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와 사요가 산더미처럼 쌓인 메일을 본 것은 그녀가 속한 밴드인 로젤리아의 연습을 막 끝냈을 때였어. 메일을 읽고 안색이 새파래진 사요는 허겁지겁 짐을 싼 다음에 다른 멤버들에게 오늘의 반성회를 불참해도 되냐고 물었지.

“무슨 일인데, 사요?”

평소랑은 다른 사요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걱정되어서 묻는 베이시스트 이마이 리사의 물음에 사요는 아직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을 입에 올렸어.

“동생이...히나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요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히나는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어. 급하게 와서 숨을 헐떡이는 사요에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들이 사고 경위를 설명해주었지. 방송 녹화 중에 천장의 조명기구가 히나 위로 떨어진 것이었어.

그제서야 사요는 그 곳에 부모님 외에도 한 명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작은 체구의 소녀가 모포를 두른 채로 히카와 부부의 뒤에 서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숨으려는 것처럼 보여 화가 난 사요는 부모님들을 제치고 걸어나가 소녀의 멱살을 잡았어.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면서도 왜 히나가...!"

사요의 거친 행동에도 소녀 - 히나가 몸 담고 있는 아이돌 그룹인 파스파레의 멤버 시라사기 치사토 - 는 반항하지 않았지. 그렇게 사요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던 치사토의 몸에서 모포가 떨어졌어. 그러자 모포에 가려져 있던 화려한 아이돌 복장이, 그리고 거기에 묻어있는 대량의 피가 드러난거야. 변색되어 검게 된 핏자국을 본 사요는 흠칫했어. 저렇게 많은 피가 히나의 몸에서 빠져나왔다고?

"...미안해, 사요 짱. 미안해...."

치사토는 변명의 말을 찾지 못한건지 그 말만을 했어. 그래서 히카와 부부가 사요를 치사토에게서 떼어내며 대신 변호해야 했지. 사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치사토는 나름 최선을 다했어. 다른 멤버인 야마토 마야와 함께 재빨리 응급처치를 하였고, 츠루마키 코코로에게 전화해서 그녀의 비상용 응급 헬기를 스튜디오로 불렀거든. 덕분에 히나는 늦지 않게 츠루마키 가의 병원에 도착해서 솜씨 좋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어.

얘기를 들은 사요의 화가 수그러들었지만, 그건 그저 분노의 대상을 잃어버렸을 뿐이었지. 갈 곳 잃은 분노는 그대로 사요의 마음 구석에 남았어.

결국 히나의 수술은 잘 되었다고도, 잘 안 되었다고도 할 수 없었어. 우수한 의료진에 의해 히나의 상태는 안정되었지만, 그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거든.

사고가 일어나고 일주일 후, 사요의 세계는 어느정도 일상으로 돌아왔어. 일과에 히나가 입원한 병원에 들르는 것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날이었지.

하지만, 치사토가 그 모든 것을 망가뜨렸어. 학교 옥상으로 사요를 불러낸 치사토가 한 말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거야.

"다음 파스파레 라이브에 기타리스트로 나와줘."

사요가 그 자리에서 바로 치사토의 뺨을 갈기지 않은 것은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고마운 마음 때문이었어.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지. 사요는 분노에 차서 자기보고 히나의 자리에 대신 서라는게 무슨 의미인지 아냐고, 다른 사람도 아닌 자매의 관계를 잘 알던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하나며 치사토를 몰아붙였어.

하지만 사요의 불같은 분노에도 치사토는 물러서지 않았지. 치사토는 히나 \'대신\' 그 자리에 서는게 아니라, 히나를 \'위해\' 그 자리에 서 달라고 해.

사실 사고 이후 소속사의 파스파레 취급은 별로 좋지 않았거든. 치사토의 설득으로 다음 라이브를 취소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 라이브를 고별 라이브로 하고 싶어하는게 빤히 보였어.

치사토는 히나가 깨어났을 때 그녀의 장소가 없어져 있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고, 그건 사요 역시 같은 마음 아니냐고 말해. 그 말에 사요는 그동안 일상 속에 쌓아왔던 감정이 터지며 무너져내렸지. 사요는 히나가 언제 깨어날지, 혹은 깨어날 순 있는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런게 무슨 소용이냐며 울며 소리쳤어.

하지만 치사토는 침착하게 올곧은 눈으로 자기는 히나가 돌아올 것을 믿는다고 해. 자기가 아는 히나는 그렇게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니라면서. 치사토는 사요에게 파스파레 소속사의 주소가 적힌 명함을 남기고는 먼저 내려가고, 홀로 남은 사요는 옥상에서 사랑하는 동생의 이름을 바람에 흘려 보냈어.

그 날 저녁, 평소대로 히나의 개인용 병실에 들른 사요는 히나를 간호하던 모친이 음악을 틀어놓은 것을 발견했어. 사요가 갑자기 무슨 음악이냐고 묻자 사요의 모친은 그동안 파스파레 멤버들이 돌아가며 문병을 왔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이 들려주던 파스파레 노래에 히나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고 해. 젖은 눈으로 엄마의 주책이지, 라며 웃는 모친을 보던 사요는 결심을 굳혔어.

다음 날, 사요는 로젤리아 멤버들에게 당분간 파스파레에서 활동하겠다고 말했어. 밴드의 최종 목표가 코 앞에 있는 상황에서 무슨 짓이냐며 욕먹는 것을 각오한 사요였지만, 멤버들은 오히려 사요를 응원해줘. 이미 치사토가 멤버들을 설득해 놓았던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다들 사요에게 있어서 히나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거든.

"사요."

멤버들의 응원을 받고 막 스튜디오를 떠나려는 사요를 로젤리라의 보컬이자 리더인 미나토 유키나가 불러세웠어.

"어느 밴드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든, 당신은 로젤리아의 기타리스트 히카와 사요라는 것을 잊지 마."

"...? 네...."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사요가 떠난 후, 유키나의 떨리는 손을 리사가 잡아주었지.

"괜찮을 거야. 사요도, 우리도."

"응...."

한편, 소속사의 스튜디오에서 앞날을 걱정하고 있던 파스파레에게 사요가 찾아와. 파스파레는 사요가 개인 연습을 할 시간을 가지게 하려 하지만, 사요는 괜찮다고 하면서 바로 합주 연습을 하자고 했지.

그리고 바로 해본 합주에서 사요는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어. 하지만 그건...

"사요 씨, 혹시 히나 씨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하신 검까?"

파스파레에서 음악에 가장 밝은 마야가 정확하게 찝어냈지. 사요는 부정하지 않으며 자기가 파스파레의 기타리스트로 나가는 이상, 본래의 기타리스트인 히나의 연주를 잘 살려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어. 하지만 마야는 고개를 저으며 지금 우리가 필요한건 히나가 아니라 사요의 연주라고 말해. 사요는 완전히 납득하진 않았지만 마야의 말대로 평소대로의 정확한 연주 위주로 연습을 시작했어.

이후 한동안 파스파레와 사요는 연습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어. 그동안 서로에게 히나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히나를 그리워 하기도 하고, 음악적 견해로 사납게 부딪히기도 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다섯 사람이었지. 사요는 특히 듣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파스파레의 아이돌적 음악 접근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브가 언젠가는 사요에게도 \'그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하면서 그 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무사도의 마음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해줘.

이윽고, 라이브 날이 다가왔어.

아직 조명이 들어오지 않은 스테이지에 서서 사요는 예전 일을 떠올렸지. 콘서트 첫 곡인 \'다시 한 번 루미너스\'를 연습할 때 사요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했었어. 이름에도 밤이 들어가는 자신에겐 어둠이 가득하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야는 고개를 저었지.

"하지만 이 노래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내용인걸? 분명, 사요 안의 빛도 찾아낼 수 있을거야."

"...그러면 좋겠네요."

그리고 조명이 들어오고 연주가 시작되었어. 무난하게 연주가 계속 되어가던 도중, 사요는 공연장을 가득 메운 연녹색 라이트를 마주하게 돼. 그 색은 사요로 하여금 가슴 속에 있던 한 사람을 명확하게 떠올리게 했어. 연녹색 짧은 머리의, 사요와 아주 닮았으면서도 아주 다른 사람.

\'내 안의 빛....\'

그제서야 사요는 깨달았어.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이브가 말하던 \'그 순간\'이 온 거지.

순간, 사요의 기타 연주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당황한 파스파레 맴버들을 돌아보며 사요는 씩 미소지었는데, 그 의도는 명확했지.

\'이 정도는 따라올 수 있지요, 파스파레 여러분?\'

곧 마야의 드럼 소리가 따라잡으며 멤버들을 안심시켰어. 걱정 마십쇼! 그동안 히나 씨의 연주에도 맞춘 저희입니다! 하면서. 사실, 그야말로 랜덤 그 자체인 히나의 연주에 비하면 튀어 나가면서도 고유의 정확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요의 연주는 훨씬 따라잡기 수월했거든. 곧 정신을 차린 다른 멤버들이 하나, 둘씩 소리에 합류하자 그 아름다운 하모니를 느끼며 사요는 생각했어.

미안합니다, 팬 여러분. 오늘의 연주는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미안해요, 파스파레. 라이브를 사적으로 써버렸네요.

미안해, 히나. 이제야 이런 연주를 들려줘서.

어느때보다도 진심인 사요의 기타 연주가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사요는 그 연주에 자신의 마음을 실어 보내.

‘히나, 사랑해.’

콘서트 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환호했어.

                        ‘히나, 사랑해.’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파스파레 멤버들의 땀방울이 조명 밑에서 아름답게 빛났지.
                            
                                             ‘히나,  사랑해.’

코코로가 기뻐 백덤블링을 뛰자 옆에 있던 미사키가 기겁해.

                         ‘히나, 사랑해.’

소파에 앉아 같이 콘서트를 보던 유키나와 리사가 서로를 껴안은 손에 힘을 줬어.

‘히나, 사랑해.’

그리고, 어둠 속에서 히나의 의식이 귀에 익은 소리를 들었어.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소리들이었지. 파스파레의, 그리고 언니의 음악. 히나의 의식은 그 빛나는 음악 소리들을 따라가.

히나가 눈을 뜨자 티비로 파스파레의 라이브를 보는 모친의 뒷모습이 보였어. 티비 속의 사요는 다른 라이브 때엔 잘 보여주지 않은 미소를 환하게 짓고 있었지.

"저것 보렴, 히나. 네 언니가 저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연주하는 것도 오래간만...히나?"

히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하던 모친은 의식을 찾은 히나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어.

"가, 간호사~!"

너무 기쁜 나머지 너스콜을 누를 생각도 못하고 소리쳐 간호사를 부른 모친은 히나에게로 가 딸의 갸날픈 몸을 껴안았어. 모친에게 안겨지면서도 히나는 티비 속의 사요 얼굴을 계속 보면서 마음 속으로 대답해.

\'나도 사랑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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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예전에 올렸던(하지만 반응은 별로였던) 썰을 온전한 소설로 풀어 써 보려 했는데, 각잡고 쓸 시간도 잘 안나는데다가 공식이 자매관계를 빠르게 진행시키다보니 ‘사요가 히나에게 자신만의 음악을 들려준다.’ 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유효기간이 지나버려 그냥 이대로 올리게 됐어.

(오늘도 공식의 1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