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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예전에 요우치카 써놨던거 생각나서 가져와봄모바일에서 작성

ㅇㅇ(39.7) 2020.02.23 16:39:31
조회 208 추천 14 댓글 2
														

"와타나베 요우씨, 당신은 곧 죽습니다."

"뭐?"

오전의 시험만으로 수업이 끝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교한지도 조금 된 한낮의 교정에서 혼자서 하교하고 있던 와타나베 요우에게 한 소녀가 등 뒤에서 말을 꺼냈다.
검은 생머리에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길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나이는 초등학생 고학년, 혹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지만 온몸에서 나오는듯한 왠지 모를 위압감에 요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수명은 약 하루 정도입니다. 지금 당신이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입니까?"

"소원? 혹시 설문조사 같은 거야?"

"아닙니다. 저는 당신에게 죽음을 예고해 드리기 위해 온 사신입니다."

"에?"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말을 잇는 소녀는 자신을 사신이라고 칭했다.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던 요우에게 소녀는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타살, 병사, 사고사 등 자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는 사람에게는 원한이 남아 성불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는 것이 저승의 규칙입니다."

"...장난이지? 사신이라고? 그리고 내가 죽어? 그런 걸 누가 믿어. 아하하 장난치고는 재밌네."

"믿기지 않으신다는 표정이군요.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농담으로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손을 저으며 웃는 요우에게 소녀는 작게 한숨을 쉰 뒤 오른손을 펼치며 입으로 무언가 주문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오른손에 안개 같은 것이 모이더니 뭉쳐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신이 들고 다닐법한 거대한 낫이 생겨났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눈이 동그랗게 커져 놀라는 요우에게 소녀가 낫을 치켜들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사신이라고 해도... 너같이 어린애가... 정말?

"시간과는 관계 없이 존재하는 저희들에게 겉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 날카로운 날을 빛내고 있는 낫을 애써 부정하는듯 떨리는 목소리로 지적했지만, 가볍게 모습을 바꾸어 성인의 모습, 그리고 노인의 모습으로 차례차례 바뀐 뒤 다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요우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소녀의 말을 인정한다는 것은 소녀가 처음에 했던 말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당신에게는 이 모습으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만..."

"...내가 죽는다고?"

소녀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소녀가 처음에 했던 말을 믿게 된 현재의 요우에게는 닿지 않았다. 평소 활기차게 지내던 그녀였으나 자신이 죽는다는 공포와 경악에 마주하자 눈의 초점도 흐려지고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미 요우에게는 자신 앞의 소녀에게 신경 쓸 여유마저 사라지고 혼자 머리를 감싸안으며 패닉에 빠져 있었다.

"내가? 어째서? 왜? 왜? 왜?"

"진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변에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이 곳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것을 눈치챈 소녀가 낫을 거꾸로 쥐고 바닥에 한번 가볍게 찍었다. 그 뒤 낫에 찍힌 그 장소에서부터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풍경이 바뀌어 온통 하얀색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신 소녀와 요우, 둘 밖에 없는 세상에서 소녀는 바닥에 앉아있던 요우에게 다가가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아."

초점을 잃은 눈으로 거의 울 것만 같았던 얼굴이었던 요우의 표정이 잠시 멍해지더니 이내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소녀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약간의 접촉으로 대상을 침착하게 만들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사신의 능력을 발동해 요우를 진정시켜 상황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된 요우는 상황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소녀에게서 또 다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까보다는 훨씬 더 냉정하고 이성적인 머리로 생각해 본 결과, 마침내 그녀는 죽게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신이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는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응. 이해 했어. 어차피 이 소원으로 살려줘- 라던가 이런 건 안되는거지?"

"당연히 그렇습니다. 결정된 운명에 간단히 간섭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으음... 무슨 소원으로 할까."

자신이 죽으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우 또한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기에 쉽사리 소원을 빌 수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네. 내 소원은 말이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소원을 정한 요우는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댄 후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 소녀는 눈을 감더니 가능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소원은 지금 이뤄질 것입니다."

소녀가 눈을 뜨고 선언한 뒤에 낫으로 한번 바닥을 찍었더니 다시 한 번 온 세상이 눈부시게 바뀌었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던 요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어지러워지는 기분이 들면서 무언가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요우? 많이 피곤해?"

"......"

요우와 함께 우라노호시 여학원 바로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요시코가 요우를 깨웠다. 요시코는 요우와 이야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벤치에 앉은 뒤 묘하게 대답이 흐려지던 요우를 자게 둔 뒤 버스가 슬슬 올 때가 될 때까지 자도록 두었다.
그 뒤로 조금 시간이 흐르고 앞으로 1, 2분만 있으면 버스가 오게 될 것이리고 생각한 요시코는 요우의 어깨를 건드렸다.

"....아? 나 졸았었구나! 깨워줘서 고마워 요시코!"

"감사받을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요우는 잠에서 갑작스레 깨서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지만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는 상황을 파악한 후 활짝 웃으며 요시코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받는데에 익숙하지 않은 요시코는 그녀의 미소를 마주 대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어젯밤 마지막 시험을 위해 밤을 새 공부하던 요우는 시험이 끝나자 그만 교실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다른 친구들마저 곤히 자고있는 그녀를 깨우기가 미안해져 먼저 떠나 혼자 남아있었지만, 마침 학교에 가방을 두고 귀가하려 했던 요시코가 도중에 돌아오며 우연히 발견해서 같이 하교하던 길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나... 혼자서 하교하고 있지 않았었나...?'

요우의 머릿속에는 또 하나의 기억,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깨어나 학교에서 나가려던 기억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또한 환상과 같았던, 자신을 사신이라고 소개했던 검은 여자애와의 대화마저 생생히 기억해내고 있었다. 아니, 왠지모르게 마지막 소원을 말하는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곧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하지만 현실이라고 믿어지지는 않는 이 기억을 저편으로 하고 요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요시코, 방금 나 무서운 꿈을..."

"저기 버스 온다!"

머릿속의 기억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요시코에게 말해주려고 하던 찰나, 저 멀리에서 보이는 버스를 가리키며 외치는 요시코의 목소리에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 꿈 이야기를 버스 안에서라도 이야기해주면 요시코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요우였다.
버스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며 버스에 탈 준비를 하던 그때.

"......요우!"

갑자기, 요우는 길 건너편, 가야 할 방향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며 큰 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보니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현재도 가장 소중한 친구인 치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도 더 필사적인 모습에 놀랐지만 곧 있으면 버스가 도착하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던 요우였다.

"할 얘기가 있어 요우! 기다려줘!"

"...알겠어!"

버스와도 치카와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만 이대로는 당연히 버스가 먼저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요우는 치카가 필사적으로 외치는 소리를 듣고 큰 소리로 대답하며 요시코만을 먼저 보내기로 생각했다.
요시코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짝 본 뒤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나한테 치카가 볼일이 있나 보네, 미안하지만 먼저 가줄래?"

"그렇다면 이 요하네님은 방해되지 않게 먼저 빠져주지. 나중에 또 볼 날이 있을 것이다!"

"고마워, 다음주에 보자 요시코!"

"그러니까 요하네라고! ...안녕!"

손을 흔들며 요시코가 탄 버스를 배웅해준 요우는 치카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필사적으로 달려오던 치카도 요우가 버스에 타지 않았다는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둘의 사이에는 작은 도로만이 남겨진 채로 서로 반대편에 있게 되었다. 요우가 얼핏 보기에도 치카는 짧지 않은 거리를 달려온 듯 땀을 흘리며 헥헥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치카는 다시 달려 횡단보도도 없는 도로를 건너 요우에게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하게... 치카?"

"요우... 요우... 요우...!"

달려온 그대로 요우에게 안겨들듯 달려드는 치카를 그녀는 두 팔로 감싸안아주었다. 치카는 그런 요우에게 기대며 마주 껴안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목소리로 그저 요우의 이름만을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요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정될 때 까지 가만히 등을 감싸주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유가 울음인지 헐떡임인지 모르겠지만 들썩이던 어깨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즈음 안고있던 팔을 풀고 치카의 얼굴을 바라보며 요우가 물었다.

"진정됐어?"

"...응."

평소 힘든 기색을 잘 내지 않던 치카였기에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를 본 적도 얼마 없었던 그녀가 걱정된 요우는 어느정도 진정된 치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점 없이 평소대로의 치카였는데 단시간만에 치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응. 그것보다 나 요우에게 할 말이 있어."

"뭔데? 말해봐."

"갑작스럽지만, 오늘 하루 나와 같이 보내주지 않을래?"

갑작스레 요우의 손을 잡은 치카는 요우의 질문에 자세한 대답을 돌려주는 다른 제안을 건넸다. 방금 전의 어두운 모습은 조금 가셔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 듯 보였지만 요우에게는 아직도 무리하고 있는 밝은 모습으로 보였다. 같이 시간을 보낸다면 침울해져 있는 그녀도 기운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요우는 밝게 웃었다.

"좋아, 시험도 끝났으니 요소로-!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는 거야?"

"음...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고 싶어."

"좋아- 어디부터 가볼까?"

조금 전에 버스가 막 떠난 참인데, 라고 생각하던 요우였지만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면 같이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치카 또한 갈 곳을 정한 것은 아니었기에 웃는 얼굴로 요우의 손을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아 그래, 여기서 시작하는 거니까 학교부터 먼저 둘러보고 싶어."

"좋아- 요소로!"

평소에도 같이 다니긴 했지만 이렇게 손을 잡고 걸은 적은 많지 않았기에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평소보다도 꽉 쥐어진 치카의 손을 잡고 있으니 이 손을 계속 잡아줘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한 요우였다.

"저기 체육관에서 처음 라이브 했었지."

"맞아, 그때 바보치카가 시간의 공지를 잘못해서 사람들이 안오는 걸 보고 거의 울려고 했었지?"

"그, 그런 일은 잊어줘...!"

수업을 듣던 교실이나 체육관 등 딱히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걸어다니며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두 사람은 걸어다녔다. 학교를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마을로 나가 이곳저곳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다니기 시작하는 작은 여행이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렇기에 다니는 곳곳이 모두 치카와 요우의, 혹은 아쿠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장소들이었다.

"여기 기억해?"

"치카가 처음 아쿠아를 결성하기로 했을때 내가 처음으로 입부신청서를 적었던 곳이지?"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땐 정말 기쁘고 고마웠어!"

여러 장소를 함께 지나며같이 나눌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치카는 완전히 평소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떨리고 있어 애써 꽉 잡았던 손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진정되어 어느새 자연스럽게 가볍게 잡고 있게 되었다.

"저쪽 물 속에서 울었던거 생각나?"

"으... 으응..."

"그때 치카가 우리를 의지해주고 속마음을 털어놓어 줬었지."

"부끄러우니까 그 얘기는 그만 해줘..."

그렇게 두 사람은 때로는 걸으며, 버스가 오면 버스도 타고, 무언가가 보이면 또 내려서 찾아가고, 지치게 되면 어딘가에 앉아서 쉬며 느긋하게 둘만의 시간을 즐겼다. 요우는 요우대로 치카의 이상한 태도에 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일단은 치카에게 맞춰서 같이 어울려 주고 있었다.

"맞다! 여기서 요우가 아이스크림 하나 더 당첨됐었어!"

"그건 나도 기억 안 나는데..."

"확실해!"

"사소한 걸 다 기억하고 있네."

큰 사건이 있던 장소가 아니어도, 심지어 이런 작은 가게에마저도 그들의 추억은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이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 사소한 추억이라고 할지라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치카에게 맞춰줄 생각으로 따라온 요우였지만 때로는 치카가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요우가 이끌기도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보냈다. 둘만의 이야기도, 다른 동료의 이야기도, 과거의 이야기도, 미래의 이야기도 아무리 많이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고 이야깃거리가 부족하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은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아마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슬슬 저녁이네."

"그러게."

낮부터 시작된 기묘한 여행도 어느새 저녁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이야기했지만 아직 가지 못한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던 장소가 몇 군데 더 있었을 정도로 그들의 추억은 깊고 많았다. 평소라면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처음에는 치카의 기분에 맞춰 주려고만 생각했던 요우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처음의 이상하던 이유는 말해주지 않는걸까."

하지만 요우는 처음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치카가 평소와는 다르게 침울한 기색이었던 이유를 여행 중에 설명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치카는 그런 요우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그 시간을 즐기고만 있었다. 오히려 아까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소보다도 더 들뜬 느낌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치카의 집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평소였다면 여기서 헤어져야 했지만 요우를 바라보는 치카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함께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있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요우를 바라보던 치카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요우에게 말을 꺼냈다.

"있잖아 요우..."

"왜?"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지 않을래?"

"응? 그럴까?"

어렸을때부터 꽤 자주, 그리고 아쿠아의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몇번 자러 왔던 적이 있었기에 요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승낙했다. 아무래도 오늘 치카가 이상한 점에 대해서도 물어보기 쉬워지리라, 그런 생각도 한켠에 품고 있었던 요우였기에 오히려 반가운 초대였다.

"오늘 있었던 일... 전부 말할 테니까."

"...응."

치카 자신도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요우에게도 간단하게 말하기 힘들 정도의 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결심하고 말하려고 한다면 요우는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기에 전화로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은 요우, 그리고 치카의 어머니도 요우가 자러 온 것을 환영하고 있었기에 쉽게 결정이 났다.
치카의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에서도 치카는 평소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이야기의 화제를 가족보다도 조금 더 요우에게 쏠리도록 대화를 유도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 조금 신경쓰인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두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잠자리를 준비했다. 요우도 이제 슬슬 본론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치카는 이야기가 영 정리가 안 되는지 멍하게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벽에 기대 생각하는 치카를 보며 요우는 재촉하지 않고 옆에 앉아 치카를 향래 몸을 살짝 기울여 어깨를 기댄 뒤 작게 미소지으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런 요우의 격려에 용기를 얻은 치카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치카가 말하기 편한 데에서부터."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치카를 가만히 미소지으며 응원해주는 요우의 말에 치카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치카의 말을 들은 요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딱딱하게 굳었다.

"요우는... 만약 내일 죽는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싶어?"

"....뭐?"

치카의 말을 듣고 요우의 머릿속에 생각난 것은 아까 학교에서 만났던 자신을 사신이라고 소개한 신기한 검은 소녀였다. 그녀가 말했던 자신에게 남은 수명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녀의 말이 머리를 스치고 갔다. 치카와 그녀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왜 같은 것을 물어보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요우는 갑자기 한가지 중요한 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잠깐, 만나긴 했는데... 언제지? 아까? 꿈 속에서? 만났던 것은 진짜였나?'

요우의 기억에 의하면 자신은 혼자 하교하다 이상한 소녀를 만나 죽는다는 말을 들었다.
요우의 기억에 의하면 자신은 요시코와 같이 하교하다 치카를 만나서 같이 놀게 되었다.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하지만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기억에 요우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치카는 요우의 혼란을 자신의 질문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말이야, 요우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어."

"다시 한 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애써 웃으며 말하는 치카의 말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한 요우가 되물었다. 어딘가 퍼즐의 조각이 맞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요우는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치카와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이것 때문이었을까.
'나는'이라는 말에서 추측해 보면 설마 치카 또한 죽게 된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들이 겹쳐져 혼란스러워 하던 요우는 이어지는 치카의 말에 충격을 먹었다.

"....음, 여기 있는 요우는 잘 모를 테니 먼저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기는 내 꿈속이야. 요우는 내가 만들어낸 거고."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나는 지금까지 평범하게...!"

자신의 전부를 부정하는 치카의 말에 반박하려던 요우는 자신의 기억에도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쳐 갔다. 어딘가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자신은 자신이 아닌 것일까, 치카는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걸까 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같았지만 머릿속이 소용돌이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던 요우의 머릿속은 치카의 한마디에 텅 비어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죽은 사람이 멀쩡하게 돌아다닌다면 그건 꿈밖에 없잖아?"

"...내가 죽었다고?"

"며칠 전 토요일, 요우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에 치이려던 여자애를 구하고...

거기에 대신 치이고 말았어."

"으...!"

아까는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예고,
지금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통고.
어느 쪽도 쉽게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도 없는 내용이었지만 이번에는 치카가 곁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일까 요우는 전보다는 정신을 차린 채로 치카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요우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만..."

"...그랬구나."

자신다운 최후였다, 고 요우는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이 죽었다면 아까 치카를 처음 만났을때 치카가 그렇게 필사적이었고 울먹이는 표정이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치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작게 숨을 고르고 치카는 천천히 뒷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나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어. 요우는 나의 전부였으니까.

많이 울었어, 그러다가 요우를 따라가려고, 옥상에서 몸을 던졌어.

요우가 없는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치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요우를 향해 작게 웃어주며 치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때 죽을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신이 나타났고.

나는 하루라도 좋으니 요우와 만나고 싶다고,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어.

그랬더니 이렇게, 요우가 죽기 전날로 돌아오게 된 거야.

그리고 알게 됐어. 오늘 12시가 지난다면 나도, 요우도, 이 세상에 없을거야."

"......"

요우는 치카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치카에게 소중한 것처럼 치카 또한 요우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인데 그런 그녀마저 세상을 떠났다니.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할 말을 잃었던 요우는 이야기가 끝나자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대체... 왜 그런 거야!"

"요우가 없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자살이라니 그런..."

어느새 요우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치카의 선택을 질책하면서도, 둘의 상황이 바뀌었다면 자신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서로에게 큰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요우의 머릿속에 한가지 이상한 점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자살이라고...?"

"...응."

"자살한 사람에게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무슨 소리야?"

분명 사신이 자신에게 말하기를, 자살 이외의 방법으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기 위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었는데 대체 어떻게 치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큰마음을 먹고 사실을 고백한 치카의 말에 충격을 받은듯한 요우였으나 갑자기 표정이 바뀌어 혼자 생각에 빠져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사신이...아, 아아... 아아아!"

"요우? 왜 그래?"

"나 기억해냈어!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치카에게 자신이 들은 말을 설명하려고 하던 그때, 요우가 잊어버렸었던 사신에게 빈 소원을 기억해냈다.
그러자 치카의 소원이 이루어진 이유도, 자신의 기억이 이상하던 것도, 자신이 죽었다는 것도 모든 사실이 맞물려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모든 의문점이 해소된 요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치카에게 말했다.

"나는 말이야, 치카를 위해, 치카가 가장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빌었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요우!"

그런 요우와는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는 치카에게는 혼란스러움만이 더해져 갔다. 분명,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이었을 텐데, 어째서 요우는 이렇게 상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 묘한 표정이 되어 가만히 굳어있는 치카에게 요우는 다시 한번 다가가 끌어안아 주었다.

"...있잖아 치카, 나한테는 치카가 누구보다도 소중해."

"...응."

요우의 체온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자신을 안아주는 요우가 더 이상 떨고있지 않아서일까. 치카는 모든 것이 정리된 요우에게 몸을 맡겼고 요우는 그런 치카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신이라고 칭하던 소녀와 만난 것, 소원을 빈 것, 그리고 그것이 치카에게로 가서 원래는 이루어지지 않아야 할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 그래서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요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치카에게 전달했다.

"...그랬구나. 요우도 나를 생각해서 그런 소원을 빌었던거구나."

"당연하지."

"조금 더... 빨리 솔직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까지의 거리감으로는 그저 친한 친구 사이였을 뿐이었지만 둘의 최후의 순간에 생각난 것은 서로였던 것이다. 누가 더라고 할 거 없이 서로가 서로의 가장 소중한 사람.

"이젠 늦어버렸어. 미안해 요우."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두 사람 다 이 세상에서 같이 살아갈 수는 없게 될 때였다. 어느덧 시계는 12시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던 것이다.
치카는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저 요우를 꼭 껴안고만 있었고 그런 치카를 바라보며 요우는 복잡한 심경으로 치카를 달래주고 있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는 동안에 시계는 12시를 가리켰고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치카는 애써 웃으며 말을 건넸다.

"마지막 꿈이지만 그래도 행복했어. 요우, 고마워."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이 있는 방은 눈부신 환한 빛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빛이 눈을 찔러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서로를 더욱 세게 끌어안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밝은 빛이 점차 자극이 덜해지고 눈을 뜰 수 있게 되어 눈을 뜬 두 사람의 앞에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타카미 치카씨의 소원으로 이루어진 와타나베 요우씨와의 하루가 종료되었습니다."

요우에게도, 치카에게도 죽음을 선고하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 온통 검은색의 소녀가 서 있었다. 이제 끝이구나,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마음속에서 털어낸 듯한 마음으로 치카는 자세를 고쳐 소녀를 바라보았다. 요우 또한 치카와 마찬가지로 소녀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이루어진 소원에 만족하십니까?"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요우와도 만났고, 응. 나는 그거면 됐어."

담담한 말투로 말하는 소녀를 향해 치카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요우는 그런 그녀의 말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두 사람 모두 소원을 이루고 죽게 될 것이다. 요우는 자신은 몰라도 치카마저 그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로, 이거로 된거야?"

"...응. 나는 만족해."

치카의 생각을 바꾸고 싶은 요우였지만 체념한 듯한 치카의 말에 안타까움과 함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요우는 그 즉시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치카와 소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때가 바로 사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녀가 마지막으로 치카에게 선고를 내리려던 때였다.

"그러면 이상으로..."

"안돼! 치카도! 너도! 둘 다 멈춰! 나는 이런 소원 인정할 수 없어!"

"하지만 소원은 이루어졌습..."

"아니야! 아니라고!"

소녀는 중간에 끼어든 요우를 향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다시 요우의 말에 끊기고 말았다.
자기 일인 것처럼, 아니 오히려 자기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처럼 큰 소리를 내는 요우를 보며 치카는 자신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꿈속의 존재잖아? 진짜 와타나베 요우가 아니라고!"

"진짜 와타나베 요우는 여기 있지 않고 현실에 있어! 그 요우와 만나지 않으면 치카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은거고 내 소원도 이뤄지지 않은거야!"

"그건... 억지입니다."

"억지건 뭐건 써주겠어! 잘 들어, 여기서 이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나는 죽어서도 원한을 품을 거야. 악령이 될 거라고! 너희도 그걸 바라는 건 아니잖아?"

"......"

"치카는 죽지 않았어, 죽었다고 착각하고 소원을 빈 거고 너희는 그걸 들어주는거야. 치카는... 치카는 무사히 살아나서 나를 만나야 해! 내가 죽었다면... 내 제단에라도 말이야!"

마치 협박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애원에 가까운 말이 터져 나왔다. 요우가 치카에게 느끼고 있는 마음이 지금 여기서 소녀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요우를 제지한 것은 팔에 조심스레 얹어진 치카의 손이었다.

"...난 괜찮아."

"내가 괜찮지 않아!"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그리고 요우가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이렇게나 강하게 알게 된 치카는 만족스러운, 그러나 어딘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요우를 말렸지만 이제 멈출 수 없게 되어버린 요우는 그런 치카에게도 소리 지르며 외쳤다.
잠시 정적이 지나고, 작게 한숨을 쉰 요우가 다시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치카, 하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나한테 요우가 없는 세상은 살 이유가 없다고!"

"그래도! 살아 줬으면 해!"

"요우가 없는데도...?"

망설임, 치카의 마음 속에서는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져버렸지만 요우가 살아달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듣고싶은 기분인 것이다. 하지만 한 발을 내딛을 용기가 없어서 계속 주저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포기하려던 치카에게 요우가 다시한번 큰 소리로 목소리를 냈다.

"나는 죽어도 항상 치카와 같이 있을거야!"

"...뭐?"

"내가 죽어도, 치카의 마음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을거야!

그래서 치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언제나 앞을 향하도록 도와줄거야!

요소로! 라고, 힘들 때에는 외쳐봐. 나도 같이 외치고 있을거야!

포기하면, 안돼!"

요우 자신이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던 마음에서부터 튀어나온 말이 치카에게 닿았다. 눈물이 차오른 두 눈에서 보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더 이상은 설득할 말도 없고 해줄 말도 없는 요우의 모든 마음을 담은 말이었다.
요우의 말을 멍하니 듣고있던 치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은 이윽고 터진 댐에서 쏟아지듯 흘러넘치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치카는 흐느끼며 요우에게 매달려있었다.

"......요우.

미안해... 미안해...!"

치카가 할 수 있던것은 그저 사죄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왜 그런 선택을 하고 만 것일까, 손을 뻗어 주는데도 왜 바로 잡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빠르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일까. 치카는 모든 마음을 담아서 요우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했다.
요우는 그런 치카를 감싸 안으며 소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치카는 포기하지 않았다, 라는 뜻을 내비친 무언의 압박이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었지만 곧 소녀가 먼저 눈을 감았다.

"......후,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들어...주는거지?"

"타카미 치카씨가 소원에 만족하고 죽음을 인정한다면 모를까 와타나베 요우씨의 말을 듣고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는 저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하...하하... 고마워."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아마 저한테도 손해가 올 지도 모릅니다만..."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을 거야."

한 사람의 생사가 걸려있는 운명을 이미 죽은 사람이 뒤집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기에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질 만 한데도 왠지 모르게 소녀의 얼굴에는 개운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우는 소녀의 대답을 듣고 안심하고 온몸의 힘을 빼고 품 안의 치카에게 기대어 두 사람은 서로 기대는 모습이 되었다. 가장 큰 고비를 넘기게 되어 긴장이 풀린 요우에게서는 반대로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아마 치카가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와타나베 요우씨의 죽음은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응 알겠어. 그건 인정해."

"타카미 치카씨가 깨어나 와타나베 요우씨와 만나게 되면 그 즉시 타카미 치카씨의 소원은 이루어지고 와타나베 요우씨의 소원 또한 이루어진 것으로 되겠습니다."

"응. 고마워."

"그러면, 이상입니다."

자신의 처우에 대한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기에 요우는 자신의 상황은 시원스럽게 받아들였다. 요우의 죽음이 언급되었을 때 요우를 끌어안고 있던 치카의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요우가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주저하면서도 손에 힘을 빼는 치카였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요우."

"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이제 각자의 길로 나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이 공간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소녀의 배려 덕인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 말은 얼굴을 보며, 라고 말하며 치카는 요우의 품에서 벗어나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요우와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을 잠시 고민하던 치카는 지금까지의 마음을 한 마디에 모두 담아 요우를 향해 소리쳤다.
이번에는 사과가 아닌, 감사의 말을 담아서.

"...요우! 지금까지 고마웠어!"

"응! 나야말로 고마웠어! 치카가 있어서 나는 행복했어!"

서로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미소, 그것을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향해 보여주었다.
치카가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얼굴로 밝게 웃으며 요우에게 손을 흔들자 요우 또한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고, 이윽고 온통 하얀색이던 세상이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치카의 눈앞에 서 있던 요우와 소녀의 모습까지 점점 흐릿해지고 이내 사라졌다.







며칠 뒤 치카는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에서 나왔다. 요우가 죽은 그 날 옥상에서 추락했지만 천만다행으로 화단에 심겨있던 나무가 충격을 흡수해 팔 하나만 부러지고 그 외의 큰 상처는 없었던 것이다. 추락 원인도 자살이 아닌 사고였다고 말해 뒷일도 없게 되었다.
병원에서 보낸 며칠간 꿈속의 요우와 보냈던 하루 동안의 일, 그리고 요우가 전해준 요우의 마음을 생각하며 지냈다. 처음에는 요우가 없다는 생각에 비관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제 치카는 그녀를 마음속에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정리를 위해 치카는 퇴원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요우의 집으로 향했다.

버스로 수십 분을 타고 가서 요우의 집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전에도 몇번이나 갔었던 길이라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이런 사소한 사실에서도 요우가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 존재였는가를 다시 한번 추억하게 되었다.
요우의 집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안에서 나왔다.

'...어?'

집 안에서 나온 사람은 검은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긴 머리칼의 여자아이, 그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신, 며칠 전 그녀와 요우가 만날 수 있게 해준 존재가 요우의 집에서 나왔던 것이다.
여자아이의 뒤로는 그녀를 배웅해주러 나온것 같은 요우의 어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치카를 맞아주었다.

"치카? 혹시 요우를 만나러 온거니?"

"아... 안녕하세요!"

잠시 멍해져있던 치카는 화들짝 놀라 인사했고 치카와 눈이 마주쳤던 여자아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거리로 나갔다. 아무래도 신경쓰였던 치카는 떠나간 여자아이를 눈으로 쫓으며 요우의 어머니에게 살며시 물어보았다.

"저 아이는..."

"요우가 그때 구해준게 저 아이였단다."

"...아."

요우가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에 치이려던 소녀를 구해줬다고 들었는데 그게 저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나중에, 먼 미래에 사신이 되겠지만 사신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이 때에 나타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모습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사신이 그 모습으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째서 마지막 순간에 무리하면서까지 부탁을 들어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따라오렴."

"네."

요우의 어머니가 치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요우의 방 안에는 한쪽에 작게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누구보다도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요우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조금 전 나간 소녀가 피웠을 향이 타고 있었다. 치카는 그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그 앞에 앉아 향을 피우고 손을 모았다.

'요우, 보이지? 요우가 바랐던 대로 나 지금 이렇게 여기 와있어.

요우가 나를 생각해준 그 마음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언제나 요우는 바보 같은 나를 위해서 많이 도와줬었지.

요우가 있었기에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앞으로 나갈 수 있을거야. 잊지 않을게. 요우를 만난 건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행운이었어!

지금까지 고마웠고, 앞으로도 고마워!'

하얀 공간에서 헤어지던 때 미처 요우에게 말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여기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전한다.
닿을까 닿지 않을까는 걱정하지 않는다. 요우는 이미 치카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치카에게 힘든 일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요우를 떠올린다면 언제라도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치카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는 절망을 경험했고, 그 절망에서 다시 딛고 일어섰던 것이다.

"...안녕."

요우에게 조용하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 직후, 어디에선가 요우가 웃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그 소리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파도 소리를 닮은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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