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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리즈와 파랑새] 카사키 노조미, 지옥문을 열다. 1/3

후구후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06 22: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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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과학실에서,

 미조레의 고백을 받으며,

 노조미는 호흡이 곤란해지고 있었다.


 【나는 늘 노조미를 뒤쫓았어.】


 신성화 하지 마.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에게 관심 없어질까 봐 악기도 계속했어.】


 그건 나에 대한 조롱인 거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노조미.

 노조미 곁에 있고 싶으니까, 오보에도 열심히 했어.】


 미조레는 치사하다.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에 전혀 무게를 두지 않는다. 거기에 짓눌려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고,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사랑하고 있다.


 【노조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어떻게 돼도 좋아.

 허풍이 아니야. 전부 진짜.

 노조미가 내 전부야.】


 노조미가 할 수 있는 말은, 치사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미조레는 그 말에 어떤 무게가 담겼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했다.


 【노조미는 내게 특별해.

 노조미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도, 내게는 모두 다 특별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마음은 전혀 모르면서.


 본심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노조미의 마음을 뒤틀었다. 미조레의 허그를 받으면서, 고백을 받으면서 어떻게든 평정을 지키려던 노조미의 마음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래서….


 【노조미의 웃음소리가 좋아.

 노조미가 말하는 게 좋아.

 노조미의 발소리가 좋아.

 노조미의 머리카락이 좋아.


 노조미가,

 노조미의 전부가…】


 노조미는 말했다.


 【미조레의 오보에가, 싫어.】


 미조레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깬 것은 울음소리였다.

 노조미는 울지 말라고, 달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한 걸 알았다. 울고 있는 건 미조레가 아니었다. 자신이었다. 미조레에게 상처를 입혀 놓고서, 자신이 울고 있었다.


 노조미는 도망쳤다.

 과학실 문을 빠져나와 달렸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가방만 챙겨서 도망쳤다. 누구와도, 그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


 다음 날, 등교한 노조미는 미조레가 취주악부를 탈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서 대회를 열흘 앞둔 날이었다.




1장



 아침 연습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노조미는 조금 늦게 등교했다.

 등굣길에 미조레가 기다리고 있어도, 혹은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괴로울 게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한참 늦게, 파트 연습이 끝났을 즈음에 등교했다.

 따라서 음악실이 문자 그대로 쥐 죽은 듯 고요하고, 모두가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순간 적응하지 못했다.

 타키 선생이 조용히 말했다.


 “늦었군요. 자리에 앉….”

 “너지! 너 때문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코가 외쳤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달려온 유코가 노조미의 뺨을 때렸다. 몸이 휘청거리고, 얻어맞은 뺨이 따갑게 달아올랐다.


 “부장!” “노조 선배!” “유코!!!”


 주위에서 터지는 비명에도 유코는 멈출 기색이 없었고, 뒤늦게 달려든 나츠키가 억지로 그 손목을 붙잡아 막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몇 번은 더 얻어맞았을 것이다.

 계속 몸부림을 쳐도 나츠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유코는 소리쳤다.


 “대체 얼마나 그 애를 휘둘러야 만족하는 거야?! 네 말이라면 뭐든 한다는 게 그렇게도 기뻐?! 대체 왜…!!!”


 나츠키가 끝내 유코의 입을 막았다.


 “부장이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잠시 쉬게 하고 오겠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하세요. 파트장들은 각 파트별로 연습을 진행해 주시고, 카사키 양. 괜찮다면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네.”


 멍하니 대답하면서, 노조미는 비어 있는 미조레의 자리를 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


 아니나다를까, 자리를 옮긴 타키 선생이 해 준 말은 노조미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요로이즈카 양이 어머님과 함께 학교에 왔습니다. 취주악부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어머님과 함께 왔었다는 부분이 노조미에게 약한 희망을 주었다. 아스카 선배도 같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뭔가 사정이 있어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타키 선생은 그때,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니까….


 “이야기는 요로이즈카 양이 직접 꺼낸 말이었고,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로이즈카 양이 바라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어요.”

 “퇴, 퇴부 신청 받아주신 건 아니죠?”


 타키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원해서 그만두는 거라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코, 콩쿠르가 겨우 열흘 남았는데요?!”


 악기의 편성이 달라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연주해야 할 자유곡 『리즈와 파랑새』는 오보에 솔로가 무엇보다 중요한 곡이다. 보통 고교생이 연주하기에는 솔로 파트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기에, 미조레라는 걸출한 연주자의 존재 없이는 선택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곡을 바꾸는 것도, 연주자를 바꾸는 것도 지금 와서는 무리다.


 “카사키 양.”


 당황하는 노조미와 달리 타키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과 콩쿠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노조미는 순간 깨달았다. 동안이어서 종종 잊어버리지만, 눈앞의 이 선생님은 자신의 두 배 가까이 나이를 먹었다. 확고한 기준이 있고, 그 선을 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속에서 미조레의 퇴부는 이미 확정된 것이다. 아마 음악실에서도 이런 식으로 미조레의 퇴부를 알렸으리라.

 아스카 선배의 경우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듣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카사키 양, 요로이즈카 양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나이를 먹지는 않았습니다만, 친구와의 사이에서도 여러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이해해 주세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그 표정에서, 노조미는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 이 사람, 나를 위로하고 있는 거야? 유코가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걸 봤으면서, 미조레의 퇴부가 나 때문이라는 걸 짐작도 못하고 있다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려고 했을 때, 타키 선생이 잘 접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울지 마세요.”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던 자상한 얼굴. 그 손수건을 받아든 후에야, 노조미는 자기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바닥을, 손등을, 손수건 위를 계속 적셨다.

 이래서였다는 걸 알았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울고 있으니까, 타키 선생이 착각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연민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미조레가 그만두겠다고 한 건 모두 자기 탓인데….


 “…자기가 원해서 그만두는 게 아니면, 괜찮은 거죠?”

 “…?”

 “미조레가, 스스로 원해서 그만두는 게 아니었다면, 다시 받아 주실 거죠?”


 노조미는 타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우선 미조레를 데려와야만 한다. 미조레를 만나서, 사과하고, 실수를 바로잡아야만 한다.


 하지만 노조미는 곧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바로잡을 수 있는 실수란 별로 없다는 걸.


 ───────────


 미조레의 전화기는 내내 꺼진 상태였기에, 노조미는 무턱대고 미조레의 집으로 향했다. 미조레의 집에 온 건 두 번째였다. 중학교 시절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난삼아 놀러 왔다가 살짝 질린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어색해하는 걸 안 미조레도 더는 누군가를 초대하지 않았고.

 신축한 듯 깔끔한 서양풍 건물 자체가 말도 안 되게 큰 건 아니다. 오래된 가옥이 많은 지역 특성상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별로 새롭진 않다. 다만 건물이 넓지 않은 대신, 그 부지는 전부 정원이 차지하고 있고, 공들여 관리된 정원은 그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부를 상징하는 법이다.

 딱 한 번 방문했을 때, 미조레의 방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자신의 것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반대편 아파트가 보일 뿐인 풍경과, 동화 속처럼 아름다운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풍경.

 어쩌면 자신과 미조레의 거리를 처음으로 실감했던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인터폰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생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가요?”

 “아, 저는 카사키라고 하는데요… 미조레를 만나러 왔습니다.”

 “잠시만요.”


 그리고 한참 후에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해요. 아가씨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시네요.”

 “자, 잠깐만요! 카사키, 카사키 노조미예요! 미조레에게 다시 확인해 주실 수 없나요?”

 “으음…. 잠시만요.”


 곤란해하는 목소리가 멀어졌다가 한참 후에 다시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해요. 역시 안 될 것 같네요. 돌아가 주세요.”


 인터폰의 연결음이 뚝 끊어졌다.

 노조미의 무릎이 풀썩 꺾였다.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적어도 목소리를 듣는다면, 이야기를 한다면 뭔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한 짓의 무게를 몰랐다.


 소리를 질러 봐야 미조레의 방까지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담을 넘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봤지만, 곳곳에 붙어 있는 방범 시설 마크가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자신이 보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드나들 때 애원이라도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릎을 모으고 앉아서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만두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그 말을 하면 무슨 결과가 일어날지 정말 몰랐던 걸까? 미조레가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오보에를 불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만약 정말 그렇게 하기라도 했다면, 자신의 말이 사실은 미조레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에 도리어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그저 만나고 싶었다. 아니,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화를 내도, 욕해도 좋으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머릿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미조레는 어제, 자신이 있는 힘껏 상처 입히는 순간에조차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햇살에 직격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그래도 여름은 너무 무더웠다. 머리만이 아니라 시야까지 몽롱해졌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만은, 그것만은 조금 고마웠다.


 “뭐, 뭘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눈앞에 그림자가 져서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둘 있었다.


 “나츠키…. …유코.”

 “뭘 하고 있느냐고 했잖아!”

 “미조레에게… 사과하려고….”

 “그,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유코. 진정해. 가서 포카리랑 미네랄 워터 좀 사다 줄래?”


 나츠키가 유코를 말렸다. 유코가 달음박질해서 음료수를 사 오자, 나츠키가 노조미에게 포카리 스웨트를 건넸다. 노조미가 그걸 받아 마시는 동안, 스포츠타월을 물에 적셔서는 머리 위에 덮었다. 한여름의 열기를 흠뻑 머금었던 머리가 천천히 식기 시작했다.

 조금씩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아침에 곧장 나갔다고 들었는데, 계속 여기 있었어?”

 “…으응.”

 “좀 더 빨리 오려고 했는데, 애들이 많이 놀라서 말야. 안정시키고 평소처럼 연습하고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

 “…미안.”

 “애들이 놀란 책임의 상당수는 부장에게도 있겠지만 말야. 놀란 데다 폭탄까지 던진 셈이었지, 그거.”


 나츠키가 장난치듯 유코를 바라보았다. 유코가 고개를 홱 돌렸다.


 “노조미에겐 사과하지 않을 거야!”

 “으응. 미안해, 유코. 내가… 내가 다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


 놀랄 정도로 순순히 사과의 말이 나오는 바람에 당황한 유코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츠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장소를 옮겨서 얘기를 좀 할까? 냉방 되는 곳으로. 뭔가 좀 먹기도 하고.”

 “뭐? 난 미조레랑….”

 “만나더라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만나는 게 낫지 않겠어?”


 유코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츠키는 노조미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괜찮다고 말하며 스스로 걸으려 했지만, 바로 그 첫 걸음부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쓰러질 뻔했다. 한여름에 대여섯 시간을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 있던 탓이었다.

 나츠키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부축해 주었지만, 노조미는 가능하다면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대로 따라가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말해야 할 테니까.


 ───────────


 세 사람은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주문은 했지만 식욕이 없었기에 물만 마셨다. 그리고 어제 과학실에서 나눈 이야기를 전부 전하자, 유코는 격분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네가 하는 말이 미조레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말 몰라? 그 애는…!”

 “유코.”

 “말리지…!”

 “말리지 않을 거니까 기다려. 나 다음에 충분히 화내게 해 줄 테니까.”


 극도로 냉담한 목소리에 유코가 얼어붙었다.


 “알고 한 말인 게 당연하잖아. 노조미는 잘 알고서 그 말을 고른 거야. 그렇지? 미조레를 거절하는 것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거절당한 미조레가 그래도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기둥이 오보에인 걸 아니까 그렇게 말한 거야.”

 “나츠키….”

 “그냥 감정에 북받쳐서 한 말이 아냐. 그 사람이 가장 괴로워할 말을 생각해서 한 거야.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속에 맺힌 걸 풀고 싶어서. 열등감 때문에 괴로웠던 걸, 보상받고 싶었던 거지.”

 “잠깐, 뭘 그렇게까지….”

 “나츠키 말이, 맞아….”


 노조미는 부정할 수 없었다.

 유코가 말한 것처럼 생각 없이 한 말이 아니다. 나츠키의 지적대로, 악의의 불길로 달구어 찔러 넣은 칼날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는 걸 짐작하지 못했다고 하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너 같은 애랑 친구인 게 창피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한 가지만 확인해도 될까?”

 “으응.”

 “미조레가 좋아한다고 했을 때, 싫었어?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한 거야?”


 냉담한 목소리 안쪽에서 나츠키가, 애타게 호소하는 것처럼 들렸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어 달라고.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아는 카사키 노조미로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노조미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츠키를 실망시키고 싶었다. 나츠키가 바라는 대답을 하면, 나츠키는 분명히 자신의 편을 들어 줄 테니까.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거짓으로도 할 수 없는 말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 미조레를, 싫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나츠키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한동안 가라앉아 있던 유코는 다시 격분했다.


 “미조레에게 그런 말을 해 놓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유코.”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나츠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유코가 화내는 건 당연해. 그냥 내가, 유코가 화내기를 바라지 않을 뿐이야.”

 “또 그렇게 노조미 편만 들고…!”

 “그게 아니라,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서야. 유코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


 두 사람만이 아는 뭔가가 있는 것이리라. 유코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 후에 겨우 꺼낸 말은, 열기가 한풀 꺾여 있었다.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다른 모습 따위 알고 싶지도 않고. …어쨌든, 미조레를 만나서… 만나서 얘기를 들은 후에 결정할 거야.”


 유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츠키와 노조미가 따라서 일어나려 하자, 고개를 흔들어 제지했다.


 “오지 마. 그렇게 기다려도 안 만나 줬다면서. 네가 있으면 방해만 돼. 게다가….”


 유코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널 만나 주질 않았다면, 아마 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


 유코의 예감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았던 노조미와는 달리, 인터폰으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게 고작이었다고 했다. 한 말도, 딱 세 가지였다고 했다.


 미안해. 콩쿠르엔 나갈 수 없어. 노조미 잘못이 아냐.


 고장 난 테이프처럼, 그 세 마디만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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