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에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응...?"
사아야가 느닷없이 물어왔다. 어째서일까? 혹시 내 마음을 들킨걸까?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었다.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난 사아야를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사아야를 좋아한건 언제부터였을까?
처음 만났을 때? 문화제에서 첫 라이브를 했을 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난 사아야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아야에게 지금 그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건 갑자기 왜?"
"음... 있지,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어떤 사람이야?"
사아야가 좋아하는 사람? 누굴까? 혹시 나일까?
약간의 기대를 해버렸다. 혹여나 그 대상이 나라면 정말 기쁘겠다. 싶었다.
하지만, 사아야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내 기대를 산산히 부숴버렸다.
"카스미... 아,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면 안돼!"
"아... 응... 물론이지."
실망을 감추기 힘들었다. 물론 사아야에게 카스미는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라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이름이 아니길 바랐다.
"언제부터 좋아한거야?"
"음... 글쎄... 첫 문화제 라이브... 였을까?"
"그랬구나. 음... 좋아한다면 고백해보는게 어때?"
"혹시나 잘못되면... 포피파가 해산하지 않을까...?"
"괜찮을거야. 그러니까 고백해봐."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은 고백하지 말라고 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보단 사아야가 행복했으면 싶었으니까.
찢어질듯 아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아야는 무언가 결심한듯한 표정으로 "응, 고마워. 오타에!" 하며 날 안아줬다.
응, 이거면 충분해. 하고 나를 위로하며, 나도 사아야를 안아주고 사아야의 향기를 사아야의 체온을 느꼈다.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해도 조금씩 흘러내린 내 눈물을 사아야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깥에 추적추적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일기예보엔 비가 많이 오진 않을거라 했던 것 같은데.
얼른 집에 가서 새로 산 이펙터를 시험해볼 생각에 들떴는지, 쏟아지는 빗소리가 어쩐지 경쾌하게 느껴져,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런 내 눈앞에 어쩐지 익숙한 인영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갈색 포니테일을 한 인영은 축 쳐진 어깨를 늘어놓으며,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처벅처벅 걷고 있었다.
"사아야...?"
난 그 사아야에게 말을 걸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고 그저 계속 걸어갔다.
"사아야!"
다시 한번 크게 소리치자, 그제서야 사아야는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그와 동시에 난 사아야에게 뛰어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오타에...?"
"이런데서 뭐하고 있어... 감기걸리게..."
"오타에... 오타에에... 흐흑..."
사아야는 갑자기 울면서 나를 껴안았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차가운 감촉에 몸이 움찔했지만, 사아야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일단 우리 집에 갈까?"
"흐윽... 흑... 응..."
추위 때문인지, 자신에게 덮쳐온 슬픔 때문이지, 계속 몸을 떨고 있는 사아야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집으로 향했다.
사아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사아야에게 묻진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내 옷으로 갈아입힌 뒤,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사아야는 조금 진정된 듯이 조용히 숨을 가다듬으며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사아야는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사아야...?"
"조금... 안심된다..."
"응... 나도 안심됐어."
"미안... 걱정했어?"
"응... 많이..."
"아하하... 미안..."
사아야는 어색하게 웃고는 조용히 바닥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 카스미한테 고백했어. 차였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미안하대. 아리사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하더라."
"사아야... 내가 고백하라고 해서..."
"아냐, 오타에 탓이 아니야... 나, 사실은 카스미가 아리사를 좋아한다는거,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혹시나하는 기대감을 품고 고백한거야... 그러니까 오타에 탓이 아니야."
"응..."
사아야는 내 탓이 아니라 말하며 고개를 들더니, 천천히 나를 보고 웃었다.
아직도 슬픔을 담고있는 얼굴로, 내가 걱정할까봐 웃고있는 모습이 너무 사아야다워서 나도 같이 웃었다.
"하아, 한바탕 울고나니까 좀 지치네~"
"그럼 이제 잘까?"
"으음... 좀 이르지않아?"
"샤워했더니 나도 졸려졌어."
"그래? 그럼..."
"사아야가 침대에서 자."
"응?!" 전혀 뜻밖이였는지 사아야가 당황했다. 그치만 사아야를 소파나 바닥에서 재울 순 없는걸.
"그치만, 어떻게 주인을..."
"사아야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따뜻하게 자야해!"
"그것도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럼 같이 자자."
"엑..." 사아야의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였기 때문에, 어떻게 둘러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빨개진 사아야가 조용히 승낙했다.
싱글침대라 역시 2명이 자기엔 조금 아슬아슬해서 딱 붙어서 자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옆에 누으니, 사아야에게서 나와 같은 향기가 나서 심장이 튀어나올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타에, 정말 고마워... 잘 자."
"응, 잘 자 사아야."
인사와 동시에 말소리는 사라지고, 방 안에는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만이 울려퍼졌다.
평소에 사아야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어쩐지 다른 두개의 심장이 화음을 이루고 있는듯한 두근거림을 자장가 삼아 천천히 잠에 들었다.
다행히도 사아야는 금방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카스미와 서먹해지지 않았을까 걱정도 했지만, 둘은 여전히 사이가 좋았고, 모든게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카스미가 아리사와 사귀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아야는 잠깐 슬픈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면서 축하해주었다.
카스미에게 고백한 날 이후, 사아야가 나에게 말을 거는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도 자주, 많이 대화하기 시작했고, 단둘이 있는 날도 점점 늘어났다.
무엇보다도 라이브를 하기 전에 긴장을 풀고싶다면서 꼭 내 손을 잡았다.
나로썬 기쁜 일이였고, 혹시 나를 좋아하게 된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현재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아야를 보고, 나도 저렇게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고백할 용기를 삼켜버렸기 때문이였다.
겁쟁이였던 난 그렇게 기회를 놓쳐버린 채, 몇달을 보내버렸다.
"사아야!"
"엣, 꺄아아악!"
끼이이이익! 쾅!
도시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사아야가 가볍게 공중을 날더니 쓰러졌다. 음주운전을 하던 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아야를 치어버렸다.
난 즉시 사아야에게 뛰쳐나가서 사아야를 살펴보았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딫혔는지 갈색 머릿결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사아야... 흑... 어째서... 흐으윽..."
난 뿌옇게 흐려져가는 사아야를 안고 목놓아 울었다. 옆에 있던 아리사가 즉시 119에 연락해서 사아야는 곧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나도 같이 가고싶었지만, 보호자가 아니란 이유로 같이 가지 못했다.
망연자실한 난 그저 멍하니 바닥에 흩뿌려진 사아야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카스미랑 리미가 집까지 부축해줬던가... 어제 씻었던가... 옷은 갈아입었던가...
몸을 보니 교복을 입은 채였고, 교복에는 피가 흥건했다.
"아... 학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어쩐지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조노씨...?"
"아, 안녕하세요."
교문 앞에서 선도부 활동을 하던 사요씨가 어쩐지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걸까?
"아, 이게 오타에껀 아니고, 그게...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오타에, 따라와!"
어느순간 나타난 아리사가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좀 있으면 수업 시작할텐데...
"아리사, 수업..."
"지금 수업이 문제냐? 그 꼬라지를 하고 어떻게 학교에 갈 생각을 해!"
아리사에게 끌려온 곳은 우리집이였다. 아리사는 엄마를 부르더니, 엄마에게 날 맡기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결국 엄마와 아리사에 의해 강제로 학교를 쉬게 되어서 할게 없어진 난 목욕을 한 뒤, 멍하니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 때, 핸드폰이 울렸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사아야가 입원한 병실이 적혀있었다.
메세지를 본 순간, 지갑만을 챙긴 채, 방을 나왔다.
"타에, 어디가니?"
"사아야한테!"
철컹!
급하게 집을 나선 뒤, 병원까지 무작정 뛰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라서 면회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메세지가 왔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행히도 병원이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데스크로 가서, 면회를 하고싶다고 했더니, 중환자실에 있어서 힘들다며 거절당했다.
"너, 혹시 사아야 친구 아니니?"
어쩐지 들어본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사아야의 어머니가 계셨다.
사아야의 어머니께 면회를 거절당한 얘기를 하니, 가족과 동행하는걸로 허락을 받았다.
감사인사를 전하고 병실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쓴 채로 누워있는 사아야가 있었다.
"사아야... 사아야... 흐윽.."
누워있는 사아야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그 때, 거기로 가지만 않았다면... 조금만 더 일찍 출발했다면... 그 날의 모든 것이 후회됐다.
다행히 신체의 부상이 크진 않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 이대로가면 뇌사 판정을 받을거란 말을 들었다.
뇌사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사아야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 이후로 학교는 다니는둥 마는둥 하며, 밴드활동도 미루고 되는대로 사아야를 찾아갔다.
비록 매일 찾아가는 것은 무리였지만, 가끔씩은 용인해주었기 때문에 찾아갈 수 있는 날은 늘 사아야를 찾았다.
사아야에게 그 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식 등을 전하기도 했지만, 사아야는 단 한번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보름이 지나 한달이 넘어갈 때 쯤, 어쩌면 이대로 사아야를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 순간, 잘될거라며 외면하던 죽음의 공포가 순식간에 눈 앞에 다가오면서, 지금껏 내가 외면하고 놓쳐왔던 모든 순간들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사아야... 나... 사실... 사아야를... 좋아했어..."
더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던 나는, 눈을 감고있는 사아야에게 내 모든 감정을 털어놓았다. 더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비록 듣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있던 내 손을 누군가 살포시 잡았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감촉에 깜짝 놀라 손을 바라보니, 사아야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사... 아야...?"
혹시나하는 마음에 사아야의 얼굴을 보자, 사아야는 희미하게 뜬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 타에..."
"사아야!"
사아야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사아야의 손을 쎄게 겹쳐쥐었다가, 다시 느슨하게 잡았다.
"미안해... 걱정했어...?"
"응... 엄청... 으흐윽... 걱정했어... 흐윽..."
"아하하... 걱정끼쳐서 미안해..."
"괜찮아... 이제... 괜찮아... 사아야... 나..."
"오타에."
"응..."
"역시, 오타에 손... 잡고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응... 언제든지 잡아도 돼..."
난 흐르는 눈물을 한 손으로 닦으며, 사아야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그러자, 사아야는 한결 편해진듯 숨을 조금 가다듬더니 말했다.
"오타에... 나 퇴원하게되면 오타에한테 하고싶은 말이 있어..."
"나도... 사아야한테 하고싶은 말이 있어..."
"아하하... 서로 통했나보네, 그러니까 내가 무사히 낫길 빌어줘..."
"응, 매일 빌게... 밤에도 낮에도..."
"그렇게 빌면 욕심쟁이라고 혼날걸. 내 걱정말고 모두랑 잘 지내고 있어줘."
"응,.. 사아야가 바라니까 그렇게 할게..."
의식이 돌아온 사아야는 약 2달간 휴식을 취한 뒤,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모두가 있는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교실 문을 열자, 포피파의 모두가 모여있었다.
"흐아앙~ 사-야~ 정말 다행이야~"
"걱정해준거야? 고마워, 카스미."
"정말... 걱정했잖냐..."
"사아야쨩, 빨리 나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응, 다들 고마워~"
"그럼 드럼도 칠 수 있는거야?"
"아무래도 드럼은 아직... 가끔씩 쑤시거든~ 임시멤버라도 구해보는게 어때?"
"사아야가 아니면 안돼! 사아야가 나을 때까지 기다릴래!"
"나도 사아야쨩이랑 같이 라이브 하고싶어!"
"아하하, 그럼 빨리 나을 수 있게 힘내야겠네~"
"바보냐! 몸이 나을 때까지 무리하기 금지, 안지키면 안받아줄거야!"
"지금 나 걱정해주는거야? 감동인데?"
"사아야..."
"아, 오타에. 왔어?"
사아야다. 사아야가 있다. 나는 곧장 달려가 사아야를 끌어안았다.
"오, 오타에? 숨막혀~"
"사아야... 사아야..."
"응, 오타에. 나야. 사아야."
사아야가 다정한 목소리로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 부드럽고 따뜻한 손은 자신이 야마부키 사아야라는 것을 열심히 증명하고 있었다.
"오타에, 잠시 따라와줄래?"
"응... 사아야..."
사아야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른 친구들에게 잠시 볼 일이 있다며 나를 끌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몸을 옮겼다.
아직 다 낫지않은 관절 여기저기를 돌리고 주무르는 사아야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에게 사아야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타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응,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었어."
"응, 실은...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라서..."
"음... 그럼 일단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는건 어때?"
"그럴까? 그럼..."
"오타에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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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을 같은 대사로 쓰는거 좋아해서 이래저래 뜯어고치다 결국 고백할 기회를 놓쳐서 사아야를 잃을뻔한 오타에 적음...
원래 기회를 놓친 대가로 사아야 죽이려다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어서 뇌절한지라 전개가 좀 많이 이상함...
타에사야 많이 애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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