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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냥보] 순애

NopiGo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3 16:01:27
조회 772 추천 28 댓글 10
														

 순애 [ 純愛 ]



 이 이야기의 결말이 이럴 거라는 건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나만이 혼자 비극으로 끝날 이야기라는 건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어째서 이렇게 팔이 떨리는 건지.


 아직은 조금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4월의 어느 날.

 

 나는 조금 달콤하게 만든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고선 문득 떠올리고 말았다.


 함께 점심을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항상 눈부시게 빛나던 너의 미소가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정말....... 나쁜 녀석이라니까.”


 빙글빙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래, 너는 정말 나쁜 녀석이 분명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랑 사귀자.”


 그건 ‘주세요.’ 같은 부탁의 말투가 아니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서우는 담담하게 나에게 고백의 말을 전했다.


 “싫다면?”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날카롭게 대답했다.


 “앞으로 한 달이래.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날.”

 

 그리고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심각한 말을 꺼냈다.


 서우는 항상,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무표정이었다.

 

 적어도 난 서우가 밝게 웃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렇게 무표정으로 있을 수 있는 걸까.


 서우는 우리 학교에서는 꽤나 유명 인사였다.


 본인의 의지로 유명 인사가 된 건 아니었지만.


 서우는 흔히 말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애였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나오는 이상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이상한 아이에게 나는 지금 고백을 받았다.


 평소에 말도 한 번 안 섞어본 그런 이상한 아이에게.


 “남은 한 달 동안 내 여자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바보구나, 너. 싫어. 거절할게.”


 그 말을 들은 서우는 드물게 작은 미소를 드러냈다.


 어디가 웃음 포인트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부탁을 안 들어주면, 분명 후회할 걸?”


 “후회?”

 

 “한 달 뒤에 내가 죽었을 때 애들이 수군거리면서 너를 바라보겠지. 수명이 한 달 남은 불쌍한 애 부탁도 안 들어준 야박한 사람이라면서.”


 정말, 비열한 웃음이었다.


 “부탁이야? 협박이야?”


 “부탁이자, 협박.”


 나는 한껏 얼굴을 찡그리고 벌레 씹은 표정으로 서우를 바라보았다.


 “푸훗, 그 표정 진짜 매력있네.”


 나는 처음으로 서우가 크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어디가 웃음 포인트였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서우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그래, 굳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앞에서 서우가 심심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일까.


 “속눈썹도 길고, 눈망울도 초롱초롱하고.......”


 “........”


 “이렇게 예쁜데 왜 혼자 지내는 걸까.”

 

 “시끄러워.”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선 한 장, 책을 넘겼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응, 뭐든지 물어봐.”


 “어째서 나야?”


 “응?”


 “어째서 나를 여자 친구로 삼을 생각을 한 거야.”


 전혀 메리트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사람.


 자신을 챙기는 데에도 바빠서 남을 잘 배려하지 못 하는 사람.


 패션 센스가 최악인 사람.


 취미가 맞지 않는 사람.


 그 모든 악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어째서 서우는 나한테 고백할 생각을 한 걸까?


 “다른 좋은 사람들 많잖아, 왜 굳이 나야?”


 “아, 그런 소리였어?”


 서우는 다시 한 번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미우, 너는 항상 혼자 있잖아? 고고하고, 초연하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로 들으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야.”


 “제대로 설명해. 그렇게 말하면 하나도 전달이 안 되잖아.”


 “알려주고 싶었어.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사실을.”


 나는 멍하니 서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서우의 표정이 지금과는 달리 조금 진지한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겼다.


 “그런 다음에 내가 죽으면 엄청 가슴 아플 거 아니야. 줄곧 혼자가 외롭다는 사실을 잊고 살던 사람이 외로움을 깨달아버리면, 내가 죽었을 때 엄청 슬퍼해주겠지?”


 “너.... 진짜 쓰레기구나?”


 “어차피 한 달 뒤에 죽을 건데 뭐.”


 웃으면서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내가 더 쓰레기가 된 거 같잖아.


 “그래서 고백했어.”


 “아, 그래.”


 나는 다시 한 번 한 장, 책을 넘겼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부탁해.”


 서우가 건네는 마지막 말에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미우 너는 성적 좋으니까 분명 좋은 대학 갈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왜일까, 선생님의 미소가 흑백으로 보이는 건.


 동그라미가 가득한 시험지가 흑백으로 보이는 건.


 아, 시험지는 원래 흑백이구나.


 “감사합니다.”


 나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그 상냥한 미소를 간신히 받아넘겼다.


 삶이라는 건, 예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차피 한 달 뒤에 죽을 건데 뭐’


 서우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한 달 뒤에 죽는다면, 나도 제대로 이 상냥한 미소를 받아넘길 수 있었을까.


 선생님과의 면담이 끝나고 여닫이문을 열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진동이 울렸다.


 ‘오늘, 데이트 예정. 집에서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와.’


 당연하게도 서우였다.


 예쁜 옷이라니. 교복이면 되겠지.


 그런 작은 감상을 담고선 답장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쪽으로 넣어버렸다.


 






 “어째서 교복?”


 “예쁘니까.”


 “........”


 “너,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진짜 진심으로 사람에게서 혐오 받는 표정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애초에 사람에게서 이런 감정 표현을 받아본 지도 꽤나 오래 전 일이었는데.


 “당장 옷 사러 가자.”


 “일단 말해두겠지만, 너 고3이다?”


 “알아.”


 “그렇다는 건 나도 고3이다?”


 “안다고.”


 “너는 별로 상관없겠지만, 나는 엄청 상관있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하루 정도는 놀아도 되잖아. 너 어차피 성적도 엄청 좋으면서.”


 서우는 강제로 나를 끌고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굳이 저항하지 않고, 서우의 발걸음에 맞춰 앞을 향했다.





 


 “있잖아. 지금 어떤 기분이야?”


 “즐거워. 사랑하는 여자 친구랑 같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닌데.


 라고 지적하려다가 피식 웃어버리고선 이어서 말했다.


 “아니, 앞으로 살날이 한 달 남은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나 궁금해서.”


 그 말을 듣고 서우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죽는 건 사실 그렇게 두렵지 않아. 실감도 잘 안 나고.”


 서우는 여러 가지 옷들을 둘러보며 작게 신음했다.


 나한테 어떤 옷이 어울릴지를 고민하는 건지, 내 말을 듣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건지.

  

 서우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 대담해졌다는 거?”


 서우는 그렇게 말하며 한가득 옷을 집어 들고선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겠어. 당연히 시착(試着)이지.”


 있는 힘껏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서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서우는 나를 강제로 탈의실에 넣어버리고선 문을 닫아버렸다.


 “맘에 드는 거 있으면 말해, 전부 다 사줄 테니까.”


 “내가 봐도 예쁜지 어떤지 모르는데.”


 “그럼 내가 봐서 예쁜 건 전부 다 사서 줄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살날이 앞으로 한 달 남은 사람의 사고방식은, 역시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니까.







 “이렇게 입으면 정말 예쁘면서 왜 맨날 그렇게 입고 다니는 거야.”


 “그렇게 밖에 못 입어서 미안하게 됐네요.”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평했지만, 서우는 새 옷을 입은 나를 관찰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진짜... 예쁘네.......”


 “뭐... 뭐야. 갑자기.”


 서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런 모습 처음 보네.


 “미우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를 좋아하고 있어.”


 “믿기지 않는데.”


 장난감 정도로 보고 있는 거라면 인정하겠지만.


 “뭐, 언젠간 알게 되겠지.”


 서우의 담담한 말투.


 고작 한 달 남았는데?


 라고 말을 꺼내려다 그냥 서우를 바라보았다.


 서우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몇 번이고도 물어보고 싶었다.


 고작 한 달 남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거야?


 이런 외톨이와 함께 지내도 되는 거야?


 서우는 언제나 담담한 표정이었다.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데, 남은 한 달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진짜 바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서우와 함께 하는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특별한 일이라고 말할 건 아무 것도 없이.


 그런 아무 일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도중,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서우가 너를 선택한 건, 그냥 장난이나 우연 같은 게 아니라고.”


 서우의 친구, 채린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부터 서우는 너에게 고백하려고 했었어.”


 “예전?”


 “시한부 선고를 받기 전부터.”


 나는 깜짝 놀라 채린이를 바라보았다.


 채린이는 분한 듯, 슬픈 듯 여러 가지 감정이 합쳐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우를 만나고 나서는 이런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너는 잘 몰랐겠지만, 서우는 그림을 엄청 잘 그려. 센스가 있다고 할까.”


 채린이의 말로는 서우는 수많은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이였다고 한다.


 여러 대학의 실기 대회에서도 높은 성적을 받았던 건 다양한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는 자만하지 않았다. 노력을 멈추지도 않았다.


 채린이는 궁금증이 생겨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미 대학 거의 붙은 거나 다름없으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스스로 다짐하고 있거든.”


 “뭐를?”


 “대회에서 입상하면, 고백하겠다고.”


 “지금껏 몇 번이고 입상했잖아.”


 “그러게. 다짐하는 거랑 실천하는 건 조금 다른 모양이야.”


 고백 상대는 이미 알고 있었어.


 미우 너였어.


 “어째서 나였던 거야?”


 “초등학교 때 엄청 밝게 웃는 너한테 반했대. 계속 말 걸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하네.”


 그 이유도 조금 이해가 갔다.


 나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주변 사람들과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말 걸기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


 “초등학교 때부터 말 한 번 못 걸었는데,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그렇게 대담해진 거야.”


 아련한 표정이었다.


 “이상한 애라니까. 서우도.”


 “시한부를 선고 받고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상한 애였던 거였나.”


 “응.”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이상한 거 맞잖아. 그리고 그게 서우의 매력이고.”


 확실히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열심히 그리던 그림, 너한테 고백하고 나서는 한 번도 안 그렸어.”


 그 말을 듣고,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 인생의 전부였을 텐데.


 자신이 인생을 걸고 하던 행위를 포기한다는 건, 조금 대담해지는 정도로 할 수 있는 행위인 걸까?


 그림에 대해 미련이 남지는 않았던 걸까?


 “그만큼 너를 좋아했다는 거겠지. 남은 한 달을 전부 너에게 바칠 만큼.”


 채린이는 말했다.


 “엄청 열심히 참고 있을걸? 몇 년 동안 말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한 달 만에 다 전해야 하는 상황인 거야. 서우는.”


 아, 그래서 항상 담담한 표정이었던 건가.


 그 표정의 진의를 깨달은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서우가 너무나도 귀여워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죽음과 너.


 너와 죽음.


 너의 그 초연한 웃음의 의미를 깨닫고 난 뒤에, 나는 제대로 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에게 주어진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난 뒤에, 나는 제대로 된 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데이트하자.’


 항상 서우와의 만남은 서우의 문자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근 일주일간에는 별 거 없는 일을 하고, 별 거 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날의 서우를 기억하고, 그날의 감정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감정이란 건, 이런 것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서우에게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쯤, 서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런 다음에 내가 죽으면 엄청 가슴 아플 거 아니야. 줄곧 혼자가 외롭다는 사실을 잊고 살던 사람이 외로움을 깨달아버리면, 내가 죽었을 때 엄청 슬퍼해주겠지?’


 두려워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길고, 길고, 또 길 것만 같았던 한 달은 순식간에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 여기에 사인하면 돼.”

 

 서우가 내게 내민 건 한 장의 혼인 신고서였다.


 이제는 한숨이 나오기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야.”


 “처녀 귀신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


 나는 혼인 신고서를 받아들고선 그대로 서명해버렸다.


 일절 망설임도 없이.


 “어... 어라?”


 “왜. 놀랐어?”


 “절대 안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생애 마지막 소원이라면서 떼쓰려고 했는데.”


 서우는 혼인 신고서를 받아 들고선 아이처럼 웃었다.


 “괜찮겠어? 동정이나 연민으로 서명한 거라면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런 감정이었으면 애초에 지금 너랑 같이 있지는 않겠지.”


 그래, 지금의 내 감정은 동정이랑 연민과는 조금 다르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 담담하게 내 앞에서 미소 짓는 너를 향해 내가 드는 감정은 그런 어설픈 감정이 아니다.


 ‘조금만 더 일찍 찾아오지 그랬어.’


 “응? 뭐라고 했어?”


 “아무 것도 아니야. 바보야.”


 “아아, 이렇게 쉽게 버킷 리스트를 이룰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서우는 혼인 신고서를 들고선 한 바퀴 빙글 돌았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텐션이었다.


 “내일 결혼식이라도 해버릴래?”


 “정말로? 그거 기대되네.”


 서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랑을 소설로 적으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한 소녀에게 놀림 받다가 버려지는 한 여자의 비극.”


 “아니. 분명 이가 썩어버릴 정도로, 아니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한 순애물일 거야.”


 “뭐야, 그게.”


 우리들은 한동안 서로에게 감도는 미묘한 기류를 계속해서 곱씹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오늘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마지막 시간이 될 거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드디어 죽냐?”


 “응, 드디어 죽는 거 같네.”


 서우는 침상에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무척이나 가늘었다.


 아무래도 병이 심해졌다는 모양이었다.


 “어때?”


 “뭐가.”


 “역시, 혼자는 외롭지?”


 “.......”


 “역시, 같이 있으면 즐겁지?”


 “하나도 안 그렇거든. 바보야.”


 “나는 그런데. 헤헤.”


 서우의 웃음에 서린 눈물이 방울방울, 내 가슴을 적셨다.


 “나는 네가 없으면 좀 외로울 거 같은데.”


 서우가 잡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너랑 같이 있는 게 훨씬 즐거운데.”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결혼식도 못 하고 그냥 가려고?”


 “아아, 그러게 말이야. 그건 좀 아쉽네.”


 서로의 어색한 웃음. 어색한 분위기.


 그 분위기는 순식간에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사랑해.”


 그 말이, 서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이 방아쇠가 되어 내 심장을 꿰뚫었다.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가만히 서로를 끌어안고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서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인지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너와 함께하며 처음 깨달은 수많은 감정들이 흘러넘쳐서, 이대로 심장이 터져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너와 함께하는 마지막 밤은 단 한 순간도 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봄이잖아. 봄.


 조금은 따뜻해져도 되는 거 아니야?


 이제는 더 이상 서우가 없는 하루의 점심시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옥상의 문을 열었다.


 내가 얇게 입고 온 탓인가, 아니면 아직 날씨가 쌀쌀한 탓인가.


 아니면, 더 이상 네가 없어서 그런 걸까.


 아직도 추위에 내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쁜 년.”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


 정말, 너 말대로 됐네.


 혼자여서 외로워.

 

 너의 따뜻한 포옹이 그리워.


 네가 없는 이 세상이 이렇게 차가운지 몰랐는데.


 ‘우리 사랑을 소설로 적으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한 소녀에게 놀림 받다가 버려지는 한 여자의 비극.’


 ‘아니. 분명 이가 썩어버릴 정도로, 아니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한 순애물일 거야.’


 ‘뭐야, 그게.’


 아아, 정말 네 말대로였어.


 하나도 틀리지 않고, 네 말대로였어.


 너와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적는다면........


 분명 훌륭한 순애물이 나오겠지.


 나는 난간을 딛고 올라서 줄곧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네가 있는, 바로 그곳을.



 순애 [ 殉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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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부분이랑 엔딩 부분만 열심히 쓴 소설.


엄~청 함축해서 잘 전해졌을까 모르겠습니다.


여튼 뭐. 주제가 순애인 만큼, 순애로 시작해서 순애로 끝나는 소설이 쓰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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