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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리미테] 가시나무가 진 후에

찜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18 14:19:40
조회 364 추천 14 댓글 4
														

하아, 하면 하얀 입김이 저 멀리까지 퍼져나갈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아무리 새해, 3학기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을 에이는 추위가 온 몸을 괴롭혔다. 평소라면 저마다 양갓집의 규슈로써 품위를 뽐내고 있었을 리리안의 아가씨들 조차도 이런 가혹한 현실 앞에서는 그런건 접어두고 코트 위에 이것저것 덧붙이며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


20세기가 시작한지 몇 해도 지나지 않았을때 만들어진 이후 년도로는 거의 1세기, 연호는 무려 세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굳건했던 이 학교의 건물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옛스러워서,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안 가는 아가씨들의 쏜때가 탄 반질반질한 복도는 요즘 학교에는 흔히 있을 방한대비가 하나도 없어서 바깥이나 다를바 없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덕에 평소라면 재잘거리며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었을 아가씨들은 모두 그나마 난로의 온기가 수호하는 교실 안으로 퇴각한지 오래였다.


그런 복도를 사뿐사뿐,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볍게 걸어가고있던 검은 긴 머리의 소녀, 카니나 시즈카는 그런 점에서는 이 추위가 퍽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뼈까지 시려오는 이 추위가 그녀를 피해가거나 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교실에서처럼 다른 학생들의 관심이 쏟아져서 쉬지않는 질문공세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누군가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것과는 거리가 먼 시즈카로써는 그런 과도한 관심은 이 추위보다도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더구나 그 관심의 사유가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것이니까 더욱 그렇다.


이미 '그 것'을 아는 학생이 적지 않은지 드물게나마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들중 몇몇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닌척을 하면서도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가는 것은 사람을 한숨짓게 만든다.


'물론 당장 학생지도실에 불러갔던 주제에 그걸 사람들이 모르길 비는것도 욕심이겠지만...'


그런 욕심을 부리지도 않을테니 그저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즈카의 발걸음은 조금씩 조금씩 속도를 올렸다.

교실의 직전에 코너를 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곳을 돌자마자 나타난 누군가와 부딫히기 직전에 그녀는 가까스로 걸음을 멈춘다. 뒤이어서 잠긴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 누군가도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돌아오는건 놀란듯한 목소리였다.


"어머..."

"평안하신가요. 사치코양."

"평안하신가요. 시즈카양."


시즈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란빛이 스며들었던 큼지막한 두 눈이 다시 호선을 그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시 오가시와라 가문의 아가씨... 혹은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 쁘띠쇠르 아니, 이제는 선거가 지났으니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이라고 해야할까. 자신의 감정을 성공적으로 정제해 내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미소는 어딘가 침체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 등교했군요. 방송은 들었었는데 말이죠."


아아, 당신까지 방송을 듣고서 알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즈카의 입가는 조금 뒤틀린다.


"어머, 제 이야기까지 듣고 계시다니 놀라운걸요.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실건 없답니다."


어딘지 뾰족한 말투가 딱히 친한사이도 아니지 않느냐며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만큼 홍장미 봉오리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입가에 쓴 웃음을 띄운다. 그 말처럼 두 사람은 딱히 같은 학급도 아니었고 그 외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시즈카가 간혹 산백합회의 일을 돕거나 사치코가 피아노 실력을 살려서 합창부의 일을 도와줄때 안면을 튼 정도 그 이상, 이하의 무엇은 없었다.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할 말은 없지만 말이죠... 그래도 시즈카양의 등교거... 아니 결석은 꽤나 이야기가 많았으니까요. 산백합회에서도 이야기가 없지는 않았답니다."

"더 큰 사건이 없었다면 신문부가 저희 집까지 쳐들어와서 취재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신무부 부장의 쇠르였던 츠키야마였나 미나코였나 하는 같은 학년의 아이를 떠올리며 시즈카는 살며시 미소짓는다. 신문부 보다는 문예창작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만큼 유려한 문체가 특징적인 사람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문예창작을 하듯 신문기사를 써 내려간다는게 문제일까.


그런 그녀의 타겟이 되어서 글이 써지는건 리리안의 누구라도 기피하고 싶을 것이다.


"...더 큰 사건이라면."


평소같으면 합창부의 신예가 3학기 내내 등교거부를 한 사건이 꽤나 오랫동안 신문부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호외까지 돌리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산백합회의 일을 늘려주지 않았을가. 하지만 지금 리리안 내부에서 이 사건은 그녀의 학급을 제외한다면 학생들의 입소문 정도를 제외한다면 크게 퍼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 리리안에서는 이정도 사건을 '고작'이라고 만들어 버릴만한 파란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야 사치코양이 더 잘 알테니까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죠?"


그렇게 말하고있는 시즈카의 말은 어딘가 짓궂... 아니 심술궂었다. 명백히 자신을 곤란하게 하려는 말에 대화상대의 얼굴이 살짝 굳었지만 전혀 신경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 알고 계셨군요."

"저도 이 학교 학생인걸요."


벌써 몇일이나 학교 근처로는 나타나지도 않은 덕분에 나타나자마자 학생지도실에 불려간 사람이 이런말을 하는것도 웃기겠지만 거기에 거짓따위를 섞지는 않았다. 그저 이 일은 학교에 나가지도 않은 그녀도 알 정도로 큰 사건이었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알아볼 만큼 관심이 있는 사건이기도 했을 뿐이니까.


"혹시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인가를 추론했는지, 사치코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시즈카가 가로막는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수업시간이 다 되었으니 저는 교실로 가 봐야 할것 같은데요? 사치코양도 늦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요?"

"시즈카양?"


자신의 말을 대놓고 가로막아버리는 상대의 태도에 당황한듯한 사치코를 뒤로하고 시즈카는 그녀로부터 거리를 떨어트리기 위한 것 처럼 가능한 빠르게 걸음을 재촉한다.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명백히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시즈카양!"


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자신을 부르는 홍장미 봉오리의 목소리에 그 발걸음은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듯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싫다면 묻지 않겠어요..."


거기서 말이 잠시 멈춘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에 멈춰있던 발도 움직이진 않는다.


"대신. 다음 산백합회의 행사때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실수 있나요? 다들 시즈카양의 노래를 좋아하니까요."


여기서 그 이야기를 왜 꺼낸것일까. 무엇인가 노림수가 있는것일까 아니면 그저 성실한 것일까. 라는 고민이생기는 말이었지만, 그 어느쪽인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답 만큼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시즈카는 고개를 돌려 언제나 진중하며 성실한 점이 매력적인 로사 키넨시사 앙 부통과 눈을 마주쳤다.


"미안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일수 없겠네요."

"예? 어째서죠?"


자신의 거절을 어느정도 예상했는지 조금은 침착성을 유지하던 아까보다 훨씬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아가씨에게 시즈카는 쓴웃음을 짓는다. 딱히 악의를 가지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저런 반응이면 아무리 그녀라도 조금은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상대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뒷 말을 덧붙이기로 했다.


"딱히 당신들이 싫다거나 한건 아니에요. 그저 저 이제 노래는 부르지 않으니까요..."




핵지뢰임.

무려 시즈카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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