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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기생백합.txt

ㅇㅇ(211.109) 2019.10.15 00:11:02
조회 1072 추천 37 댓글 5
														

술병을 들고 거리를 헤매기를 몇 시간일까, 드디어 인기척이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양반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깔끔한 차림이었다. 아직 공부 중인 선비인 것일까?

무엇이 됐든 간에, 술잔을 받아주면 좋으련만.

나는 우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용건을 말했다.


"어르신, 밤바람이 이리 찬데, 어찌하여 그리 정처 없이 걷고 계시옵니까? 혹 묵을 곳이 없으신 것이라면 오늘 밤, 저에게 시간을 할애해주지 않겠사옵니까?

비록 진미를 대접해드리지는 못하지만, 이 술 한잔하신다면 몸이 따듯해질 것이 옵니다."


말을 끝내고는 선비의 표정을 살폈다. 아, 오늘도 실패로구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틀림없이 크게 성을 내겠다.

어찌 이리도 잘 풀리지 않는 것일까······.


"내 묵을 곳이 없을지언정, 너같이 천한 들병이를 상대할 성싶더냐? 썩 꺼지거라! 네놈의 행패가 구미호나 그슨대와 같은 요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더냐?"


아니나 다를까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있는 것은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요괴 취급하다니, 선비로서의 교양이 있기는 한 것일까?


"송구하옵니다. 결코 어르신의 기분을 해칠 작정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르신께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으로 보여······."

"썩 꺼지라고 한 말이 들리지 않더냐! 내 한 번 더 같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야!"

"혹여라도 마음이 바뀌신다면 동살 전에 장지문 안쪽, 빛이 보이는 곳으로 와주시옵소서.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나는 끝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리 기다려도 올 것 같지는 않구나. 차라리 노숙을 하고 말 테지.


"하아······."

"오늘도 허탕이여요? 언니."

내가 푹 한숨을 쉬자 어느새인가 내 옆을 걷고 있던 젊은 여인이 말을 걸었다.

"거참 이상하네요. 언니는 장지문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한쪽 눈으로 슬쩍 보더라도 반해버릴 만큼 아름다운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더구나. 냇가에서 멱을 감고 있는 나를 훔쳐보고는 한눈에 반했다며 매일같이 나를 사려는 천둥벌거숭이는 있는데 말이야."

"어머머, 그것참 큰일이네요."

"흥, 발칙한 것."

"그 말은 오늘 밤도 거절한다는 말씀이여요?"

"나를 사려거든 조금 더 교양부터 쌓고 오려무나. 최소한 음악과 춤, 그리고 읊는 시에 답가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겠구나."

"까다롭기 그지없네요, 정말."

"그리고 말씨도 곱게 바꾸거라."

"아이 참······."

내가 그리 단호하게 말하자 마치 한껏 혼이나 풀죽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바람이 차구나. 몸을 허락하진 않겠지만, 식은 몸을 뎁혀주는 역할 정도는 해주마. 집으로 가자꾸나."

내 말을 듣자마자 풀이 죽었던 것이 거짓말인 듯, 눈을 반짝이며 '정말이지요!?'하고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이런 사소한 일로도 기뻐하는 저 아이가 부럽구나. 더 이상 나로 인해 타락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하늘은 어찌 이리도 무심하신지, 내가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여인에게 사랑받고,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


나는 원래 궁녀로서 공주님을 시중들었다.

웬만한 기생 못지 않은 재치와 교양이 있었던 나는 곧잘 공주님께 불려 놀이 상대가 되었다.

딱히 실수를 하는 것도 없었고, 원만한 생활이 계속됐다.

다만 그 생활이 너무 오래된 탓일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첫 번째는 공주님을 연모해버린 것, 두 번째는 공주님이 나에게 정을 품게 해버린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공주님의 정을 받아들여 버린 것.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놀랍게도 서로의 몸을 탐하는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몇 번이고 계속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식이 전하의 귀까지 닿게 되었고, 전하께서는 당장에라도 내 목을 치려 하셨지만, 공주님께서 필사적으로 만류하셔서 귀양을 보내지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시골 마을에서, 그것도 귀양살이 온 죄인의 입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만무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봄을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여색을 탐하는 건 사내뿐일 거라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의 밤을 사고, 하룻밤뿐인 애인 놀이를 위해 찾아오는 이는 하나같이 여인들이었다.

첩을 들인 양반집의 본처라거나, 나이도 차지 않은 소녀까지도 나를 품기 위해 찾아왔다.

나도 살아야 했기에 찾아오는 이는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여자에게 몸을 파는 저급한 창녀라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고, 크게 분노한 마을의 사내들이 나를 묶고는 돌팔매질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도망쳤다. 발에서 피가 나도록 달렸다. 왕명을 어기고 귀양처에서 도망치다니, 이번엔 틀림없이 목이 날아가겠구나.


그렇게 여러 마을을 돌고 돌며 지금 이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여인을 안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사내들은 나를 보기만 하면 역겨운 것이라도 본 듯 제대로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대체 이것은 무슨 저주란 말인가.

결국 나는 또 나를 향한 정을 이용해 살아가고 있다.


옆에서 잠이든 나보다 조금 앳된 얼굴을 한 아이를 잠깐 바라보고는, 이불에서 빠져나와 바람을 쐬고자 밖에 나왔다. 몸이 뎁혀져도 너무 뎁혀진 듯싶었다.


바람을 쐬며 몸을 식히고 있자니 이름도 모를 보라색 꽃의 꽃잎이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울지말거라, 아이야. 진정 꽃잎이 떨어진 것은 나이거늘 어찌 네가 나를 연민해 우는 것이냐?

진정 색이 바랜 것은 나이거늘 어찌 네가 고개를 숙이느냐?

나도 단 한 사람만을 위해 핀 꽃이었던 적이 있거늘, 네가 나의 아련한 추억마저 짓밟으려 드는 것이냐?

울지말거라, 아이야. 그럼에도 행복했노라고 추억하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라.


----

요시와라 라멘토 듣다가 꼴려서 써봄

근데 정작 쓰고보니 기생이 아닌거임ㅋㅋㅋㅋ


참고로 난 역사를 좆도 모르는 사람이라 고증이 좆같은 부분이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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