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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킬러와 아가씨 - 1

ㅇㅇ(218.148) 2020.01.23 18:57:17
조회 387 추천 13 댓글 3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밖에는 거센 비바람이 내 창문을 세게 때렸다. 나는 오늘도 꿈에서 나온 그 이름 모를 남자의 겁에 질린 얼굴 때문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그 망할 놈이 누구였는지, 뭘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오래전에 죽였던 많고, 많은 사람 중 하나겠지. 어떻게든 그 남자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려 잔에 독한 술을 한가득 채워 단숨에 들이켰다. 머리 속의 남자를 잊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양이었다.

 

쏘고, 베고, 조르고, 태우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법으로 사람을 죽여왔다.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많았으니, 일거리가 넘쳐흐르고 내 주머니도 두둑했다. 아마도 그 남자도 내가 별생각 없이 죽였던 사람들 중 하나 일 것이다. 아무런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는데도, 나는 언제나 공허했다. 어떻게든 공허함을 채우려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해왔지만, 무엇을 하든 간에 내 안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욱더 깊고 짙어져만 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죽어있다.

 

이런 신파극만 최근 몇 년 사이 수십 번을 겪어왔다. 갈수록 의욕을 잃어 최근에는 일거리도 모두 거절한 채 집 안에 틀어박혀 술병이나 쌓아가며, 자기 비하나 하면서 살고 있다.  

 

"빌어먹을, 좋아 오늘로 다 끝내주지."

 

위스키를 병째로 들이켰다. 내 안에 남은 이성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당장에 거실에 있는 탁자를 치우고, 벽장에 넣어놨던 방수포를 바닥과 천장에 깔아놓았다. 내 머리에서 흩뿌려진 뇌 조각을 벽과 천장에서 긁어 내느라 남을 고생 시킬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갈 때는 가더라도 깔끔하게 가고 싶었다.

 

수많은 내 가짜 신분증들과 여권 그리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준비 해 둔 돈 꾸러미들 사이에서 권총을 찾아내었다. 내가 처음 살인을 할 때 썼었던 물건으로 기념 삼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무리를 장식하는데, 이것만큼 괜찮은 것도 없을 것이다.

 

짧은 총신의 리볼버로 약실 안에 총알을 가득 채웠다. 유언을 남길 가족이나, 친척도 없으니, 귀찮게 머리 굴릴 일도 없겠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앉아서 비참하게 과거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해줄 의자였다.

 

", 부질없는 삶이었어."

 

다시 한번 독주 들이켜보았다. 병의 바닥 너머로 천장의 전등의 불빛이 아름답게 퍼져나갔다. 텅 빈 병을 새게 집어 던지고, 조각나 파편이 바닥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감상적인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 삶을 보는 것 같았다.

 

산산이 부서져 버려서 되돌릴 수도 없다. 부서진 조각을 이어 붙인다 해도, 그것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망할..."

 

나는 입안에 총구를 밀어 넣었다. 차디찬 금속의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떨리는 두 손으로 방아쇠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반쯤 방아쇠를 당겼었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똑 똑 똑'

 

손님이 찾아 온 것이다. 의뢰인은 보통 내 중개인을 통해 만나니까, 그 쪽 일 관련은 아닐 것이다. 이 낡아 빠진 아파트의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아가기 바쁜 이기주의자들이니, 내 이웃도 아닐 것이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걸어 나가 문에 달린 도어 스코프를 통해 바깥에 서 있는 것이 누군지 확인했다.

 

"."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와버렸다.

 

바깥에 서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새까만 흑색 장발에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도 같은 두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품격 있어 보이는 자태는 이런 싸구려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있자.'

 

그녀가 확실히 아름답기는 했지만,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찾아왔을 뿐이다. 저런 아름다운 여성을 나의 추한 죽음으로 더럽힐 수는 없었다.

 

보내야 한다. 그게 옳은 것이니까.

 

"저기, 아무도 안 계시나요?"

 

아름답고, 청아한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가 굳게 잠긴 문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건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이미 문을 열고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몰골을 보고 꽤 놀란듯 해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에, 빨지 않아 더러운 셔츠를 입고 있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되게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짓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잘하는 짓이다, 이 멍청아!!!!!!!!' 머릿속의 무언가가 내게 소리쳤다. 나는 애써 무시하고, 최대한 멋들어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이런, 누추한 곳에는 무슨 용무로 오셨는지요?"

 

그녀가 미소 짓는다. 죽어서 차갑게 식은 내 마음속에 한줄기의 따사로운 빛 한 줄기가 들어서는 듯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해야 그녀의 미소를 더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만약 술집에서 그녀를 만났다면, 그녀에게 다가서려 하는 다른 경쟁자들을 은밀하게 제거한 다음 우연인 척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술 한잔을 살 것이다 그리고...

 

'젠장, 내가 미쳤지.'

 

아마, 술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아니요, 여기에 강예슬 씨가 산다고 들어서요."

 

 

처음 보는 그녀가 내 이름을 언급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자가 내 이름을 알고, 내 집 주소를 알고 있다. 나는 입이 무거운 편이고, 그리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 본거지가 어디인지 떠든 적도 없다.

 

", 제 이름인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의심하라고!'

 

빌어먹을 알코올이 내 판단을 흐리는 것이 분명했다.

 

"진짜, 강예슬 씨 맞으시죠?"

 

그녀가 내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러자 달콤한 향기가 풍겨져 옴과 동시에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내 판단과 이성이 흐려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냉정해져야만 했다. 망할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부정한 다음 그녀를 돌려보내야 한다.

 

아니, 이미 10분 전에 그래야만 했다. 방금 전 까지 죽으려고 했던, 인간이 갑자기 자기 취향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서 어떻게든 한 번 엮여보려고, 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정말로 해서는, 해서는.

 

'...'

 

"."

 

냉정히 돌려보내기에는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다음에 이런 여자를 만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확실한 건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영영 안 온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찾아왔네요, 혹시나 잘 못 왔나 걱정했었거든요."

 

그녀가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작년 12 25, 극장가 뒷골목 기억하세요?"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쓰라린 고통과 함께 배 쪽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손을 가져다 대보니,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서 있기 힘들었지만, 안간힘을 다해 버텨 섰다. 아름다운 그녀의 두 손이 나의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푸른 두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기억 하나고요?"

 

칼날이 더욱더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등 뒤에 숨겨두었던 총의 손잡이로 그녀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맥없이 그녀가 쓰러졌다.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가녀린 이 여자가 어째서 이런 짓을 했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내 과거가 나를 잡으러 온 것이다.

 

"빌어먹을, 그냥 내 머리를 쏴버렸어야 했는데."

 

나는 기절한 그녀를 집 안으로 끌고 온 다음 문을 닫았다.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잠든 시간대이고, 이층에 있는 집들은 모두 내가 가짜 명의로 빌려 놓은 상태라 목격자는 없을 것이다. 걱정거리는 하나 줄었지만, 진짜 문제는.

 

집 안으로 데려온 이 여자를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마침 방수포도 깔아놨고, 손에 총도 들려있다.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루를 시작하고,다시 내 스스로를 죽이려 들 것이었다. 예전 부터 그래왔듯이 그녀도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사라질 것이다.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말이다기절한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반쯤 방아쇠를 당기다 힘이 빠져 차마 그러지 못했다

 

왠지는 몰라도 그녀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런 거지 같은 빌라 까지 이끌었는지 말이다. 나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찬장을 뒤져 술병을 꺼내 들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한 모금 들이켰다.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대부분을 바닥에 흘려 보냈다. 고통에 찬 비명 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어느 정도 고통이 가라 앉고나서야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어 전화번호 목록에서 '돌팔이'라 쓰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강동물병원입니다, 진찰받고 싶으신 반려동물의 종과 이름을 말씀해주세요."

 

명랑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너도밤나무, 패러독스."

 

", 진료 예약이 되셨습니다. 1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좀 더 앞당겨줘."

 

", 추가 비용이 드시는 것 아시죠?"

 

"30분 내로 부탁해."

 

", 알겠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곧 있으면, 의사가 올 것이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벽장으로 가 밧줄을 꺼내 들었다. 혹시라도 의사가 오기 전에 그녀가 깨어난다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며, 내가 12 25일에 저지른 짓에 대해 떠올리려 노력해봤지만.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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