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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친절한 납치, 상냥한 감금 (2)

synara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02 18:50:42
조회 1922 추천 24 댓글 9
														

1화 링크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465432


세네카는 사생아였다. 아르비나 후작의 피가 절반. 천한 하녀의 피가 반. 아무도 그녀를 아르비나 후작의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이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은 있었다. 베아트리체 아르비나. 아르비나 후작가의 정당한 후계자. 세네카의 이복 언니. 


"약속할게."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후작이 되면, 네가 당한 일들 다 갚게 해줄게."


눈을 마주치면서. 확신에 찬 얼굴로.


"그러니까 너도 포기하지 마."


세네카는 시선을 피했다. 금발도 푸른 눈도 이어받지 못한 그녀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다. 아르비나 후작에게 곧잘 듣던 말을 입에 담자 베아트리체가 눈을 찌푸렸다.


"할 수 있어. 넌 천재잖아. 나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다음엔 같이 나가자."


이번에도 세네카는 시선을 피했다. 입술을 비죽 내밀던 베아트리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은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였다. 세네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키득 웃었다.


"이게 계약서 대신이야."


베아트리체는 끌어안듯 세네카에게 다가갔다. 세네카는 피하지 않았고 베아트리체는 서글서글한 웃음과 함께 그녀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마자 목 뒤쪽에서 쇳소리가 났다. 찰칵.


세네카는 깜짝 놀라 베아트리체를 밀어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오히려 팔에 힘을 주어 세네카를 제 품 안에 가두었다. 버둥거리는 세네카의 귓가에 나지막한 속삭임이 닿았다.


"이제 안 놓쳐요."


이리나의 목소리였다.



* * *



세네카는 눈을 뜨자마자 목을 더듬었다. 늘 걸고 다니던 은목걸이 대신 매끄러운 가죽 감촉이 느껴졌다. 목 둘레를 따라 더듬더듬 손가락을 움직이니 작은 자물쇠가 있었다. 세네카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본디 작은 십자가가 있어야 할 자리를 가느다란 사슬이 가로질렀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세네카를 찾아온 이리나. 평소와 같은 목소리와 말투와 웃음. 개목걸이. 그것을 든 채 이리나가 했던 말.


─ 납치하러 왔어요.

─ 감금도 하고.

─ 이제 안 놓쳐요.


세네카는 발작하듯 개목걸이를 잡아뜯었다. 하지만 제 목만 조일 뿐 개목걸이는 멀쩡했다. 깊게 숨을 쉬고 한 번 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고 같은 짓을 반복하던 세네카는 위화감을 느꼈다. 마력이 움직인다. 평소와 똑같이.


경지에 이른 검사는 마력을 다룰 수 있다. 그런 이들은 검으로 성벽을 쪼개고 물 위를 걷는다. 세네카도 그 중 하나였고 그녀를 가두려면 마력의 흐름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리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의수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소매를 걷어 확인해보니 상처 하나 없었다. 검은색 표면 아래서 맥동하듯 떠오르는 빛도 여전했고 움직임도 이전처럼 부드럽다. 세네카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족쇄도 수갑도 없다. 마력도 의수도 움직인다. 감시하는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는 것처럼.


세네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대를 벗어났다.


그제서야 익숙한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을 둘러싼 크림색 벽지. 널따란 창문. 세 명은 누울 만큼 커다란 침대. 그 옆에 놓인 장식장. 벽 한 칸을 가득 채운 책장. 반대편 벽에 가득한 옷가지들. 방 한가운데에 놓인 탁자와 의자 한 쌍.


한때 세네카는 이 방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다시 걷게 된 것도, 새 팔을 받은 것도, 망가진 몸이 새로이 만들어졌던 것도, 처음으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가족이 되지 않겠냐는 말을 들은 것도, 전부 다 이 방에서였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저 즐겁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아픔에 몸서리쳤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세네카는 버텼다. 두 이정표를 마음에 품고서. 지금은 둘 다 사라졌다. 목걸이는 잃어버렸고 이리나는 변했다.


흐트러진 마음 속에 의문이 쐐기처럼 박혔다. 이리나는 왜 변했을까. 처음부터 그랬던 걸까. 그동안 가만있었던 이유는 뭘까. 함께 지냈던 일 년 반은 전부 거짓이었나?


보이지 않는 단검이 심장을 헤집는 것 같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쉬었지만 오히려 매마른 공기가 목을 할퀼 뿐이었다.


"윽……."


밭은 숨소리에 옅은 울음이 섞였다. 가빠오는 숨에 가슴을 그러쥐자 차가운 의수의 감촉이 심장에 스몄다. 


문고리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문이 열렸다.


"아침 드셔야죠."


생글생글 웃으며 이리나가 들어왔다. 한손에 쟁반을 든 채로.


검은 없고 문은 막혔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이리나가 있다. 신경써야 할 점은 차고 넘쳤지만 세네카가 눈에 담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이리나가 은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약속의 증거였다. 그 약속은 세월에 깎이고 빛이 바랬지만 그 때문에 세네카는 더욱 목걸이에 마음을 쏟았다. 언젠가 베아트리체와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이 바로 앞에 있는데 만질 수도 없었다. 세네카는 바스라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이리나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내 얼굴은 여기 있는데요."

"……."

"궁금해할 것 같아서 걸고 왔는데, 괜히 가져왔나 봐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세네카는 의수로 가슴께를 매만졌지만 이번에는 그 냉기도 소용없었다. 심장이 쉬지 않고 뛰면서 열기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참아야 했다. 세네카에게는 검이 없는데 목걸이는 이리나의 손에 있다. 


세네카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목걸이를, 이리나를 보고 있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자 이리나가 말했다.


"언니."


세네카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때 쟁반 한켠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포크와 스푼. 그리고 나이프. 세네카는 문득 생각했다. 작고 무디지만 나이프도 검이다. 이리나는 무방비했다. 지금이라면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베면 목걸이도 되찾을 수 있다.


가깝지만 아득한 곳에서 이리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언니, 제 말 들려요?"

"……."

"어디……. 이래도 안 듣나 볼까요."


이리나가 은목걸이를 감싸쥐었다. 세네카는 흠칫 몸을 떨며 자세를 바로 했다. 이리나의 손 안에서 뭔가가 뭉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세네카는 쟁반 위로 손을 뻗었다.


쉭. 공기가 갈라졌다. 이리나의 목젖 위를 새빨간 실선이 내달렸다. 뒤이어 상처가 한껏 벌어졌다. 이리나가 휘청이며 상처를 막았지만 새하얀 손바닥 아래에서 새빨간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세네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이리나의 가슴 언저리에서 흔들리는 십자가가 보였다. 세네카는 그것을 낚아채며 이리나의 명치에 앞차기를 꽂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려간 이리나가 벽을 뚫고 쳐박혔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세네카는 이를 악물며 반대로 뛰었다. 왼손에는 목걸이를, 오른손에는 나이프를 쥔 채. 창밖으로.



* * *



땅을 딛자마자 화려한 분수가 세네카를 맞이했다. 그 둘레를 따라 난 길은 세네카의 반대편에서 합쳐져 정문까지 뻗었다. 정문 양옆으로 세워진 울타리는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졌다. 이 역시 세네카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곳, 로마노프 백작저는 한때 세네카의 또다른 고향이었다. 지금은 크디큰 감옥처럼 보였다.


세네카는 바스라지도록 이를 악물며 자신이 뛰어내렸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다음엔 왼손을 펼처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이리나가 으스러뜨린 줄만 알았던 목걸이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 소리는 뭐였을까.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네카는 고개를 내저었다. 잡념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쉰 다음 앞으로 내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당황한 얼굴로 막아서는 병사들을 뛰어넘고 기사들을 베어 넘겼다. 순식간에 정원을 가로질러 울타리까지 다다른 세네카는 몸으로 울타리를 들이받아 뚫어버렸다. 몸은 지치지 않았건만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직 모자랐다. 더 빨리, 더 멀리 가야 했다. 이리나가 오기 전에.


그때, 검은 벼락이 쳤다.


가까스로 멈춰선 세네카는 표정을 굳혔다. 검은 칼날에 은백색 날밑. 검은 혁대가 감긴 손잡이. 하늘에서 떨어진 그것은 세네카의 검이었다. 세네카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칼자루에 닿기도 전에 또다시 검은 벼락이 꽂혔다. 조용하고 우아하게.


"산책이 요란하시네요."


이리나였다. 검은 드레스는 핏자국 한 점 없이 깨끗했고 하얀 살결은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놀랐잖아요. 갑자기 목을 그으면 어떡해요."


목소리도 그랬다. 미치도록 뻔뻔한 말이 미치도록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세네카가 저지른 일은 아예 잊어버린 듯했다. 거죽을 베고 핏줄과 근육을 끊었건만 지금 이리나의 목젖에는 가느다란 자국뿐이었다.


여유로운 목소리. 매끄러운 살결. 살짝 쳐든 고개와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 이리나의 모든 것이 세네카를 몰아붙였다. 그녀는 더듬더듬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이리나도 다가왔다. 그러면서 땅에 박힌 검을 뽑아 자루를 내밀었다. 해살스럽게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받아요."

"……."

"어서요. 그 장난감으로 나랑 싸우고 싶어요?"


이리나의 시선이 세네카의 오른손과 왼손을 오갔다. 오른손에는 은제 나이프. 왼손에는 목걸이. 하나는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니었고 또다른 하나는 소중히 감춰야 할 것이었다. 세네카는 입술을 짓씹으며 목걸이를 품속에 숨긴 다음 검을 받아 들었다.


방금전까지 머릿속에 가득하던 의심이 잦아들었다.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마음을 어지럽혔지만, 지금부터 세네카는 다시 검사였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길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종잇장처럼 얄팍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발버둥 쳐야 한다.


그녀는 자세를 잡았다. 오른족 어깨 위에 칼날을 살짝 얹은 상단세. 언제든 달려나가 정수리를 찍기 위한 자세였다. 반면 이리나는 어깨에 힘을 빼고 양팔을 늘어뜨렸다. 빈틈투성이로 온몸을 풀어헤쳤지만 그 탓에 어디로든 뻗어나갈 듯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나 해요. 뭐가……."


세네카는 곧장 달려들어 말허리를 끊었다. 도끼처럼 꽂히는 칼날을 맨손으로 쳐내며 이리나가 말을 이었다.


"……좋을까요."


세네카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목덜미를 베고 가슴을 찌르고 허리를 스치듯 베며 지나친 다음 뒤돌면서 어깻죽지를 휘갈겼다. 전부 빗나가거나 막혔다. 이리나의 팔과 칼날이 부딪힐 때마다  서늘한 쇳소리가 났지만 그뿐이었다.


"이게 좋겠네요."


이리나가 팔을 크게 휘둘러 세네카를 쳐 날렸다. 바닥을 튕기며 날아가던 세네카는 곧장 땅을 박차고 섰다. 다시 거리를 좁히려는데 이리나가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내 몸에 상처 하나만 내요. 자잘한 거 말고 제대로 된 걸로. 그러면 그냥 놓아줄게요."


그러고는 비릿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어차피 내가 이기겠지만."






다시 써야할 분량이 좀 되는데


다시 쓰기 전에 쓴거 아까워서 아까워서 걍 올려봄


와 1화 다시쓴게 9월 30일이네 한달걸린거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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