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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백붕이에게 미래의 딸이 찾아오는 이야기(完)

NopiGo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09 11:22:23
조회 557 추천 17 댓글 9
														

 뭐라고 대답했어야 하는 걸까.


 “혜연아, 내 곁에 있어줘.”


 미리의 그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했어야 하는 걸까.


 나를 붙잡는 그 간절한 손길에, 어떻게 답했어야 하는 걸까.


 ‘선배 있잖아요. 저는 미리 선배를 볼 때마다 운명을 만나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자 아이끼리도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면 미리 선배랑 아이를 낳아서 정말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미리를 생각하며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가연이를 떠올리면 나는 자꾸만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제 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아서.


 나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혜연아.......”


 죽어버린 가연이를 두고 미리와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니.


 나는 도저히 그런 짓 못 해.


 너는 하늘나라에서 나와 미리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겠지.


 너를 위해 열심히 연구했는데.


 왜 너는 먼저 죽어버린 거야.


 아프다.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런 비극을 고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을 떠올렸다.


 ‘시간을... 돌리면 되는 거야.’


 다시 한 번 이 더러운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쓰는 거야.


 “대신 또 다른 나를, 사랑해줄래?”


 시간 여행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내가 떠나면 미리는 분명 나보다 더 아플 거야.


 그러니까 내가 없는 동안, 나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


 내 딸이라면 분명 미리를 행복하게 해주겠지.


 가능해.


 분명 할 수 있어.


 많은 학자들이 비관적인 결론을 내민다고 해도 나는 분명 가능해.


 다시 한 번 이 이야기의 결론을 새로 쓰는 거야.


 ‘그라시아’


 스페인어로 ‘은혜’ 라는 뜻.


 이름의 ‘혜’에서 따온 말장난 같은 거지만.


 나에게 자그마한 은총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으며.


 나는 시간 여행사의 간판을 세웠다.


 자, 딱 기다려.


 이제부터는 행복한 미래의 시작일 테니까.









 새벽달이 밝게 빛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낙엽이 도로변을 가득 장식하는 계절이 되었지만, 묘하게 비틀린 시간 감각 때문에 어쩐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면 내일이 온다.


 몇 백 번이고 루프를 하면서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 걸까.


 미래에 돌아온 지도 벌써 2주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해외여행에서 돌아와 시차를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 몸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길게 기지개를 켜 어지러운 마음을 날려버린다.


 대로변을 빠져나와 자그마한 길로 슬쩍 방향을 전환한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내가 신세를 졌던 불법 시간여행사 그라시아.


 곳곳에 금이 간 낡은 담벼락, 좁디좁은 길을 차근차근 걷는다.


 윤아와 나누었던 자그마한 약속, 달콤한 키스.


 단순히 시간으로 환산하면 1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선명하게 그 날의 기억을 그리고 있었다.


 추위 탓인지 부끄러움 탓인지 얼굴이 빨갛게 붉어졌다.


 앞으로 조금.


 커다란 폐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세요?”


 나는 문을 톡톡 노크를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역시나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선 활짝 문을 열고 폐건물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석마다 보이는 먼지 낀 거미줄.


 다 부서져가는 책상과 의자들.


 예전에 보았던 시간여행사 ‘그라시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낡은 폐건물의 잔해만이 풍경에 가득 흘려져있을 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과거를 바꾸었다.


 바뀐 과거는 확실하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도 영향을 주겠지.


 하지만 대체 무슨 상관이 있어서 이 시간여행사 그라시아가 사라진 건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조금 분한 마음이 들었다.


 “눈앞에서 돈을 확 뿌리면서 이마를 때려주려고 했는데.”


 제대로 과거를 바꾸고 돌아왔는데, 그걸 자랑할 사람이 한 명 줄었다는 게 조금 억울했다.


 나는 성격 더러운 시간 여행사의 주인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폐건물의 문을 닫았다.


 “이름이라도 들어둘 걸 그랬네.”


 쌀쌀한 날씨가 계속된다.


 나는 다시 한 번 옷을 정리하고선 하늘에 하얀 입김을 뿜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다.


 새로운 나의 엄마, 가연 씨.


 연구 때문에 자주 집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주에 한 번씩은 꼭꼭 집을 찾아오는 혜연 씨.


 그리고 엄마와 가연 씨의 딸 선화.


 나보다 이틀인가 늦게 태어나서 선화는 내 동생이 되었다.


 내 이름이 백합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선화가 되었다는 것도 자그마한 뒷이야기다.


 수선화에서 이름을 땄다는 듯.


 가연 씨가 이름을 장미라고 지으려고 했던 걸 엄마가 열심히 말렸다고 한다.


 확실히 내 이름이 지어진 계기를 생각하면 장미란 이름은 조금 그렇지.


 마지막으로 아직은 가족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거의 우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윤아.


 마냥 행복하기 만한 일상이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다.


 “선화야. 내가 몇 번을 말하지만 백합이가 내 미래의 아내가 되는 건 결정된 사항이란다.”


 “윤아 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니는 이미 내 매력에 빠져서 헤롱헤롱이라니까?”


 ........


 마냥 행복한 건 또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 너랑 백합이는 근친이라고 근친! 범죄야 범죄!”


 “나를 향한 언니의 마음을 그딴 법 따위로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법이 못 막아도 내가 막을 거거든?”


 “얘들아... 싸우지 말고........”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활이 펼쳐질 거라고는 진짜 도저히 생각도 못 했다.


 “하하, 우리 딸 인기 많네.”


 “그야 혜연 선배 딸이니까요.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지.”


 “내가 좀 한 인기 하지.”


 “아 엄마!”


 거기서 할머니들처럼 웃지만 말고 애들 좀 말려봐!

 “언니랑 나는 키스도 한 사이라고! 윤아 너 같은 애매한 관계랑은 또 다르다 이 말이야!”


 “그냥 어렸을 적에 자기 전에 볼에 해준 거잖아!”


 “흐응~ 그랬다는 거지?”


 윤아가 날카롭게 나를 바라본다.


 시선이 따끔따끔 아프다.


 “나쁜 년.”


 “하하, 우리 딸 엄청 나빴네.”


 “그야 혜연 선배 딸이니까요. 나쁠 수밖에 없지.”


 “가연이 너 뭐라 그랬냐.”


 “아 진짜! 엄마!”


 이놈의 엄마들!


 나는 윤아의 손목을 잡고선 재빠르게 집 밖으로 향했다.


 “잠깐 따라 나와!”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오는 윤아.


 “아, 언니! 어디가!”


 다급하게 외치는 선화를 뒤로 하고선 나는 현관을 나섰다.








 “무슨 일로 나를 밖으로 부른 걸까?”


 윤아 공주님이 제대로 삐친 듯 비꼬며 말한다.


 나는 어색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 미안해서........”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으.. 우으........”

 

 과거에서 돌아온 지 벌써 2주.


 나는 여전히 윤아에게 고백하지 못 한 채로 빙빙 윤아의 주변을 돌 뿐이었다.


 “고... 고백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못 한 거.”


 “그럼 지금 당장 해.”


 윤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네 동생이랑 연인 경쟁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


 “선화랑 연인이 될 생각은 하나도 없거든? 걔가 이상하게 집착하는 거야!”


 “집착하는 거 그거 진짜 유전 맞지?”


 “그럴 지도.......”


 윤아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살짝 끌어안고선 말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윤아의 얼굴이 한가득 눈앞의 풍경을 채운다.


 “그 다음 키스해줘.”


 “으... 우으......”


 “왜 미리 아줌마한테 하려고 했던 건데 나한테는 못 해?”


 “사... 상황이 상황이라고 할까........”


 “정말이지. 백합이 너도 내 앞에선 어린애라니까.”


 윤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자, 해 봐.


 라고 말하는 것 같이.


 “사... 사랑... 해.....”


 간신히 꺼낸 부끄러운 말.


 나는 그 말을 꺼내고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키스는?”


 “.........”


 “에휴, 정말이지.”


 그리고 윤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윤아 쪽에서 먼저 다가와 나에게 입을 맞췄다.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추위도 잊고 한동안 서로를 향해 달콤한 감정을 주고받았다.



-------------------------------------------------------------------


드디어 끝입니다.


이런 필력도 엉망이고, 전개도 엉망인 소설 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구닌신분에 연등 시간에 진짜 초스피디 하게 쓴 글인 탓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1화 쓰고 접으려던 소설이었는데 어찌저찌 완결까지 왔네요.


감사합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진짜 댓글들 매일매일 보면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다음 소설 추리물 쓰던 거나 써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아, 후련하면서도 섭섭하네요.


ㅈㅇㄹ 에서도 2000 조회수 찍고 엔딩 봐서 기쁩니다 ㅋㅋ


항상 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 작품은 좀더 신경 써서 글 써볼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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