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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리즈와 파랑새] 카사키 노조미, 지옥문을 열다. 3/3

후구후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06 22:39:29
조회 594 추천 31 댓글 14
														

4장




 노조미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이틀 후 점심.

 미조레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억지로 잠들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전신이 아팠지만, 그래도 잠들고 싶었다. 잠들지 않으면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니까. …지금처럼.

 쉬지 않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해, 억지로 돌아누워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이 몸에 눌려 방해했지만, 어차피 감각이 마비되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베개가 흠뻑 젖어 호흡하는 것조차 괴로워졌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아서, 이대로 탈수증으로 죽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도 좋을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노조미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삶보다는 그쪽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그 시기는 조금 더 미래가 되어야 한다.


 노조미를 더 괴롭게 만들어선 안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놀랄 만큼 싱겁게 눈물이 그쳤다. 여기에 대해서만은 놀랄 만큼 마음을 따라주는 몸이 야속했다. 팔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 팔도 마음의 말을 들었더라면 노조미가 덜 괴로워하는 방식으로 결별할 수 있었을 텐데.

 결별이라니. 불과 며칠 전까지는 상상만 해도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았던 일인데, 지금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렇지만 노조미, 괴로워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노조미의 그런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노조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어도 좋다. 오보에는 분명히 노조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버릴 수 있다. 이 양팔이 결코 움직이지 않게 된다 하여도 상관없다. 눈과 귀가 멀어도, 노조미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단 하나만 살아 있다면 충분했다.

 자신이 노조미를 상처 입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것만 아니었다면 언제까지고 이 마음을 고집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에 갑갑함을 느꼈다.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만다. 아까까지는 야속했던 몸이 지금은 고맙다. 팔이 뜻대로 움직이게 된다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선 안 된다.

 적어도 아직은 안 된다.


 노조미가 미조레를 완전히 신경 쓰지 않게 때까지는,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한순간 마음이 아릿한 정도로 그칠 만큼 시간이 흐르기 전에는. 그 한순간의 아릿함을 바라는 것조차 비겁한 욕심처럼 느껴질 만큼 무거운 망각이 찾아들기 전까지는.


 실로 엉망진창이다. 몸이 받아주질 못하겠다고 역정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마음 스스로도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서 평범하게 잠들어 있던 것처럼 위장하려 애썼다. 그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는 궂이 그 눈물의 의미를 추적하려 하지 않았다.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방문자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미조레도 어머니와 흡사한 표정을 지었다.


 “니이야마 선생님…이요?”


 ───────────


 한 시간 후, 노조미는 니이야마 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연습실로 들어오는 미조레를 보았다. 취주악부 전원의 시선을 받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리리카가 당장이라도 미조레에게 달려갈 것 같았지만, 미리 이야기를 해 둔 것도 있어 간신히 진정한 듯했다.

 노조미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마음이 앞서서는 안 된다. 도취는 균형을 무너뜨린다. 조화가 필요한 그 순간에도 노조미는 늘 일방적으로 앞서가려 했고, 미조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주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호흡을 고르고 악보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미조레… 요로이즈카 양이 퇴부 신청을 했던 사정에 대해서는 어제 설명을 했지요. 콩쿠르에 대한 부담감이 큰 원인일 거라고 해요. 아마 모두 다 느끼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죠. 두 번째 희생자가 되는 건 켄자키 양일지도 모르고요.”


 부장으로서 상황을 정리하는 유코의 말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얼굴이 새빨갛게 된 리리카가 작은 목소리로 “진짜라고요….” 하고 반쯤 울먹이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그러니까 오늘은 요로이즈카 양에게 괜찮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적어도, 자기가 없어서 콩쿠르가 엉망이 되었다는 엉뚱한 상상 같은 건 안 하게…. 억지를 써서 미안해요, 여러분.”


 유코가 꾸벅 고개를 숙일 때 노조미와 나츠키도 일어서서 함께 고개를 숙였다.

 미조레는 멍하니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꼭 봐야 할 게 있다면서 니이야마에게 이끌려 학교로 오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콩쿠르 연습을 자신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걸까. 자신은 이미 콩쿠르 따윈 포기했는데. 음악조차 그만둘 생각인데.


 “그러면 제1악장부터 시작합니다.”


 조용히 보고 있던 타키 선생이 지휘를 시작했다.

 제1악장, 「평범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소녀를 만나기 이전의 리즈를 그리는 활기차고 상쾌한 파트다. 서반을 장식하는 플룻과 피콜로가 숲속에서 동물들과 함께하는 리즈의 평온한 아침을 떠오르게 했다.

 폭풍우와 함께 시작되는 제2악장, 「새로운 가족」은 저음 악기들이 힘을 발휘하는 파트다. 콘트라베이스와 바순, 트럼본이 쌓아 올린 불길한 분위기는 이윽고 플룻과 호른의 인도를 받아 신비한 소녀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제3악장이 시작되기 전, 노조미는 리리카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까지 중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미조레가 와 있기 때문이겠지. 동경하는 선배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불안감, 그 선배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리리카를 압박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노조미도 마찬가지였다. 리리카가 느끼고 있는 것과는 조금 이유가 다르겠지만,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만은 마찬가지였다.

 제3악장은 악장의 거의 전부를 오보에가 지배하는 곡이다. 거기에 진입하기 전 아주 짧은 한순간, 초조해진 리리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노조미는 리리카를 향해 곧은 시선을 보냈다.

 가슴을 작게 두드리며, 입 모양만으로 ‘괜찮아’라고 신호를 보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리리카가 담당해야 할 솔로 파트에서 노조미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허세를 부렸다. 몸에 배어 버린 허세와 거짓말이, 한순간이나마 도움이 되어 주길 바라면서.

 제3악장 「사랑하기에 내린 결단」은 리즈와 파랑새의 결별을 그리는 파트다. 며칠 전 미조레가 연주했던 오보에는 곧으면서도 가녀린, 절실한 마음이 전해지는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리리카의 연주는 그녀 자신이 아직 곡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도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연약한 느낌이 강했다.

 은은히 울리는 하프 소리에 맞추어 힘겹게 이어지는 오보에. 파탄을 예기한 리리카의 호흡이 힘겨워질 때, 플룻과의 유니존이 시작되었다.

 노조미는 음의 크기를 맞추는 것부터 시작했다. 본래대로라면 페이스를 잃어가는 오보에에 맞추는 것은 즉시 실패로 이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노조미는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보에가 리즈고 플룻이 소녀, 혹은 플룻이 리즈고 오보에가 소녀… 같은 해석은 온당하지 않다. 이 악장에서 전해져야 하는 것은 둘 모두의 마음이며, 최종적으로 오보에 솔로는 두 사람의 안타까움을 모두 연주해 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리리카의 오보에는 역시 갑작스러운 결별에 당혹해하는 소녀의 심경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노조미는 리즈가 되려고 노력했다. 흐트러지려는 오보에의 선율을 포용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새장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아 버린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사랑하기에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흔들리던 리리카의 음이 안정을 찾고, 둘의 선율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엇갈리는 둘의 마음이지만 그 사이에 있는 것은 결국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리즈와 소녀라는 구분은 사라지고, 악장 마지막의 오보에 독주는 결별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하나의 마음으로 분명히 맺어져 있었다.


 그리고 제4악장이 시작된다.


 노조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키타우지 고등학교 취주악부에서 연주하는 이 곡은, 본래 20여분이 넘는 『리즈와 파랑새』를 콩쿠르에 맞춰 8분여 길이로 편곡한 것이다. 가장 화려하고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역시 제3악장이지만, 노조미는 제4악장을 그에 못지않게 좋아했다. 그리고 오늘 미조레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부분도 바로 제4악장이었다.

 마음속으로 리즈에 대해 생각했다. 동화책 『리즈와 파랑새』를 처음 읽었을 때를 생각했다.

 부모님을 잃고 홀로 도시 외곽 호수 근처의 집에서 살고 있는 소녀. 도시의 빵집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인간관계는 없다. 동물들에게 팔다 남은 빵을 나누어 줄 뿐인 고독한 삶.

 우연히 찾아온 신비한 소녀와 만남으로써 행복을 느끼게 되지만, 그녀의 정체가 파랑새임을 알고 놓아 보낸다. 리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날아오른 파랑새의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 결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지만 남게 되는 리즈가 너무 불쌍했다.


 파랑새가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나츠키는 그러면 리즈의 마음이 물거품이 되지 않느냐고 답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인데, 그게 좋지 않느냐는 말에 나츠키는 어이없어했다.


 지금이라면 이해한다.

 소녀가 다시 돌아온다면,

 자신의 일부를 버려야만 한다면,

 결국 그건 해피엔딩이 아닌 것이다.


 제4악장은 제3악장의 여운이 남은 고요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제3악장의 안타까운 여운은 서서히 화려하고 웅장한 멜로디로 바뀌어 간다. 제3악장에서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도 플룻 솔로가 있다.


 노조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리즈와 파랑새에는 어떤 해피엔딩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결별하여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아름답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미가 바라는, 받아들일 수 있는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제4악장의 플룻 솔로는 말하자면 연결 고리이다. 그 이전까지 하늘을 향하여 날갯짓하는 파랑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면, 이 플룻 솔로를 넘어 무대는 하늘로 전환된다. 모든 악기가 총출동해 하늘을 나는 새들의 힘차고 화려한 모습을 그려낸다. 그 누구도 해피엔딩을 부정할 수 없는 황금의 피날레.

 그렇다면 그 연결고리가 담당해야 할 것은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무엇인가다.


 노조미는 떠올렸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의아해질 정도의 답을. 너무 유치해서, 그 누구라도 웃어넘길 해답을.


 파랑새가 소녀가 될 수 있었다면,

 어째서 그 반대가 될 수는 없단 말인가.


 노조미는 플룻을 연주했다. 마음을 모두 담아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새가 또 하나, ‘새들’이 푸르디 그지없는 하늘을 향해 조금씩 날갯짓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복잡한 마음은 말로는 토해낼 수 없다. 분명히, 분명히 그랬기에 자신은 음악을 시작했을 것이다. 미조레에게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플룻으로 이야기했다.

 연주하는 동시에 들었다.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조미가 알고 있는, 가장 화려하게 해피엔딩을 그리는 곡이 완성되어 간다. 고양된 마음은 곡의 진행에 맞추어 녹아들고, 모든 연주자가 해피엔딩을 그림으로써 음악은 압도적인 힘을 얻는다.


 『리즈와 파랑새』 제4악장, 「영원한 하늘로」.

 그 누구도,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


 연주가 끝난 다음엔 언제나 가벼운 허탈감이 찾아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악기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너무나도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미조레를 보았을 때, 그 눈에 아무런 반응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제오늘 영문 모를 칭찬을 좀 들었다고 해서 또 취해 버렸던 건 아닐까. 객관적으로 보면 결국 자신은….


 “카사키 양.”


 타키 선생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그는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장 비슷한 것은 역시 미소라고 해야 하겠지만,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어딘가 생경하고 잘 맞지 않는 가면을 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요로이즈카 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30분 휴식하죠.”


 고개를 돌려 미조레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니이야마 선생은 아까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미조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작게 박수 치는 니이야마 선생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일어서려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미끄러질 뻔했다. “읏차아!” 몸을 날려 붙잡아 준 것은 나츠키였다. 누군가가 등을 세게 때려, 순간 전기가 오른 듯 전신이 찌릿했다. 유코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다녀와.”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비틀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였다. 미조레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디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미조레는 과학실에 있었다. 등을 돌리고 서 있어서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불길한 느낌에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미, 미조레…?”


 애써 꺼낸 말조차 마구 떨리고 있어서, 자신은 정말 말주변이 없다고 절감했다.

 그래서 행동하기로 했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미조레의 얼굴. 연주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저 미조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확인한 지 10분도 안 지났을 텐데,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미조레가 그리웠다.


 “오, 오지 마…. 보, 보면 안 돼….”


 미조레를 붙잡고,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확인했다. 미조레의 눈에선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 보기 흉하니까… 보면 안 돼….”


 미조레는 눈물을 닦으려고 얼굴을 어떻게든 움직였지만 마비된 양팔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노조미는 손수건을 꺼내 미조레의 얼굴을 닦았다.

 눈가는 눈물로 부어오르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평소의 핏기 없는 인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하던 때와 달리 정감을 가득 담은 눈빛은 노조미를 안심시켰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쓸 만한 건 하나도 없다. 거짓말과 허영이 다수고, 그렇지 않으면 미조레를 상처 입히는 말밖에 못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 대신 행동을 택했다. 미조레를 꼭 끌어안고,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그게 전해질 때까지 결코 놓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먹으면서.


 잠시 후,

 따스한 두 팔이 노조미를 감쌌다.


 노조미는 처음으로,

 미조레의 힘이 엄청나게 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pilogue




 “그런데 어째서 울었던 거야? 내 연주, 그렇게 엉망이었어? 울고 싶어질 정도로?”


 깜짝 놀라 도리질을 하는 미조레가 너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또 꽉 끌어안았다. 망설이던 미조레가 다시 한 번 팔을 움직여 마주 끌어안게 되었다.

 상대가 자신을 지탱해 주고 있다는 감각이 주는 평온함. 언제까지라도 끌어안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제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힘겹게 몸을 뗐다.

 미조레는 팔을 풀어주지 않았지만. 도리어 떨어지는 걸 막으려는 듯 팔에 더욱 힘을 주었지만. 갈빗대가 부러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질 정도였지만.


 한참 후에야 아쉬워하며 팔을 푼 미조레는, 답을 채근하는 노조미의 시선에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


 “연주, 정말 좋았어…. 잘은 모르지만, 노조미가 말하고 싶은 게 잘 전해져서, 이것 때문에 음악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어….”


 이번에는 노조미가 부끄러워질 차례였다.

 그러나 미조레는 아직 답을 다 끝낸 게 아니었다.


 “그, 그리고, 질투…했어….”

 “질투?”

 “어째서… 어째서 리리카가 저기에 있는 거냐고…. 왜 내가 아닌 거냐고…. 노조미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한 나에게 벌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어….”

 “무, 무슨…!”


 당혹감에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행히도 미조레는 금방 말을 이어 당황한 노조미를 달랬다.


 “물론 아니라는 걸 알아…. 노조미가, 그렇게 뜨겁게 전해 줬으니까…. 노조미랑 같이 콩쿠르에 가고 싶어….”

 “그러자. 응. 그러자, 미조레. 콩쿠르가 끝나도, 같이 음대에 가서, 계속 같이 있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쉽게 말이 나왔다.


 “노, 노조미…?”

 “정말로 많이 생각했어. 준비도 하나도 안 되어 있고, 당장 부모님들부터 설득해야 하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같은 대학에 갈 거야.”


 니이야마 선생이 말했던 ‘재능’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재능을 ‘본인의 태도’와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걸 노조미와 미조레가 잘 알아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잘 알 수가 없었다. 노력해 봤자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말일까. 환경이 뒷받침을 해 주어도 본인이 동기를 잃으면 어렵다는 말일까.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재능과, 그 재능이 스러지는 모습을 보아 왔을 니이야마 선생의 말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다만….


 “내가, 미조레가 음악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싶어. 미조레가, 내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 주면 좋겠어.”


 미조레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달래려고 시도했다가, 이번에야말로 정말 갈빗대가 부러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굳게 붙들리고 말았다.

 정말 좋아해 허그의 봉인이 풀린 미조레는, 희대의 허깅 머신이 되고 있었다.


 머릿속의 냉정한 부분이 담담하게 지적한다.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연상되는 것은 하늘을 날겠다며 파닥거리는 리즈의 모습. 사람은 새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해피엔딩이 아니면 싫다’며 억지를 부리는 자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일 뿐이다. 노조미는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가시덤불은 부드럽고, 유황 불길은 따스하리라.

 그 지옥에서는 미조레의 오보에를 들을 수 있으니까.




 『카사키 노조미, 지옥문을 열다』 完.





※ 2년 전에 쓰다가 현생 크리로 놓아두고 있었던 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마무리해서 업로드.

※ 노조미가 폭탄 쎄게 터트려서 수습하느라 본편보다 더 완벽하게 코가 꿰이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https://fugufugu.postype.com/ 에 지금까지 쓴/쓸 백합 단편을 올릴 예정이니 혹시 이전에 쓴 글에 관심 있으신 분은 참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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