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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카스아리)별의 잔해-prologue앱에서 작성

AGBM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2 23:09:09
조회 415 추천 18 댓글 6
														

"오랜만이야, 아리사."

재회는 정말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10년을 넘게 마음 속에 담아뒀던, 나의 구원자. 나의 첫사랑. 나의 마지막 사랑.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듯이 그녀는 홀연히 떠나버렸었다. 그 열기로 나의 마음을 흔적도 없이 불살라버리면서.
그리고 그 시꺼먼 잿더미가 조금씩 옅어지고, 상처 투성이의 마음도 조금씩 살이 붙어 이제는 한때의 아픈 추억으로 남아 사라져 가려 할때, 너는 다시 내앞에 나타났다.


모든 빛을 잃은 채로.




"안 쓰는 방이니까 짐은 여기에 풀어. 배고프면 뭐라도 만들어 줄게. 늦은 시간이라 대단한 건 힘들지만."

"으응. 괜찮아. 좀 힘들어서...... 아리사, 고마워. 갑자기 찾아왔는데......"

"그러니까, 찾아오려면 연락이라도 하지. 이렇게 불쑥 나타나면 나도 당황스럽다고. 손님 맞을 준비도 못했는데..."

아니다. 혼자 사는데도 무조건 투룸을 고집한 것. 매일 깨끗하게 청소한 것. 언제든 쓸 수 있게 한사람 분의 생활도구와 침대, 그리고 사이즈에 딱 맞는 잠옷까지 마련해두고 있었던 것. 전부 너를 위해, 혹시라도 찾아오지 않을까. 언젠가를 위해서 계속 준비해 뒀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말도 없이, 예고도 없이 등장해버려서 좀 당황해버렸잖냐. 정말 옛날부터 이런 막무가내인 점 때문에 고생했었다. 어쩌면 3년간 지내면서 익숙해진 덕에 이렇게라도 대비를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샤워기의 물소리를 배경음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그믐이라 그런지 달이 없다. 10년전보다 심해진 대기오염과 광공해 때문에 별도 하나도 안보인다. 하늘은 쓸쓸했지만 지금 욕실에 있는 그 녀석 덕분인지 조금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그 녀석이 가져온 짐 중에 한가지가 빠져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늘 등에 메고 있던 검은 케이스. 우리를 이어준 운명의 물건. 그녀가 내게 진 빚이자, 내가 그녀에게 진 빚. 그녀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그 악기. 손님방에 들어가 그녀의 짐을 살펴본다. 커다란 캐리어와 배낭이 전부였다. 둘다 새까만 색이라 칙칙하게 느껴졌다. 그 녀석은 빨간색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리사, 같이 자고 싶어."

"네가 무슨 애냐? 침대도 좁고, 저 방에도 푹신한 침대랑 이불있으니까 알아서 꺼내서 써. 그리고...... 나 잠버릇 나쁜 거 알잖아."

"그래도......."

"내일도 일 나가야 하니까 난 이만 잔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탄식을 뒤로하고 침실로 돌아간다. 사실은 같이 자고 싶었다. 여름에는 더울 정도였던 너의 열기를 오랜만에 느끼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참기로 했다. 나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

"아아아아악! 끄흐으읏...! 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방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놀라서 달려갔더니 침대에서 그녀가 온몸을 비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악몽을 꾸는지 이불을 움켜지고 베개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몸부림쳤다. 황급히 달려가 양팔을 잡았다. 이제서야 느끼는 거지만 그녀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가늘어졌다. 양팔을 잡으려다가 왼손이 미끄려졌다. 잠깐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 그녀의 팔에 얼굴을 맞았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녀를 붙잡았다.

"카스미! 카스미! 눈 떠봐! 나야! 아리사야! 카스미!"

적잖이 당황한 나머지 일단 이름을 부르면서 안심시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럼에도 10여분간 발작이 계속되었다.

"카스미! 괜찮아.... 괜찮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 뿐이었다.

어느정도 진정되자 숨을 헐떡이는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좁은 침대에 올라가서 그녀를 껴안은 채로 옆에 누웠다. 가쁘게 몰아치던 숨도 조금씩 잦아들어 그녀는 새근새근 거리면서 내품에서 다시 잠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단절된 10년동안 빛나던 그녀를 추락시킨건 대체 뭐였을지. 원래부터 여린 아이였다는건 어렴풋이 눈치챘었다. 여릴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감성이 충만해서, 상처도 쉽게, 그리고 깊게 받는 그녀였다.

그녀를 빛나게 해주던 것이 어쩌면 그녀를 불태워 버렸을지도.

"아리사..."

갑자기 불린 이름에 깜짝 놀라 품 속을 바라본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무슨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걸까. 혹시 행복했던 시절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녀의 머릿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 힘든 기억도 슬픈 기억도 모두 함께 견뎌나가고 싶다. 10년간 쌓인 검고 질척한 진흙들을 모두 씻어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머릿 속에 들어갈 수 없다. 그녀의 말로 나오는 단편적인 어두움과 더러움만을 받아들여줄 수 있다. 만약 내가 그녀처럼 감성이 풍부했다면, 그녀의 아픔을 반으로 나눌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녀는 불타버리지 않았을까? 아무 소용 없는 자책과 자기 비하를 계속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녀를 구하지 못한 자신을 벌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이미 땅에 떨어져 버렸는데.


*

구상만 하던 거라 아직 못 적었음

언젠가는 끝까지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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