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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모카리사] 젊은 우리 사랑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9.25 01:40:11
조회 1566 추천 48 댓글 18
														

 애연가는 아니라고 자신했건만, 최근 담배가 늘었다. 


 유난히도 흐린 하늘에 그닥 뽀얗지도 않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은은히 느껴지는 향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다. 그러나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 그것마저도 조금 힘들다. 


 그래서 담배를 입에 물고, 모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이번엔 저의 옆에 있던 토모에의 담배 향이 직빵으로 훅, 하고 들어왔다.  


 “향 좋네~ 그거~”


 그렇게 나쁘지 않은 향에, 모카가 느릿한 말투로 토모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이거?”


 모카의 반응에 토모에도 전자담배 기기를 살짝 들어보였다. 기기를 보는 모카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조그마한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어렸을 때의 장난감을 보는 것 같아 꽤 신기하다. 


 “다른 담배로 바꿔봤는데, 꽤 괜찮네. 나름.”


 곡물 찌는 냄새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전자담배는 담배 특유의 쩐내가 덜 하다. 토모에의 전자담배를 몇 모금 빨아보면서 나도 한 번 바꿔볼까 하고 생각은 해봤지만, 그래도 담배는 한번 쭉 빨면 한번 훅 하고 오는 궐련 담배가 좋아 결국엔 바꿀 생각을 포기했다. 토모에도 모카와 비슷한 감상이었으나, 결정적으로 궐련 담배에서 전자담배로 바꾼 이유가 하나 있었다.

 

 모카의 소꿉친구이자, 토모에의 여자 친구인 우에하라 히마리는 토모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진심으로 싫어했다. 틈만 나면 끊어라, 틈만 나면 몸에 나쁘다. 틈만 나면 오늘 담배 피우면 오늘은 안 할 거라는 장난스런 협박과 묘하게 진심이 섞인 겁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토모에도 황소고집이라면 둘째가라도 서러울 인간이라, 뚫린 입으로 담배를 못 피우면 콧구멍이라도 써서 필 위인이었다. 건강이 문제라면 차라리 술을 끊겠다고, 까지 말하는 토모에의 태도도 전혀 양보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간의 협상은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토모에의 흡연을 안건으로 애프터글로우 대청문회를 개최. 흡연자 측의 의견은 모카, 히마리의 대변인을 츠구미. 그리고 담배를 접했다가, 금연에 성공한 란을 청문회 위원장으로 삼았다.


 시종일관 담배는 끊을 수 없다. 생필품이다. 담배를 끊으니 차라리 아침댓바람에 일어나서 운동을 더 빡세게 하겠다. 등등... 흡연자 입장에선 동감되는 소리. 담배를 입에도 대 본 사람 입장에선 개소리를 남발하다가, 결국 청문위원장인 란이 직접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나마 냄새가 덜한 전자담배는 어떠냐는 것이었다. 


 전자담배, 그 네 글자가 주는 오묘하고도 낯선 이질감. 훅하고 오진 않지만, 잽을 여러 번 날려 결국엔 무너트리는 요상하고도 알싸한 담배. 처음엔 별로라고 여겼으면서도, 결국엔 익숙해져 토모에는 그것을 쭉 입에 달고 다녔다. 


 “한 명이 사라져서 좀 외롭네.”


 토모에의 쓸쓸한 어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릿흐릿하지만 일기예보에는 구름 표시만 가득하지, 우산 표시는 하나도 없었다. 


 “딱히~? 모카 쨩은 그렇지도 않은데~”


 토모에의 말에 답을 주면서, 모카는 다시 쪼그려 앉아 땅에 담배를 비벼 끈다. 그리고는 손만 살짝 올려 담배를 그대로 쓰레기통 안에 넣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도 않고, 연기가 흘러나오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대신 저 멀리 덤프트럭이 빠앙, 하고 소리를 크게 냈다. 하늘이 무너져라 꽝꽝 울리는 소음에, 모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미나토 씨와 만나면서, 란은 담배를 끊었다. 


 밴드의 프런트 맨이자 보컬리스트였으니, 란에게도 분명 금연의지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금연에 가장 큰 계기가 된 사람이 미나토 유키나라는 걸, 그건 모카도 부정치 못했다.


 모카가 들었던 말에 의하면, 미나토 씨는 자기 관리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다. 업계인들은 그녀를 강철 성대라고 표현했지만... 리사 씨는 그런 별명이 되려, 그녀의 노력이 폄하 되는 것 같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담배는 아예 안 피우고, 술은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가끔. 아침에 매실 한 잔을 마시고, 겨울철에는 꼭 머플러를 길게 늘어트리며 다닌다고, 리사 씨는 말했다. 


 그렇게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니... 란이 담배를 피우는 것도 고깝게 여겼겠지. 게다가 같은 보컬 자리니까, 금연을 더욱 종용했을 것이다.


 “절대 못 끊을 것 같았는데.”


 “란?”


 모카가 오랜 친구의 이름을 되뇌었다. 애프터글로우의 흡연조는 란과 토모에 그리고 모카.   그동안은 항상 세 명이었다. 정확히는 란이 담배를 끊기 전까지는, 항상 세 명. 


 “응.”


 좀 더 먼 시간을 그리는 토모에의 말에 모카는 란이 담배를 으스러트리던 모습을 기억해냈다. 담배를 검지와 중지로 집고, 뚫어져라 바라보다 그냥 툭, 하고 부러트린 그 모습을. 


 아마 그때부터, 란은. 


 “들어가자, 슬슬.”


 담배는 손에 쥐지도 않았으면서, 토모에는 손을 탁탁 털었다. 오랜 습관이 굳어진 탓에, 그녀는 그랬던 것 같다. 


 “먼저 들어가, 토모 찡.”


 다시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토모에의 뒷모습을 향해, 모카가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짓을 여러 번 했다. 그녀의 아리송한 반응에 토모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모카 쨩은 한대만 더 피우고 들어갈게~”


 그렇게 말한 그녀의 하얀 손엔 어느새 그보다 더 하얀 궐련이 들려 있었고, 쪼그려 앉은 다른 손에는 검은 담뱃갑이 바늘과 실처럼 들려 있을 뿐이다. 


 한때는 꼭 붙어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떨어져버렸다.


 “응.”


 토모에는 그런 모카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스튜디오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진 않았다. 


 모카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후드 주머니 안에 있던 스마트폰이 웅웅, 하고 울렸다. 입술에 담배를 건 채 폰만 꺼내 누군지를 확인했다.


 “리사 씨.”


 모카는 요 몇 달간 더욱 익숙해져버린 이름을 입에서 내뱉는다. 이마이 리사에게서 라인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근처 술집으로 와달라는 간단한 문자 나열에, 모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여기 괜찮은 척 하지만, 안 괜찮은 사람 추가요.


 모카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란이 미나토 씨와 만난 지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세 달은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오늘따라 담배 맛이 더욱 쓰게 느껴졌다.



 

 기타 케이스에 기타를 곱게 담은 뒤, 모카는 스튜디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술집으로 향했다. 벌써 가냐는 란의 말에, “모카 쨩은 초인싸이언이라~ 약속이 많다네요~” 라며 등신같은 변명으로 빠져나왔다. 츠구미의 눈치를 살짝 보니, 그녀는 또 다시 안쓰러운 눈빛이다. 


 그런 병신 바라보듯 사람 보는 그거, 분명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어서오세요! 혼자 오셨어요?”


 “아, 저 일행이 있어서.”


 동행인을 묻는 종업원의 말에, 모카는 술집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곳엔 사람이 많고, 눈에 띄는 곳엔 점잖이 혼자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구석엔 홀로 청승 떠는 사람들이 많다.


 “리사 씨.” 


 정말 구석탱이라고 표현하기도 모자란 귀퉁이에, 로젤리아의 베이스 이마이 리사는 엎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맥주잔을 손에 꼭 든 채로 엎어져 있었다. 모카는 기타 케이스를 한 구석에 세워두고, 그대로 리사의 앞에 앉았다. 술을 귓구멍으로 들이 마쉬었는지, 앞머리가 산발이다. 


 “정신 좀 차려 봐요.”


 머리를 좀 뒤로 넘겨주면서, 리사에게 말을 걸었다. 모카의 어투엔 평소 같은 여유로움이 없었다. 그렇다고 빨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라라~”


 계속해서 리사의 이름을 부른 게 효험이 있었는지, 리사도 잠에서 깨 모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볼에는 눈물 자국이 자욱하다. 그 모습이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아, 모카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 마음의 동지, 모카 쨩이네?”


 뭐가 좋은지, 리사는 헤실헤실 밸도 없는지 무작정 쪼갰다. 최근의 리사 씨는 거의 이런 모습이다. 로젤리아의 앞에서는 정상인, 저의 앞에서는 정신병자.


 “한 잔 마셔, 마셔! 짜잔, 이 언니가 오늘은 쏠게.”


 “그 말 며칠 전에도 했어요. 그리고 그때도 계산은 제가 했고요.”


 그때는 하필 비싼 양주들만 골라 마셔서, 술값이 꽤 나왔었다. 그래도 오늘은 동네 술집이니까 그리 많이 나오진 않겠지.


 “아, 그랬나? 오늘은 내가, 내가 지갑 여기다 두고 잘게.”


 “어째 잔다는 게 기정사실이네요...”


 파란 장미가 인상적인 지갑을 바라보다가, 모카도 옆에 있던 맥주병을 들었다. 종업원은 귀신같이 잔을 들고 왔다. 잔을 받고 테이블을 바라보자, 그 위엔 변변찮은 안주도 없었다. 


 “안주도 좀 드시지, 속 버리게.”


 “난 이제 버릴 속이 없어~ 위액 때문에 내 장기가 다 녹아버렸거든.”


 얼굴은 잔뜩 붉어진 채, 유리잔을 들고 말하는 리사의 모습은 모카가 보기에 너무나도 안쓰러워보였다. 모카는 병에 남은 맥주를 모두 저의 잔에 털어 넣었다. 제법 오래 있었던 모양인지, 맥주가 담긴 잔은 전혀 차갑지가 않았다.


 “저도 사돈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해요.”


 그렇게 말하며 모카는 저의 속에 맥주를 모두 털어 넣었다. 쭉쭉 잘 마신다며, 애기 취급 하는 리사의 술주정은 덤이었다. 모카는 리사를 바라보다가, 창 너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별은커녕, 석양의 황혼 어스름마저 보이지 않는다.  


 “저기요.”


 “네.”


 “여기 맥주 한 병만 더 주세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고, 모카도 결국 맥주 한 병을 시켜버렸다. 뒤집힌 속을 달래보려고 술을 마시지만, 역설적으로 술은 속을 달래줄 수 없다. 오히려 술독에 침식시켜버릴 뿐이다.


 “오, 모카도 마셔, 마셔버려!”


 맥주라는 소리에 리사가 들뜬 애처럼 반응했다. 굉장히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 몇 달간의 일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자, 자, 마셔. 마셔.”


 “가득 따라주세요.”


 “그럼, 맥주인데 가득 마셔야지, 가뜩.”


 테이블에 볼링장을 만든 것부터 예상했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와서 마신 건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지갑도 빼놨으니, 이번 술값은 안전자산 그 자체다.


 “모카는 좀 어때?”


 “뭐가요.”


 그 물음의 뜻을 알면서도 모카는 되물었다. 아직 그녀에겐 괜찮은 척을 하려는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있었다. 정말 지푸라기처럼 남은 자존심이지만, 쪼가리라도 있긴 있는 거다.


 “그냥 란이랑 뭐... 애들이랑?”


 “그냥 그래요.”


 리사의 질문에 모카는 속전속결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거짓말이다. 사실 요즈음 애프터글로우의 연습이 예전만큼 즐겁지가 않았다. 물론 그 원인은 단 한 사람 때문이고.


 “난 란이 미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오늘 아침에는 된장국을 먹었다는 듯, 그것도 아니라면 오늘 날씨에 대해 말하는 듯, 술잔에 볼을 대던 리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을 내뱉었다. 평소의 리사답지 않은, 강한 감정을 담은 격렬한 말이었다. 


 “걔는 내 인생을 훔쳐갔어.”


 모카는 다시 테이블에 엎어진 리사의 머리통을 바라보기만 했다. 리사 씨는 미나토 씨를 저의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소꿉친구에다가, 베이스를 그녀 때문에 시작했고, 밴드의 결성에도 밴드가 성공하는 순간에도 그녀들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동반자였다.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물론 나도 포함되는 이야기였지만.


 “근데 있잖아.”


 리사는 잔을 꽉 잡았다. 맥주가 들어가야 되는데, 오히려 눈물이 다시 그녀의 눈가에서 새어나왔다. 고이고이 품에 담아놓은 유키나를 떠나보내고, 리사는 눈물이 꽤나 늘었다.


 “란을 미워하고, 유키나를 순수하게 축하해줄 수 없는 내가... 더 미워.”


 “저 담배 좀 피고 올게요.”


 더 들어줄 수가 없어서, 모카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안에 흡연방이 따로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면 마땅히 빠져 나갈 구멍도 없었다. 


 “이거, 안 가져가?”


 리사가 담뱃갑을 딸랑이를 흔들 듯, 흔들어보였다. 다시 가서 챙길까 했지만, 모카는 손에 든 것을 그냥 보여주었다.


 “그냥 한 개만 가져가려고요.”


 모카의 손엔 이미 궐련 하나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또 줄담배 피울까봐.”


 간단하면서도, 깔쌈한 이유였다.

 


 모카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흡연방엔 아무도 없었다. 그게 좋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궐련 담배 연기는 싫었다. 란의 담배 연기도 싫어했다. 그래도 항상 같은 담배를 피워서, 그때는 같은 향기가 서로의 몸에 나는 것 같아... 그런 소소한 걸로 기뻐했다. 변태 같다고 표현해도 어쩔 수 없다. 아오바 모카란 사람이 그랬다.


 필터를 쪽 빠니, 익숙한 향기가 속을 간질였다. 그 간지럽힘을 참지 못하고 연기를 다시 한 번 내뿜었다. 란도 담배와 같았다. 피우면 피울수록 중독되면서, 이젠 피우면 피울수록 몸만 나빠진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지워야지, 지워야지하면서도 정신 차리면 손에 들려있다.


 란은 유키나를 만나고 담배를 끊었는데, 모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게 아프고, 질투도 나서 모카는 제 자신을 망치려 더욱 담배를 피워댔다. 더 독하고, 아픈 것을 그렇게. 


 모카가 흡연방에서 막 나오자, 리사는 테이블에 엎어져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그래도 지갑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잘 놓여 있었다. 모카는 리사를 깨워 제 어깨에 부축했다.


 여기서 자는 것은 그러니, 일단 어디든 갈 시간이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이제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만 존재했다. 현실의 그녀는 이제 꿈속의 그녀보다 더욱 낯선 사람이 되었다. 가끔 얼굴을 붉히기도 하며,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멀뚱히 바라보기도 하며, 이따금씩 스튜디오의 옆방을 힐끔 훔쳐보기도 하면서 나에겐 보여주지 않는 귀여운 모습들이 늘었다. 


 그 모습의 방향이 내가 아니라, 조금 다른 사람을 향한 게 속이 쓰리다. 


 “유키나?”


 꿈에서 깬 리사가 가장 먼저 찾은 이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나토 유키나였다. 저의 앞에 은 회색빛 머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아.... 모카구나.”


 아, 근데 그건 알고 보니 어두운 전등으로 인해 벌어진 착각. 그냥 회색이었구나. 


 “목소리가 너무 예의가 아니신데요.”


 “허락도 안 받고 이런 데 데려왔으면서 무슨.”


 모카의 불퉁한 말에, 리사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얼룩마저 낡아버린 천장과 군데군데 갈라진 벽지. 그리고 싸구려 뚱땡이 TV 옆에 있는 먹다 남은 생수병까지, 모카가 어디에 왔는지 눈에 뻔히 보였다.


 “나, 안 씻었는데.”

 모카의 손이 허리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리사는 살짝 빼는 말을 했다. 허리에서 등으로 가는 그 부분이, 리사는 항상 민감했다.


 “상관없어요.”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모카는 저의 검지로 한번 쭉 쓸었다. 란의 앞에선 바보 등신이 되는 주제에, 다른 사람에겐 제법 저돌적인 부분이 있었다. 마음을 내버려둔 후유증 때문이려나, 그것도. 


 리사는 살짝 엉덩이를 들어, 저의 팬티를 벗기기 쉽게 도와주었다. 스르륵 빠져나가는 저의 속옷을 바라보며, 리사는 모카와 몸을 섞은 게 벌써 몇 달 째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와서? 라는 생각이 더욱 강할 정도로, 어설프고도 무른 생각. 


 그 모든 것들이 굳이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맞추지 않아도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리사 씨.” 


 모카는 리사의 이름을 불렀다.


 “응.”


 리사도 모카에게 답을 주었다.


 “란을 미워할 수 있는 건 저 뿐이에요.”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전혀 다른 제삼자의 이야기였다. 


 “그것마저 뺏어가지 말아주세요.”


 모카답다면 모카다운 일방적인 답에, 리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저의 품에 또 다른 누군가가 덧대어지는 것을, 그녀는 그저 느끼기만 했다.


 일방적이고, 저돌적이었지만, 함께 외로움을 피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핥아줄 수 있는 사람. 이마이 리사에게, 아오바 모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 그녀만이 줄 수 있는 이 열감은 덤이었다.

 

 


 “저, 머리 기를까요.”


 한바탕 몸을 뒤섞은 후, 입에 담배를 문 모카가 말했다. 그녀의 입에 걸린 궐련이 신경 쓰인다. 저러다 재 떨어지는 거 아냐?


 “뭐?”


 모카의 갑작스런 말에 리사는 화들짝 놀랐다. 갑작스런 장발 선언이라니, 오래 전부터 봐온 후배인데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에요.”


 그걸 알았는지, 모카 본인도 말을 흐릿하게 피했다. 그 모습이 흔치 않아 리사는 좀 더 골려주고 싶었다. 애초에 저 말을 꺼낸 것 자체가 도발적이었으니.


 “그럼, 그럼 나도 브릿지할까?”


 “아, 됐어요. 헛소리니 그냥 잊어요.”


 “왜, 재밌을 것 같은데.” 


 브릿지라는 단어에 모카가 기겁을 했다. 제대로 정곡을 찌른 것 같아, 괜스레 미쳐버린 치킨 게임을 더 했다.


 “진심이세요?”


 “아니, 얘는 정색은.”


 좀 놀렸더니 모카는 정색을 해버렸다. 그 뾰로통한 얼굴을 바라보며, 리사는 땀에 젖은 모카의 머리를 쓱, 넘겨주었다. 예전에는 깍듯한 후배였는데, 요즘 못 볼꼴을 많이 보여줬더니 선배 취급도 잘 안 해준다. 그래도 그게 더 친해진 것 같아, 내심 마음엔 들지만 말이다. 


 “알면 됐어요. 브릿지는 진짜 아니에요.”


 “농담이야, 농담. 근데 좀 의외네,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다니.”


 “전 진심이었어요.”


 모카는 재떨이에 담배를 살짝 털었다. 재가 툭, 하고 떨어지고 리사는 타들어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봤자 유키나랑은 완전 다른 느낌인데, 모카는.”


 “그러겠죠.”


 리사의 말에 모카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마음은 터져버린 댐과 같아서, 이제는 무엇으로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다. 모카가 머리를 기른다고 해도, 리사가 브릿지를 한다고 해도, 그 차이를 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그냥?”


 모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말에, 리사는 물음을 되 뇌이며 귀를 기울였다. 저를 바라보는 큰 눈에 눈을 맞추면서, 모카는 마지막까지 담배를 쭉 빤 다음 말했다.


 “아뇨, 됐어요. 뭐.... 그냥, 이렇게 살죠. 뭐.”


 모카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생수병을 들어 그대로 리사에게 던져주었다. 비가 오는 줄 알았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 오늘이다.


 어차피 죽을 수는 없고, 죽지 못해 사느니,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만 믿고, 이렇게 살아야지. 바보처럼, 등신처럼 그렇게 살아야지.


 “뭐야, 싱겁게.”


 리사는 모카가 던진 생수병을 받았다. 모카의 말이 싱겁다고 말한 그녀의 입가엔, 보기 좋은 호선이 아주 작게, 아주 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젊은 사랑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그러나 어린 맘에 몸을 실었던, 우리가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 


 마지막 문장은 검정치마 2집 '젊은 우리 사랑' 가사의 첫 구절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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