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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하나메르) 눈빛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83.98) 2019.08.17 08:29:44
조회 892 추천 32 댓글 6
														


“그나저나 하나 씨는 휴가가 언제예요?”
“아, 저는 다음 달 말까지만 나와서... 휴가는 어렵지 않을까요?”

하나의 사수 옆자리에 있던 김 선생이 하나의 파티션에 대충 팔을 괴곤 고개만 내민 채 말을 물었다. 마치 평범하게 제 동료를 대하듯 물어보는 질문에도 하나는 익숙해진 것처럼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김 선생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쩍 안타깝다는 내색을 했다.

“맞다, 하나 씨 아직 인턴이었죠? 하나 씨가 맡은 일이 많아서 인턴같지가 않다니까요.”

농담조로 하는 그 말에 하나는 이번엔 그저 하하, 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껏 있어야 두어달 있을 자신의 책상 위는 여느 연구원 못지않게 온갖 서류와 논문들로 산을 이루고 있을 만큼,

일이 많았다.
정말로.

처음엔 차라리 할 일이 많으니 어색하게 있을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돈도 많이 받고 애초에 경험도 많은 연구원들은 6시 땡치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하는데 자신만은 밤 10시가 되도록 집을 갈 수 없을 만큼 할 일이 많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제 손이 느린 것이겠지.
아냐, 어쩌면 논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 듯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퇴근시간은 앞당겨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멀어진 것같다면 멀어졌지.

그리고 그 원인은 하나도, 하나의 사수인 옆의 김 선생도, 그리고 다른 연구 팀원들도 다 아는 치글러 박사때문이었다.

후우, 하고 하나가 멍하니 내쉰 깊은 숨에 김 선생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하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거 챙겨 먹고 당 안 떨어지게 해요. 그리고 곧있음 근무도 끝날테니 해주는 말인데, 치글러 박사님이 하나 씨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니예요.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네?”
“치글러 박사님이 오랜만에 괜찮은 인턴이 들어왔다고 저희랑 있을 때마다 말씀하시더라구요. 오늘도 그러시길래 ‘그렇게 칭찬하시면서 일을 그렇게 많이 주신거예요?’ 하고 물었는데...”
“...”
“일이 많았는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것도 엄청 안절부절 못하는 초조해진 얼굴로.”
“아...”
“뭐어, 그러니까 제 말은 박사님 너무 미워하지 말란 말이었어요. 기준이 약간 남다른 것 뿐이니까요.”

하나는 손에 들려진 달콤한 초콜릿이 물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 선생이 가볍게 하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하나의 표정을 살피는 모습에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접어 웃어보였다. 그러나 김 선생이 자리로 돌아간 게 보이자 하나는 제 손의 단 것을 서랍 속에 무감한 표정으로 넣어둘 뿐이었다.

하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 입에 감도는 단 맛은 지속되지 않는 무의미한 위안일 뿐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주변의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말해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인턴 기간동안 은근슬쩍 건네주던 김 선생의 친절함은 서랍에 가득 차버렸다.

아직 목요일이라는 사실에, 그리고 월말까지 일주일이 더 남았다는 사실에 하나는 살짝 힘이 빠져 고개를 숙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나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머리 위에서 들었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송 인턴, 잠깐 저 좀 볼까요?”
“아, 네.”

하나는 치글러 박사가 제 한숨 소리를 들었을까 순간 놀란 마음에 한 박자 얼타게 대답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숙였던 고개를 너무 빠르게 들며 일어선 탓이었는지 하나는 잠시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 들며 휘청였다. 급하게 책상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하나는 제 옆구리에 닿는 손이 한 발 빠르게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일어날 필요는 없었는데... 앞으로는 조심해요.”
“...감사합니다.”

하나는 순간 걱정이 묻어나온 듯한 치글러 박사의 음성에 박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박사는 그저 하나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빠르게 풀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할 뿐이었다.

하나는 ‘그럼 그렇지, 좋아하기는 무슨.’ 따위와 같은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앙겔라 치글러 박사. 대외적으로는 나노생체학을 연구하여 인류의 의료 기술을 크게 도약시킨 천재이자 박애주의적인 인물로서 통칭 메르시(Mercy)라고 불리는 인물.

...그러나 하나 자신에게만큼은 그렇지 않은 인물.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메르시’는 제게 무지막지한 업무를 주면서 이렇게 하루에 한 두번씩 자신을 사무실로 부르곤 했다. 게다가 불러서 하는 말이라곤 ‘일은 적성에 맞나요?’ 라든가 ‘오늘은 제대로 식사했나요?’ 같은 영양가 없는 말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하나는 속으로 ‘당신이 일을 산더미같이 줘서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외치지만 늘 그랬듯 눈을 접어 살갑게 웃으며,

“박사님께서 바쁘신대도 절 매번 신경써주셔서 일에는 쉽게 적응하고 있어요. 그리고 인턴인 제 건강까지 챙겨주시는 말씀도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하나의 정석과도 같은 대답에 치글러 박사는 언뜻 묘한 눈빛으로 하나를 쳐다볼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그럼 나가서 일 마저 봐요.’ 하고 본인의 서류를 뒤적일 뿐이었다.

몇 걸음 앞서 사무실 문을 열고 있는 치글러 박사의 뒷모습을 보며,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 또한 마찬가지겠거니 싶었다.

하나에게 치글러 박사는 눈치나 배려는 하나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약 두 달간의 관찰로 알게 된 바로, 남들과는 조금 다른 비상한 머리를 가졌을 뿐 충분히 예측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쩐지 사무실의 공기가 이상했다. 아까 전 김 선생의 말이 신경쓰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신빙성 없는 말보단 제 앞의 치글러 박사의 행동이 더 신경쓰였다.

평소처럼 책상을 돌아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닌, 책상 위 명패를 살짝 밀어두곤 책상을 엉덩이를 살짝 걸터앉은 치글러 박사는 여전히 문 앞에 서있는 하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혹시, 그동안 업무가 과다했던 건가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질문에 하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자 순간 열이 올라 그걸 몰라서 묻냐고 소리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치글러 박사의 눈빛을 마주하자 오히려 지극히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박사는 표정과 말투보다 눈빛으로 더 많은 감정을 얘기하나보다 싶었다. 하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연유에서 그렇게 물어보시는 건가요?”

되려 돌아온 질문에 치글러 박사는 눈썹을 약간 꿈틀거리더니 눈동자를 도륵 굴릴 뿐이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김 선생님께 박사님 이야기는 들었어요. 업무가 과한지 모르셨다고...”
“그래요...! 제가 매번 물어도 하나 학생은 괜찮다고만 그러길래 정말 괜찮..은 줄... 알았어요.”

치글러 박사는 먼저 꺼내기 어려운 주제를 말해준 하나의 말이 반가워 선뜻 소리를 높였다가 제 상황을 깨닫고는 이내 웅얼거렸다.

하나는 순간 치글러 박사의 모습이 귀여워보였지만 그런 제 스스로의 생각에 흠칫 놀라 당황한 나머지 엉뚱하게 박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신경써서 물어보시는거냐구요. 어차피 다음주면 관둘 인턴이니까 다음에 올 인턴한테는 안 그러시면 되는 거잖아요!”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감정을 보인 하나의 모습에 치글러 박사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한숨 쉬듯 말을 내뱉었다.

“하나 학생이 그만두니까요.”
“네. 그만두-“
“그러면 하나 학생은 더이상 못 보잖아요. 매번 야근하게 만든 절 보려고 여길 방문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구요.”

치글러 박사의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와 떨리는 눈빛에 하나는 김 선생의 말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치글러 박사님이 하나 씨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니예요.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아냐, 설마.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남은 인턴 기간에라도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물어봤어요..”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니예요.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그렇겐 안.. 될까요?”



‘....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마주친 앙겔라의 눈빛이 하나의 그것과 똑같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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