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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아리사와 카스미의 부부 생활 시뮬레이션 (카스아리)앱에서 작성

카스아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02 00:06:17
조회 1297 추천 43 댓글 14
														

"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래!! 연애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더니!! 나, 이런 대접 받고는 못 살아. 우리 이혼해!! "


" 지금 말 다했어!? 나만 잘못했다는 거야? "


" 어휴, 쯧쯧쯧... 그러니까 마음이 있을 때 서로 잘 하지 좀! 다 틀어지고 나서 저러면 뭐하냐고! "


지금 내가 열심히 혀를 차면서 보고 있는 방송은, 매주 일요일 오전에 방송하는 < 걸파피코 - 부부 클리닉 >. 사이가 틀어진 부부들의 사연을 받아서 배우들이 그걸 드라마처럼 연기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할머니가 보시길래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면서 슬쩍 보던 게 은근히 재밌어서, 매주 챙겨보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니까. 지금 나오는 사연은 결혼을 하고 보니 서로 너무 맞지 않아서 결국 이혼의 위기까지 내몰린 부부의 이야기다.


사연이 끝나면 심리 상담 전문가 분이 나오셔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다. 그다지 공감이 안 갈 때도 있지만, 그건 내가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안 해 봐서 그렇겠지.


" 결혼이라는 것은 연애보다 훨씬 큰 책임감과 배려심이 필요해요. 단순하게 생각해도, 지금까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살아 온 두 사람이 이제 한 집에서 살게 되는 것이니까요. 결혼을 생각하고 계시는 연인 분들은, 충동적으로 결정하시기 보다는 결혼 생활에 대해 서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보시는 것도 좋아요. 각자의 삶에서 충돌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미리미리 서로 배려하고 이해해준다면 훨씬 원만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겠지요. 결혼 생각이 아직 없으신 분들도 마음에 두고 계신 분을 상대로 한 번쯤 해보시면 큰 도움이 되실 거에요. " 


" 루루룽~ 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야 쨩...? 아하하, 재밌어! 아야 짱은 진행도 못하는 구나? 멍 때리고 있지 말고 클로징 멘트 해야지! "


" 에? 아아~!! 죄, 죄송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Pastel*Palettes 의 둥근 산을 화려하게! 마루야마 아야와 히카와 히나가 전해 드리는 < 걸파피코 - 부부 클리닉 > 이었습니다! 시청해 주시는 여러분, 다음 이 시간에 만나요~! "


내 생각에는, 저 부부 두 명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 연애하면서 서로 콩깍지가 단단히 씐 상태에서는 결혼하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겠지? 저렇게 안 맞는다는 것도 모른 채로 덜컥 결혼을 해 버렸으니까 작은 것부터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애인이라고 해도 다른 집 사람이랑 이제부터 24시간 한 집에서 살게 되는 건데,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그건 그렇고 이미지 트레이닝은 확실히 좋은 방법 같다. 요즘은 20대에 결혼하는 사람이 오히려 드무니까, 내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건 앞으로 10년은 더 먼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전문가 분이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으니까... 한 번 해 볼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상대는 처음에 생각난 카스미로 결정했다. 딱히 내가 카스미를 좋아한다 거나, 결혼하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나랑 제일 가까운 애니까 상상하기 편하기도 하고... 내가 카스미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긴, 완전 마음에도 없는 애나 생판 모르는 연예인을 상대로 망상할 수는 없잖아? 이런 저런 기준을 적용한 끝에 남는 애가 카스미였을 뿐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행복한 상황만 상상해서는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상대와 나의 단점을 위주로 시뮬레이션 해 봐야 하는 거니까! 지금 당장 생각나는 카스미의 맘에 들지 않는 점이라면 주말에는 자주 늦잠을 잔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주말 오전에는 좀체 시간을 딱 정해 놓고 약속을 잡을 수가 없어서 오늘도 그냥 일어나는 대로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해 놨을 정도니까. 생활 패턴이 안 맞는다면 나중에 같이 살 때, 분명 불화의 씨앗이 되겠지... 일단은 그걸로 한 번 상상해 볼까?

*


" 어이, 카스미! 일어나라고. 일요일이라고 너무 늦잠 자는 거 아니냐, 너? "


" 우음... 아리사아... 한 시간만 더... "


" 5분도 아니고, 길어!! 이불 뺏기 전에 얌전히 일어나서 아침 먹으라고. "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일요일에는 누가 깨워주지 않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단잠을 즐기는 카스미 녀석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불을 둘둘 말고 팔자 좋게 누워 계시다. 평일에 고생하는 걸 아니까 주말에는 푹 쉬게 해주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침은 먹이고 싶은 마음이다.


카스미가 누워 있는 침대에 걸터 앉자, 내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 오더니 내 허리를 감싸 안고는 아직도 잠기운 가득한 얼굴로 내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 편하게 눕고 싶은지 자꾸 머리를 뒤척이니까 꽤 간지러워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몇 번을 뒤척이다가 드디어 편한 자세를 찾았는지, 어린애같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내 허벅지 위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 귀여워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더 재워 줄 생각은 없다.


" 그렇게 내 허벅지 베고 자다가 다리에 쥐 나면 책임질 거야? "


" 으음... 그럼, 내가 주물러 줄게... 에헤헤, 아리사도 이리 와, 나랑 더 자자... "


그러더니 갑자기 내 팔을 잡고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긴다. 순식간에 카스미와 같은 침대에 눕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 가슴 쪽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를 엄마를 찾듯이 꼭 끌어안으니까, 마치 다 큰 애를 키우는 느낌... 편안히 다시 잠에 들려는 카스미의 표정을 보니까 흐뭇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내 품에 안겨 있는 걸 좋아해 주는구나. 내가 옆에 있어주면 이렇게 편안한 표정을 지어 주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카스미의 달콤한 유혹에 깜빡 넘어갈 뻔 했다.


" 아침은 먹어야지, 카스미. 아침 먹고 나면 다시 자게 해 줄게. "


그 말에 살며시 눈을 뜬 카스미가 나를 보자마자 생긋 웃는다. 방심하고 마주 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볼이 빨개져 버린 것이 부끄러워서,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카스미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얼굴을 돌리는 것도 허락해 주지 않고, 내 뺨을 자꾸 쓰다듬는다.


" 나, 일어나자마자 바로 아리사가 보이는 거 좋아해. 그러니까 이렇게 깨우러 와주는 아리사가 너무 좋아. 어제까지만 해도 아리사를 안고 잤었는데, 눈을 떴는데 아리사가 곁에 없으면 쓸쓸하니까... "


" 아, 알았어... 맨날 깨워주면 될 거 아니야... 쵸마맛~!!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냐! 아침밥 다 식으면 네가 다시 만들게 할 거니까, 얼른 일어나서 밥 먹으라고! "


카스미가 키득키득 웃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해 온다.


" 아리사도 피곤하면서~! 왜, 어제 우리 밤 늦게까지... 아리사 엄청 귀여웠어. 내가 이곳저곳 만질 때마다 귀여운 소리를 내니까, 진짜 키라키라 도키도키... "


" 누, 누가 귀여운 소리를 냈다는 거야!! 키라키라 도키도키를 그럴 때 쓰지 말라고! "


" 에헤헤... 아리사, 딱히 일정도 없는데, 우리 밥 먹고 나서 또 같이 잘래...? 후후, 같이 껴안고 누운 채로 키스라든지, 해 버릴까...? " 


*


" 후흐흐, 에헤헤, 후후.... 카스미 녀석, 아무리 나를 좋아해도 그렇지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고... 물론 우린 이제 부부니까, 토야마 아리사가 되어 버렸으니까 키스 같은 거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리지만...? 물론 카스미 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보다 더한 것도, 에헤헤... 읏!?"
 

아니, 분명히 서로 갈등하는 상황을 상상해야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방금 난 뭘 상상한 거람. 밀려오는 자괴감에 소파 쿠션에 연이어 얼굴을 찧는다.


아무래도, 좀 더 큰 단점으로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려야 할 것 같다. 최대한 부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카스미는 지금 확실히 정해진 진로도 없고, 공부에도 흥미가 없으니까 어쩌면 나중에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할 지도... 나랑 결혼한 후엔, 흔히 말하는 기둥서방처럼 살아갈 지도 모른다. 왜, < 걸파피코 - 부부 클리닉 > 에도 직장을 잃거나 일할 생각이 없는 남편 때문에 혼자서 가정을 책임지느라고 고통 받는 아내가 흔하게 나오니까! 개인 파산 신청, 빚, 압류, 신용 불량자, 알코올 및 니코틴 중독...! 경제력이 없는 성인에게 따라 붙는 무서운 말들이 머릿속에서 하나 둘씩 떠오른다. 카스미로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정말 미안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따른 시뮬레이션일 뿐이니까! 어디, 무능력한 기둥서방 카스미로 다시...


*


" 아리사아아~!! 다녀 왔... 아리사, 안색 좀 봐! 완전 피곤해 보여!! 자, 얼른 가방이랑 겉옷 나한테 줘! "


" 응, 오늘 일이 예상보다 늦어져서... 온다고 한 시간보다 늦게 와서 미안해. "


" 응응, 아니야! 같이 저녁 먹자? "


고된 일이 끝나고 드디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사랑스러운 내 아내 토야마, 아니 이치가야 카스미가 나를 반겨준다. 마치 텅 빈 집에서 주인을 오매불망 기다린 강아지처럼, 없는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 것만 같은 표정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카스미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담소를 나누다 보면, 직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겪은 오만가지 일들도 모두 잊혀지고 금세 즐거워진다. 고등학생 때부터, 카스미는 대화하는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걸 정말 잘 했으니까. 재밌었던 일을 얘기하면 활짝 웃어주고, 화가 났던 일을 얘기하면 나보다 자기가 더 속상한 표정으로 같이 화내 주니까 쌓였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풀리는 기분...


" 그래서, 오늘도 또 랜덤 스타 둘러 메고 한량처럼 놀러 나가셨죠, 이치가야 카스미 양? "


" 으응~? 아하하...! 청소랑 빨래랑 분재에 물 주기랑, 아리사가 메모에 적어 놓은 집안일 다 하고 나갔다구? 그리고 놀러 나간 거 아니고, 재능 기부야! "


" 좋은 일 하니까 다행이네. "


카스미는 요즘 남는 시간에 동네 요양원이나 고아원, 복지 센터를 돌면서 공연을 하고 있다. 쓸쓸하게 혼자 집에 놔둬야 하는 게 영 마음에 걸렸는데, 밴드 했던 경험도 살릴 겸 좋아하는 기타도 맘껏 치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길거리 버스킹도 재밌지만, 자기 말로는 이것도 이것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한다. 역시 쟤는 음악을 시켰어야 해. 전에는 괜히 나만 외벌이를 하는 것이 맘에 걸린다면서, 알바라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가 편의점 사장님한테 엄청나게 항의 전화를 받고 한 달도 안 되어서 짤렸다. 시재점검을 시켰는데, 마이너스 100만원이 나와서 카스미가 빼돌린 줄 알았다고... 결국 모든 제품들의 가격 뒤에다 0을 하나 더 붙여서 계산한 카스미 탓이긴 했지만.

 
" 응! 포피파 때 연주했던 곡들, 혼자서 멜로디만 연주하면서 노래 불렀는데도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 줬어! 다들 몰려와서 언니, 누나 하면서 맨날 와서 기타 쳐 달라고 아우성이라서, 정말~! "


" 우리 집안에서 완전 대스타 나셨구만~? 나중에 자식 기타 학원비는 굳었네. "


그 대목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얼굴을 붉히는 카스미 때문에 괜히 나도 민망해졌다.


" 아, 아리사... 가족 계획은, 전에 우리끼리 얘기했던 대로, 맞지...? 에헤헤... 조금 더 앞당기고 싶으면, 나는 준비 됐으니까... 아리사를 꼭 닮은 예쁜 딸이었으면 좋겠다. "


" 쵸마맛~!!! 그,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냐!! 그리고 닮을 거면 네가 더 낫지! 괜히 나 닮았다가, 성격 꼬인 애면 어떡하냐고... "


" 후후, 그런 아리사도 귀여우니까, 분명 아리사를 닮은 우리 아이도 귀여울 거야~? "


즐거웠던 식사가 끝나고, 같이 식기를 정리하다가 카스미의 다리가 꽤 부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어이 카스미. 너, 또 오늘 하루 종일 걸어 다닌 거야...? "


" 아~? 아니야 아니야! 아리사가 말한 대로, 택시 타고 갔다 왔어... "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리가 완전 퉁퉁 부었는데. 거짓말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아휴, 체크 카드 만들어 줬는데 왜 쓰질 않는데? 월초에 입금할 때 보면 항상 액수가 거의 그대로잖아. 너 그게 무슨 적금인 줄 알아? "


카스미가 드물게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내가 벌어온 돈을 쓰기만 하는 게 여전히 맘에 걸리는 거겠지.


" 카스미, 들어 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는 게 난 더 걱정이라고. 그리고 뭐 사 먹고 싶은 거나,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그 액수 내에서는 써도 된다고 내가 항상 얘기하잖아. "


" 그치만... 그냥 걸어 다니면, 돈도 아낄 수 있고... 이 돈 아껴서 아리사 사고 싶은 거 사는 게...! "


" 잔말 말고 써. 안 쓰는 게 더 걱정이라고 했지? 괜한 걱정하게 하지 말고, 편하게 놀러 다니시라구요. "


" 아리사...! 에헤헤.... 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집 앞 편의점 갈 때도 카카오 택시 부를게! "


" 그건 아니지!! "


*


" 우흐흐, 후흐, 카스미~! 너 지금 하던 대로 맨날맨날 기타만 치고 놀러 다녀도 되니까... 그리고 뭐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 하라고? 이치가야 카스미한테는, 내가 토네가와가 아니라 토네가와 할아버지를 팔아서라도 사 줄 테니까... 에헤헤, 헤헤... 카스미, 미안해하지 않아도 우리는 결혼한 사이니까, 이른바 부부 공유 재산이라는 거니까~ 평생 재산 분할할 걱정 따윈 안 하고 살게 해 줄게... 헉!! "


어느새 입가에 흐르는 침을 누가 볼까 재빨리 스윽 닦는다. 완전 무리... 어느 쪽으로 생각해 봐도, 카스미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카스미같이 남한테 공감 잘 해주고 배려심 가득한 애랑 어떻게 싸울 수 있다는 거야? 얘가 남한테 뭘 숨길 애도 아니고, 나쁜 짓 할 애도 아니니까. 막장 드라마처럼 도박에 빠진다 거나, 외도할 걱정 따윈 안 해도... 잠깐, 외도...?


*


" 카스미... 너한테 이런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얘기 좀 해. "


" 아, 아리사....?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


살짝 겁에 질린 듯 조심스레 물어보는 카스미가 아직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역시 먼저 좋아하게 된 쪽이 손해다. 평생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처음에는 괜한 걱정일 뿐이라고 카스미를 의심한 것에 대해 죄책감까지 느꼈지만, 정황상 증거가 너무 확실하다...


" 거두절미하고 물어 볼게. 요즘, 왜 이렇게 야마부키 베이커리에 오래 있는 거야? "


" 아, 아리사....? "


"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대 줘. 카스미, 제발. "


" ...말할 수 없어. "


카스미가 대답을 거부하자, 마음 속에서 무언가 산산조각 나서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끝이 찡하게 쓰려오고,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진다. 말할 수 없다니, 어째서. 부부 사이에도 말할 수 없는 일이라니. 대체 뭐 때문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믿을 만한 친구 사이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피가 나오도록 꽉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순간에도 카스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밉고, 무섭다. 카스미에게 느끼는 배신감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카스미의 마음이 이미 나에게서 떠나 버렸을 까봐 무섭기만 한 내가 너무 싫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지막 작별의 말을 카스미에게 전하려고 할 때 카스미가 갑자기 나를 와락 안는다. 이젠 누구보다 익숙해진 카스미의 향이 확 끼쳐오자,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 ....이러지 마!!! 누굴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


내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카스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미안함도, 두려움도 아닌 당혹스러움이었다... 


" 아리사....!? 미안! 미안해!! 사-야가 결혼 기념일 때 쓸 케이크 제과를 알려준다고 해서, 요즘 그거 배우러 다니느라고...! 집에는 큰 오븐이 없으니까... 흐윽... 미안해, 숨겨서 미안해 아리사.... 내, 내가 잘못했어, 흐윽... 흑.... "


*


" 그럼 그렇지, 카스미가 무슨 외도를... 에헤헤... 카스미~!~! 라면 물도 한 봉지 넘어가면 제대로 못 맞추면서, 무슨 결혼기념일 케이크를 만든다고 사람 놀라게 만드는 거냐고~!! 으이구, 진짜... 에헤헤, 귀여워... 내가 울렸으니까, 내가 책임지고 달래 줘야지... 우는 카스미 완전 귀엽겠다.... 너무 미안할 것 같은데, 귀엽겠...... "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쿠션을 껴안고 소파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때, 소파 팔걸이 위로 툭 튀어나온 것은 익숙한 보라색 눈 한 쌍, 그리고 익숙한 뿔 머리.


" 카카카카카, 카스미!?!? "


" ....... "


완전히 홍당무가 돼서, 내 눈을 피해버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너,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왔어!? 왜 나 안 불렀어!? "


" 아리사가, 전에 비밀번호.... 알려 줬으니까... 그리고, 아리사가 막 혼자 중얼거리느라,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대답도 안 해줬어... " 


" ...다 들었어? "


그 말에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두 무릎에 얼굴을 숨기더니, 개미 만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굳이 고르면 이치가야 카스미가 좋아... 아리사가 원한다면 일찍 일어날게. 또 역시 집에서 놀기만 하는 건 마음에 걸릴 것 같고... 그, 그리고, 평생 아리사만 좋아할게...!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읍, "


" 크아악~!!! 나는, 그냥 방송에서 말해준 걸 해본 것 뿐이니까!! 너, 너 진짜 오해하면 죽어!! 진짜 잊으라고 했다!! 누구한테 말했다간, 어떻게 되는지 보라고 토야마 카스미~!!! "


*


아리사 상상 속 주접 가득 사이코드라마 결과 : 행복한 부부 생활이 될 것으로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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