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으로 물든 찰랑이는 단발, 귓볼을 간지리던 머릿결 사이로 보이던 피어싱이나 새하얀 피부, 긴 속눈썹 아래로 들어난 붉은빛이 감돌던 눈동자까지

이 하린이란 소녀는 느슨한 교칙에 교사까지 포기한 이른바 양아치였다.

게다가 여자아이 치고 건장한 170이 조금 넘는 키에 시원스런 성격까지. 그녀의 주변엔 사람이 끊이질 않았고, 꽤나 다혈질인 성격탓에 일탈또한 서슴치 않곤 했다.

' 툭 - '

그런 이 하린의 어깨에 부딪히고 자빠진 왜소한 소녀의 이름은 그다지 아는 이도 없는

눈썹을 다 가리던 흑발의 장발, 뿔테안경, 펑퍼짐한 교복, 160조차 안되는 작은키에 슬렌더한 몸매

신 하윤이란 소녀였다.

" 아 씨발, 눈을 어디다 뜨고 다니면 내가 안보이냐? 시비거는 거야? "

당연스레 붉은 눈동자가 내리깔려 소동물 같은 음침한 소녀를 내려다보고 위협하던 맹수같던 소녀

그 시선에 닿은것은 두터운 안경알 아래로 눈꼬리가 내려져 나른한 시선에 눈물이 조금 매달려 괜스레 요염한 모습을 보이던

그림자가 드리운 음침함 속에 묘한 색기를 품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 아 ... 미안해, 심부름 하느라 정신 팔려서 .. "

산발이 된 흑발을 흐트려놓으며 나른하고 어딘가 맹한, 아니 몽롱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눈빛을 한 소녀, 하윤의 시선이 하린에게 닿았고

그 깊은 시선이 가슴에 파고드는 감각에 하린은 괜스레 얼굴에 붉은칠을 하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 다음엔 진짜 뒤진다. 조심해라. "

쌩하니 바쁜 걸음을 옮기던 하린의 몸이 주춤거리며 멈춰섰고, 제 손목이 낚아채여진 감각에 뒤를 돌아보니 하윤의 가녀린 손아귀에 묘한 힘이 싣겨 제 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 손 예쁘다.

" 내 실수니까, 사과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아? "

생긴것과 달리 집요하다. 저 시선에 홀린 기분이 들어 괜스레 화가 나는 것 같았다.

" 하, 얘좀 보게. 어이없는 년이네 이거. 그래 사과할 기회 줄테니 방과후에 남아있어라. "

그 작은 소란에 복도를 서성이던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곧 선생이 몰려와 소란이 소강되는 듯 했지만

" 응, 방과후 기대되네 .. 흐흣. "

아지랑이가 되어 인파속으로 사라지던 하윤의 목소리에 하린은 얼어붙어 떠나가던 그녀의 모습을 홀린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 대 , 대체 뭐야 저 년.. "

여우에게 홀린게 분명했다. 수업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잠도 그다지 오지 않았던 하린은 멍하니 창 밖만을 바라보고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가 오렌지색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종례를 끝마친 담임의 목소리 이후로 하나 둘 소녀들이 떠나가기 시작했고 네명의 소녀들이 하린을 부르곤 했다.

" 뭐해? 하루종일 멍때리기나 하고, 우리 밥먹고 노래방 갈건데 빨리 와 - "

" 아, 난 볼일 있으니까 먼저 가라.. "

뭐하는 건가 싶었지만, 손을 휘휘저어대던 하린을 흘겨보던 소녀들은 아쉽다며 한참을 칭얼거린 후에야 돌아갔고. 혼자 남은 교실에서 조금 더 어둠을 머금던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 드르륵 - 탁 '

" 어라, 기다려줬네? "

나른하고 어딘가 촉촉한 목소리, 미끈거리는 목소리가 살갗을 타고 올라 귓구멍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린의 날이 선 시선이 목소릴 낸 뒷문을 향해 쏘아졌고, 나른하고 몽롱한 미소를 지어낸 음침한 소녀의 모습이 담겨져왔다.

" 진짜 기다려줄 거라곤 기대 안 했는데. "

" 너야 말로 제정신이냐?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찾아와? "

이상하다, 분명 생긴 것 처럼 행동한다는 감상이 있던 소녀였다. 왜소한 모습처럼 위축된 걸음으로 오가던 모습은 어디로가고 성큼 성큼 걸어와 금세 제 앞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 보던 하윤의 모습이 보여졌다.

" 어라? 오해가 있었나보네. 뭐든 하는 말을 들어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있었다. 자신을 무서워 한다거나 꺼리기 보다. 제 쪽에서 성큼 다가온 소녀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어머 놀랐어? 귀여워라. 있지 나 너처럼 기센 여자아이가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걸 너무 너무 좋아해. "

" 이게 진짜 .. ! "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평정심이 무너져, 괜스레 화를 내며 하윤의 멱살을 쥐어 창틀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멱살이 쥐여져 하윤의 창백한 피부가 조금은 빨갛게 , 또 새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눈매가 점점 붉게 물들어 촉촉하게 젖어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야릇하게 보여졌다.

" 아핫 .. , 좋아. 네 화가 풀릴 때 까지 어울려줄게. 어떻게 할거야? 날 아프게 할거야? 주저앉아 우는 모습을 내려보면서 희열을 느낄거야? 좋아.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

그 목소리를 내며 나른한 미소를 지어내던 하윤의 입술이, 창틀에 들어찬 노을빛을 가득 머금어 주홍빛으로 짙게 물들고 있었다.

흥분, 수치 그리고 조금의 분노를 머금고 새빨갛게 물든 하린을 바라보며 미소를 더욱 번져낸 하윤은 제 멱살을 쥐던 하린의 손을 가벼히 빗겨내고 그녀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살랑이며, 마치 여우가 사람을 홀려 제 굴로 이끌듯 꼬리를 살랑이는 모습을 한 소녀의 모습이 멀어지다가 반쯤 고개를 돌려 시선을 흘렸다.

" 신 하윤, 내 이름이야. 하린이라고 했지? 우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네. 앞으로 잘 부탁해. 흐흣 - "

그 목소릴 남기고 떠나간 소녀를 붙잡아 단판을 지었어야 했다.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것이 내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나는 알지 못했다.

# Prologue

- fin

한창 쓰다가 날려먹어서 조잡하고 짧은데 다시 불타오르면 연재식으로 짧게 짧게 써야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