 너 담배 피웠었나?"

"왜 그래 새삼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여 시원하게 빨아들이며 되물었다. 갑자기 서로 시선을 주고받던 애들은 삐질거리며 담배를 바닥에 버리곤 발로 밟아 비벼껐다.

"알았어. 안필게. 학교에서 안핀다고."

"진짜 이런 거 안좋은 거 우리도 아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안해도 돼."

"뭔 소리야 대체. 아니 오늘 진짜..."

내 말을 무시하고 친구들은 내려가버렸다. 혼자 필 수도 없어서 적당히 비벼끄고 나온 차에 옥상 계단을 바라보던 왠 여자애 하나와 마주쳤다.

"넌 뭐야?"

"어? 리사 씨 안녕~."

"너 누구냐니까?"

"응? 리사 씨. 그런 식이...."

카오루가 갑자기 나타나 내게 말 걸던 애를 데리고 사라졌다. 드디어 저 바람둥이가 선을 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 시간 내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애가 킁킁거렸다. 이상한 듯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쪽을 보고 냄새를 맡다가 작게 물었다.

"리사. 옥상에 담배 피는 무서운 애들 있으니까 가지마."

"너 언제부터 나한테 말걸었냐?"

"응?"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 아이에게 한 소리하려는 순간이었다.

"안받잖아!"

누군가 그런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손에 휴대폰을 꼭 쥔 히나였다. 아까부터 설마 계속 문자라도 보내고 있던 건가 싶었다. 선생님이 히나를 보며 물었다.

"히나 무슨 일이니?"

"안받아! 안받는다고! 언니가 전화를 안받아!"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 내 멱살을.틀어쥐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호흡은 거칠었다.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면서도 시선 끝은 나를 향했다.

"그런 장난 재미없어! 룽하지 않다고! 다시 말해봐! 언니 지금 뭐하고 있어? 뭐하고 지내? 내 이야기는 했어?"

"뭐라는 거야! 아 글쎄 모른다고!"

"전화를 안받는단 말이야!! 전화를!! 안받는다고!!! 전화를 안받잖아!!!! 빨리 말해! 언니 어떻게 됐어! 언니한테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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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유키나의 폭언에 상처받은 리사가 그 후 양아치가 되고.

양아치가 된 리사가 뱅드림 세계관 간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