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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크리스마스) 러브 픽션 어드벤처 - 1

모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19 21:04:03
조회 385 추천 18 댓글 6
														

러브 픽션 어드벤처


다음화 (2)


이 이야기는 22살 대학생 백수진이 모바일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러브 픽션 어드벤처'를 플레이한 지 정확히 31일째 되는 날 시작되는 말도 안 되는 일상의 기록이다. 바로 그날의 아침도 수진은 평소처럼 침대 위에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고 한껏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말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꾸욱, 꾸욱


무언가가 그녀의 미간을 자꾸만 누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치 않는 타이밍에 잠에서 깨버린 그녀는 눈썹을 꿈지럭대다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 뿌연 눈앞에 초점이 잡히며 비친 것은.


"히익!"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온 시야를 다 채울 듯한 엄청난 근거리의. 수진의 미간을 건드리던 건 아마 이 인물의 손가락인 듯 했다.


"아, 미안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흠칫. 바로 요 순간 수진은 다시 한번 몸을 떨었는데, 눈 앞의 인물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니고... 몇 없는 자신의 친구 중 누구도 아니지만 매일 같이 들어왔고 들을 때마다 고막을 사르르 간지럽히던 이 목소리. 눈 앞에서 멀어지며 더욱 선명해지는 얼굴과 그 옆으로 흘러내린 오렌지색의 풍성한 머리칼을 보고 수진은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낼 수밖에 없었다.


"릴...리."


수진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녀는 미간을 찌르던 손가락을 돌려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를...아시나요?"



******



눈앞에 릴리가 있다. 그 사실만으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수진이었지만 그녀는 일단 릴리를 어떻게 아는지 설명해야 했다.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며 수진은 우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러브 픽션 어드벤처'


화면 가득 떠있는 그 글자는 게임의 타이틀이었다. 수진이 잠들기 바로 직전까지 하던 모바일 게임. 유저가 직접 이름과 생김새를 결정한 여성 캐릭터와 가상 세계에서 이런저런 스토리를 거쳐가며 연애에 골인하는, 그런 흔히 있는 연애 어드벤처 게임. 문제는 어제까지 수진이 화면 너머로 바라보던 '그녀'가 지금은 눈앞에서 숨쉬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가 당신을 아는 건 이 게임 때문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그녀가 덜 충격받을 수 있을까. 수진은 그 생각만 하며 설명했다. 릴리는 자신이 지은 캐릭터명이며 그녀는 게임 속의 인물이었다는 것. 자신은 플레이어로서 게임에 접속해 그녀와 만나왔다는 것.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있던 얘기는 어쩐지 부끄러워 수진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거기서 저를 만났다구요?"


"네."


"어디서? 당신같은 사람을 마을에서 본 기억은 없어요."


"그건 제가 거기선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신 이름이 뭐였죠?"


'레이어'라고 수진은 말했다. 플레이어의 이름을 짓는 게 귀찮아 그냥 입력창에서 깜빡이는 네 글자 중 '플'자 하나만을 지워 만든 닉네임. 귀차니즘으로 탄생한 레이어라는 이름은 수진의 까만 머리를 본떠 만든 캐릭터와 그런대로 꽤 어울렸다.


"당신이 레이어씨라구요? 하지만 레이어씨는 분명 남성..."


"그건 이 게임이 남성 유저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주인공의 성별을 선택할 수 없거든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릴리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보였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은 캐릭터였고 지금까지 당신이 살던 세계는 다 가짜였습니다!' 하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수진은 아무런 위로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말주변을 탓했다.


"...알겠어요. 잠시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요."


릴리가 손을 관자놀이로 가져가며 말했다. 수진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조용히 방을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혼자 있길 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수진이 게임을 한 탓으로 이상한 세계에 끌려와 버렸다고 원망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 풀이 죽어 있던 수진이 다시 방을 향해 기운차게 고개를 돌린 건 딱 15분 후의 일이었다.



******



릴리는 수진이 게임을 하며 알았던 것보다도 훨씬 씩씩한 여성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겠죠.' 라며 운을 뗀 그녀가 부탁한 것은 집 주변을 안내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진은 일기예보를 떠올리며 단벌신사, 아니 숙녀의 처지가 된 릴리의 어깨 위에 자신의 외투를 걸쳤다.


"우선 옷부터 사야겠네요."


수진의 마음 속을 꺼내놓은 것처럼 그렇게 말을 던진 것도 외투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던 릴리였다.



수진은 집에서 가까운 마트, 공원,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릴리가 가볍게 입을 만한 옷을 몇 벌 샀다. 대학생인 수진에겐 뼈아픈 지출이었지만 릴리가 시착했을 때의 모습을 회상하며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저건 뭐죠?"


꼭 데이트하는 것 같다고 멋대로 생각하다 민망해하는 수진을 멈춰세운 건 릴리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노릇노릇하게 익은 붕어빵들이 줄지어 있었다.


"붕어빵이에요. 밥도 아직이었으니까 조금 사갈까요?"


그 물음에 릴리는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전에 없이 활기를 띄는 눈빛에 수진은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다.



******



"오늘은 고마워요."


집에 거의 다 와갈 때쯤 붕어빵이 든 봉투를 끌어안은 릴리가 말했다. 수진은 아무 말 없이 옆을 걷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데 계속 감사해야할 일만 늘어날 것 같은데 어떡하죠...?"


괜찮아요. 수진은 가능한 한 부드러운 표정을 만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건 갑작스러운 사건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또한 왠지 저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아서 생겼던 죄책감도 조금은 누그러져 수진에게도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수진은 걸음을 멈춘 릴리를 내려다보았다. 수진보다 키가 조금 작아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릴리의 얼굴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띄고 있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레이어씨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그제서야 수진은 그녀에게 자기소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수진이에요. 수진이라고 부르면 돼요."


릴리는 수진에게 오른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반가워요, 수진."


수진은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손으로 꼬옥 감쌌다. 이것은 릴리가 처음으로 레이어씨가 아닌 수진에게 관심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

붕어빵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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