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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냥보대회] '사랑'해보고 싶다 - 中

모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4 2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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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에게는 고민이 있다.


"야, 야. 그래서 어쨌어?"


"아니... 오빠가 자꾸 나를 이렇게 미는 거야."


"응."


"진짜 한...5초? 그 정도 붙어있었을걸?"


"야, 5초여도 닿긴 닿은 거잖아. 그게 키스지 뭐가 아니야."


"뭐야, 나 아니라고 한 적 없거든요."


연인과의 스킨십 얘기. 그러니까, 타인의 사랑 얘기. 저와 나란히 걷는 두 친구의 대화를 들으면서 예지는 한번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한 사람처럼 기대하는 얼굴로 눈을 빛내지도 않고, 다른 한 명처럼 새침하게 볼을 붉히지도 않았다. 그 나이 또래면 누구나 설렐 사랑 이야기는 예지에게 아무런 공감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예지는 사랑을 모르니까.


하나, 둘 첫사랑의 단맛을 알아가는 동안 예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구경만 했다. 저희들만 아는 주제로 떠드는 친구들을 은근히 부러운 얼굴로 바라보기도 했다. 개중에 몇 명은 예지에게 '남사친'을 소개해줬는데, 누구 하나 예지의 마음에 들지 못했다.


혹시 나는 무감정한 사람인가?


열여덟 소녀의 가슴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상상보다 훨씬 시시했지만 예지에게도 사춘기가 도래한 것이다. 남들처럼 달콤쌉싸름한 종류는 아니었지마는, 어쨌든 예지도 고민을 했다.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랑'에 대해서.


"엄마, 나도 학원 다닐래."


예지는 친한 친구를 따라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고2'씩이나 되어서 유치한 고뇌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설마설마 공부나 하자고 등록한 학원에서, 제 '운명의 상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지는 비슷한 유형을 자주 틀리네."


'선생님'은 예지에게 아주 친절했다. 가르쳐준 문제들을 또 틀려와도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상냥한 목소리로 예지를 부르면서 옆자리에 앉아 한 사람만을 위한 수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예지의 쪽지 시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주연만 모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예지는 이제 그냥 단골이구나?"


선생님의 저를 향한 신뢰까지 버려가면서, 예지는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선택했다. 쪽지 시험 낙제자를 위한 '보충학습'은 학생들이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무슨 말이냐면은, 예지 말고 이렇게 남을 인간은 없다는 뜻이다.


"선생님이 문제를 너무 어렵게 냈잖아요..."


"이번에는 그래도 최대한 신경 쓴 건데."


뭘?


"우리 예지, 집에 좀 일찍 들어가게."


선생님은 뺨이 붉어진 제자를 보고 키득거렸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펄럭대며 소리가 나도록 문제집을 넘기는 손을 늘씬한 섬섬옥수가 다가와 꼭 쥐었다.


"걱정 마. 선생님이 책임지고 가르쳐줄게."


남의 손에 희미한 향수의 여운을 남기고 어른의 손은 멀어졌다. 만약에 생애 최고의 스승을 꼽으라면 예지는 망설임 없이 눈앞의 인물을 지목할 것이다. 자그마치 18년을 모르고 살아왔던, '사랑'을 제게 가르쳐줬으니까.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봐 제자가 꽁꽁 숨겨둔 고민에 귀 기울여줬으니까.


"내일 봐, 예지야."


왜 쪽지 시험에는 열 문제 밖에 없는 걸까.


예지는 거북이 같은 속도로 학원을 빠져나왔다. 선선한 바깥의 공기에도 두 볼은 여전히 화끈화끈했다. 무심코 제 손등을 바라보는 한 소녀에게, 드디어 사랑의 열병이 찾아왔다.



******



선생님은 예지보다 수학을 잘한다. 그리고 예지보다 키가 크고, 농담을 좋아한다. 보통 머리는 묶고 다니는데 찰랑대는 포니테일이 그렇게 귀엽다. 안 어울리게. 선생님답게 칠판에 쓰는 글자도 멋졌지만, '보충학습' 때 예지의 노트에 적는 글씨는 더 예뻤다. 그래도 예지가 최고로 치는 것은 펜을 잡은 길고 늘씬한 손가락이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예지와 맞닿았던 그 부드러운 온기 말이다.


아, 또 손잡고 싶다.


주연을 만나고 예지의 일과는 많이 변했다. 뭐 학원을 다녀야 하니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예지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주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나지 못한 날은 더 심해서, 자려고 누운 이불 속에서 밤새 뒤척였다. 그렇게 저 혼자 속앓이해봐야 얄미운 누구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누가 수학 강사 아니랄까봐 제자 입에서 '답'이 튀어나올 때까진 관심도 없을 텐데.


그냥 확 고백할까?


예지는 이불 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상상만 해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시간은 얄짤없이 흘러가는데 도무지 예지에겐 용기가 안 났다. 얼마 못 가 제가 졸업을 할 것이며, 선생님은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는데도!


아직 대학생도 아닌 예지와 친구들에게 학원은 '종강' 소식을 고했다. 조촐하게 열린 송별의 파티에서 예지는 끝까지 주연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 키득거리며 장난을 거는 면전에다 도저히 제가 좋아한단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아마도 겁쟁이가 되어가는 과정인가 보다.


"예지도 잘 가."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해가면서 예지는 '선생님'에게 등을 보였다. 고등학생이 어떻게 어른과 사귀냐며 생각보다 그럴 듯한 변명도 했다. 원래 이 또래의 사춘기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혼자서 동경하고, 멋대로 착각하고. 그 잘난 '착각' 때문에 눈물을 흘릴 줄은 그때까지의 예지는 전혀 몰랐다.



선생님.


가랑눈이 내리는 겨울의 거리를 예지는 부지런히 내달렸다. 이렇게 졸업장까지 받았으면 이제 조금은 숙녀 티가 나지 않을까. 표현도 못하고 눈물만 흘릴 바에야 보기 좋게 차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어요.


종강 파티 날 인사까지 나눠놓고서 예지는 익숙한 건물 앞으로 돌아왔다. 눈이 오는데 멀거니 밖에 서있는 이유는 예지의 방문 '목적'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예지보다 키만 훌쩍 큰 겁쟁이는 무려 장난기 하나 없는 쓸쓸한 표정이었다.


"선생님."


"예지야."


진작에 그런 눈으로 바라봐주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선생님은 또 예지에게 장난쳤다. 아마도 여기 있는 어른은 초조하면 농담을 던지나 보다.


"저 지금 고백하는 건데..."


예지는 하는 수 없이 곧이곧대로 표현했다. '당신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꼭 쥔 주먹이 달달 떨렸지마는 예지는 절대로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눈이 커진 선생님의 얼굴은 2년 만에 처음으로 목격했으니까. 달콤한 목소리로 되돌아오는 진심과 함께, 선생님은 예지만의 '언니'가 되었다.



******



'고딩' 시절 들었던 사랑 얘기처럼 언니는 정말로 예지를 밀었다. 언니가 첫사랑이라고 털어놨더니 느닷없이 달려들어 입술을 부딪쳤다. 들은대로 한 5초쯤은 흘렀을 때, 예지와 닿았던 온기가 멀어졌다.


"예지야, 늦었다. 데려다줄게."


언니는 예지를 일으켜세웠다. 여태 이 집에서 잘만 놀았는데 갑자기 나가란다.


왜?


5초 간의 접촉 이후 주연은 달라졌다. 예지는 먹는 모습도 예쁘다고 해놓고 시선을 돌렸다.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목소리를 흐뭇하게 들었으면서, 이제는 예지가 코 앞에서 말을 하는데도 딴짓을 했다.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


예지는 마지막으로 주연의 집에 방문했던 일자를 되짚어보았다. 소파에서 언니와 함께 뒹굴던 행복한 시간은 어느새 까마득한 추억으로 변해버렸다. 제 말이면 별도 달도 다 따다줬으면서 어떻게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예지는 언니에게 서운하면서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제가 아는 '배주연'이란 사람은 절대 연인을 소홀히 할 성품이 아니다. 어디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해보자고 벼르던 예지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딸, 집 잘 보고 있어."


"언제 올 건데?"


"출발이 늦어가지고, 오늘은 못 올라올 것 같은데..."


아싸.


"비 오는데 혼자 있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뭐 애들인가?"


혹시나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남겠다고 하실까봐 예지는 얼른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런 날씨에 홀로 집을 보는 건 여전히 무섭지만, 최근에 혼자서 천둥 소리를 들었던 기억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무섭고, 외롭다는 연인의 연락에 분명 예지의 구세주는 짠 하고 나타날 것이다.



"부모님은?"


"지방에 가셨어요."


예지는 '간단'하게 과일을 준비해 방으로 가져갔다. 생각은 그랬는데, 손가락은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도 언니는 불평 없이 예지와 함께 앉아서 포크를 들었다. 예지도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딸기를 골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언니, 요즘 무슨 고민 있죠? 사실은 그 얘기가 조금 하고 싶었어요. 솔직히 너무 늦은 시간 같아서 전화 안 하려고 그랬는데, 요새 이렇게 둘이 있을 기회도 줄어들었고 언니도...."


아니, 이 인간이.


선생님은 또 한눈을 팔았다. 지금은 완전 밉상이니까 '선생님'이다. 예지야 이 호칭도 좋았지마는 주연은 가끔 이렇게 부르면 꽁해졌다.


"또 딴생각!"


"나랑 있을 땐 나만 봐달라고 했잖아요..."


칭얼거리는 예지의 목소리는 말 안 듣는 선생님에게 특효약이다. 지금도 주연은 제대로 사과하고 예지가 모처럼 준비한 과일에 손을 뻗었다.


"아."


한사코 포크로 방울토마토를 노리더니 그것이 결국 총알이 되어 예지에게 날아왔다. 노출된 허벅지 위에서 구르는 과실을 선생님은 전에 없던 집중력으로 눈만 굴려 따라갔다.


"뭐해요?"


'언니'는 떨어진 과실을 줍지 않았다. 아마 예지만 뚫어지게 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수도 없이 주연의 소파를 뒹구는 동안, 언니는 몇 번이나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예지가 지금 같은 옷차림으로 키스를 조르면 언니의 입에선 그녀가 아는 모든 농담이 쏟아져 나왔다.


언니는, 분명 더 큰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줘도 못 먹어요?"


예지는 스스로를 음식처럼 표현했다. 좀 상스럽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겁쟁이를 위한 거니까. 언니는 두 번째로 예지를 밀쳤고 이번에는 원하는 만큼 잔뜩 연인을 맛봤다. 그런데도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달콤하게 예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예지야."


허구한 날 듣는 단어인데도 이름의 주인은 빨갛게 두 볼을 물들였다. 아마도 그것은 이 부름이, 예지가 모르는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대체 얼마만큼 나를 사랑하는 걸까?


예지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

한 편이 세 편으로 늘어난 기적! 진짜 '사랑'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 편에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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