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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토모히마카오치사] 마음 두드리기 26.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8.16 00:21:17
조회 371 추천 25 댓글 7
														

이 전 편 들 모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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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두근, 하고 기분 좋은 고동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를 저의 마음속에서 감추고 싶어, 토모에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바로 잡은 감정선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저가 올라가야 할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무대를 한번 체크해본 마야가 막 무대 뒤편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지금 그녀가 지닌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노력이란 단어보다 그 이상을 그녀는 꿈꾸고 있었다.


 “벌써 마지막 장면임다.”

 

 무대 위에 올라서기 위해 대기 중인 토모에. 그런 그녀의 옆자리를 마야가 차지하며 말했다. 파리스 백작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자, 이번 연극의 클라이맥스 장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연극이었지만,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뇨, 제가 뭘 했다고... 저 혼자 그런 말 들을 자격 없지 말입니다.”

 

 토모에가 먼저 인사하자, 마야가 고개와 손을 연달아 설레설레 저었다. 이윽고 그녀는 다시 저 멀리 무대 너머를 바라보았다.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렌즈 너머의 왜곡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아직 안 끝났슴다.”

 

 무대 위를 바라보는 마야의 안광이 날카롭다. 그녀의 안경이 푸르스름한 조명 빛을 받아, 살짝 빛났다.


 “그렇죠.”


 토모에가 헛기침을 작게 하며 말했다. 마야의 말대로 마음을 놓기엔 아직 이르다. 괜히 멋쩍어 토모에는 기지개를 한번 켰다. 그래도 그녀의 시선은 무대에 박혀 떨어질 줄 몰랐다.


 “옷이 주인을 고르듯, 배역이 배우를 고른다.”


 “네?”


 “마야 선배가, 예전에 저한테 그런 말을 했었잖아요.”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그런데도 너무나도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고작 몇 주밖에 안 된 파리스 백작의 오디션을 할 때의 이야기였다. 그때 마야가 건넸던 말이, 토모에는 문득 생각이 났다.


 “솔직히 그 말, 그때는 이해가 잘 안 됐어요.”


 “그랬슴까...”

 

 마야 선배가 자신에게 그 말을 왜 했는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우다가와 토모에도 충분히 알고는 있었다. 그때는 그게 잘 와 닿지 않아서, 스리슬쩍, 그저 장난스럽게 넘어갔을 터였다.


 그러나 마지막 무대를 앞둔 지금에서는, 어쩐지 마야가 했던 그 말이 너무나도 선명히 기억 속에서 울려온다. 그 기억들뿐만 아니라, 이 연극을 연습하며 느꼈던 수많은 순간조각들이 곁에 찾아와 토모에를 두드렸다.


 “보여주고 올 게요, 최고의 파리스를.”

 

 조금 더 예전에 했었어야 할 말을, 토모에는 그제야 꺼냈다. 따사하다 못해 따스한 조명 빛도, 뜨겁게 때려대는 관객들의 함성도, 저를 바라보는 배우들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눈빛도, 딱지조차지지 않은 생채기가 난 마음도, 더 이상 그녀를 막을 순 없었다.

 

 무대를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엔, 더 이상의 망설임이 없었다.




 아직도 어두운 무대 위로 발걸음 소리가 살며시 울려 퍼졌다. 극이 시작되려 하는 소리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결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이들의 결말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래서 무대서 쉬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해, 횃불이 화륵, 켜졌다. 조막만한 저의 얼굴보다 훨씬 큰 횃불을 소녀는 들고 있었다. 소녀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다. 연극용의 소품이라 하여 이전부터 계속 연습을 거듭했지만, 역시 불은 제법 무섭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해, 마야가 소화기를 손에 꼭 들고 있었다.


 “얘야.”

 

 파리스 백작 배역을 맡았던 후배, 우다가와 토모에가 저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시동 배역을 맡은 소녀가 토모에를 바라보았다. 토모에는 대뜸 손을 내밀었다.


 “횃불은 날 주고 너는 저기 저만큼 물러가 있어라. 아니, 이곳은 무서우니 나를 두고 이만 먼저 가거라. 아니, 아니 그 꽃다발도 내게 주고 이 어둠을 뚫고 얼른 가려무나.”

 

 손에는 횃불, 품에는 꽃다발을 안았다. 횃불 사이로 보이는 그럭저럭 후배의 모습이 꽤 멋있다. 불길에 비친 붉은 적발이 주홍빛을 띄어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아이고, 우리 나리가 정신이 나가버렸구나. 누구, 누구 부를 사람이 어디 없나? 아는 거라곤 하나 없는 이 시동이 직접 부를 사람이... 어디 보자, 그래. 신부님. 신부님을 불러보자!”


 그래도 지금은 세 명을 위해 퇴장을 해줄 때였다.


 “다 들린다, 이 놈아.”

  

 시동의 호들갑스러운 모습에, 토모에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손에 든 횃불을 배경에 달린 걸이에 걸어두고, 치사토가 있을 관으로 다가갔다.


 “당신은 꽃이 어울리는군.”


 손에 든 꽃다발을 한 움큼, 한 움큼 씩 뜯어 관에 뿌렸다. 흐트러진 꽃잎들이 줄리엣의 관을 서서히 덮어갔다. 그러나 곳곳에 빈 구석도 많아서, 그것을 바라본 토모에는 마치 저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매일 밤, 당신의 관에 이렇게 꽃을 뿌려드리겠소. 향이 썩지 않게 밤이면 또 향수를 뿌리고, 그것도 떨어진다면 슬픔으로 짜낸 눈물이라도 뿌려 드리리다. 내 비록 정이 많은 인간은 아니다만, 그대에게만큼은 끊임없이 정이 가는구려.”


 토모에가 대사를 얼추 다 읊조렸을 때, 무대 뒤편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횃불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토모에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러자 로미오의 역을 맡은 카오루와 그의 시종 벨더자 역을 맡은 2학년 선배가 토모에의 눈에 들어왔다.


 “벨더자, 이제 넌 가봐.”


 카오루가 먼저 벨더자 역의 선배에게 말을 했다. 어둠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저를 향해, 카오루는 눈을 찡긋해보였다. 은근 여유로워 보이는 그 모습엔 토모에도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격차를 눈으로 확인한 기분이다.


 “아 참, 이 편지를 받아.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아버지께 이 편지를 전해줘.”


 “도련님은요?”

 

 카오루의 편지를 받아든 벨더자가 흔들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오루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벨더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내의 얼굴을 볼 거야.”

 

 담담히, 그러나 확신을 굳힌 목소리였다.


 “제가 돕겠습니다.”


 “괜찮아, 아내와 못 다한 이별을 혼자할 수 있도록 부디 날 내버려둬. 제발.”


 “하지만 도련님.”


 “오, 벨더자, 벨더자, 벨더자!”

 

 카오루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카오루는 벨더자보다 조금 더 커서, 두 사람이 앞에 나란히 서자 신장차가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드러났다. 횃불에 그늘진 그녀의 표정이 야차처럼 변했다.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거지? 날 아내와 단 둘이 있게 해달라니까! 아내의 손에서 소중한 반지를 빼면 나도 곧 너의 뒤를 따라갈 거야!”

  

 그녀의 목소리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엿보였다. 가장 쉬이 볼 수 있는 감정은 상황에 대한 원망과 그로 인한 침통함. 그리고 허망감과 좌절감같은 어두운 감정들.


 “그렇지만 도련님. 도련님은 지금 아주,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 모든 감정들을 엿본 벨더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자신의 뜻을 아뢰었다. 지금 제 주인을 혼자 두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충실한 시종의 마음을 담아.


 “...횃불 탓이야.”

 

 그 충심 어린 말을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카오루는 등을 돌려 치사토가 있는 관으로 향했다. 답답하지 않으려나, 치사토. 연극이 끝난 뒤엔, 평소처럼 몇 마디 툴툴거릴지도 모르겠군.


 “무슨 생각을 하시는...”


 “벨더자, 내 말을 들어. 여기를 떠나, 지금 당장.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내 맹세코 너의 마디마디를 찢은 다음 굶주린 들개들에게 먹이로 널 던져버릴 거야.”

 

 조용한 분노가 서린 카오루의 말에, 벨더자도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머리와 마음이 다시 충신의 역할을 하려, 멋대로 혀는 카오루를 향해 움직였다.


 “도련님...”


 “그만!”


 결국 카오루의 입에서 고함이 터지고 말았다. 몇 십초가 채 되지 않은 시간으로, 카오루는 관객들을 휘어 잡아버렸다. 무대에 서있던 벨더자도, 어둠속에서 숨어 있던 토모에도, 세타 카오루라는 그림자를 살짝 엿본 기분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도련님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물러날 때를 아는 배역이었기에, 벨더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무대 뒤로 사라지려 했다.


 “다시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전에 그런 질문을 남겼다. 사족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헛되면서도 간절함이 담긴 질문을.


 “...언젠가는.”

 

 그러나 세타 카오루는 세타 카오루답게... 눈을 감은 채, 덧없는 질문에 덧없이 대답해버렸다.





 세타 카오루, 역시 그녀는 대단하다.

 

 제 아무리 경험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이것은 마냥 경험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경험의 차이가 큰 게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담긴 그릇에서 꽤 차이가 났다. 이렇게 가까이 그것을 확인하자, 조금 기가 죽는 느낌도 들었다.


 게다가 이제는 저 카오루를 직접 독대해야 했다. 옆에는 치사토 선배도 없고, 마야 선배도 없고, 오직 홀로 그녀를 맞서야 했다. 카오루 또한 극의 최후반부를 맞아, 이번 장면에서 모든 힘을 쏟아낼 것이다. 과연 내가, 그녀의 앞에서 설 수 있을까.


 카오루는 벨더자에게서 건네받은 쇠막대로 관 뚜껑을 열었다. 그 관안에 시라사기 치사토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이 감긴 채 잠들어 있었다.


 “오, 줄리엣...”


 카오루는 그녀를 안아들고 자신 또한 눈을 감아보였다. 품에 안긴 그녀를 깊이 느끼는 것처럼 보이게, 잠시 그렇게 있었다. 그 사이에 토모에는 다시 관객석을 살펴보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 눈이 향한 곳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눈이 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지금 저 파란 옷을 입고 있는 로미오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굳이 시선의 출처가 내가 아니라 하여도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녀만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나에겐 네가 다른 의미이듯이, 너에게 난 좋은 사람이니까.


 “그대는 수배당한 몬터규의 자식.... 로미오가 아니오.”

 

 네가 행복하길 빌며, 거기에 만족할 뿐이다.


 

 “오, 로미오.”


 토모에는 카오루의 배역 명을 입에 담았다. 몇 주 동안 그녀를 로미오라고 불러 왔는데, 그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대도 사람이라면, 이제 그러한 짓을 그만두시오. 당신때문에 피를 흘린 사람이 하나가 아닌 둘이나 되었소. 게다가 그대는 살인한 죄 뿐만 아니라, 고관대작들의 금은보화를 턴 죄까지 지고 있을 터.”


 카오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사를 이어가던 토모에는, 이윽고 숨을 한번 골랐다. 한 호흡에 끊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속에서 무언가 벅차올라 그럴 수도 없었다. 담담함을 유지하고 싶어도, 메스꺼운 속은 내재된 걸 토해내려는 듯 울렁거렸다.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그러한 감정이 오히려 토모에의 표정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죄를 두 개나 이고 있는데, 시체에 그런 몹쓸 짓을 더 하다니. 제발 당신도 이제 그러한 천인공노할 짓은 멈추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잠자코 따라오시오. 그리스도가 못 박힐 때 양 옆에 있었던 사람들도 도둑이오. 지금 멈춘다면 당신도 충분히 회개할 수 있소.”


 서글프게 내려온 두 눈 꼬리와 잔뜩 비틀어져 고통스러운 표정이 섞인 그 얼굴은, 더욱 감정이 담긴 모습이 되어 청중들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하! 회개라니요? 그 말은 내게 당치도 않소.”


 그러나 카오루는 토모에의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엔 이미 눈을 감은 치사토밖에 보이지 않았다. 토모에가 파리스에게 동화됐듯이, 카오루 또한 로미오에게 완전히 이입해버렸다.


 “아내가 죽음에 빠지도록 내버려둘 지아비가 이 세상 어디에 있나! 그러니 난 죽어야 하오. 죽어야 마땅한 놈이기에, 아내의 무덤으로 찾아온 것뿐이오. 당신에겐 아무 피해도 없이 나 자신을 죽일 거란 말이오!”

 

 카오루는 연이어 큰 소리를 냈다. 벨더자에게 못 터트린 감정을, 애먼 그에게 모두 터트리는 것처럼 아주 강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니 여보소, 젊은 나리. 제발 나를 성나게 하여 더 이상의 죄악을 잇게 하지 마시오! 나를 그냥 이곳에서 사랑을 하게 내버려두란 말이...!”


 “그 입 닥치시오! 로미오!”

 

 분노에 찬 카오루의 목소리를, 토모에의 목소리가 그대로 묻어버렸다. 카오루의 감정선이 격해진 만큼, 그녀의 감정선도 분노와 이성의 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로미오, 오, 로미오! 그대가, 그대가 모든 걸 다 망쳤어! 캐퓰렛의 영애는 죽고, 이젠 내 마음까지 그대가 다 죽여 버렸어! 죽여 없앴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건넬 때마다, 토모에의 걸음도 한 걸음, 한 걸음 카오루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자신의 얼굴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당신이, 당신이 내 앞에서 사랑을 논해?!”

 

 저를 상대해주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 같아, 토모에의 감정은 더욱 울컥했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이제 나도 더 이상 못 참을 것 같으이, 내 당장 그대를 체포하겠소! 이젠 설령 시체라고 해도 상관없소! 살아있든, 죽었든 그대를 무덤이 아닌 형장으로 이 내가 이끌겠단 말이오!”


 비공식적인 결투 선언.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아드는 소리에, 카오루도 치사토를 관에 눕힌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어코 끝을 봐야겠소?”

 

 한 여자를 잃은, 동일한 상흔을 입어 할퀴어진 마음으로 카오루는 토모에를 바라본다. 텅 비어버린 가슴과는 달리, 비어있어야 할 손에는 검이 들려 있다.


 “파리스 백작, 그대도 사내라면 주절주절 떠들지만 말고 검으로 대답하시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토모에에게 검을 겨눈다. 횃불에 비친 레이피어의 날이 날카로워 보인다. 물론 끝이 뭉툭한 가검이지만, 날은 살아있는 것이 찔리면 금방이라도 피를 흘리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내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소!”


 그러나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걸이에 걸려 있던 횃불이 꺼지고, 검이 맞대어지는 소리와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 음악과 무대가 어두워져 차단된 감각 같은,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할 일을 마쳤다.


 연보랏빛 조명이 켜졌다. 헉, 하고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관객석에서 들려왔다. 제 옆구리를 잡은 카오루의 하얀 장갑과 토모에의 레이피어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승부가 정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레이피어를 놓았다. 그녀들의 레이피어가 땅에서 맞닿아 쨍강,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대가 없는 이 세상, 더 살아서 무엇 하리!”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청중을 향해 두 손을 내밀며 외쳤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연보랏빛에 감싸인 그녀를 본다. 저마다 가진 감정들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그 눈빛들을 몇 초간 느껴버린 그녀는, 그대로 무대 위에서 쓰러졌다.


 그녀의 품안에 있던 약병은, 그녀를 넘어 토모에에게로 굴러갔다.


 “스틱스 강이 존재한다면... 부디 그곳에서 다시 봅시다.”


 수없는 장면을 넘어, 이제는 드디어 퇴장을 할 때였다.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세타 카오루란 사람은 천성 배우였기에, 그녀는 정말 끝까지도 로미오였다.


 “나의 죄, 나의 이상, 나의 마음, 줄리엣 캐퓰렛...”

 

 무대의 시선이 엇나가게끔, 카오루는 대사를 마무리 했다. 그녀를 비추던 연보랏빛 조명이 서서히 암전되었다. 이제 어둠속에 남겨진 사람은 오직 토모에뿐이었다.


 “그대는 비겁한 사내구려, 로미오.”

 

 빛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토모에는 말했다.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관철한 존재인 로미오 몬터규란 남자를, 아니 세타 카오루를 바라보며.


 “죽기가 두려워 남의 손을 더럽히다니, 후후..”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토모에는 말했다. 로미오 몬터규는 자신을 이길 생각이 없었다고, 관객들에게 저의 생각을 드러내었다. 남의 손을 빌려 자살을 한 거라고, 가벼이 규탄했다.


 그녀는 피가 묻은 장갑을 내던지고, 고이 드러난 하얀 손으로 약병을 집었다. 붉은 약병과 다홍빛 조명이 겹쳐, 출렁이는 것조차 쉬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붉은 옷을 입은 치사토는, 어찌 그리 마음을 할퀴는지.


 “그대가 죽어, 내 마음은 이미 잿더미요.”


 뚜껑이 열린 관 안에 누워있던 치사토의 손을, 토모에는 저의 두 손으로 덮었다. 그리고 얼굴을 기울여, 저의 볼을 비볐다. 그러면서, 저의 그녀가 존재할 방향을 살며시 노려본다.


 “더 이상 타오를 수 없는 그런 찌꺼기가 되었소.”

 

 사랑을 할 마음이 죽어버렸다. 잿더미가 되어, 다시 뜨거워질 수 없게 되었다.


 “아아, 신이시여, 제가 바라지 못할 사랑을 바래, 이렇게 벌을 내리시는 겁니까... 신이시여...”


 꼭 감은 눈썹에선 눈물이 새어 나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감정을 감주치 못해, 치사토에게까지 전해져왔다. 미어지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그녀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스틱스 강에서 그를 만난다고 했지.”


 그녀의 대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줄리엣은 눈을 계속 감고 있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시라사기 치사토가 아닌 줄리엣 캐퓰렛이었으니까. 결코 파리스 백작을 위로할 수 없는 위치였으니까.


 “혹여나 다음 생에서라면.”


 그저 토모에의 대사를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부디 다음 생에서는, 나를 선택해 줄 수 있겠소?”

 

 그게 치사토는 괴로울 뿐이다.





 코르크를 열고, 토모에는 그것을 한번 바라본다. 빛이 조금 사라진 곳에 가자, 그제야 약은 출렁였다. 실제로는 그저 붉은 토마토 주스일 뿐이지만, 지금은 저를 죽이기엔 딱 좋은 약이다. 그것을 바라보다, 멍하니 치사토 선배를 한번 바라본다.


 극이 끝나간다. 그것은 시라사기 치사토란 사람과의 인연이 끝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연락은 개인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요 몇 주간처럼 친밀히 지내는 일은 그리 없을 것이다. 세타 카오루란 사람과 우에하라 히마리란 사람이 엮어 만들어준 관계니까, 마음을 정리한 이상 예전처럼 다시 눈인사만 하는 관계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되뇌어 생각해보면, 그건 조금 아쉽네.


 저의 손에 들린 독약을 토모에는 거침없이 마셨다. 비틀비틀 그녀의 발은 정처를 잃은 것처럼 움직였다. 시야가 멀고, 귀도 멀어져버리고, 숨결이 끊어졌다. 다리는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거쳐 무대 위에 누이게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는 카오루로 보이는 시체가 한 구 있다. 그것과 저 멀리 굴러가는 약병이 시야를 겹쳤다.


 “사랑에 미쳐 살고, 정신이 들어 죽는구나.”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는 시야 속에서, 토모에는 마지막 대사를 마쳤다.




 빗소리가 싸하게 들려왔다. 젊은 죽음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인지, 그토록 기구한 운명을 막을 수 없어 체념하는 눈물인지 모를 비였다. 빗소리가 귓가를 네 번 때렸을 때, 줄리엣은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의 앞에 놓인 참상을 보고, 그녀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파리스 백작....”


 붉은 옷을 입은 백작.


 “로미오...”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그들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입에 담았다.


 “신이시여, 지금 저의 앞에 있는 남자들은 누군가요?”


 지금껏 한 번도 대항하지 않은 것에게, 그녀는 원망을 퍼부었다. 눈을 뜨면 그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그들’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고, 심지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죽은 채로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줄리엣은 로미오의 곁에 다가갔다. 저의 품에 안긴 로미오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래서 언뜻 그가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무덤가에 흥건한 피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유난히도 검게 물들어 있는 옆구리에 줄리엣은 손을 넣어보았다. 예수의 옆구리를 바라보는 토마스의 심정으로, 그가 진정으로 부활했기를 빌며.


 “오, 제발... 나의 로미오, 나의 존엄이여.”


 그러나 그가 아픔에 비명을 지르는 일도 없었고, 저가 살아있다며 말을 이어가는 일도 없었다. 되려, 그녀의 무거운 눈물이 애꿎은 로미오의 뺨만 때릴 뿐이다. 차마 더 이상 입술이 떼어지지 않았다. 우는 것조차 힘이 들어, 계속해서 비통한 눈물만이 흘러 나올 뿐이었다.


 “당신, 내 정인을 죽였군요.”


 갈 곳 없는 서글픔은 분노가 되고, 행방 없는 분노는 증오가 되어 줄리엣의 몸을 옭아맸다. 줄리엣은 억하심정으로 이뤄낸 감정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눈길은 이미 편안히 눈을 감은 그에게 다가가 떨어지지 않은 채다.


 “당신이 저주스러워요.”


 사랑하는 그도 놓은 채, 원망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당신을 미워해요.”

 

 그에게 다가가며, 신조차 노여워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독을 마셨군요.”


 그러나 치사토의 대사는 끝까지 대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입술엔 남아있겠죠?”


 치사토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려진 그녀에게, 그리고 줄리엣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한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이 상처 입혀질 대로 입혀질 만큼 내버려둔 그녀에게. 더 이상 아파하면 안 될 그녀에게, 치사토는 다가갔다.


 “백작님... 당신은 하느님께 죄송스러울 정도로, 저주스럽지만...”


 치사토는 그의 곁에 떨어져 있는 병을 보면서, 말을 쭉 이어갔다. 병 속에는 한 방울의 독약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남김없이 다 마셔버렸구나.


 “그에게 가려면 당신의 입술이 필요해요.”


 그게 그녀다워, 치사토는 청중에게 보이지 않게끔 아주 살며시, 아주 살짝 웃는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잠시여서, 사람들은 미처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치사토에게 안긴 토모에 또한,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아아, 로미오. 헛된 악녀를 원망하세요.”


 치사토는 고개를 숙이고, 토모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들지 않아야 할 말캉한 느낌이 들어, 토모에는 저도 모르게 눈을 살짝 떴다. 천장 위에 달린 조명이 눈에 부셔, 그녀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이제는 세타 선배도, 히마리도, 치사토 선배도, 저도 다 모르겠다.


 다만 저의 품에 쓰러진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을 뿐이다.





 조명은 잠시 꺼졌다가, 발소리 몇 개를 이끌고 다시 켜진다. 영주와 벨더자 그리고 로렌스 신부가 모두 캐퓰렛의 묘에 모였다. 이윽고 세 사람은 세 사람이 죽어있는 참상을 보고, 각자 다른 눈빛을 띈다.


 벨더자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땅을 연이어 내려쳤고, 영주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로렌스 신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연이어 기도를 이어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 사건에 대해 아는 바를 당장 말해보시오.” 군주가 설명을 요구하자, 로렌스 신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사건의 최대 혐의자입니다. 신의 뜻을 따르는 제가 때와 장소를 잘못 안 탓으로 이 무서운 살인현장의 최대 혐의자가 되고 말았지요. 저는 여기 서서 당연한 책임에 대해서 스스로를 규탄하고, 모든 사정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철저히 얘기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눈물을 닦고, 무릎을 꿇은 채 영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세 명, 세 명이 있었습니다.”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노라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결코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노라고, 그는.





 삐익, 하고 신호음이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안내방송을 맡은 연극부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지금까지 연극부 특별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파리스]였습니다. 함께해주신 청중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막은 사정없이 내려가 버렸다.



 -


 존버 3만 5천개 + 특가 할인 5천개 합해서 4만스타 부웠는데 할로윈 아야 저격 못해서 존나 꼬움. 이게 겜이냐?


 이번 편은 힘 좀 주느라 조금 늦었음. 8월 중순이 넘었네. 9월 완결 간다 ㅋㅋ 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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