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편 들 모 음.
17. 마음 토해내기.
영국의 위대한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말리면 말릴수록 불타는 것이 사랑이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막으면 막을수록 거세게 흐른다.”
생각은 어찌 해도, 사람의 감정은 어찌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사랑 관점을 잘 보여준 작품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그래서 위의 말은 로미오와 줄리엣 번역판이라면, 작품해설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의 평범한 여고생 우다가와 토모에는 그의 생각에 철저히 동감해버리고 말았다.
“치사토 선배.”
빈틈없이 저를 무시하려는 치사토의 뒷모습을 토모에는 행여나 놓칠세라 따라잡았다. 오늘은 카논 선배를 두고 먼저 다른 곳에 가는 듯 했다. 그게 어딘지는 잘 몰라도, 일단은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부터.
“어제 보낸 메시지, 봤어요?”
수신하지 않았다는 표시인 1이 지워지진 않았다. 그래도 스마트폰을 쉬이 둘 수 없는 치사토 선배라면, 대강이라도 확인하지 않았을까하며 토모에는 질문했다.
“...봤어.”
치사토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토모에의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내일도 기다린다고, 연기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 메시지. 그러나 치사토도 순진한 편은 아니어서, 토모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분명히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기다린다고 했겠지.
“오늘 파스파레 연습 없어요?”
“없어.”
마야 쨩은 연극의 소품과 연출 작업, 그리고 이브 쨩은 잡지 촬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파스텔 팔레트는 그야말로 완전한 휴업.
“스케줄은요?”
“없어.”
유감스럽게도 개인 스케줄 또한 오늘은 비어있었다. 원래는 연극의 연습이 있는 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연습 날은 또 다음 주였다. 스케줄을 제대로 신청했어야 했는데, 요즈음엔 그러한 정신머리조차 없었다.
“연극 연습은요?”
질리지도 않는 것인지, 토모에는 다시 한 번 치사토에게 물어보았다. 천진난만한 것인지 그냥 정신을 놓았는지 알 수 없는 토모에의 웃는 낯. 그런 그녀의 얼굴에 치사토는 표정을 한껏 찌푸리며 타이르려 했다.
“저기, 토모에. 미안하지만 난 내 생각에 변함이...”
“사실 연극 연습 없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녀의 말을 토모에가 한 발 앞서 확 끊어버렸다. 치사토의 눈이 커졌다. 살짝 놀라, 그녀답지 않게 눈이 동그래졌다.
“세타 선배한테 물어보고 왔으니까.”
“뭐?”
마치 영화 속 질 나쁜 악당처럼, 입 꼬리를 말아 올려 웃어 보이는 토모에. 그리고 저를 놀렸다는 생각에, 그제야 도끼눈을 한 치사토. 높낮이가 다른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윽고 치사토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토모에는 좀처럼 쉴틈을 주지 않았다.
“오늘 아무 것도 안 하시잖아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우다가와 토모에는 시라사기 치사토를 위한 펀치 한 방을 날렸다.
“그럼 저랑 같이 데이트해요.”
그것도 잽이 아닌, 완벽한 스트레이트로.
“뭐?”
한 방을 제대로 얻어맞은 치사토의 입가에선, 외마디 되물음만 한번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애가 뭘 잘못 먹었나? 데이트보단 병원에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튼, 오늘의 토모에는 뭔가 수상하다.
테이블에 놓인 라멘을 한번 후후 불고, 후룩후룩 토모에는 잘도 넘겼다. 그리고 치사토는 그런 토모에가 먹는 모습을 그냥 구경만 했다. 참, 복스럽게 잘도 처먹는다.
“라멘, 좋아하세요?” 라며, 물어본 토모에. 치사토는 그녀의 물음에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하고 답을 주었다. 그리고 토모에는 치사토를 그대로 라멘 집으로 데려갔다. 아주 잘하는 집이라며, 그렇게.
물론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가 라멘 집에 가겠다는 긍정이 아니었다. 그냥 예의상 그렇게 말한 것뿐인데. 사실 라멘 같은 건 아주 싫어한다고 답할 수가 없어, 그냥 그렇게 얘기했는데.
“뭘 그렇게 뚱하게 있어요.”
토모에가 치사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엔 젓가락이 들린 채였고, 그 젓가락 위엔 면으로 엮인 돼지고기 차슈가 집혀 있었다.
“제가 산다니까요, 하나 주문해요?”
“교복에 튈까봐 싫어. 후배한테 뭐 얻어먹는 것도 별로.”
“깔끔은.”
조금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말하며, 토모에는 그릇을 한번 손으로 들었다. 속으로 들어가는 국물이 제법 시원하다. 역시 라멘은 돈코츠 소유 라멘이 최고.
“토모에, 오늘 너 좀 건방지다?”
“치사토 선배도 저 후배 취급 안 해주잖아요.”
어설프게 웃어 보이는 치사토를 향해, 토모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핵심을 찌르는 토모에의 말엔 치사토도 찔리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별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최근 꽤 너무했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잘 먹었다.”
토모에가 습관적으로 내뱉은 말에, 치사토도 힐끔 그릇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과장 조금 보태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국물까지 깔끔히 다 먹었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잘 먹었어요.”
“어어, 토모에 쨩! 들어가!”
어지간히 단골이었는지, 눈을 한번 마주쳐주는 사장님. 토모에도 꾸벅 목례를 하고, 먼저 나간 치사토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밖으로 나왔을 때엔 치사토의 모습이 이미 저 멀리 사라지려 했다.
“어디 가요?”
그래서 토모에는 치사토의 뒤를 따라갔다. 조금 실례되는 생각이겠지만, 치사토 선배의 보폭은 엄청 좁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직관적인 이유 하나. 키가 작아서. 그래서 멀리 있어도, 쉬이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아직 갈 곳, 남았는데.”
그런 발걸음만큼, 도망치는 것도 쉬이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네 순찰이라도 쭉 돌려는 요량인지, 그들은 상점가에 이어서 이번엔 쇼핑몰 안으로 들어왔다. 지하철역도 근처에 있고 2층으로 이루어졌지만 크기는 뒤지지 않는 이 쇼핑몰은, 하나사키가와와 하네오카의 학생들이 많이 모여 이 근방 상권의 핵심스폿이었다.
“영화라도 보실래요?”
영화관 앞에 선 토모에는 살짝 뒤처진 치사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토모에에게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치사토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토모에는 오늘이든 어제든 뭘 잘못 먹은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고선 연극도 코앞인데 이렇게 활발할 리가 없다.
“됐어, 그런 기분 아냐.”
“그럼 뭐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없어.”
“그럼 뭘 하고 싶으세요?”
“집에 가고 싶어.”
“그것만 빼고요.”
한 마디를, 정말 한 마디를 안 져준다. 이전에도 그리 깍듯한 후배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성이 제법 났는지 삐대는 게 한층 더 심하다. 물론 원인제공을 한 건 이쪽이지만.
“집에 보내주는 게 어떻겠니? 슬슬.”
그래도 치사토는 한층 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미 잘못한 거, 조금만 더 잘못하기로 하자.
“이중에 좋아하는 영화 있어요?”
그러나 토모에는 치사토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치사토의 화법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치사토는 한숨을 푹 쉬고, 토모에의 옆으로 다가갔다.
가을맞이 기념 고전명화관이라고 적힌 광고판이 치사토는 꽤나 반가웠다. 모르는 영화들도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이 아는 영화들이었다. 필름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영화들.
“알려줘도 모를 텐데.”
“알려주시면 제가 다음에 만나기 전까지 보고 올게요.”
토모에가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미소를 진하게 걸었다. 치사토도 웃어 보이려다가, 이내 다시 표정을 고쳤다. 너는 벌써부터 다음까지 생각하는 걸까. 토모에, 넌 계획이 다 있나보구나.
“이 영화를 좋아해.”
치사토와 토모에는 액자로 싸인 한 포스터 앞에 섰다. 노란색 배열의 색채가 인상적인 영화 포스터였다. 토모에는 눈으로 포스터에 검게 쓰인 제목을 한번 읽어보았다.
‘Roman Holiday’ 영어 제목 밑엔 친절히 일본어로도 번역이 쓰여 있었다.
“누가 나오는데요?”
“이 정도는 알아서 좀 읽어. 오드리 햅번이랑 그레고리 팩.”
“제가 아는 고전 배우는 올리비아 핫세밖에 없어서.”
치사토가 한번 토모에를 째려보았지만, 토모에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연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다. 그래서 치사토도 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다 봤으면 옥상이나 올라가보죠. 슬슬 시간이고.”
뭐가 시간이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나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치사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우다가와 토모에란 후배에게, 제대로 코가 꿰인 것 같다.
“경치 죽이네, 진짜.”
금방이라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려 하는 노을빛을 보며, 토모에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쇼핑몰 옥상에는 크진 않지만 자그마한 하늘공원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히어로 쇼같은 이벤트도 열리고, 인파에 치인 사람들도 쉬고 가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공원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저녁놀이다. 하네오카 여학교 옥상을 제외한다면, 이 근방에선 이 곳의 석양이 가장 예쁘게 보일 것이다.
토모에는 철망 너머 석양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몸을 틀어 치사토를 바라보았다. 피부가 워낙 하얘서 그런가, 석양에 비친 치사토 선배의 얼굴이 붉다.
“치사토 선배.”
“응, 토모에.”
“연극 얘기 들었어요.”
그 말을 하고, 토모에는 숨을 한번 골랐다. 세타 선배의 연락이 닿았을 때, 일련의 사정들을 대충 듣게 되었다. 대타를 구하려 해봐도 구할 수가 없다는 카오루 선배의 말. 그래서 파리스 백작의 배역이 다시 넘어왔다는 사실을.
무게감 있는 침묵이 두 사람을 짓눌렀다. 조금은 싸늘해진 가을바람과 고동빛에 물든 아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러한 아이들 중 누군가를 찾는 방송 소리가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정공법이네.”
조금 말에 뜸을 들이는 치사토. 깜빡이 없이 다가오는 토모에에게, 이번엔 제법 놀라버렸다. 이래 저래 숨기는 척을 하더니, 결국 빙빙 돌리는 일 없이 토모에는 돌직구를 꽂아 넣는다. 그게 토모에답다면 토모에다웠지만.
“선배도 할 말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너, 어제 뭐 먹고 잤니?”
후지카와 큐지 저리가라. 계속해서 직구만 꽂아 넣는 덕에, 결국 치사토의 입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토모에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그 표정 덕일까. 농담으로 넘어갈 수 없겠구나, 치사토의 머릿속에서도 그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일전에 네 방에서, 배우의 가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잖아.”
그래서 치사토도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꺼낸 이야기가 그거였다. 페르소나란 무대 위의 가면을 쓰고, 그대로 먹혀버린 사람의 이야기.
“사실 그거, 카오루의 이야기야.”
세타 카오루란 이름은, 우다가와 토모에에게도 시라사기 치사토에게도 무게감이 강했다. 조금 쓸쓸한 듯 치사토는 제 입술을 일그러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난 카오루가, 카오 쨩이 약한 사람이란 걸 알아.”
치사토는 어릴 때 서로 부르곤 했었던 호칭을 떠올렸다. 세타 카오루란 이름과 달리, 카오 쨩이란 호칭은 얼마나 유약해 보이는가. 그 호칭을 마지막으로 쓴 게 언제인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서로를 그런 호칭으로 불렀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그런데도 그 애는 강한 척을 해. 사람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그걸 충족시켜 주려고 계속 무리를 해버리고 말아.”
가면에 완전히 먹혀버린 게 아닌 이상, 카오 쨩도 분명 세타 카오루란 이름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시라사기 치사토란 이름에 갇힌 치이 쨩처럼, 그렇게 아파할 것이다.
너를 좋아했을 땐 그 아픔까지 사랑했지만, 이젠 아니다. 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난 그게, 너무나도 보기 싫어.”
그래서 시라사기 치사토는 결심했다. 첫사랑이었던 카오루의 부탁을 받아들었다. 천재 배우 세타 카오루란 명성에서, 아무 것도 아닐 뿐인 카오 쨩을 구해주자며, 그렇게 치사토는 줄리엣이 되었다. 우다가와 토모에는 카오 쨩을 구해주기 위한 부속품이었을 뿐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얘기를 하는 사이, 저녁 무렵의 석양은 모두 지고 결국 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늘정원에서 정답게 떠들던 사람들도, 꼬마들의 숨바꼭질 소리도, 메아리처럼 퍼져가던 방송 소리도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어스름 낀 황혼만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그들 곁에 남아 있었다.
“토모에.”
기분 탓일까, 차가워진 밤공기 사이로 치사토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밤의 장막이 쳐져서 그런지, 치사토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네게 연기를 가르쳐준 사람은 나야.”
새삼스럽다고 느낄 만큼 당연한 사실이었다. 만약 치사토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토모에는 연극을 할 생각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걸 알았기에, 토모에도 치사토의 말을 꾹 듣고 있었다.
“파리스의 마음을 이해하라고 했었지?”
단순히 대본만 읽지 말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라고 했던 말. 치사토 본인이 유명 연출가에게서 직접 들었던 그 말. 그러나 아직 연기에 미숙한 사람에게는, 조금 많이 달리 들을 수도 있는 그 말.
“이해와 메소드는 다른 거야. 토모에, 너 자신을 망치려 하지 마.”
화장실에서 몰래 울고 있던, 연기를 이겨내지 못한 토모에를 보았을 때... 치사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가 후배를 이리 모된 상황으로 몰았다는 그 생각이, 치사토의 마음에 죄책감을 계속해서 얹어주었다.
“네가 연기로 인해 더 아파할까봐, 그게 두려워 나는....”
안 그래도 아픈 상황인데, 토모에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파리스 백작을 연기하지 않길 바랐다.
이젠, 돌이킬 수 없지만.
“망치려는 게 아니에요.”
토모에의 손이, 저 멀리 아직 붉은 기운이 남은 하늘을 가리켰다. 치사토도 멍하니 그 손이 바라본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선명한 황혼, 애프터글로우였다.
“전 제가 못할 거라는 생각 안 해요.”
우다가와 토모에는 그런 사람이었다. 조금 벽에 부딪힌다고 좌절하기보다는, 계속 부딪혀보고 어떻게든 그걸 넘어가고야 사람이었다. 무모, 만용, 허세라고 말해도 좋다.
“해봐야 아는 거잖아요, 그런 거.”
이대로 포기하고 뒤돌아서기에는, 아직 같이 서야 할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다. 도망치기보단 마주하고 뛰어넘는 게 훨씬 저답다.
“제 문제를 치사토 선배가 짊어질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을 끝으로, 토모에는 치사토를 꼭 안아주었다. 가을바람도 춥거니와, 모든 속내를 내보여서 감정에 휩쓸렸는지, 치사토 선배는 계속해서 떨고 있었다. 치사토 선배의 떨림이 멎어 들어갈 때까진, 일단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래도 치사토 선배, 이렇게 작았던가. 개같다고 뭐라 하더니, 진짜 강아지 같은 건 치사토 선배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하고 있는 거, 들키면 틀림없이 욕 먹겠지.
그래도 친한 선후배니까, 이 정도는 허락해줄 거라고 믿는다.
치사토 선배의 말처럼, 그저 제 멋대로 밖에 안 되는 아집일지도 모른다. 독선적이라며 욕을 들어먹을 수도 있다. 마주하는 것도 여전히 두렵다. 감정을 토해내는 것 또한 무섭다. 힘껏 부딪혀서 깨질 수도 있다. 진짜 견딜 수 없는 상처를 받아, 힘에 겨울지도 모르겠다. 우울감에 빠지고, 좌절하고, 받아낼 수 없는 세월에 짓눌리고, 대본 속의 파리스 백작이 그랬듯, 절망감에 빠져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모두 온전히 제 문제였다. 시라사기 치사토란 사람에게까지, 더 이상 폐를 끼칠 순 없었다. 항상 받기만 했으니까, 한번쯤은 믿음직한 모습도 보이고 싶고.
“그... 선배 마음은 고맙지만요?”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 같아, 토모에는 괜히 농담하듯 말했다. 토모에의 품에 안겨, 치사토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황혼녘인지, 별빛인지, 달빛인지 모를 빛을 받은 자수정색 눈동자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속 한번 제대로 썩이네.”
그 자수정 눈동자가, 반달처럼 곱게 접혀 들어갔다. 그 웃음이 마음에 들어, 토모에도 ‘평소처럼’ 활짝 웃어보였다. 달과 별이 낮으로 착각할만큼, 아주 밝게.
“요령이 없는 후배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다가와 토모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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