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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NopiGo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07 23:24:33
조회 267 추천 13 댓글 6
														

“모두들 앞에 사람 미시면 안 돼요! 순서는 전부 돌아가니까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팬 사인회의 주최 측 사람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른다.


평소 이상으로 과열된 분위기가 회장을 가득 채운 웅성거리는 소리로 전해진다.


한 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그룹 ‘릴리피아’의 3개월여 만의 팬 사인회.


앨범 CD에 담긴 랜덤 추첨권을 획득한 행운아들이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이야기하며 뜨겁게 릴리피아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고 있었다.


“30장 사서 당첨된 게 진짜 다행이라니까. 지난번에는 50장이었는데 꽝이었어.”


“저는 이번에는 10장만에 됐어요. 후후.”


팬 사인회의 맨 끝 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세 사람.


줄이 다 없어지고 자신의 차례가 되려면 장장 3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세 사람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릴리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릴리피아 이번 앨범. 진짜 미쳤지 않아요? 특히 타이틀곡에서 그 댄스가~”


“그러니까 말이야. 특히 우리 봄이의 춤 선이 진짜 예쁘다니까? 엄청 귀엽다구.”


빼빼 마른 남성이 안경을 툭 치켜 올리며 말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진짜 대단했던 건 우리 여름이지. 그 파워풀한 가창력 못 봤어?”


그런 주장에 반박하듯 아슬아슬하게 통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은 키가 작은 남성이 말했다.


“다들 뭘 모르시네. 생각을 해봐요. 가을이가 없었으면 그렇게 무대가 빛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동글뱅이 안경을 낀 키가 큰 여성이 마지막으로 토론에 합류했다.


키가 작고 귀여운 컨셉의 봄이.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늘씬한 몸매가 매력인 여름.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릴리피아를 선두에서 이끄는 리더 가을.


누가 과연 이번 타이틀곡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세 사람의 열정적인 토론이 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고 진행되는 도중, 자그마한 목소리가 뒷자리에서 들려왔다.


“저는 역시... 이번 타이틀곡의 주인공은 가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정말~ 뭘 좀 아시는 분이네.”


“뭐야. 여기 가을이 팬이 또 있네?”


“가을이가 릴리피아에서는 제일 팬 많으니까요~”


하고 세 사람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정적.


한 사람이 추가되어 더욱 열띤 양상을 보일 거 같았던 토론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이후 완전히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렇다.


세 사람의 이야기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한 사람.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룹 ‘릴리피아’의 마지막 멤버인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릴리피아의 다른 멤버들이 각자의 매력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데에 반해 마지막 멤버 겨울은 다른 멤버에 비해 그렇게 큰 인기는 없었다.


수수하다면 수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외모.


적당한 춤.


적당한 가창력.


무언가 하나 내세울 부분이 없었던 탓에 인기는 바닥.


릴리피아 팬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이 오죽하면 ‘평범이’일까.


“아... 그... 그렇죠? 가을이가 이번에 엄청 예쁘긴 했죠.”


“그... 그렇지?”


“응응. 그렇고말고.”


세 사람이 당황하며 겨울을 바라본다.


분명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를 만난 상황일 텐데도 세 사람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왜 여기 계세요? 지금 팬 사인회 중이잖아요?”


“그... 더 이상 저한테 사인을 받고 싶은 팬이 없는 모양이라.”


멋쩍게 겨울이 웃는다.


슬쩍 뒤를 바라보며 연예인 좌석을 확인하자 뒤에는 아직 긴 행렬이 떠들썩하게 붐비고 있었다.


겨울의 자리만 빼고.


각자의 최애에게 사인을 받는 형식의 사인회인 탓에 잔혹하게도 인기의 격차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걸 본 세 사람은 더더욱 가시방석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시방석에서 일어나라고 권유하듯 겨울이 밝게 외쳤다.


“저도 그래서 사인 받으러 왔어요!”


겨울은 가방에서 툭 하고 앨범 한 장을 꺼냈다.


그 앨범 안에는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패 사인회 추첨권이 들어있었다.


“.......?”


뭐지.


내가 뭘 보고 있는 걸까.


세 사람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자기 그룹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아이돌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네.


“이거 얻으려고 앨범을 거의 100장 가까이 샀어요.”


자기 그룹 멤버의 사인을 받기 위해 앨범 100장을 산 아이돌을 시청하고 계십... 뭐?


“100장을 샀다고요?”


동글뱅이 안경을 쓴 키 큰 여성이 놀라며 물었다.


그 기세에 놀란 겨울이 깜짝 놀라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100장이라니, 앨범 한 장에 만 오천 원쯤 하니까.......


“사도 사도 나오질 않아서.... 헤헤.”


겨울이 멋쩍게 웃었다.


“사인이라면 그냥 받으면 되잖아요! 매일 바로 옆에 있는데!”


말도 안 된다는 듯 빼빼마른 안경을 쓴 남성이 빼액 소리를 지른다.


생각보다 크게 나온 소리에 겨울은 물론 소리를 지른 당사자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겨울은 잔뜩 주눅이 들어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매일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안 해주니까....... 가을이는 나한테는 항상 쌀쌀맞아서.......”


겨울은 쓸쓸하게 울상을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하면 그래도 해줄 수밖에 없겠죠? 그렇죠?”


그걸 들은 세 사람의 반응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였다.


팬이 적은 탓에 드디어 미쳐버린 건 아닐까.


대충 그런 느낌으로 겨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인해주세요!”


줄의 마지막까지 남은 세 사람이 겨울을 바라본다.


릴리피아의 마지막 멤버, 겨울은 진지한 얼굴로 가을에게 사인을 요구하고 있었다.


앨범에 든 추첨권을 건네면서.


“나, 정말로 노력했어. 가을이한테서 사인을 받으려고 정말 정말 노력했어!”


‘그야 100장이니까... 보통 노력으로는 힘들겠지.’


가을이가 최애인 키가 큰 동글뱅이 안경의 여성이 그렇게 생각했다.


팬과 사인지를 건네는 겨울을 평소와 같은 시크한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가을.


그 눈빛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감정이 담겨있음을 겨울은 깨닫지 못했다.


가을은 그런 겨울의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겨울아, 내가 뭐라고 했지?”


릴리피아의 리더. 가을의 위엄이 돋보이는 한 마디에 겨울은 물론이고 주변에 남아있던 팬들과 멤버들도 순간 몸을 움찔했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인이든 뭐든 원하는 걸 해주겠다고......”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울은 간신히 말을 마쳤다.


“내가 노력하라고 말한 게 이런 거였을까?”


히끅.


겨울은 질끈 눈을 감았다.


완전히 쫄았다.


“춤에 대해 확실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연습해! 너 항상 멤버들한테 서포트한답시고 원래 실력보다 대충대충 하는 거 내가 모를 거 같아?”


“아... 아니... 그건.....”

몰아붙이는 가을.


깜짝 놀라며 당황한 듯 겨울은 팔을 허공에 휘젓는다.


“노래도 잘 부르잖아. 그런데도 맨날 양보한답시고 일부러 파트 빼달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어.”


겨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가을은 정말로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여서 주변에 남은 팬들은 꽤나 술렁이고 있었다.


‘뭐야, 그 도도하고 쿨한 가을이가 지금 화내는 거야?’


‘뭣 때문에 화내는 거야? 겨울이 때문에?’


‘화내는 모습도 엄청 예쁜데?’


그런 술렁임을 잠재우려는 듯 겨울이 크게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겨울이의 꽉 쥔 주먹이 조금씩 부들부득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항상 어딘가 어중간하니까...... 춤도, 노래도, 말솜씨도 없고, 툭하면 당황하고, 무대에 서면 눈에 띌 정도로 벌벌 떨면서 긴장하고.”


가을의 말에 겨울이의 진심이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사랑받는 것보다 우리 멤버들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멤버들이 사랑받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니까.......”


겨울의 목소리는 처음의 기세에 비해서는 훨씬 작아졌지만, 하지만 분명한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지금 위치로 만족해.”


겨울은 가을에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눈에는 얕게 눈물이 서린 채였다.


가을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겨울이랑 네가 알고 있는 한겨울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네.”


“응?”


가을이는 팬 사인회의 회장 한가운데 있는 책상을 넘어 겨울이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역 시절의 겨울이는 반짝이는 눈망울이 정말로 귀여운 아이였어.”


“으... 으응?”


사뭇 당황하는 겨울.


칭찬을 받아본 적이 많이 없던 탓도 있었지만 평소에 쿨하고 냉정한 가을이의 칭찬이었기에 겨울은 두 배로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연습생 시절에 가명으로 나간 오디션에서는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었어.”


이어지는 칭찬 공세.


겨울은 실수를 해서 혼날 때 이상으로 몸이 굳었다.


가을이는 한 마디 한 마디 이야기할 때마다 앞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겨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다가오는 가을을 바라볼 뿐이었다.


“춤도 센스가 있어. 한 번 배우면 잘 안 잊어버리잖아? 우리 메인 보컬씨는 맨날 잊어버리는데.”


“아앗! 그건 말하면 안 돼!”


뒤에서 여름이가 다급하게 소리친다.


확실히 여름은 가창력 하나만큼은 확실하지만 춤은 미묘하다고 팬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다.


“고작 인기를 양보하겠다는 이유로 그렇게 행동하는 거라면 돌아가서 정말로 크게 화낼 거야.”


“히이익.”


가을이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은 겨울이의 눈동자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힌다.


아까랑은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가을은 그런 겨울이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사인 해줄게.”


“........?”


겨울이는 그 말의 의미를 잠시 생각하다가 울면서 소리쳤다.


“흐에엥~ 그건 안 해주겠다는 거랑 똑같은 말이잖아!”


“정말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가을이는 겨울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상냥하게 닦아주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하자. 다음 팬 사인회에서 겨울이 줄이 내 줄보다 길어지면 사인은 물론이고 원하는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줄게.”


“소... 소원?”


“응. 소원.”


“그... 그러면.....”


겨울은 꿀꺽 침을 삼키고선 회장 끝까지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가을이의 메이드복 고양이 코스프레가 보고 싶어!”


“응?”


회장에 있는 팬들은 물론이고 멤버들은 하나 같이 머리에 거대한 물음표를 생성해냈다.


“고양이 귀도 달고, 프릴이 잔뜩 들어간 메이드복도 입고, 꼬리도 살랑살랑 흔드는 완벽한 고양이 메이드가 되어서 나한테 ‘어서오세요~ 주인님!’ 하는 가을이가 보고 싶어!!!!!!”


그 말을 들은 가을이는 물론이고 멤버들과 팬들은 하나 같이 볼을 붉히고 있었다.


‘뭐야, 그거 나도 보고 싶어.’


회장에 남은 가을이 팬들은 격렬하게 공감하며 그 모습을 상상하느라 볼을 붉혔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쟤는!?’


남은 멤버들은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여기서 하면 어떻게 해!


라고 당황하며 볼을 붉혔다.


그리고 순간 이성이 돌아온 겨울이의 한 마디.


“아!!?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겨울은 다급하게 자신의 입을 막았지만 상황은 이미 터져버린 뒤였다.


가을은 욕망으로 가득 찬 겨울이의 말을 듣고 간신히 냉정을 유지한 채로 말했다.


“그... 그래 좋아. 해줄게.”


“어?”


"대신 지면 겨울이 네가 입어줘."


겨울의 욕망과 이성의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니 그래도 가을이의 고양이 메이드인데........

일생일대의 찬스를 이렇게 놓친다고?


아, 그래도 나잖아. 고작 나인데 이게 가능할 리가.......


하지만 언제나 이성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언제나 그 일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알겠어. 내가 이기면 저... 정말로 해줄 거지?”


“그렇다니까. 겨울이 너도 정말로 할 거지? 코스프레.”


“으... 으윽..... 알겠어......”


승산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싸움에 발을 들이민 겨울.


후회 해봐도 이미 한참은 늦은 뒤였다.


인기 제로의 평범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음침 아이돌 겨울.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시크하고 도도함이 매력인 걸크러쉬 아이돌 가을.


둘의 내기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이미 SNS로 퍼져나간 뒤였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온다면.


음침한 평범 아이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도 분명 찾아오겠지.


아직 낙엽이 채 떨어지지 않은 이른 가을에.


한 소녀는 작은 소원을 빌었다.


‘부디 겨울이 찾아오게 해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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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쓰려고 아이돌 문화를 친구한테 조금 배웠습니다.


이렇게 개인 줄로 사인 받는 건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나 있는 이야기라고 그러더군요.


아이돌 공부 너무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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