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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냥보]너만 먼저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03 01:15:51
조회 415 추천 16 댓글 3
														

만화 '블루 피리어드'(백합 아님 ㅠ) 보고 수험생 시절들이 막 떠올라서... 그러다가 이래저래 구상해보았습니다.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일년, 아니 그보다는 한달이 짧은 11개월쯤 전에 나는 너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왜냐하면 네가 나한테 문자를 보낼 순 없으니까, 그럼 네가 사려깊지 못한 일을 하는 셈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축하를 보내야만 했다. 나는 떨어졌고 너는 붙었으니까. 그동안 같이 노력했으니 반드시 같이 붙자는 다짐도 그렇게 허무하게 깨졌다.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냥 두 자리를 뽑는데 그 중 하나를 다른 사람이 가져갔을 뿐이니까.


그 날은 합격 발표 전날이었다. 발표 전날이지만, 관례적으로 합격자들만 문자를 따로 받았다. 왜 그런 이상한 전통이 있을까. 굳이 다음 날에 자기 번호를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 아닌 배려인가. 어쨌거나 문자가 올 시간이었는데 나한텐 안 왔다. 두 명을 뽑는데 최종 면접은 나까지 세 명이었으니까, 결국 다른 둘. 너와 다른 면접자가 붙었다는 말. 다른 합격자들은 자기가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알지만 누가 못 받았는지는 모른다. 면접 준비는 다 같이 하면서 연락처야 다 아니 서로 물어볼 수야 있겠지만 그것만큼 껄끄러운 일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얼른 축하 문자를 보내야, 누가 승리자고 누가 패배자인지를 가장 완만하게 알게 된다.


너에게, 그리고 다른 합격자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어색한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눈물이 났다. 당연히 내가 졌으니까, 그 동안의 노력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됐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왜 하필 나만. 넌 붙었는데 왜 나만. 왜 함께 붙지 못한 걸까. 차라리 면접까지 가기 전이라도 같이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드는 내가 너무 비참하고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럴 바엔 나란히 같이 붙는다는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언니고 선배니까 잘 이끌어야겠다. 네가 이 길을 선택했을 때는 고작 그 정도였다. 그냥 후배를 보는 선배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내가 먼저 시작했고 더 많이 아니 도와줘야겠다는 생각. 네가 고맙다고 할때마다 묘하게 기뻤지만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막연히 귀엽다던가, 호감형이라 그러겠거니 했다. 같이 공부를 하다보니 친근감이 느껴지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몇개월을 함께 지내고, 또 다른 사람들과도 시험 공부를 하고 또 각자의 사정으로 떠나보내면서 알게 됐다. 이건 전혀 다른 감정이란 걸. 그리고 어렴풋이 느꼈다. 이 감정이 일방향이 아니란 것도. 그걸 서로 인정하고 나니 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손을 잡고 나란히, 함께 붙었으면 좋겠다고.


--꼭 같이 붙자.

-언니는 잘하잖아. 내가 걱정이야. 나만 떨어지면 어쩌지?

--괜찮아. 이런 건 어차피 운이야. 운칠기삼.


공부를 하다 숨도 돌릴 겸, 데이트를 할 때마다 우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너는 항상 내가 먼저 떠나갈까봐 무서워했다. 처음에는 정말 그게 걱정이었다. 나만 붙고 너만 홀로 남으면 어쩌지. 너는 아직도 많이 부족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뒤집혔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만 뼈저리게 느끼고, 반대로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만 보이게 됐다. 그만큼 널 좋아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최종 면접까지도 함께 올라왔으니 제대로 봤던 셈이다. 그러면서 점점 다른 게 무서워졌다. 나만 남고 너만 먼저 가버리면 어쩌지.




그리고 11개월쯤 전에 문자를 보내면서, 내가 가진 막연한 공포가 사실은 현실이란 걸 깨달았다. 그 다음 날에 널 만나서 결국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꿈에 젖어서 현실도 보지 못한 내가 우스워서. 그리고 이게 현실이 아니었으면, 나와 네가 사실 반대 위치였으면 하는 내가 너무 넌더리 나서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꼭 안고 달래주는 네가 여전히 사랑스러워서,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 같아서 더 비참했다. 네기 좋은 만큼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모자란 사람인지 느껴져서 더 괴로웠다. 이런 내 속마음을 들켜서 네가 질리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마저 들었다.


-잘 알잖아. 운칠기삼이라는 거. 이번엔 운이 나빴을 뿐이니까. 다음엔 반드시 될 거야.


내가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을 때도 너는 그렇게 위로해줬다. 그 뒤로도 네가 바쁜 와중에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만큼만 꼬박꼬박 찾아와서 나를 응원했을 때도 몇번이고 울뻔했다. 네가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껴서, 그래서 내가 더 미웠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고, 면접에 앞서 시험이 다가올 때쯤 나는 결심했다. 차라리 털어놓자고. 지금 털어놓지 않으면, 시험의 부담감까지 겹쳐서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얼마나 추악한지 네가 알고 차라리 실망하면, 내게 질려서 떠나버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넌 그러지 않았다. 난 당연히 화를 내고, 나를 미워할 줄 알았는데 아녔다. 너는 되려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카페가 요란스러운 시간대였기에 망정이지, 사람이 애매하게 있는 시간대였다면 진작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상황이었다. 전혀 예상 밖의 반응에 내가 당황해하자 너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나는 안 그런 줄 알아? 나도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데.


속앓이를 하다니,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나만 남을까봐, 언니만 먼저 떠날까봐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런 게 무서운 내가 너무 싫었단 말야.


너는 코를 휑 풀면서, 이제야 조금 나를 원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그렇게 고백했다. 사실 고백도 아니었다. 너는 그래도 전부터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자기만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고. 나만 괜히 강한 척 하다가, 내가 얼마나 약한지 모르다가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언니는 내가 이런 생각했다고 질렸어?


그럴 리가 없었다. 누구나 갖는 불안인데, 고작 그런 생각을 했다고 내가 널 미워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도 괜찮아. 차라리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그렇게 말할 때 나도 울어버렸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데, 암만 그래도 둘이나 울면 옆에서 눈치챌 수밖에 없을 텐데. 그래도 그냥 눈물이 났다.




그 뒤로 불안을 떨쳐냈으면 좋았건만. 그러진 못했다. 암만 그래도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그래도 마음만은 훨씬 홀가분해졌다. 너도 그런 불안을 갖고 잘 헤쳐나갔으니, 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내가 미워하지 않았으니까, 너도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나를 미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홀가분한 마음 덕일까, 시험도 문제 없이 통과했고 다시 최종 면접만이 남았다.




최종 면접 전날에 너와 직접 만나진 못했다. 대신 너는 내게 짤막하게 문자만 보냈다.


-나도 무섭지만 조금만 먼저 가서 기다릴게.


너도 분명 무섭겠구나.


지난 11개월은 불안한 시간이었다. 너만 먼저 훌쩍 떠나버려서. 조금 먼저 떠난 너도 불안했겠지.


내가 얼른 따라가서, 손을 잡고 안심시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반대로 내가 안심받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나를 기다리는 네 마음도 편해지기를.


끝.





어차피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애는 쓰지 못하니 그냥 좀 더 솔직하게....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사이라도 조금 나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괴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것도 어떻게든 수습해나가는 게 순애 아닐까?'라는 정말 완전 이상한 논리로....


별거 아니지만 수험생일 때도 잘 되는 커플들도 있었지만 진짜 좀 이상한 길로 빠지는 커플들도 있었네요... 저는 그중 어느쪽도 아니었으니 정말 남일처럼 보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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