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모인 모험자들은 청장미 기사단을 중심으로 마왕 토벌을 위해 데드 존으로 향해.

불완전한 몸인지라 300년 전처럼 직접 움직이며 싸울 수 없는 마왕은 데드 존으로 모인 에테르를 이용해 마물 군단을 만들어내 모험자들을 상대하게 하지. 이를 예견한 유키나는 데드 존에 들어감과 동시에 마법사들에게 최대화력의 포격을 발사하게 해. 딱히 원거리 공격 수단도 없고 모험가들을 상대하기 위해 일단 접근해야 했던 마물들은 모험가들에게 돌격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가 쓰러지지.

시작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마물의 수는 여전히 데드 존의 평야를 새까맣게 덮을 정도로 많았어. 하지만 모험자들 동안 평생 마물을 사냥하며 살아온 강한 전사들이거든. 엄청난 물량도 주기적으로 발사되는 후위 마법사들의 포격과 유키나의 적확하고 재빠른 지휘 앞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어. 후방의 마법사들을 습격하려는 마물들은 유키나가 배치해 놓은 히나와 코코로, 미사키 등의 실력자들이 쉽게 정리해 나갔지.

치열한 전투 끝에 모험자들은 백기사단을 필두로 드디어 마물의 바다를 뚫고 마왕에게 돌격해. 하지만 그때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나지. 마왕이 영창을 시작한 거야.

마력이 없는 마왕은 300년 전에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집어삼킨 정령들을 '소모'하는 방식으로 마법을 부리는 게 가능해진 거지. 물론 자기 육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정령을 소모하면 할수록 마왕의 육체는 불완전해지고 심지어는 안에서부터 붕괴해 버릴수도 있지만 다급해진 마왕은 웬만한 마법사는 시전조차 하지 못할 최고위 공격 마법을 미친듯이 난사하기 시작해.

첫번째 포격에 선봉에 서 있던 백기사단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지휘관 치사토는 열기에 좌반신이 녹아버리는 중상을 입지. 두번째 포격은 모험가들 전열의 중앙에 정확히 떨어져 큰 구멍을 만들고 모험가들을 지휘하고 있던 유키나는 지근거리에 떨어진 메테오의 충격파 때문에 기절해버려. 이후로도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포격에 지휘관을 잃은 모험가들은 각자 방패와 방어막 등으로 대응하려 하지만 어림도 없었지.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포격에 모험가 파티는 순식간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어. 설상가상으로 마왕은 그새 모인 에테르로 모험가들의 후방에 마물을 만들어 돌격시켰고 부상 때문에, 혹은 부상당한 동료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었던 모험가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기 시작해.

친구들을 위해 포격을 막아내다 두 팔과 오른쪽 눈을 잃은 토모에.

치유마법을 연속으로 무리해서 사용하다 반동으로 피를 토하며 기절한 아야.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가면서도 쓰러진 아야를 지키는 이브.

자신의 정령 토네가와 으로 카스미를 지키고 자기 자신은 얼음창에 꿰뚫린 아리사.

포격에 하반신이 날아간 채 츄츄의 품에서 죽어가는 파레오.

그런 파레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춰주는 츄츄.

홀로 메테오를 막아내고 온 몸이 불탄 채 쓰러진 사요.

언니를 지키며 7마리의 오우거를 한꺼번에 상대하다 다리가 부러지고 두 눈을 다친 히나.

맞잡은 두 손만 남은 채 포격에 재가 되어 버린 두 연인.

마력이 고갈되었는데도 끝까지 싸우다 산 채로 마물에게 먹힌 마검사.

형태를 알 수 없는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마도사와 그 옆에서 절규하고 있는 동료.

데드 존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아비규환이 되어 갔어.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되찾은 유키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자신의 검과 오른손이 같이 사라진 걸 깨닫지. 밀려오는 절망감을 어떻게든 누르고 일어나서 전장에 합류하려 하는 유키나였지만 발에 뭔가 차이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겠지. 그곳에 있는 건 잘려나간 팔이었어. 자신이 리사의 생일날 선물해준 팔찌를 차고 있는 팔 말이야. 순간 탁 하고 멘탈이 나간 유키나는 제대로 된 말도 못하고 아, 아아 거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미친 듯이 울부짖어.

한편 후방에서 부상자들을 모아서 보호하고 있는 스타라이트 파티의 단장 호시미 쥰나는 어느새인가 빗발치던 마왕의 포격이 멈추었다는 걸 깨달아. 멀리 보이는 마왕의 모습은 어딘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불안정해 보였지. 몸 속의 정령을 너무 많이 소비해서 이제 마왕은 신체를 겨우 유지하는 게 한계였던 거야.

한참을 울부짖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왕을 올려다본 유키나 또한 그 사실을 깨달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왕은 데드 존으로 모이는 에테르를 흡수해서 점점 더 완전해지겠지.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유키나는 깨달았어.

리사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마왕은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어.

하지만 이미 모험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졌고 사기도 바닥을 치고 있었어. 설상가상으로 후방에 곳곳이 흩어져 있던 마물들도 하나둘씩 모여 마왕과 모험자들 사이에 벽을 만들지. 난전 속에서 모험가들을 다시 결집시키고 사기를 끌어올릴 방법을 유키나는 떠올릴 수가 없었어.

그 순간, 8명의 모험자들이 전장을 가로질러 마물의 군단을 향해 돌진해. 모험가 파티 중 가장 신인이었던 poppin'party와 afterglow였어. 몸 여기 저기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는 그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어. 하지만 앺글은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포피파는 뒤에 있는 부상자들을 지켜내기 위해 만신창이인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마물과 싸우지. 실력으로는 초짜나 다름없는 신인 모험가들이 선두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은 뒤에 있는 베테랑 모험자들에게 마치 길잡이별과 같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 모습을 본 유키나는 자신이 내려야 할 명령을 깨달아.

그리고 근처에 꽃힌 누군가의 검을 빼들고 외치지.

저 모험가들의 뒤를 따르라.

모험가들은 기꺼이 그 명령에 따를 거야.

그 후로 한나절 동안이나 계속된 치열한 전투는 마침내 유키나의 검이 마왕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끝이 나. 정령을 집어삼킨 반작용으로 마왕의 신체는 이번엔 에테르를 퍼뜨리지 못하고 그대로 증발해버려. 주변에 남아 있던 마물들도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 승리의 환호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마왕에게 치명상을 입은 유키나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리사의 환각을 보며 쓰러져 눈을 감아. 그가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던 건 검이 아닌 리사의 팔찌였지.

마왕을 쓰러뜨리고 한 달 후, 청장미 기사단의 성 안 그녀의 방에서 유키나는 깨어나. 어째서 자신이 죽지 않은 걸까. 유키나는 놀랍고도 슬프겠지. 리사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이윽고 밖에서 누군가 정신없이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와. 아코이려나. 아니면 사요일까. 두 사람은 살아남았을까. 리사 말고 또 얼마나 많은 단원들이 죽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유키나의 생각은 문이 열리는 순간 새하얗게 지워져버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죽은 줄만 알았던 리사였거든.

사실 리사는 죽지 않았어. 오우거에게 팔이 뜯겨나간 후 지근거리에 떨어진 벼락에 날아가긴 했지만 간신히 살아남았거든. 게다가 리사는 치유마법사여서 상처를 치료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 그 후 전투가 끝날 때까지 후방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던 리사는 마왕이 쓰러지자마자 유키나에게 달려가 남은 마력을 모두 쏟아부어 치유마법을 걸어 주었어. 그래서 치명상을 입은 유키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이런 전후사정을 리사는 유키나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이야기하지만 유키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리사가 살아있다는 것이, 내 곁에 남아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할 거야.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어. 끝까지 부상자들을 지켜낸 스타라이트 파티와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큰 기여를 한 poppin'party와 afterglow는 국왕으로부터 훈장과 막대한 양의 금화를 받지. 팔다리를 잃은 모험자들은 츠루마키 가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의 도움으로 마력으로 기동되는 의수와 의족, 의안 등을 하고 살아가게 되었어. 도시에는 마왕을 쓰러뜨린 영웅들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전설의 모험자로 기억되었다고 해.

괜히 끊어올리려다 쓴거 다 날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썼네. 아ㅋㅋ

그리고 사실 이거랑 이거랑 같은 세계관이야.

안봐도 지장은 없지만 보고 다시 읽으면 이 똥글이 조금은 더 재미있어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