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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포핀 파티에, 전부를 걸 각오는 되어 있어? (카스아리)

카스아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11 19:01:38
조회 1325 추천 39 댓글 16
														

" 진짜 멋있었지, 로젤리아~! "



카스미가 통통 튀는 걸음으로 골목길을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아직도 라이브의 열기가 몸에 남아 도는 건지, 로젤리아의 후렴구 몇 개를 흥얼거리면서 유키나 씨처럼 멋진 손동작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는 조금 자제했으면 좋겠지만.



" 로젤리아니까, 역시 대단했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밤에 뛰어다니는 거 쪽팔리니까 하지 말라고!! "



" 그치만 아리사, 그렇게 멋진 공연을 보고 나니까 정말 진정이 안 돼... 우리도 라이브 하고 싶은 기분이야~!! "



그러니까 나한테 라이브 예약 잡아 달라는 말이잖아. 또 예약이니, 무대 세팅이니, 포스터 신청이니 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하고 싶다는데 뭐 어쩌겠어. 나도, 오늘 공연 보고 살짝 자극 받은 느낌이기도 하고... 한다면 언제가 좋을지 머릿속으로 대충 날짜를 고른다.



" 우리도 하면 되잖냐. 조만간 날짜 잡아 볼 테니까... "



" 후후... 그렇게 말해주는 아리사가 너무 좋아~! 아리사아아~~ "



나한테 달려 오는가 싶더니, 목줄 풀린 강아지처럼 다시 신나서 거리를 방방 뛰어다닌다. 저렇게 좋을까. 귀엽긴 하지만 쪽팔리니까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야겠다.



걸으면서 린코 선배랑 사요 선배한테는 감사 메세지를 보냈다. 두 분이 카스미와 내 몫으로 미리 달아 두신 맨 앞자리 티켓 덕분에 공연에 올 수 있었으니까.



" 이번에는.... 히카와 씨랑, 상의해서... 토야마 씨랑 둘이서 오시라고... 두 분 것만 준비했어요... 나머지 포피파 분들한테는, 양해를... 그리고, 파이팅 해 주세요...! "



"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희 두 명 것 준비해 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해요. 근데, 왜 하필 카스미랑...? "



" 이치가야 씨, 말씀은 못 드려도 선배로서 저희는 늘 이치가야 씨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희 라이브가 그렇게 로맨틱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토야마 씨랑 단둘이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해서... "



" 네에...?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라구요!! 카, 카스미한테 그런 마음 없어요——!! "



선배들은 최근에 나랑 카스미랑 엮는 걸 뭔가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서, 난감해 죽겠어... 그래도 선배들이 은근히 센스 있는 제안을 하신 걸지도. 왜, 야구 좋아하는 애인이랑은 야구장 데이트를 하듯이 카스미랑은 라이브 데이트가 딱이지 않을까? 오늘 엄청 재밌어했던 것 같아서 보기 좋았고. 그, 그렇다고 오늘 같이 논 게 데이트라는 건 아니고!



" 아리사! "



" 아, 응. "



저만치 달려갔나 싶었더니, 어느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서 나랑 비슷하게 걷고 있다. 공연 내내 목이 터져라 응원해 놓고는 또 어떻게 다시 쌩쌩해졌는지 모르겠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시리얼을 아침마다 먹나?



" 포피파 라이브도, 로젤리아처럼 멋있게 성공시키자? "



" 풉... 포피파에, 그것도 카스미한테 멋있음이라니 안 어울리네~ "



카스미가 중2병 느낌 확 나는 장식이 치렁치렁 달린 옷을 입고 있는 상상을 하다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왕자 옷 멋있게 차려 입은 꼬마 애 보는 기분이겠지? 생각해보면 유키나 선배는 용케 그런 컨셉이 잘 어울리는구나 싶다.



" 으... 아리사!! 저번에는 라이브 할 때 내가 진지하게 노래 부르면 가끔 멋있다고 사-야한테 그랬잖아! "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유, 유키나 선배가 멋있단 얘기였겠지! "



당황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내가 이래서 요즘 사아야한테 비밀 이야기 안 한다고! 분명 그, 그 얄미운 표정 지으면서 카스미한테 다 일러바쳤을 거야. 나중에 만나면, 진짜 한 대 때려야겠다...



" 아리사, 거짓말쟁이! 분명 나도 멋있다고 했잖아? 사-야가 거짓말 했을 리는 없는 걸! "



" 아, 한~번도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거든~! 오늘 라이브만 봐도, 유키나 선배 노래 부를 때 너랑은 완전 다르잖냐, 어? 평소에도 말이야, 누구처럼 강아지마냥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달라붙지도 않고~ 진지하게 음악도 하고~ 라이브 예약 정도는 자기가 알아서 하고~ 그런 진중한 면이 있어야, 누구한테 멋있다는 소리 듣는... "



쪽팔려서 괜히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다가 말을 끊는다. 제 발 저린 것 같아서 불편해...



" ...... "



역시 말실수였던 건지, 카스미가 단단히 토라진 듯 나한테서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손등으로 눈을 자꾸만 비비면서 나한테서 점점 멀찍이 떨어져 걷는다. 설마, 얘 우나...?



" 뭐야, 그냥 해 본 말 가지고 왜 또 울려고 그러냐...? "



" ...안 울거든——!! 나 여기서 버스 타고 갈래! "



" 엑!? 야, 카스미! 어디 가는데! 버스 정류장도 이쪽이잖아!! "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는, 왔던 길을 돌아서 냅다 달려가 버린다. 금세 조용해진 밤거리를 하는 수 없이 혼자 걸어가면서, 주먹을 꽉 쥐고 머리를 연신 콩콩 두드린다.



바보냐, 이치가야 아리사! 그냥 멋있다고 한 마디 해주면 되는 거였잖아! 그게 안되면 장난이었다고 사과라도 했어야지... 늘 그렇지만 사고 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아까는 진짜 분위기 좋았었는데... 이런 걸 1보 전진 후의 2보, 아니 10보 후퇴라고 하는 걸까. 5분 전으로 시간 돌리고 싶다. 나 진짜 바보 멍청이 아싸 키보디스트. 내일 카스미한테 미안하다고 할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무겁다. 사과는 원래 때를 놓칠수록 더 하기 힘들어지니까...



*



다음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문고리를 살짝 잡았다. 카스미 보자마자 바로 미안하다고 하자. 혹시 모르지, 카스미니까 어제 일쯤은 이미 털어버렸을지도...? 어쩌면 자기가 먼저 미안하다고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넘어갔음 좋겠다! 사과 하겠다고 다짐한 지 10초도 안 되어서 그런 헛된 기대를 품고 현관 문을 서서히 열자, 문 틈 사이로 익숙한 뿔 머리가... 아닌 다른 애가 서 있었다.



" ...누구세요? "



얼빠진 내 질문을 듣고, 단정하게 어깨까지 늘어뜨린 갈색 머리를 한 아이가 살짝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익숙한 보라색 눈동자가... 아니, 카스미!?



" 토야마 카스미...? "



" 맞아, 아리...읍, 이치가야 씨. "



이치가야 씨? 오는 길에 어디에 머리 부딪혔나? 눈앞에 나타난 카스미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똑바로 말도 못 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옷차림도 다른 날이랑은 다르게 엄청 단정하고, 교복에도 주름 하나 없고.... 아무 말 없이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스미가 정말 다른 애 같다. 머리 풀고,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양갓집 규수 같다는 사아야한테 개소리 하지 말라고 했던 거 취소다. 얘, 너 어디 아가씨 학교에서 온 애니?



" 무슨, 이치가야 씨는... 너, 별 머리는 어쩌고... "



" ...그런 유치한 머리를 세팅할 시간은 없어. 자, 얼른 등교하도록 하자. 학교에 가서 신곡 가사를 고민해야 해. "



그렇게 말하더니, 아가씨같은 단정한 걸음으로 학교로 향한다. 멍하니 서 있던 나도 얼른 카스미를 쫓아갔다. 그리고 사거리에서 나머지 3명과 만날 때까지, 카스미 쪽에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 카스미~! "



횡단보도 앞에서 사아야가 손을 흔든다. 늘 하던 대로 달려가서 사아야 품에 안기려는 거 다 봤는데, 이게 얌체처럼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갑자기 손바닥만 살짝 들어 올려서 손인사를 한다. 그리고 내 반응을 확인하더니 또 금세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 나 얘 떄문에 삐졌어요 ' 하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꼴이다.



" 아, 사~야!! 리미링!! 앗...! 으흠! 야마부키 씨, 우시고메 씨, 하나조노 씨, 좋은 아침이야. "



" ....? "



3명의 시선이 카스미에게서 일제히 나한테로 옮겨 간다. 애가 대체 왜 저러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치다.



" 아, 아리사 쨩... 설마, 어제 카스미 쨩이랑 싸웠어...? "



" 윽, 그런 거 아니...아닌 건... 아니고... "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나를 은근히 째려보는 카스미의 시선이 등에 잔뜩 꽂힌다. 그래, 어제 일로 완전 삐졌다 이거지...? 결국 다시 저만치 걸어가는 카스미와, 그 뒤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는 내 뒤를 나머지 3명이 바싹 따라붙는 이상한 배치로 걷게 되었다.



" 아리사, 대단해. 카스미랑 단둘이서 로젤리아 라이브에 간 거잖아?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로. 우리는 고백은 당연히 했을 것 같아서, 아리사가 카스미랑 키스 했을지, 안 했을지 내기 중이었는데. 거기서 역으로 사이가 나빠져서 올 수 있다니 대단해...! 아리사는 항상 우리 예상을 뛰어 넘는구나? "



" 오타에는 입 다물어라... "



" 아리사, 그러지 말고~ 그 좋아하는 뿔 머리도 풀고 온 거 보면 어지간히 토라진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리사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한 번 안아주는 거 어때~? "



"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야! 너네 빵집 인터넷 별점 테러 할 거야!! 빵은 무조건 하자와 카페라고 리뷰 100개 쓸 거다!! "



등굣길 내내 끊임없이 깐족대는 두 명의 등짝이라도 한 대씩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1미터도 넘게 앞질러서 걸어가는 주제에 자꾸 우리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카스미 눈치가 보여서 화를 낼 수도 없다. 역시, 사과는 빠를 수록 좋은 거야...



*



확실히, 카스미 녀석은 무리하고 있는 게 틀림 없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 번도 졸지 않는 대기록을 세워서, 4교시 담당이신 수학 선생님께서도 오죽 놀라셨으면 ' 몸이 안 좋으면 보건실에 가도 좋다 ' 고 하셨으니까. 점심시간에 몰래 노트를 훔쳐 보니까 수업에 관련된 필기는 거의 없고, 신곡 가사나 음악에 관련된 내용 뿐이었지만.



" 카스미... 뭘 그렇게 열심히 필기하나 했더니 수업시간에 가사를 적고 있으면 어떡해. 어휴, 여긴 타브 악보로 꽉 채워 놨고... "



" 읏, 아리사가 훔쳐 본 게 잘못.... 으흠. 흠. 그게 어때서, 이치가야 씨? "



자꾸 원래 머리 스타일대로 내려오려는 옆머리를 귀 뒤로 바쁘게 넘기면서,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을 잇는다.



" 음악의... 그래, 정점. 정점을 추구하는 길에 학교 수업은 필요 없어. "



" 아 진짜!! 그 유키나 선배 같은 말투 그만 해! 네가 하니까 어색해 죽겠다! 언제까지 삐져 있으려고 그래!? "



내가 짜증을 내건 말건, 카스미는 태연하게 유키나 선배 코스프레를 유지할 뿐이다.



" ...어색하다고 해도, 음악에는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안 돼. 이치가야 씨도 명심하는 게 좋아. 나와 최고의 음악을 추구할, 포핀 파티의 키보디스트라면... "



얼어 죽어도 감성 천재라는 걸까, 말투라던가 외관 상으로는 괜히 싱크로율이 높은게 더 열 받는다. 재능 낭비잖아, 무슨 성대모사가 특기인 개그우먼이냐! 자기 딴엔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는 표정인지, 저 대사를 날린 후 어딘가 먼 산을 바라보면서 무게를 잡아 보지만 정작 본인의 얼굴이 빨개져 버리면 전혀 멋있지 않다. 할 거면 당당하게 하던가...



" 하는 너도 부끄러우면 그만 하라고... 어색하고 닭살 돋아서 죽겠다!! 그 말투 계속 하면 수학 쌤한테 노트 필기 이렇게 한 거 다 이른다!! "



" ...상관 없어. 그 어떤 것도 음악을 향한 나의 열정을 막을 수 없으니까... 그럼 난 이만. 이따 연습 시간은 철저히 지켜 줘, 이치가야 씨... "



" 우리 중에 제일 많이 늦는 네가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얌마!! "



*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포피파 연습 시간.



초코코로네를 우물우물 씹다 말고 리미링이 시계를 확인한다.



" 카스미 쨩, 늦는 거 아니야..? 곧 연습 시작인데... "



" 아, 우리 토야마 유키나 님도 여전히 연습 시간은 못 지키시나 보네! "



메론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잡아 뜯던 사아야도 한 마디 한다.



" 아리사, 그러지 말고 사과하자? 마음은 알겠지만, 아리사 잘못이잖아. 오늘 하루 종일 어색하게 연습할 거야? "



" 아니, 나도 하려고 했는데... 내가 안 멋있다는 말 한 마디 했다고 하루 종일 유키나 선배 따라하는 게 열 받잖아!! 무슨 머리 스타일까지 바꿔 가지고!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고 문이 열리고 카스미가 들어온다. 디지털 시계로 정확히 6:00 pm. 유치하게 딱 맞춰 들어오려고 문 앞에서 기다린 게 틀림 없네.



" 아, 카스미~! 오느라 수고했어! 빵 먹을래? "



" 앗, 사-야~!! 그거 오늘 구운 메론빵~! 이 아니라, 사,아,야. 미안하지만.... 포핀 파티의 리더로서, 이런 연습 환경은 두고 볼 수 없네. "



메론빵 조각을 내미는 사아야의 손이 갈 곳을 잃고 다시 슬그머니 들어간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카스미를 쳐다보는 사아야를 잠깐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을 허리에 얹고는 연설을 시작한다.



" 우리들은, 이 달콤한 빵과 아늑한 창고와 아리사네 할머니 표 계란말이에 취해서... 목표인 무도관 라이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 우리들에게는 절박함이 부족해. 이제부터! 포핀 파티에 사-야, 아니 사아야네 빵은 필요 없어... 오로지 최고의 음악과, 소리를 추구할 뿐...! 그것이 이 걸즈 밴드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야! 이제부터 따라오지 못하면, 버리고 갈 뿐이니까... 너희는 포핀 파티에 전부를 걸 각오는, 되어 있어...? "



" 얼굴 빨개져서 바닥 보고 얘기할 거면 하지 말던가... "



" 리더... 돌아왔구나. 우리가 노릴 것은 걸즈 밴드의 정점, 하나조노 랜드... "



" ...에? 나, 나도 뭔가 해야... 카, 카스미 쨩! 제대로 모두의 소리를 지탱할 수 있도록, 베이스를 극한까지 갈고 닦아서...! 꼭 언니를 뛰어넘는 베이시스트가 되어 보이겠어!! "



" 그런 거 노린 적 없어!! 상황극 받아주지 말라고, 리미, 오타에! "



" 카스미가... 우리 집 빵,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그리고 내 이름을 귀엽게 이어 부르지 않고, 사아야라고... "



완전히 충격 받아서 들고 있던 메론빵도 떨어트린 사아야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카스미가 급하게 연설문에 몇 마디를 추가한다.



" ...라는 얘기를 어젯밤 이치가야 씨에게 들어서, 리더로서 정말로 감명을 받아서~ "



" 내 탓으로 돌리지 마!! 아, 다들 주목!! 오늘 연습 취소! 내가 책임지고 내일까지 얘 원래 상태로 만들어서 데리고 올 테니까, 오타에랑 리미가 사아야 데리고 나가! "



" 카스미... 사-야라고 불러 줘... 메론빵 받아 먹어 줘... 응...? "



오타에랑 리미가 어딘가 망가져 버린 눈을 한 사아야를 끌고 나가고, 창고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사아야 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카스미가 내 시선을 의식하고 다시 캐릭터를 잡는다.



" 정말, 연습을 방해하다니... 이치가야 씨도 참. "



" 그만!! 그만그만그만——!! 내가 미안해!! "



" ....... "



이제 더는 못 참겠다... 앞으로도 매일 이런 연습 풍경일 거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과하자. 화가 풀릴 때까지 싹싹 빌자. 카스미의 두 손을 끌어다 양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인다.



" 미안해!! 그냥, 장난이었어... 근데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서, 카스미가 멋있지 않다는 거 완전 거짓말이니까!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더 많으니까! "



" 아, 아리사...? "



" 굳이 유키나 선배 따라하지 않아도, 너 멋있으니까 괜찮다고! 티어 드롭스 하이라이트 부를 때 자꾸 이쪽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심장 두근거려 죽겠으니까! 가끔 옆모습으로 진지한 얼굴 하고 있으면 찍어다가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하고 싶으니까!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오늘 하루종일 틱틱댈 필요는 없잖아, 바보 카스미!! "



" 그, 그건 솔직히 아리사가 어제 말이 심했다, 뭐!! "



" 그래, 내가 잘못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고 있잖아! 그니까 내일부터 고양이 머리 다시 하고 와. 나 그 헤어 스타일 제일 좋아하니까 풀면 죽어 진짜. 그 귀여운 머리를 왜 안 하고 오는 거야. 물론 내린 머리도 아가씨 같아서 예뻐. 그리고 내일부터 사아야가 주는 빵도 맛있게 받아 먹고 아무 때나 음악 얘기 하지 말라고... 내, 내가 토야마 카스미를 좋아하지 미나토 유키나를 좋아하는 줄 알아!? "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던 입이 갑자기 멈춘다. 아, 망했다... 카스미 표정이 어떨지 상상도 하기 싫다. 이런 데서 고백할 생각 없었는데, 너무 최악이야. 이게 아닌데 진짜!!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을 들 생각도 못하고, 카스미 손만 꽉 잡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줘, 토야마 카스미. 너 계속 나 이렇게 세워두면 나 내일부터 다시 학교 안 간다. 생각해보니까, 유키나 선배 따라한다면서 늘 입는 노란색 별 무늬 스웨터는 왜 입고 온 거야. 아, 몰라. 다른 생각 할래. 카스미 스웨터에 별이 한 개, 두 개, 세 개...



갑자기 몸이 확 쏠리는 느낌이 들더니, 카스미의 노란 스웨터가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평소엔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마다 키 차이나 완력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 에헤헤... 아리사아아~! 얼굴 좀 보여 줘...? 아, 혹시 부끄러워~? "



능글맞은 카스미의 목소리가 얼굴에 불을 지피는 것 같아서 얼른 카스미 품에 얼굴을 묻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품 속이라는 건 이렇게 따뜻하고, 푹신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아까 사이다를 그렇게 마셨는데도 갑자기 목이 탄다. 카스미의 손이 내 목 언저리를 슥 스치고 지나갈 때나, 허리 부근에 얹힐 때마다 몸이 움찔 하고 과민 반응을 한다. 그렇게 날 쓰다듬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내가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계속 여기저기 쓰다듬고 만져 댄다.



" 그, 그만 만져 이 변태야...! "



" 에에~! 아리사, 만질 때마다 엄청 반응이 귀여워서 못 참겠는데... "



" 으.... "



" 그럼, 내일부터는 다시 카스미로 돌아가겠습니다. 머리는, 어떡할까... 아, 오늘만 아리사가 다시 묶어주면 되겠다! "



" 나, 양갈래 밖에 모른다고... 할머니한테 부탁하던가. "



" 그럼 양갈래로 좋아~! 아리사랑 같은 머리 하고 싶어! "



" 절~대로 싫어!! 뿔 머리 토야마 카스미가 아니면 이제 싫으니까!! "



*



있을 때는 모르는 뿔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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