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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타에레이)I'm fine.

ㅇㅇ(125.180) 2020.01.31 08:22:17
조회 604 추천 16 댓글 5
														


음악이 울려퍼진다. 거친 호흡과 함께 달려나가는 스네어와 심벌의 불협화음, 그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불규칙한 심장 소리와도 같은 소음에 긴장감과 감정선을 부여하는 베이스, 드럼과 베이스라인이 꾸며놓은 밑그림에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투과시킨 듯 멜로디와 빛깔의 춤을 추는 키보드.


그리고 어쩌면 난잡하고, 광포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만큼 사람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음악에 '혁명' 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보컬이 있었다.


와카나 레이는 적어도 노래를 부를 때 만큼은 그 혁명의 선봉에 있었다.


"Stop."


갑작스러운 정적. 보컬도, 악기도, 그걸 연주하는 사람들도 일제히 멈추고, 순식간에 정지한 시간의 여유를 차마 느낄 틈조차 없이 프로듀서 CHU^2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모두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게 몇 번째 take인지 알고나 있는 거냐고."

"후우...이젠 또 뭐가 문제인데...아차차... 허리..."

"그러니까 평소에 제가 허리 좀 피고 다니라 말씀 드렸잖아요. 자기관리가 최우선! 이라구요..."

"미안, 이번에도 베이스 쪽 문제였어? MR, 다시 부탁할게."

"잘 아네. LAYER."

"...!"


CHU^2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스튜디오 안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Raise A Suilen이 아무리 대(大)걸즈 밴드 시대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페셔널함을 기반으로 깔고 들어가는 그룹이라고 해도 오늘의 밴드 분위기는 심히 날이 서 있었다. 계속되는 리테이크에 지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광견, 최소한의 분위기 환기만 유지하고 있는 키보디스트 메이드, 자신의 인내심과 완벽주의 사이에서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프로듀서, 그리고 와카나 레이. 이러한 밴드 내 압박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전 서포트 기타리스트 하나조노 타에의 밴드, Poppin'Party의 주최 라이브를 멤버 모두가 감상하고 난 뒤부터 그 정도가 심해졌다는 느낌을 멤버 전원이 알게 모르게 받고 있었다.


아마 CHU^2가 공연 후 로젤리아, 그리고 Poppin'Party를 짓밟아버리겟다고 선언한 뒤부터였겠지.


"츄츄, 오늘은 이만 적당히 좀 하라고. 레이야 포함해서 모두... 컨디션이 안 좋을 뿐이야. 오늘 일은 오늘로 마무리짓자. 쓸데없이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마스 씨..."

"마스키, 굳이 그렇게 변호해주지 않아도..."

"물러 터졌다고."

"어이...!"

"기타 파트를 MR로 대체하든, 멤버 편성이 임시로 바뀌었든... 그딴 건 Nevermind. 중요한건 원래 있던, 그래, LAYER,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어디 뒷통수라도 맞고 온 거야? 원래의 flexible하며 energetic한 사운드는 어디로 가고, 그저 현을 튕길 뿐인..."

"츄츄 님, 이젠 제발 그만 하세요!!!"

"시간이 없단 말야!!!"

"그만."

"레이야 님...!"


잔뜩 흥분한 모습의 CHU^2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는 파레오, 마스킹을 뒤로 하고 레이야가 조용히, 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꺼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표정으로, 악기를 챙긴 뒤 나머지 멤버들을 유령처럼 지나치고 스튜디오의 입구로 향했다.


"야, 갑자기 짐은 싸서 어디 가는 건ㄷ..."

"내 잘못이야. 컨디션 관리 실패도, 형편없는 연주도. 방법은 찾아올게."

"...칫."

"레이야 님..."

"...다들, 나중에 보자."


자동문 틈새로 불어온 밤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그리고 와카나 레이는 그 길로 떠났다. 정적이 흘렀다. 각자 맡은 악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음 하나 누르지 않은 채 조용히,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보컬의 마이크 스탠드 자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레이야가 서 있는 것마냥 저만치에 한 마디를 뱉은 건 드러머 사토 마스키 뿐이었다.


"...조심히 들어가라."


-#-


언제부터였을까, 소녀 와카나 레이가 남몰래 '강함'에 집착하게 된 것은.


레이는 다른 또래에 비해 많이 어른스러운 편이었다. 생각도, 행동거지도, 심지어 목소리마저도.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잦은 전근 탓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른스러움'이 어린아이였던 레이를 모든 것에서부터 지켜주지는 못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빨리 알아버린 외로움, 겨우 목소리 때문에 등 뒤에서 받아야만 했던 질투 혹은 멸시, 빼앗겨버린 유년기.


그래서 와카나 레이는 자신의 어른스러움으로 최대한 상처를 덧대기로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어느 쪽이든 튀어나오기만 하면 다른 쪽도 딸려나오기 마련이므로 최대한 막아갔다. 노래 따위 혼자서 관객 분들을 위해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자연스러운. 소녀를 고독의 심연 속으로 몰아넣은 강철 잠수복은 이제 소녀를 단단히 지켜주는 강철 갑주가 되어버렸다. 와카나 레이는 끝없는 심연 속에서 안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철 잠수복 안에서 피가 터져나오는 살갗을 겨우 지혈하던 소녀에게 토끼 한 마리가 찾아왔다. 사탕 한 움큼을 볼에 숨기고 있는 복실복실한 작은 동물. 소녀는 이내 머뭇거리더니, 결국 호기심 많은 표정의 토끼가 입으로 건네는 사탕을 한 입 먹었다. 달콤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달콤함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미소가 나온 적이 얼마만이었던가. 그리고 토끼는 물었다. '왜 혼자서 울어?' 어떠한 악의도, 숨겨진 의미도 없이 소녀 와카나 레이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노래를 부를 수 없어.' '왜?' '내가 아이답게 부를 수 없다고 하니까.'토끼는 그 소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기타를 꺼냈다.


레이와 하나 짱의 첫 만남이었다.


하나조노 타에, 그러니까 '하나 짱'은 와카나 레이에게 있어 말 그대로 색다른 친구였다.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고 쿨해 보이는 외모에 있어서는 비슷했지만, 한 쪽이 내성적이고 예의 바른데 반해, 다른 한 쪽은 가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톡톡 튀고, 그만큼 내면에 솔직했다. 그럼에도 그 둘은 우연찮은 만남 한 번에 친구가 되었고, 서로 상반되면서도 그만큼 어울릴 수 없는 단짝이 되었다. 그 둘을 하나로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레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살려서 저음 위주의 부드럽지만 격정적인 노래를 부르면 하나 짱은 손을 머리 위로 해서 토끼 흉내까지 내며 들어 주었고, 하나 쨩이 뮤직 스쿨에서 새로 배운 프레이즈를 얼렁뚱땅, 하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즐겁게 연주하면 레이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로 호응해 주었다. 특이한 두 어린 소녀는 그렇게 음악으로 누구보다 깊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곤 했다. 두 소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로 헤어지는 때가 오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음악이 그 둘을 다시 굳게 이어줄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시기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와카나 레이에게 부모님의 전근은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그것이 모처럼 마음을 나누게 된 친구와의 이별을 뜻하게 되자 어딘가 모르게 가슴 속이 미어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눈에서 미적지근한 액체가 두 뺨을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물이었다. 레이가 잠수복 갑옷 속에서 한 번도 흘려본 적 없었던. 감정을 숨기고, 무마시키는 데만 급급하며 살아온 레이에게 한 순간의 꿈 같았던 나날과 그것이 끝났을 때의 슬픔은 버티기 힘든 해일이 되어 찾아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슬픔의 파도에 휘말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로 떠밀려갈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도 하나 짱은, 꿋꿋이 레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언젠가 다시 둘을 이어줄 음악의 힘을 믿자고 했다. 우리 모두 떠밀려가기 전에 눈물을 그치고, 추억과 꿈을 버팀목 삼아서 다시 만날 그 날을 향해 나아가자고. 물론 아직은 어린이답게 그 표현은 서툴렀다. 대신 두 소꿉친구는 다짐했다. 노래하자고. 늘 그랬듯이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에서. 언젠가 다시 이 곳에서 만남을 기약하기로.


그렇게 하나조노 타에와 와카나 레이는,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


레이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만월이었다.


공원의 전차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왜인진 모르겠지만 항상 밝은 달만이 홀로 떠 있었다.


달은 결코 홀로 빛나는 별이 아니다.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냥 돌덩어리와 다름없다. 사람들이 달이 빛난다고 생각하는 건 달의 표면이 밝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비추기 때문이다. 달의 어두운 면 따위는 없다. 애초에 달의 모든 면은 어두우니까... 와카나 레이, 레이야는 그 말을 홀로 곱씹었다. 자신의 머리 위에는 항상 달이 떠 있었다고. 도쿄에 갓 도착해 세션 연주를 뛰며 살았을 적에도, CHU^2의 음악을 듣고 '이것이 자신이 추구해야 할 음악인가' 하고 충격을 받았을 때에도, 노래했던 것처럼, 다시 하나 쨩과 역 앞에서 재회했을 때도. 늘상 밤하늘 위에는 고독한 달만이 떠 있었다고 말이다.


다 마신 달곰씁쓸한 커피 캔을 움켜쥐었다. 문득 밤하늘 어딘가에, 작은 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Poppin' Party의 주최 라이브가 생각났다. 레이야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태어난 곳에서 조금 떨어져서

진정한 꿈의 형태를 깨달아


프론트맨 토야마 카스미는 별 모양의 기타를 들고 있었다.


멀고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본 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으니까


멤버 전원이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사랑스러워져서

그럴 때면 그저 한결같이


저 멀리에서 비추는 별빛은 은은하면서도 장엄한 달빛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앞을 향해 노래하는

네가 보고 싶어


하지만 수많은 작은 별들이 노래하는 심포니는


아무리 하늘이 눈부셔도(starry sky)

잡을 수 있는 별은 단 하나뿐


너무나도 눈부시고 아름다워서


그렇다면 지금 망설임 없이(망설이지 않고)

너와의 '미래'에 손을 뻗고 싶어


그리고 '너'는 그 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어.


마음이 떨리는 노래 Returns (내일로)


나와 있을 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그 모습으로


적어도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게 해줘


왜 어째서 달빛같은 가짜 빛이 아니라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 따뜻하게 해줄 꿈은 단 하나뿐


내가 없는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거야?


고마워...


...


'레이, 있어?'


문자음이 들렸다. 디스플레이에는 '하나 짱' 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고, 레이야가 터치하기 무섭게 복슬복슬한 아기 토끼를 밴 회갈색 오드아이 토끼 사진이 올라왔다. 옷짱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작았는데, 이렇게 커버렸구나, 레이야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귀엽네.' '당연하지. 보다 보니 레이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조금 무서워졌다. 레이야는 오늘 연습에서 자신을 계속 짓눌러오던 두려움의 실체를, 막 파악하려던 참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레이야는 문자를 보냈다.


'저기, 하나 짱?'

'토끼장을 새로 살까봐.'

'하하, 그 말도 맞네.'

'근데 레이. 무슨 일 있어?'


레이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렇구나.'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왜?'

'그냥. 혹시 내가 없어서 외롭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입술에서 붉은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내가 괜한 소리를 했어?'

'아니야. 역시 하나짱은 상냥하구나.'

'난 말이지, 외로워질 뻔 한 적 있어.'


'내가 잘못을 해서, 모두가 날 버리고, 외톨이가 될 뻔 했어.'


'토끼는 외로우면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모두가 믿어 주고, 들어 주고, 연주해 줬어.'


'전부 함께 해준 친구들 덕분이야. 물론, 레이 너도.'


'레이?'


'듣고 있나 소령?'

'응? 말해.'


'레이야는, 외롭지는 않은 거지?'


하나 짱이 있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레이야는 생각했다.

왜냐면 다시 만난 소꿉친구를 상처입히고, 약속까지 저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잠수복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고통을 부정하기엔 너무나도 커 버렸다.

레이야는 이 모든 쓰디쓴 말들을 오늘도 삼켰다. 내일 연습만을 머리에 채우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힘겹게 옮겨, 달빛 아래서 텍스트 한 줄을 보냈다.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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