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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동방] 푸른 달_5모바일에서 작성

무나강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4 19: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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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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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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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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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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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작됐다.

비로소 실권을 쥔 레밀리아는 철저했고 신속했다.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메이드장은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물론, 확진자들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예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 신속했고 또 너무 효율적이었다.

환상향의 각 지역의 유력자들이 격리수용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레밀리아는 그들과 합의 하에 수십명의 사용인들을 각지로 보내기로 했다.
결정된 이주 예정일은 불과 이틀이 채 남지 않았다.

저택 내 소문으로 자신들의 이주 계획을 드문드문 알고 있던 확진자들은,
마음의 준비 혹은 이주 준비를 하기도 전에 레밀리아가 이주를 통보하자 매우 당황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그동안 보살펴준 주인에게 감사하고, 또 혹시 자신들이 주인에게 병을 옮긴게 아닌지 걱정할 뿐.

이틀, 혹은 그보다 적은 시간은 확진자들이 이주를 준비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확진자들은 저택 내부는 커녕, 저택 반경 3m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됐기에,
저택 내부에 있는 그들의 짐을 챙기거나 남는 사용인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메이드장이 몸이 불편한 자신의 스승님에게 작별하러, 야심한 밤에 남몰래 찾아간 것이 전부였다.

이주 당일. 메이린과 소악마, 그리고 역병 방지로 임시 고용한 요정들의 안내 아래, 확진자들은 별채에서 차례대로 나왔다.
그들을 대신할 요괴 직원들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순식간에 확진자들을 이주 지역별로 모으고, 머리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이 끝나면, 저택 부지 밖에 있는 각 유력자의 부하들에게 인도했다.

한때 이 대저택을 움직이고 생기를 불어넣던 수십명의 사용인들은 이제 개미때 처럼 줄지어 새로운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남은 자들은 창밖으로 몸을 빼꼼 내밀고는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작별이사를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 모두가 이 일이 끝난 뒤에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느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렴풋 느껴지는 것, 그러나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

레밀리아는 자신의 방 창문에 서서 미소를 지은 채, 사라져가는 저택의 일부를 보고 있었다.
저택의 나머지는 건물 안에 남았지만, 그들의 운명도 다를 건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저택 자체의 운명이었다.

이 이주는 철저한만큼 냉혹했고 효율적인만큼 비인도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메이드장은 강력히 항의하려 했으나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지 오래였고,
이제는 완전히 메이드가 되버린 유키는 그저 레밀리아 옆에 서서 묵묵히 동의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주인은 의식을 되찾은 이후, 하루의 거의 대부분은 침상 위에서 잠으로 보냈다.

이주가 끝난 뒤에도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니 레밀리아가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레밀리아는 곧바로 다음 명령을 내렸다. 확진자들이 거주하던 별채들을 전부 태우라는 것이었다.
전염균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정과 조금 다르던 이주까지는 참았던 메이드장이었지만, 이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엄연한 유키 아가씨의 재산이었고, 소독이 불가능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그 별채들은, 유키 아가씨의 추억이 서려있던 곳이다.

여름이 오면 거의 매일 거기서 보냈고, -저택이 평화로울 적에- 땡땡이를 칠 때면 항상 거기에 있었다.
어느날 쓰러진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요양하던 곳도 거기였고, 유키가 간호하던 곳 또한 물론 거기였다.
그 몇 채의 작은 집들은 유키에게 단순한 건물을 넘어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새겨진 장소였다.

그런데도 태운다는 것은 그 명령이 유키 아가씨의 의견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렇기에 레밀리아의 직권남용이 분명했다.
메이드장은 화난 발걸음으로 서재로 가서 문을 벌컥 열었다.
거기엔 유키 아가씨가 책상 앞에 앉은 채, 뒤에서 레밀리아가 말하는대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당장 명령을 철회하라고 하며, 그게 유키 아가씨에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외치는 메이드장에게
레밀리아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유키 아가씨도 동의하신 바라고 말했다.
메이드장이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유키를 바라보니, 유키는 말없이 끄덕였다.

사실 유키는 할아버지가 쓰러진 뒤부터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충격으로 웃음을 잃은 듯 했지만, 점점 주인이라는 할아버지의 자리에 두려움을 느꼈고,
더욱 수동적이게 됐으며, 그럴수록 레밀리아에게 의지하거나 명령 받는 것을 선호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언제나 메이드복을 입을 뿐, 더 이상 정장을 입지 않게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르던 것은 아니었으나, 단순히 일시적인 마음의 병이라 생각했던 메이드장은
유키 아가씨가 가족의 추억이 깊게 서려있는 그 장소를 불태우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별채는 자신의 소중한 장소가 아닌, 유키 아가씨의 소중한 장소였다.
그녀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반대할 수는 없었다.
이리하여 레밀리아의 두번째 명령도 아무런 반대에 맞닥뜨리지 않고 무사히 수행됐고,
그날 밤 메이드장은, 눈물로 흐려진 동공 속에, 붉게 타오르며 사라지는 아가씨의 추억을 깊숙히 담았다.




#
이때까지는, 어찌저찌 넘어갔다.
문제도 반대도 있었으나, 무의미한 수준이었고 모두 레밀리아가 바라는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세번째 명령은 조금 달랐다. 거의 같았지만, 분명히 달랐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됩니다."

이제는 반대하기도 지쳤다는 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말은 해야한다는 목소리로 메이드장이 선을 그었다.
서재에는 레밀리아의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레밀리아와 메이드장 이외에도
유키, 파츄리, 플랑, 메이링, 소악마가 모여있었다.
이제 레밀리아는 아예 주인, 그러니까 유키가 앉던 자리에 앉아있고,
유키는 레밀리아의 뒤에서 메이드복을 입고 서있었는데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고, 긴 은발은 창백해보일 정도였다.
플랑과 파츄리는 책상 건너편 손님용 소파에 앉아있었고, 메이링과 소악마는 둘의 뒤에 서있었다.

"아무래도 메이드장이 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시는 거 같은데..."

"잘 압니다! 그리고 그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레밀리아가 비웃는 투로 말하자, 메이드장이 끊었다.

"아무리 인간에게만 감염된다고 해도, 남은 사용인을 전부 내보내는건 어불성설입니다!
확진자를 전부 내보내고 별채를 전부 태운 것으론 부족합니까?"

"네, 부족해요.
감염원을 내보냈으니 이제 잠재적 감염원을 내보내야죠. 주인어른 상태가 안보입니까?
유키에게 해가 될 위험은 원천 차단할 것입니다."

"! 이제는 아가씨라고도 안하는군요! 본인의 위치를 압니까?"

메이드장이 책상 앞부분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말했다.
그러자 레밀리아가 책상을 쎄게 내리치며 외쳤다.

"그래! 너보다는 높아!"

레밀리아의 표정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동시에 목소리 또한 위압적이었다.
메이드장이 당황한 사이, 레밀리아가 보다 침착한 어조로, 그리고 귀찮다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메이드장... 정신 차려. 당신이 알던 저택은 이제 없어.
사용인은 너희같은 열등한 인간이 아닌 요정, 고블린, 하위요정들로 채워질거야.
전염병에 안걸리는 종족들 말이야."

"당신은 인간 아닙니까? 유키 아가씨는?"

메이드장의 당황은 어느샌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레밀리아는 조금 고민하는 듯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전에 메이드장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유키는 이 저택의 심장이지.
진정한 소유주야. 그건 나도 알아. 그렇기에 유키만큼은 여기에 있어야 해.
그게 환상향의 법이야."

"...미친 소리를 하는군...
여기서 유키 아가씨는 소유주 취급도 못받고,
그 따위 입맛좋은 법같은 건 없어..."

메이드장이 경멸하는 듯이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봤다.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플랑을 제외하곤
모두 무표정으로, 그러나 동시에 차가운 눈으로, 메이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재 안의 날카로운 침묵이 메이드장을 강하게 짓눌렀다.
그녀는 숨이 막히고 약간의 현기증이 나는 듯 했다.

"끝났으면 나가.
넌 해고야."

레밀리아가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드장이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자, 메이링이 위압감을 풍기며 천천히 다가왔다.
무력의 압박에, 그리고 무거운 무력감에, 메이드장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곤 서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깐,
메이드장은 뭔가 생각났는지 뒤돌아서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서재 안 레밀리아에게 말했다.

"정말로 유키 아가씨가 이 저택의 소유주라면,
너희들은 유키 아가씨의 뜻을 존중해야겠지."

그리고는 한 쪽 구석에 무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메이드복의 유키에게 간청했다.

"아가씨,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다시 되돌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용인들도 아가씨에 뜻에 따를거에요.

이 저택은 아가씨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뺐기기 직전입니다.
아니 이미 빼았겼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부디, 그 서재 밖으로 나와주세요."

메이드장은 그렇게 얘기했다.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줄곧 비정상적인 유키의 태도, 그리고 레밀리아 네의 압도적인 무력을 생각하면,
이 간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메이드장으로써, 할 수 밖에 없었다.

레밀리아는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때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플랑, 문 닫아."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플랑은 깜짝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메이드장을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메이드장은 플랑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번 더 외쳤다.

"유키 아가씨!"

"플랑.
문 닫아."

레밀리아도 다시 말했다. 처음과 거의 같은 어조였지만, 조금 더 천천히.

플랑은 이제 두려워 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은 일어나려는 듯 팔걸이를 잡았지만, 다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걸 본 메이드장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유키가 움직였다.

메이드장의 시선은 바로 유키에게 쏠렸다.

유키는 천천히 걸어가,

메이드장의 앞에 서서,

문을 닫았다.



털썩,

메이드장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
그날 밤, 불이 다 꺼진 주인의 침실엔 유난히 밝은 달빛이 살며시 들어와 방 안을 푸른 빛으로 가득 채웠고,
메이드장은 희미하게 눈을 뜬 채 누워있는 주인 옆에 앉아, 부드러운 손으로 주인의 주름진 손을 쓰다듬었다.
메이드장의 눈에는 체념과, 약간의 상냥함과 또 깊은 슬픔이 맺혀있었다. 주인은 말없이 허공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인이 과연 얼마나 회복했는지, 말을 듣고 있는지 않는지조차 모르지만, 메이드장은 담담히 얘기를 시작했다.

"주인님. 주인님이 절 거둬주신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처음에 왔을 땐 유키 아가씨도 아직 갓난아기였죠.
그때는 아직 견습메이드라 순수한 소녀로써 관심을 가졌을 뿐이지만,
너스 메이드가 되어 걸음마를 땐 유키 아가씨를 돌보기 시작했을 땐...
뭐랄까, 그 작은 아이를 한평생 지켜주고 싶었어요.
딸... 같다고 말씀드리면 화내실까요. 그렇네요, 여동생 같았어요.
솔직히 가끔 그만 둘까 싶을 때도 있었지만... 여동생을 두고 떠날 순 없잖아요?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곁에 있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하하..."

메이드장은 그렇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걸까요.
처음엔 조금 불행한 역병과 주인님의 평소같은 관용이 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주인님의 생명, 이 저택 그리고 유키 아가씨까지. 모조리 뺐기게 됐어요.

주인님. 저 짤렸어요.
짤리는 건 상관없지만 적어도 주인님, 아니면 유키 아가씨 손에 짤리고 싶었어요.
이건... 이건 아닌거 같아요..."

메이드장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이빨을 깨문채 고개를 떨궜다. 주인의 손을 잡은 손이 약하게 떨렸다.
주인의 희미한 눈동자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있었다.

"제발... 일어나주세요...
일어나서... 다시 저희들을 지켜주세요...
아침이 오기 전에..."

부들거리는 메이드장의 손을 따라 떨리는 주인의 손 위에 메이드장의 눈물이 몇방울 떨어졌다.
늙은 피부 위에서 눈물은 순식간에 말라버렸고, 달빛이 그 옅은 흔적 위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을 반사했다.
눈을 질끈 감고 흐느끼는 메이드장은 고개를 떨구다 못해, 자신이 잡은, 조금 젖은 주인의 손 위에 자신의 이마를 얹었다.

그 순간 불이 켜지면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감동적이네."

메이드장이 화들짝 놀라 방 문 쪽을 바라봤다.
밝게 켜진 불 덕에 푸른 달빛은 모두 사라졌고, 방안은 하얀 빛으로 가득찼다.
파츄리가 다가오며 말했다.

"방해해서 미안, 근데 약먹을 시간이라서."

조금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메이드장은 경계하면서, 뒤로 돌아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노크라도 하시죠."

"설마 누가 있을지는 몰랐지.
작별인사라도 하고 있던거야?"

파츄리가 품속에서 약을 꺼내며 말했다.

"상관하실 바 아닙니다."

메이드장이 차갑게 말했다.
그녀에겐 외부인 모두가 적이었다.
휙 돌아서 파츄리를 최대한 보지 않고 문으로 나가려는 찰나,
파츄리가 말했다.

"근데 안타까워서 어쩌나
지금 귀가 안들려서 아무것도 못 들었을거야."

그 말을 들은 메이드장은 황급히 뒤돌아 물었다.

"그게 무슨...! 회복하고 계신 것 아니었나요?"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지,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거야."

파츄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메이드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치료에 실패한 거에요? 왜 말을 안했죠?"

"치료에 실패한게 아니니까.
설마 내가 실패하겠어?
난 항상 성공해. 지금처럼."

메이드장은 아주 잠깐 동안 말을 잃었다.
이해하려 애썼다. 아니, 그보다는 이해한 사실을 받아드리려 애썼다.
충격 속에서, 겨우 입을 열었다.

"전염병이... 아니었군요...?"

"전염병? 아... 그거...
하하하, 지금이니까 말하는거지만, 애초에 전염병같은건 없었어.
그보다는 전염속성의 마법을 가진 독?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자면 마법과 독과 균을 섞은 기술이야.
그건... 정말 나로써도 큰 도전이었어.
그래도 그 덕에 그 의사님도 못알아보셨으니, 가치 있는 도전이었지."

메이드장은 완전히 말을 잃었다.
파츄리가 메이드장을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 걱정하지마. 너랑 유키랑 이 할아범은 안 걸려.
애초에 마법이 들어간만큼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증인들은 없어야 하는 만큼, 저택에 있던 사용인들은 얼마 안가 전부 죽을거야.
건강한 녀석들도 증상이 없던 것 뿐이지 내가 이 저택에 온 직후에 모두 감염됐거든."

메이드장의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제대로 서있을 수 없을정도였다.
구토가 올라올것만 같았다. 앞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니면 오직 의지만이 남아 물었다.

"이 모든게... 당신... 당신의 짓이었습니까?"

"설마, 난 명령을... 아니, 부탁을 들어줄 뿐이야.
이 저택의 운명을 쥔 손은 따로 있어."

파츄리가 여유로운 미소로 메이드장을 보며 말했다.

메이드장은 더 이상 침실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더 이상 저택에 있어선 안됐다.

그녀는 천천히 부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였다.
차가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문을 열고 겨우, 침실 밖으로 나와 걸었다.
걸음은 곧, 빠른 걸음으로, 그리고 뜀박질로 바뀌었다.

"더 빨리 뛰는게 좋을거야! 죽고싶지 않다면!"

침실 쪽에서 파츄리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드장이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막 중앙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
기억 속에 묻힌 한가지 문장이 머리에 스쳤다.

'언니는... 이 저택을 떠날 생각 한번이라도 해봤어?'

그것은 플랑의 구조신호였다. 왜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플랑을 여기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플랑만큼은 언제나 솔직했고 또 상냥했다. 그녀만이 진실됐다.
여기는 악마관이지만, 그녀는 천사였다. 그녀는 여기에 있어선 안됐다.

메이드장은 살며시, 레밀리아와 플랑도르의 방으로 걸어갔다.
조용히 문을 열었지만 플랑은 없었다. 레밀리아 또한 없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어디있지? 메이드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반대편으로 달려가 서재의 문을 열었다.
거기에도 플랑은 없었다. 서내에서 나와 대도서관을 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도서관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놀이방에도, 응접실에도, 식당에도. 플랑은 없었다.
그 모든 곳에, 플랑 뿐 아닌 그 어떤 거주민도 없었지만,
플랑 외에 생각할 수 없었던 메이드장은 그 섬뜩할정도로 텅 빈 저택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엌을 들렸을 때,
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방의 한 쪽 구석, 자신이 쪼그려 앉아있곤 했던 그 구석에 플랑도르가 있었다.

"플랑 아가씨..."

왜 부엌 먼저 오지 않았을까.
왜 여길 깜빡 했을까
메이드장은 그렇게 자책하며 또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플랑을 불렀다.

쪼그려 앉아 서럽게 흐느끼던 플랑은, 그 상냥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메이드장의 눈물 맺힌 미소를 보고는, 반가움 그리고 행복함으로 일어났으나,

곧 안색은 창백해졌고 두 동공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플랑의 반응에 메이드장은 뒤돌아봤고,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부엌 천장 모서리의 암흑 속에서
까만 악마의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내려오는
레밀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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