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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사회인 메르시와 대딩 송하나

ㅇㅇ(221.143) 2019.07.20 00:40:28
조회 1365 추천 57 댓글 10
														


삑.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가 꺼진다. 앙겔라는 사이드 미러가 접히는 모습을 보며 자동차 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길고 길었던 하루의 끝이 보이고 있다. 늦은 밤의 지하 주차장은 여느 때처럼 적막하기 그지없고, 지하 특유의 싸늘함과 지하의 지하 그 밑바닥에 깔린 듯한 공명음은 아주 손쉽게 인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앙겔라는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자신의 구두 굽 소리를 들으며 더듬더듬 가방에서 보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유리문을 지나쳐 승강기 앞에 도착한 그녀는 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아침, 아니 새벽부터 호출을 받고 일어났으니 오늘은 그녀에게 시작부터 좋지 않은 날 중 하나였다. 물론 거기에서 그쳤다면 최고의 날은 아니어도 퍽 괜찮은 날까지는 평가가 발전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연이은 응급 상황과 동료들의 펑크와 실수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점심은 당연히 먹지 못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 있던 탓이다. 저녁에는 잠깐이나마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긴 덕에 후다닥 식사를 해치울 수 있었다. 그마저도 체할 것 같아서 세 입 이상은 먹지 못했지만 그때는 그걸로 족했다. 아침은 뭘 먹었지? 워낙 정신이 없던 차라 무얼 먹기는 했을지 모르겠다. 제 몸에 일어난 일도 남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하루였다. 정신없이 굴러 떨어지기만 한 하루. 환한 빛이 드는 익숙한 복도에 서면 떨어질 때는 몰랐던 상처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알 깊은 곳에서부터 자글자글 몰려드는 그 끈질긴 열감. 그것은 그녀의 정신 어딘가 한편에 서서 호시탐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사냥꾼이다.

힘들다.

탄식을 닮은 긴 한숨과 함께 그녀의 속에서 팍하고 터져 나온 생각이었다. 마른 손으로 눈꺼풀 위를 지그시 덮어 누르자 충혈된 눈이 제멋대로 파르르 떠는 것이 느껴진다. 몸이 뇌에게 말했다. 방해받지 않고 자본 게 언제였지. 제대로 쉬어 본 건 언제였고. 쉰다는 게 뭐였는지, 그녀에게 휴식은 까마득하고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앙겔라는 멍하니 엘리베이터 계기판을 올려다보고는 그제야 숫자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살표도 떠 있지 않고 버튼에는 당연히 눌린 흔적이 없다. 바보같이 뭐하고 있는 거야. 그녀가 버튼을 눌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남은 시간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핸드폰을 꺼내자 액정에 불이 들어오며 정확한 시간이 화면 위에 떠오른다.

오전 1시 17분. 앙겔라는 숫자를 읽고 나서도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많이 흘렀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그녀가 보는 것은 숫자 너머의 배경이다. 지난달 휴가 때 찍을 사진. 사진은 파랗고 파랗다. 투명한 하늘 아래 아직은 소녀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여자가 말갛게 웃고 있다. 긴 머리는 하나로 묶고 선글라스는 앞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놓은 채, 옷은 하얀 민소매에 검은 탱크톱, 그리고 목에는 스트랩으로 매달아 놓은 휴대용 선풍기까지. 하나하나 소녀답지 않은 것이 없어서 웃음이 났다. 더는 시간이 아까처럼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사진을 한 번 봤을 뿐인데 아무래도 좋다 싶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앙겔라는 층수를 누른 후 곧바로 잠금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메신저에 들어가면 최근 대화 중 두 번째로 위치한 칸에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름이 떡하니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마음속D.VA
(이모티콘) 3시간 전


그녀는 속으로 변명했다. 내가 정한 게 아니야. 그런데도 왜 볼 때마다 부끄러워지고 마는 것일까. 한 번 콕하고 클릭하자 전체 대화 내용이 펼쳐진다.



2019.07.17.수요일
내마음속D.VA
퇴근하셨어요? 오후 6:16
아뇨
오후 7:05 아직이요
내마음속D.VA
언제하세요? 오후 7:11
모르겠어요
오후 8:34 정신이 업네요
내마음속D.VA
;ω;`) 오후 8:35
병원에서 주무시게요? 오후 8:37
아뇨
오후 9:59 이제 좀 정리가 돼서
오후 10:00 집에 갈 순 있을 것 같네요
하나양은요?
오후 10:02 잘 들어갔나요?
내마음속D.VA
이따 말씀드림ㅎㅎ! 오후 10:04
(OK 싸인을 든 토끼 이모티콘) 10:05
자요?|



앙겔라는 생각 없이 말을 입력했다가 이내 금방 지워버렸다. 자냐니, 당연히 자겠지. 주말도 아닌데 이 시간에 깨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녀가 알기로 내일은 오전부터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아마 집에 도착해서 전화하려다가 깜빡 잠들었겠지. 지금쯤이면 한창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그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잘 들어갔죠? 너무 많이 마신 건 아니길 바라요 깨면 물은 꼭 챙겨 마시고 점심까지는 너무 짜거나 매운 음식은 피하는 게 좋아요 또|



열심히 타이핑하던 그녀의 손가락이 일순 멈췄다. 쓴 걸 속으로 읽어보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안부를 묻고 싶은 거지 잔소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앙겔라는 삭제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잘 잤어요? 어제는 늦지 않게 잘 들어갔을 거라 생각해요 숙취는 어떤가요?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물은 꼭 챙겨 마셔야 해요 알겠죠?|




멈췄다 지우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마침내 그럴듯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게 그녀의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앙겔라는 메시지를 전송하지 않고 망설였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다.

됐다. 그만두자. 내일 일어나서 전화하면 되잖아. 지금 보내면 깰지도 모르는데. 철컥, 소리와 함께 화면이 암전한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그녀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길로 복도를 쭉 따라가면 그녀의 집이 있다. 중간쯤에 위치한 방이다. 도착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앙겔라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야외로 이어진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제법 널찍한 테라스가 눈앞에 펼쳐진다. 앙겔라는 한쪽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전망은 다른 아파트에 가려진 탓에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지. 그녀는 생각했다. 어차피 담배만 피우면 됐으니까. 앙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가방 안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스틸 케이스가 실은 담뱃갑이라는 걸 누가 짐작이라도 할까.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앙겔라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조차 극소수에 불과하다.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피우는 게 싫었을 뿐. 애초에 많이 피운 적도 없다. 이따금 힘들 때가 있었다. 더는 정말 못 견디겠다 싶을 때.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옥죄어올 때. 살다 보면 옴짝달싹 못 한 채 작은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숨쉬기가 힘든 날이 온다. 앙겔라는 그럴 때만 담배를 잡았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고, 짧은 일탈의 끝은 항상 똑같은 물음으로 채워졌다. 사람들은 이런 걸 대체 왜 피우는 걸까. 입안에 밴 씁쓸한 향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힐 때쯤엔 그 물음도 함께 사라져 있곤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 앙겔라는 생각했다. 들어가서 어제 안 한 설거지랑 급하게 나오느라 어질러 놓은 게 있으니 정리도 좀 해야겠고. 청소기는 그냥 나중에 돌려도 될 것 같은데…. 어차피 내일도 내일모레도 집에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병원에만 박혀 있을 테니 말이다. 밥은 먹어야 하나? 지금 편의점에 다녀오고 싶진 않으니 배달 음식밖에 없는데, 야밤의 메뉴는 그녀에게 양이 너무 많아서 꺼려진다. 어느 정도냐면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을 정도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깜빡한 사이에 상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다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내일도 이렇게 흘러가겠지. 정신없이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하고, 시간에 쫓겨 밥을 먹고. 일이 끝나 집에 오면 어느새 밤이 된다. 그러면 또 청소하고 씻고 잠이 들고. 그런 게 인생이라지만.

앙겔라가 엄지로 화면을 쓸었다. 웃고 있는 연인의 얼굴이다.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보고 싶다고 언제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서 연애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외로움은 그녀의 안에서 종양처럼 악착같이 자라났다. 항상 더 바쁜 쪽이라는 부채감도 보이지 않는 응어리를 키웠다. 곪은 것은 늘 안 좋은 쪽으로 터져 나왔고 그게 거듭해서 자꾸 큰 싸움으로 번져버리는 순간이 오면 그녀는 대부분을 그냥 포기해버렸다. 예기치 못한 이별은 없었다.

노력하자는 생각보다 지친다는 마음이 앞설 때부터는 연애 자체를 그만두었다. 바쁠 때는 바쁘게, 적적할 때는 적적하게 보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누군가와 만난다는 게 몹시 어렵게 느껴졌다. 비현실적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이 감정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무척이나 비효율적으로 느껴진 탓이 컸다. 책임지지 못할 테고 책임지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젠 누구와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난 6년간 앙겔라는 그렇게 살았고 생각은 높게 쌓아 올린 성처럼 견고해졌다. 굳건하기가 이를 데 없는 그것은 차라리 관념에 가까웠다. 그토록 튼튼한 벽을 두른 채로 만난 것이 하나였다. 하나는 벽을 허물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가 구태여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앙겔라는 스스로 무너졌다. 우습게도.

통화 목록을 열면 제일 먼저 하나의 연락처가 뜬다. 이모티콘을 붙인 낯부끄러운 이름. 전화하고 싶다고 백 번은 생각한 것 같다. 참자고 생각한 건 한 천 번 정도. 누르기만 하면 곧바로 연결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것이고. 통화하는 잠깐동안에는 행복하겠지. 끊고 나서도 몇 분간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보고 싶어지겠지, 지금보다 훨씬. 잠든 연인을 깨워서까지 제 욕심을 채우고 싶지 않다. 그 욕심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면 더더욱. 바쁜 건 그녀지 하나가 아니었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굴레가 아닐 수 없다.

하나는 분명 좀 더 적합한 연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보다 어리고 여유가 많은 사람. 매일같이 하나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 경험에서 오는 상처도 두려움도 없이, 바보처럼 감정에 눈이 멀어서 앞뒤를 재지도 않는 그런. 제 나이에 맞는 사랑 같은 것들.

앙겔라가 담배를 툭툭 털었다. 집에 갈 시간이야. 꽁초는 문 옆의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입안에 비릿하고 텁텁한 맛이 남았다. 이런 걸 왜 피는지 모르겠어. 그녀가 쓰게 웃었다.

다시 실내에 들어선 그녀는 그대로 쭉 복도를 타고 들어갔다. 마침내 방문 앞에 섰을 땐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누르려 손을 드는데 갑자기 연달아서 쾅쾅,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난다. 문 안쪽에서 난 소리였다. 뭔가 무거운 게 쓰러지거나 떨어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대체 누가? 도둑인가? 앙겔라는 한 손에 핸드폰을 움켜쥔 채 빠르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렸다. 에어컨의 싸늘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안에는……



"하하. 오셨어요? 저, 이게 보이는 것처럼 그런 게 아니고요."

"하나씨?"

하나가 있었다. 그것도 무릎을 바닥에 댄 자세로. 앞에는 의자가 넘어져 있다. 뒤에 있는 선반은 어쩐지 한쪽 다리가 부러져 있고. 그녀는 얼른 신발을 벗고 하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네."

하나가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앙겔라는 곧바로 하나의 다리를 살폈다. 무릎 위로는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어디가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그것도 이 시간에…."

"그게-"

하나는 경위를 설명했다. 내일 오전 강의가 교수 사정으로 휴강이 된 것. 술자리가 끝나는 시간과 퇴근 시간이 겹칠 것 같아서 연락해본 것. 놀라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그건 성공했네요."

"뭐가요?"

"엄청 놀랐어요."

"역시!"

하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구를 부술 줄은 몰랐거든요."

"아, 아니. 이게요. 정말 약간? 약간 힘을 준 것뿐인데…….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 말에 앙겔라가 작게 소리 내며 웃었다.

"알아요. 일부러 부수려고 해도 힘들겠는데?"

"아, 정말. 놀리지 마요."

볼을 부풀리는 하나를 보자 한번 찔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 화내려나. 앙겔라는 하나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전구가 나갔길래 빼려다가…."

"전구요? 안 닿을 텐데."

"…알고 보니 의자 위에 서도 안 닿더라고요. 천장이 왜 저렇게 쓸데없이 높은지."

"그래서 선반 위에 올라갔다?"

“……넵."

거기까지 듣자 그림이 확연하게 그려졌다. 선반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면서 의자를 쳐서 넘어뜨렸겠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로 안도의 비중이 높은 숨이었다. 하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보였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마요. 대신 다음부터 이런 일은 저한테 맡기세요, 알았죠? 위험하니까. 제 집안일이기도 하고요."

"아뇨!"

하나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언니 집은 제집이기도 한 걸요. 게다가 그런 거…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 거요?"

앙겔라는 순간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것인지 귀를 의심했다. 하나가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우렁각시…같은 거?"

"아."

"언니 요즘 바쁘잖아요. 집안일 같은 거 할 시간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몰래 온 것도 있는데. 완전 실패했어……. 방은 깨끗하고 설거지도 별로 할 게 없고."

하나가 세상을 달관한 햄스터처럼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며 읊조렸다. 앙겔라는 잠깐 말이 없었다. 가슴께가 간질간질하면서 뭔가가 차오르는 게, 그 상태에서는 한마디 말도 꺼내기가 몹시 힘이 들었다.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그녀가 가까스로 말했다. 지금은 얼굴을 보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앙겔라는 하나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꼭 껴안았다. 갈색 머리칼이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정말 그런 거 안 해도 돼. 그냥 이렇게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래도 도와주고 싶은데."

"이미 그러고 있잖아요."

하나는 모를 것이다. 하나를 볼 때마다 앙겔라가 어떤 기분이 되는지. 얼마나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모를 것이다. 하나를 보지 못할 때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래,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다.

"담배 냄새나요, 언니."

"하나씨한텐 술 냄새나요."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아요. 끊겠다고 했으면서."

"하나씨도 조금만 마시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별로 안 마셨거든요?"

"온몸이 따끈따끈한 사람이 그런 소릴 해요?"

"아닌데. 따듯한 건 언닌데."

"그래요? 따듯해?"

"네."

품에서 하나가 바르작댄다. 그녀는 허리에 감은 팔을 더 단단히 둘렀다. 얇은 옷감 너머로 가냘픈 박동이 느껴졌다.

"그럼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요, 우리."

날이 밝으면 언제나 그랬듯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느리게 깜빡이던 앙겔라의 두 눈이 살며시 감겼다. 현관등의 불이 나가면, 세상은 마침내 완전히 지워진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따듯함만이 남았을 때. 그 순간만큼은 집이었다.

잠시 후 앙겔라는 서서 조는 하나를 깨워야 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TV에 영화를 틀어놓고 한참 동안 노닥거리기만 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쯤엔 둘 다 서로에게 기대어서 반쯤 졸고 있었고 말이다. 더는 깨 있을 수 없을 상태가 되고 나서야 둘은 잘 준비를 했다. 앙겔라도 하나도 금방 잠들었고, 꿈꾸지 않는 밤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하나는 거짓말처럼 앙겔라가 출근하기 직전에 깨어났다. 짧지만 다정한 배웅을 받으며 앙겔라는 집을 나섰고, 하나는 곧바로 다시 잠들어 거기서 두 시간을 더 잤다. 하나가 아파트를 나간 건 정오가 약간 넘어서였다. 말이 흩어지고 온기가 사라진 곳에는 키가 다른 어색한 모양의 선반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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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어쩔 수 없이 현실패치 먹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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