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그날 밤 가져온 건 최수진이었다. 

자세한 원인은 모른다. 사실 별로 알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중요한 건 그 아이의 집안이 운영하는 회사가 망했고 그 아이의 아버지였던 사장은 구속되었고 그 아이의 어머니는 어딘가 사라져버렸다는 것. 그 아이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 바꿔 말하면 그 아이의 세계를 지탱하던 견고한 성이 이렇게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는 것.

아버지는 기술자였다. 기술자는 어디든 필요한 법,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조건은 좋지 않지만 어쨌든 한달만에 바로 재취업을 하셨다. 나의 세계는 다행히 그 아이의 성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제 학교에서 수진이 비위맞출 필요 없다."

 "네."

짧게 대답했다. 그 아이가 사라지는 건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 아이가 내 세계에 차지하는 정도만큼 짧게 대답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

아버지는 텅 비어버린 사장의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아버지의 동료 직원들이 이번 달 월급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자 사장의 집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나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때 수희가 가졌던 것들을 가지지 못해 분했다. 아버지에게 그 분함을 풀고는 했다. 못된 짓이었다. 아직도 마음에 담고 계신걸까. 아버지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어머니는 조금 당황했고 나는 왠지 고양감을 느꼈다.

울먹이는 듯한 약하디 약한 표정. 학교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표정

"오늘은 네 방에서 재우렴. 내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꾸나."

어머니는 늘 그렇듯 차분하고 효율적인 결정을 내렸다. 나의 방 문이 닫히고 왠지 모르게 나는 웃고 있었다. 조금은 사악하게.

"야! 최수진."

그녀는 여전히 조금 울먹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품있는 외모와 키가 크고 유려하게 빠진 몸매. 길게 내려오는 부드러운 생머리. 모델이었다던 그 아이의 엄마를 빼닮은 걸까. 나는 나지막히 속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다.

"벗어. 학교에서 여전히 여왕으로 있고 싶으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입고 있던 교복을 상의부터 마치 허물처럼 벗어내기 시작했다. 생각외로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내 침대 위로 그 아이의 옷이 하나 둘 놓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뽀얀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나의 세계였다. 이제 내 세계로 최수진이 들어온다. 나는 아버지께 아주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 

본능적으로 그리고 너무도 쉽게 그녀의 허리에 살짝 간지럽히듯 손을 얹었다.

*

그 뒤로 메챠쿠챠 샤워 시켜주고 더러워진 옷도 빨아주고 오손도손 저녁밥먹고 학교에서도 잘 챙겨주고 같은 집에서 지내는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