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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냥보] 수리수리 마수리, 나에게 반하리! 上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9 17:36:18
조회 554 추천 19 댓글 2
														

 여름의 소리가 볼을 두드렸다.


 7월을 맞아 뙤약볕이 내리쬐는 소리, 혹은 짝을 찾는 매미의 거친 울음. 그 가운데에서 하늘은 비행운으로 나뉜 하늘을 보았다. 탁 트임과 동시에 반으로 쩍 갈라진 파란 캔버스가 보기 좋다. 마치 저의 이름인 ‘반하늘’처럼.


 따가운 햇볕과 열 받은 공기가 그녀를 반겼다. 교문에서 나오던 하늘은 걸음을 조금 더 빨리 재촉했다. 하늘의 눈 저 멀리 보인 인영이 열기에 흔들렸다. 몇 주 전부터 고대하던 여름 방학식이었지만, 날이 너무 더우니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만은 분명히 그랬다.


 철봉 옆을 지나가자 후끈함이 절로 느껴졌다. 이런 볕을 그대로 맞는다면, 철봉도 금세 엿가락이 되지 않을까.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날씨는 나날이 더위를 더해갔다. 교복을 입은 뒷모습이 오아시스넘어 신기루처럼 일렁였다. 정신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모든 걸 태워버릴 것 같이 날씨는 살인적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이런 곳에서 나고 자라 이런 더위에 익숙했고, 그랬기에 멀리서 보이던 그림자를 저의 발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학교 건물을 나온 지, 약 10분이 지나가던 차였다.


 “야, 촌년.”


 하늘의 볼멘소리가 교복 치맛자락을 흔들었다. 앞서가던 여학생도, 하늘의 부름에 고개를 틀었다. 와이셔츠에 간신히 매달린 초록색 명찰이, 그녀가 하늘과 동급생임을 알리고 있었다. 하늘은 장난스러운 불만감을 담아, 그리고 저 나름의 친근감을 담아 그녀를 자주 그렇게 불렀다. 정작 그 호칭의 주인인 ‘윤하리’는 그게 별로 마음에 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리 또한 불만스러운 저항감을 담아, 그리고 저 나름대로 되돌려주고 싶은 감정들을 담아 하늘을 그렇게 불렀다.


 “왜, 촌년.”


 이렇게 간단히 부르고는 있지만,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다. 한평생 읍에서만 살아오던 애가, 한평생 서울에서 살다 내려온 나를 그렇게 부른다는 게 참.

 “같이 가자니까 먼저 가냐, 의리 없이.”


 그러나 이 상황에 대해 조금의 억울함을 느낀 하늘은 하리에게 붕우유신의 정을 설파했다. 기억 상으로 오늘은 주번이니까 먼저 가지 말라고 몇 번을 당부했건만, 읍내 최고 마이페이스 윤하리는 오늘도 요 모양 요 꼴이다. 어느덧 서로 알고 지낸 지도 2년. 하리의 행동 알고리즘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래도 예측을 쉬이 허락해주지 않는 사람이 또 윤하리였다. 


 “어차피 빨리 걷잖아.”


 “누가.”


 그녀의 말에 조금 뜨끔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하늘은 능청스레 딴청을 피웠다. 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하리는 하늘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너지.”


 정말 본능적으로,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하늘은 생각했다. 그 향기를 더 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리의 머리카락은 기분 좋은 여름 바람에 출렁였다. 하늘의 운동화와 하리의 단화가 서로의 거리를 약 몇 뼘 정도 유지했을 때, 하늘은 그보다 하리의 샴푸 향기를 더 먼저 느꼈다. 


 얘는 누가 도시 년 아니랄까 봐, 샴푸도 때깔 좋은 걸 골라 쓰나 보다. 


 “기운도 넘치면서.”


 하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하리는 답지 않게 빙긋 웃고 다시 교정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남긴 미소 한 조각이 그녀의 입꼬리엔 깊게 팼지만, 그 시간은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참으로 덧없다.


 “야! 같이 가!”


 하늘 또한 재빨리 걸어 하리의 뒤를 따랐다. 교문으로 향하는 하늘과 하리 위로 아른아른 공기가 일었고, 땡볕에 달궈진 운동장은 이내 두 사람을 여름의 풍경 속으로 삼켜버렸다. 



 X X X 

 

 드르륵, 하고 낡은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가 하늘의 귓가에도 선명히 들렸다. 기억하기론 며칠 전에 기름칠을 해 두었는데, 결국 자전거로서의 수명이 다 된 걸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대를 이어 쓰게 된 낡은 자전거의 페달이 오늘따라 하리는 무거웠다. 페달이 무거워진 것도, 몸체가 녹이 슨 것도, 바구니가 상한 것도… 다 괜찮으니까, 졸업 때까진 버텨준다면 참 좋을 텐데.


 등교 30분, 하교 30분. 그리고 두 시간을 더해 왕복 1시간. 초등학교 때와 달리 등굣길이 멀어진 하늘에게 준 아버지의 낡은 선물이자 짬처리. 지금 뒷자리에 탄 하리에겐 부끄러운 자전거였지만, 그래도 요 몇 년 동안 하늘의 다리가 되어준 소중한 녀석이었다.


  “아.”


 하늘의 뒤에서 하리가 아픔을 참는 소리가 고이 들려왔다. 하늘의 소중한 다리였지만, 낡아빠진 자전거여서 과속방지턱의 아픔을 속일 순 없었다. 일부러 세게 달려 아프게 하면, 하리가 저를 째릿 노려보는 게 조금 재밌기도 했고.


 논밭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내달렸다. 저 멀리 보이는 군복 몇 벌, 그리고 과일들을 잔뜩 실은 트럭과 채소가 그득한 텃밭. 오래된 집과 그보다 더 오래된 비석. 그래도 비교적 새로 지은 것 같은 집. 길가에 핀 꽃의 향기, 멀리서 들려온 하천이 흘러가는 소리. 두 사람은 자연이 내뿜는 향긋한 내음들에 점점 물들어갔다. 그 찰나에도 굴러가야만 하는 자전거의 바퀴는 계속해서 돌았고, 쭉 이어진 회색 벽돌담을 지나 마침내 하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동네에선 이게 가장 큰 단독주택이었다. 원래는 이 근방 군부대의 대령이 살고 있었는데, 그 대령이 전역하면서 빈 집을 하리 네가 차지했다. 하리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의 아버지는 집의 앞마당이자 좁아 보이지 않는 텃밭에 상당히 마음이 간 모양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보기에도 그럴 만도 했다. 큰 평상 하나를 두어도 반절 넘게 남는 이 앞마당은, 귀농을 앞둔 사람들에겐 꿈과 로망의 터전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낡은 밀짚모자와 땀에 전 수건. 그리고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까무잡잡하게 변해버린 피부. 아주머니는 사람 좋은 웃음 꼬리를 입가에 띠고, 저를 찾아온 두 명의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어머, 하늘이도 왔니?” 


 하리의 어머니였다. 


 “네, 그… 하리가 공부를 도와준다고 해서….”


 하늘은 고개를 연이어 숙이고, 하리의 이야기를 꺼냈다. 하리는 다녀왔다고 한마디만 띡, 하고 정도 없이 제집으로 들어가버렸다. 하늘이도 그 뒤를 따라 가려고 했지만, 곧바로 아주머니의 초롱초롱한 눈길이 다가와서 그럴 수 없었다. 하리네 아주머니는 하늘이를 볼 때마다, 이런 눈빛을 보내곤 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사춘기가 왔는지 서늘한 모습만 보여주는 제 딸과 다르게 싹싹한 하늘이가 귀여워서. 둘째, 하리네가 정착할 때 하늘이네 부모님이 텃밭 관련으로 많이 도와줘서. 그리고 셋째 가장 큰 이유, 하리가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하늘이였기 때문이다.


 “하늘이가 왔는데, 음… 아! 아줌마가 좀 있다가 화채 해줄게, 화채.”


 그래서 하리네 아주머니는 하늘이를 제 딸처럼 여기며 참 좋아했다. 물론 하늘이도 하리네 아주머니의 그러한 마음을 알아서, 아주머니에게 깍듯이 대하긴 했다.


 “네, 해주시면 저야 맛있게 먹죠! 그럼…”


 어설픈 웃음과 함께, 다시 허리를 꾸벅 숙이고 하늘은 재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리네 아주머니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다시 텃밭의 지지대 작업을 이어 하기 시작했다. 필요가 있어서 하는 일이라지만, 생기가 넘치는 줄기에, 플라스틱 노끈을 묶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 밤엔 비가 강하게 내려칠 것 같으니까, 하긴 해야 했다.


 

 여전한 집 냄새와 금방 에어컨을 틀었는지 아직 빠지지 않은 열기가 공존했다. 그래도 에어컨이 있어 곧 시원해질 것을 알았기에, 하늘이는 벽에 기대앉아 곱게 바람을 맞이했다. 


 “마실래?”


 흰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머그컵.  그녀는 하늘이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싹 오른 더위에 목이 좀 탔는지, 교복도 벗지 않고 부엌으로 바로 들어간 것 같았다.  


 “됐어.”


 그러나 하리의 말에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하리의 컵에 담긴 건 필시 커피 기계로 볶아낸 원두커피일 터. 하늘은 믹스커피는 좋아했지만, 원두커피 특유의 그 쓴맛은 좀 많이 싫어했다. 하늘의 입장에선 달지도 않고 쓰기만 한 그걸 잘도 먹는구나 싶었다. 그 대신이라고 뭣하지만, 하리는 제 몸을 바닥에 누웠다. 솔솔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초딩 입맛.”


 “남 이사.”


 눈을 감고 에어컨을 만끽하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윤하리는 바로 반하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공격은 이미 서로 익숙해서,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서로 간의 사이가 허물어져도 너무 허물어졌다.


 “빤쓰 보인다, 너.”


 그러니 먹히려면 이 정도 공격은 해야 했다. 


 “이 미친년이.”


 하리가 하늘의 얼굴을 밟으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하리가 짧은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팬티 색깔과는 다른 잔뜩 붉어진 하리의 얼굴이 제법 볼만하다. 꽤 오랜만에 한 방 먹인 느낌이다. 


 “공부하자, 공부.”


 더 약오르라고 일부러 하늘이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굳이 거기까진 말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걸 눈치챘을 땐 이미 한발 늦은 차였다. 하리는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금세 갈무리하고 재빨리 부엌에서 식탁을 가져왔다. 그리고 되려 하늘에게도 사악하게 웃어 보였고, 그 악한 모습에 하늘의 마음에도 조금씩 불안감이 일었다.


 “네 입으로 똑똑히 말했어, 지금.”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하리의 발걸음에 하늘이의 표정도 서서히 굳어갔다. 흡사 만화책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하늘은 해버렸다. 하늘의 목구멍에서 그 질문이 튀어나왔을 때,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깨우쳤을 때, 하늘은 그냥 죽자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하리가 줄 대답을 예상해보았다.  


 “공부하자며.”


 까마귀 우는 소리가 저 멀리서 새어 들어왔다. 저가 예상한 것과 똑같다고 느끼며, 하늘은 조용히 허탈감에 몸을 뒤틀었다. 


 아, 제 무덤을 파버렸구나.

 

 X X X 


 사각, 하고 종이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하늘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해가 중천서 서쪽으로 쭉 떨어질 때까지, 하리의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인격모멸, 휴식지옥 등등 아비규환 스파르타식 가르침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도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하늘의 성적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전교권을 차지했던, 하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하리도 제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 했기에 그녀의 혹독한 교육은 약 세 시간 뒤에 끝났다. 그리고 그 뒤부턴 또 서로 한 시간 동안 자습 시작. 하리네 아줌마가 화채라도 들고 온다면 어떻게 공부의 흐름이 끊길 텐데, 아줌마의 행방 또한 여름철 텃밭에서 함흥차사다.


 하늘은 연필을 손으로 돌리면서, 그리고 한 편으로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리를 보았다. 그녀는 국어 참고서에 주의를 집중하고, 단 한 순간이라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문제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귓가엔 MP3 흰색 이어폰, 그와는 반대되게 한쪽으로 쓸어 넘긴 흑단같이 긴 머리카락. 그리고 또 한눈에 보아도 희다고 느낄 정도로 뽀얀 피부.


 아주 지 혼자만 희멀끔해서는.


 “야, 촌년.”


 그게 내심 샘이 났는지, 하늘은 멀쩡히 공부 잘 하고 있는 하리를 불러보았다. 들어도, 듣지 못해도 상관없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리의 눈은 참고서에서 하늘에게로 한껏 다가왔다. 그녀는 귀에 꽂아 두었던 이어폰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왜?”


 빨리 말하라고 하리의 눈초리가 가늘게 움직였다. 한창 공부하던 도중 방해를 받은 게 기분 나쁜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함께한 바로 정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하리는 매사에 칼 같았다. 


 “넌 나중에 농사 같은 거 하지 마라.”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갑작스러운 말이라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늘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늘이는 연필을 빙빙 돌리며 능청스레, 혹은 마음을 숨기려는 것처럼 요상한 언사를 이었다.


 “피부 아깝다.”


 하늘의 딴소리에 마침내 하리도 들고 있던 펜을 까칠한 티를 팍팍 내며 놓았다. 하리가 그러자 하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나 두 손바닥을 땅에 댄 채 삐대는 티를 내며 말했다.


 “넌 그냥 이 좆만한 곳 벗어나서, 카페 같은 데서 아메리카노나 홀짝이며 책이나 넘기는 게 훨씬 어울린다.”


 “그건 또 뭔 신종 시비야.”


 여덟 八자로 변한 하리의 눈썹이 으쓱 흔들렸다. 그녀는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것처럼 경계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리의 머릿속 한 구석에선, 구태여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윤하리는 반하늘에게 조금 서운했다. 


 “그냥, 요새 드는 생각.”


 아무것도 아니라는 냥, 하늘이는 몇 개의 단어로 앞으로 나와야 할 모든 말을 일축했다. 그 무책임한 모습에 맥이 풀리면서도, 하리는 살짝 열이 뻗쳤다. 지금 뭐하자는 건지 영 짐작할 수 없었다. 비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진짜.


 “그보다 여름방학엔 뭐 할 없어?”


 그러나 하늘은 천연덕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하리가 미처 뭐라고 할 시간도 없이 약삭빠르게.


 “공부.”


 그러니 하리의 입에서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답이 뻔히 나올 걸 알면서도, 무슨 대답을 듣기 위해 물어보느냐고 똑 부러진 목소리였다.


 “그러지 말고 계곡에라도.”


 “그럴 시간 없어."


 단호박을 자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대답 뒤, 탁자에 놓인 샤프를 다시 쥐려 했다. 그러나 이전에 쥔 것과 달리 이번에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차가운 바닥 위 그보다 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는데, 왜 얼굴은 점점 뜨거워지는 걸까?


 “하여간 성질은.”


 “야, 반하늘.”


 참을忍도 세 번이면 병신이다. 삐뚤삐뚤, 하늘의 목소리를 듣다 듣다못해 화가 난 하리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보고 있던 참고서도 폭, 하고 소리를 낼 정도로 그녀는 거칠게 덮어버렸다. 하늘을 똑바로 바라본 하리의 눈동자와 어설피 하리의 이목을 피한 하리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뒤섞였다. 방 안에 찌르레기가 들어왔는지, 찌르르, 찌르르,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부한다고, 말했었지.”


 하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입구멍이 만약 열려 있었다면, 순간적으로 ‘네 입으로’란 말까지 나왔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말까지 해버리면, 본인이 너무 추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하리는 사족을 덧붙이지 않았다. 


 “서울 간다며.”

 

 그래도 분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껄끄러운 정적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하늘은 새파란 샷시 창 너머로 관심을 옮겼지만, 하리는 여전히 하늘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억울함과 아쉬움, 그리고 갈 곳 없는 분노가 뒤섞인 눈동자였다.


 날씨가 지금처럼 덥지 않은, 별들을 지붕으로 두고 풀잎을 방석 삼아 앉았던 날. 모자가 씌워진 쭈쭈바를 하나씩 문 채, 구멍가게를 넘어가 하천 바람을 함께 맞았던 그 날. 


 나이를 한 살 먹어 고등학생이 된다면, 서울로 다시 되돌아가려 한다는 말을 한 사람은 하리였다. 이곳은 너무나도 좋은 곳이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 또한 하리였다. 그러나 서울로 가겠다는 자신을, 너 같은 헛똑똑이는 혼자 보낼 수 없다고 장난스레 말한 사람은 하늘이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자신을 태웠던 비행기가 추락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히 하늘이의 마음이 꺾인 게 실망스러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어찌 됐든 하리는 그게 화가 났다는 것이다.


 “딱히.”


 하지만 하늘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 여전히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현관으로 걸어갔다. 양말과 마룻바닥이 서로 만나면 소리가 안 나는 게 확실할 텐데, 어쩐지 하늘의 걸음은 하리의 마음속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치 거인이 걷는 것처럼 하리의 발걸음은 극히 강하게 하리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하늘은 문을 열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여름의 불쾌한 기운이 저를 반겼다. 교복 와이셔츠 자락이 다시 끈덕지게 달라붙었고, 그 불쾌함만큼 하늘의 마음도 불편했다. 저물어가는 서쪽 태양이 온 세상을 다 태워버릴 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떠나기 전 뒤를 돌아보았지만, 하리의 눈은 이미 참고서로 되돌려진 후다.  


 그래서 그녀 또한 안녕이란 인사도 없이, 참 정없이 하리의 곁을 떠나갔다.


 X X X 


 자전거를 타고, 까마귀 우는 소리를 네 번 정도 들었을 때 하늘은 집에 도착했다. 녹이 슬어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파란 대문을 힘주어 열고, 그보다 조금 덜 녹이 슨 자전거를 벽돌담 옆에 조용히 세워 두었다. 문을 넘어들어가기 직전에, 바깥에선 철마가 내달리는 소리가 차분히 들려왔다. 앞을 밝히기 위해, 빛을 내뿜는 게 마치 고양이 눈을 한 뱀을 보는 기분이었다.


 습해진 공기와 먹구름이 낀 하늘. 그리고 그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사정없이 제 갈 길을 향하는 철마. 잠깐 기차의 꼬리 칸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하늘은 이내 제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어.”


 집에 들어가니 하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데 앉아 시골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곧 저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인데, 지겹지도 않나?


 “하리네 간다더니 일찍 왔네, 밥은?”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여성이 TV에서 눈도 돌리지 않고 하리에게 물어보았다. 선풍기를 저쪽으로만 끌어 써서 그런지, 파마머리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생각 없어.”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오늘의 하늘은 밥맛이 없었다. 그건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일이라, TV를 보던 부모님의 눈도 둥그레 뜨였다.


 “생각 없어도 먹어.”


 “괜찮아~”


 혹시나 싶어 하늘의 아버지가 가장의 무게감을 담아 말을 해보았지만, 하늘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두 번을 물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모두 거절을 당한 것은 또 처음이라 부모님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개구리 왕눈이와 아로미처럼 튀어나오려고 했다.


 “저, 저, 저 썩을 년이 밥 안 먹는 날이 다 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하늘이 제 방으로 쏙 들어가고, 괴이한 감정이 잔뜩 들어간 하늘이 어머니의 목소리만 거실속에 공허히 남았다.


 어깨에 멘 가방을 바닥에 툭, 놓아버리고 방으로 들어온 하늘이는 그대로 침대로 다이빙해버렸다. 퉁, 하고 들리는 스프링 소리와 함께 하늘은 후회의 뒤틀림을 침대에 고스란히 표현했다.


 “아이고, 병신아. 빙신아. 이 쓰레기 새끼야!”


 투박하면서도, 탓하는 목소리는 고이고이 저에게로 돌아왔다. 그 병신이 자기를 뜻하는 것인지, 하리를 뜻하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허나 이렇게 싸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하늘이의 머릿속을 사로잡아버렸다. 하리를 대할 때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툴툴거리게 되는 하늘이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하리에게만, 하늘이는 그랬다.


 하아, 하고 한숨을 몰아쉬는 하늘이와 그녀의 눈을 사로잡은 가방. 힘이 없어 축 늘어진 가방은 아가리를 벌린 채, 구토하는 것처럼 내용물을 뱉었다. 칠칠 맞게 가방이 열린 것도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 진짜.”


 침대에서 일어난 하늘은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가방을 향해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갖가지 참고서들과 중요 과목의 노트들. 그리고 동시에 하리가 직접 골라준 참고서들과 본인이 직접 필기 요점까지 정해준 노트들이기도 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살짝 대자 하리와 얽혔던 기억들이 몽땅 되살아나, 하늘의 양심은 쿡, 쿡 찔리기 시작했다. 


 “….공부나 할까.”


 책을 한데 모은 하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책상에 앉아 널브러졌던 참고서들과 노트들을 정리했다. 어차피 공부할 거, 화내지나 말지. 뒤늦은 후회였지만, 늦은 걸 알았을 땬 이미 진짜로 늦은 차였다. 지금부턴 수습보단 사죄의 시간이다. 다음에 5일장 갈 때 냉면이라도 한 그릇 사줘야지.


 “어라?”


 그렇게 태평한 생각들을 하며 노트 정리를 막 끝마칠 때였다. 하리의 기억이 맞다면, 간이 책꽂이엔 국어 노트, 영어 노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학 노트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취약하고, 동시에 하리가 가장 힘을 쏟아 부은 수학 노트가 사라져버렸다. 


 “없어.”


 내용물을 전부 쏟아낸 가방에도.


 “없어.”


 혹시 몰라 다시 찾아본 책상 위에도.


 “없다구!”


 혹시나 싶어 교과서를 꽂아 놓은 책꽂이를 찾아보아도, 수학 노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리의 요점이, 그리고 하늘이의 1학기 필기가 함께한 노트가 없어져 버렸다. 하늘이는 턱에 손을 짚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어제까진 명확히 봤던 기억이 있고, 일단 집에도 없는 게 확인이 됐다. 그렇다면 하리의 집인가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하리의 집에서 수학은 일절 손도 대지 않았다. 


 “아, 맞다.”


 오늘은 방학식. 사물함에 두었던 책들을 모두 빼는 날이다. 재학생이 별로 없는 특성상 학교는 방학 내내 잠시 닫아 둔다며, 그러니 물건을 꼭 가져가라는 선생님의 경고 섞인 말을 하늘은 들었었다. 그래서 사물함은 철저히, 그리고 확실히 비워 두었을 텐데. 심지어 마지막 날에 교과서를 다 들고 싶지 않아, 전전날부터 계획적으로 집에 다 가져왔던 하늘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엔 참고서와 노트들만 가져가게끔 상황을 만들었고, 그렇다면 학교 내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아!”


 반짝인 생각에, 하늘은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시침은 미처 일곱을 지나지 못한 채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방 밖으로 나왔다. 비록 오늘이 경비 아저씨의 1학기 마지막 출근 날이라고 해도, 마지막이니까 좀 더 오래 계실 것이라고 하늘은 생각했다. 


 “어디 가니?”


 “학교!”


 하늘은 조금 해진 운동화 안으로 거칠게 발을 집어넣었다. 운동화를 탈탈 털어 제 발로 욱여넣은 하늘이의 눈 꼬리가 전화기로 향했지만, 그녀는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마당에 세워 둔 자전거로 뛰어갔다. 몇 주 전 밤길에 자전거는 위험하다며, 헤드라이트를 달아 준 박씨 아저씨에게 하늘이는 마음속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하늘은 페달을 밟았다. 기어 변속도 없는 낡은 자전거지만, 습한 공기를 헤쳐나가기엔 충분했다. 하늘의 뒤로, 시멘트를 발라 어설프게 툭 튀어나온 길들 위로 자그마한 멍들이 생기고 있었다. 그 아픔을 참을 수도 없었는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검게, 어쩌면 회색빛으로 가득. 


 - 


 하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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