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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창작소설 단편 ' 돌메이커 루시 '

버터롤빵(59.3) 2020.05.12 10:44:16
조회 858 추천 18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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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은 내 최애가 된 시트러스 OP )



( 스압 진짜 진짜 심함. )


아래 링크는 전편에 해당하는 작품들이야. 모두 다 단편이긴 하지만 링크 상단부터 순서대로 보는 걸 추천할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565356&exception_mode=recommend&page=1 ' 여왕 엘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565895&exception_mode=recommend&page=1 ' 아이비 상편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566046&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name&s_keyword=%EB%B2%84%ED%84%B0%EB%A1%A4%EB%B9%B5&page=1


' 아이비 하편 '


ㅡㅡㅡㅡㅡㅡㅡ






단편 속 캐릭터 미니프로필






이름 : 아이비 프로스트




나이 : 36세




신장 및 몸무게 : 175cm / 62kg




직업 : 마트 ' 유리 ' 의 점장




자신있는 점 : 그 어떤 진상에게도 굴하지 않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 릴리 시티 ' 시장에게도 개길 수 있는 자신감이 있음.




올해 목표 : 노처녀 탈출






ㅡㅡㅡㅡㅡㅡㅡ




마트에서 입은 상처는 앤을 며칠 동안이나 앓아눕게 만들 만큼 심했다.


거울을 보면 볼수록 팔과 어깨에 시퍼런 멍이 들어서 안 그래도 연약해 보이는 앤의 몸을 더더욱 구슬프게 만들었다.


그나마 빠른 조치를 취했고 동료 직원의 차를 빌려 간 병원에서 2차 치료를 했기에 일 주일 뒤에는 걷고 움직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물론 조금의 충격에도 온 몸이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은 더 쉬어도 좋다는 유례없는 점장의 허락이 있긴 했지만 쉬면 쉴수록 급여가 줄어들기 때문에 앤은 서둘러서 직장에 나가고 싶었다.


앤이 다쳤다는 소리를 듣고 점점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물고 있는 엘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앤이 한사코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엘은 집안일의 대부분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식사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의 도움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앤으로써는 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더 이상 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앤은 무엇이라도 엘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앤은 어두운 티셔츠와 점퍼, 그리고 청바지로 온 몸을 가린 다음 집 앞 카페로 나왔다.


카페라고는 하나 간단한 음식도 제공해 주고 가끔 퇴근하고 배고플 때면 앤의 끼니를 해결해주는 좋은 단골 식당이었다.


카페로 들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누군가가 그녀에게 손짓하는 모습을 보았다. 앤은 그녀의 손길을 따라 걸었다.



" 너 잘도 돌아다닌다. "



앤은 구석진 바형 테이블에서 홍차 한 잔을 시켜놓고 있던 한 여자를 만났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는 앤의 얼굴을 보자 마자 심드렁한 모습으로 앤을 거리낌없이 불렀다.


짧게 두 갈래로 나뉜 그녀의 머리카락은 앤이 읽어본 소설 중에 붉은 머리 연맹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붉은 머리 연맹이라는 게 진짜 있다면 그녀의 머리색은 1등은 따논 당상이었다.



" 죽을 것 같아. "



앤은 베시시 웃으면서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어두운 옷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그녀가 다쳤다는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 그럼 집에 처박혀있을 것이지 왜 기어 나오는거야? "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앤을 쏘아붙였다.


다소 그녀의 입이 걸걸하고 험한 수준이었지만 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거친 인상과 말투와는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앤보다도 가늘고 또한 아름다운 노랫소리였다.


그녀의 목 위에서부터 발 아래까지 베틀로 짜낸 듯한 치밀한 귀여움이 가득했고 다리를 바꿔 꼬기만 해도 모델이 자세를 취함과 다를 바 없었다.


길거리에서 조금만 서 있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 정도는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처럼 보였다.



" 나와야만 했어...... "



앤은 그녀의 말 끝에 붙어 어색하게 대꾸했다.



" 내가 말을 말지...뭐 먹을래? "



여자는 길고 흰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집어 메뉴를 살폈다.


앤은 짧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홍차만 마실래. "



앤은 많이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더구나 이 곳의 홍차는 양이 넉넉해 마시기만 해도 의외로 든든한 느낌이었다.


앤의 요청을 들은 여자는 메뉴판을 접고 점원을 불러 주문을 설명했다.



" 홍차 두개 추가해주시고 치즈버거 하나랑 스팸구이 주세요. "



앤이 말하지 않은 것이 주문 목록에 올라갔다.


점원은 빠르게 사라졌고 찻주전자를 덥혀 다시 홍차 두 잔을 내었다.



" 홍차만 시켜 달라니까. "



앤이 말했다.



" 너 스팸 좋아하잖아. 일요일마다 스팸데이라고 스팸 맨날 구워 먹었으면서. "



" 학교 다닐 때 이야기잖아... "



앤은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콧잔등을 눌렀다.


이 귀여운 여자, 루시 데자이어는 이름난 여행사에 근무하는 사람이자 6살 때부터 그녀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어렸을 때는 함께 노는 즐거움으로, 성장기 때에는 학업의 치열함과 사춘기로, 성인이 되고서는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동료가 되다 보니 두 사람 사이는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은 앤의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앤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쉽게 찾지 못해 여러 번 직장을 옮겨다녔지만 루시는 어릴 때부터 확고한 꿈을 가졌기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사에 들어가 지금은 여행사 내에서도 유명인사로써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앤은 잘 믿지 않았지만 그녀의 귀여운 외모를 발산하기만 하면 많은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여행사를 이용하게 된다고 항상 들어왔다.


확실한 것은 루시에게는 정말 그만한 매력이 있기는 하다는 것이었다.


앤은 결국 포기하고 주머니를 매만졌다.


미약한 진동이 오는가 싶더니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앤은 전화기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전화를 받았다.



" 네 점장님. "



" 내가 매장 바깥에서는 뭐라고 부르라 그랬지 하우스 양? "



얼음장 같은 차가운 서리가 앤의 귀를 스쳤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루시가 앤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앤은 루시를 바라본 뒤 목소리를 한층 낮추어 대답했다.



" 아이비 언니...... "



" 그래, 자기 집이야? "



앤이 언니라는 단어를 말하자 마자 상대방의 목소리는 눈 녹듯이 부드러워졌다.


한창 낮고 안정된 목소리로 그녀치고는 퍽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 아니요, 오늘 잠깐 친구 만나러 바깥에 나왔어요. "



" 친구 만나러 나갈 정도면 많이 괜찮아졌나 보네? "


" 조금 아프지만 괜찮아요. 내일은 정시에 출근하겠습니다. "



앤은 노파심에 확실히 출근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이비는 그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 자기 출근하라고 전화한 거 아니야. 애지간해서는 더 쉬었으면 했는데, 필요하면 다 낫고 출근해도 돼. 난 자기 온몸에 붕대 감고 일하는거 보고싶지 않아. "



" 걱정 끼쳐 드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앤은 작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이미 충분히 걱정이야...내일 일단 일해보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퇴근하자 알았지? "



" 네 언니. "



전에 이를 데 없는 친절함이었다. 앤은 아직 이 친절함이 어색하기만 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앤이 다친 날부터 아이비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앤을 신경써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비가 새로운 심술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앤이 받아들이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 아참, 다른 건 아니고 금요일엔 시간 되는거지? "



" 그럼요. 갈 수 있어요. "



앤은 휴대폰의 달력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잘 쉬어 자기. "



" 들어가세요 언니. "



상대방이 보이는 영상 통화가 아닌데도 앤은 상대방을 향해 고개를 정중히 숙이고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친구는 황당하다는 모습으로 턱을 괴었다.



" 너 뭐하냐? "



" ...점장님이랑 통화? "



앤은 너무나 정직하게도 대답했다.



" 어느 점장님이 쉬는 날에 개인적으로 전화해서 자기라고 불러? 게다가 언니는 뭐야? 언니 행세 하고 싶은거야? 우엑... "



루시는 헛구역질을 하며 홍차로 입가심을 했다.


앤의 입장에서는 별 도리가 없었다.


언니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아이비는 매우 날 선 태도로 앤을 대했기 때문이었다.



" 점장님 앞에서.....이 모습으로 굴렀는데 그럼 어떻게 해. "



앤은 두 팔을 펴보였다. 옷자락이 살짝 당겨져 가려져 있던 붕대가 살짝 드러났다.


몇 번 갈아주긴 했어도 아직까지는 핏자국이 군데군데 맺혀 있었다.


안에서 터진 상처가 점점 검게 물들여가는 판국이었다.


때마침 요리가 나왔다. 루시에게는 작은 치즈버거 한 개가, 앤에게는 넓은 접시에 담긴 큼직한 스팸 세네 조각이 놓였다.



" 자랑이다 이 가시내야. 까딱하면 이 스팸이 아니라 흙을 먹었을 걸. "



루시는 먹음직스럽게 익은 스팸을 가리켰다.


별로 먹지 않는다는 말과는 다르게 앤의 손가락은 어느새 식기를 들고 스팸을 집어먹고 있었다.


커다란 조각을 입안 가득 밀어넣고 짜지도 않는지 앤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루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치즈버거를 한 입 베어물었다.



" 그래서 금요일에 애인 만나러 가니까 꾸미는 거 도와달라고 부른 거라고? "



" 점장님이랑은 그런 사이 아니야. "



통화 내용을 들었는지 루시가 넌지시 물었다.


앤은 스팸을 먹다 말고 포크를 든 그 손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해명했다.



" 아 그러셔? 너 집에 같이 사는 여자애도 있다매. "



" 엘은...나랑 사귄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돌봐 주는 거지. "



아이비에 이어 엘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앤은 스팸이 목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녀도 모르게 우유도 안 넣은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엘이랑 사귄다니, 그건 너무 앤에게 과분한 단어였다.


애초에 일의 앞뒤가 잘못되었다.


연애 소설이라면 앤이 주스 병을 깨트려서 옷을 더럽힌 시점에서 엘이 화를 내거나 변상하라고 외쳐야 하지만 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바쁜 일 시간을 쪼개어서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엘은 앤을 보러 이야기를 나누거나 저녁을 함께했다.


그런데다가 다친 앤을 위해 힘써 주고 아이비가 머리핀을 알아챈 이야기를 해 주자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기도 했다.


비록 가끔씩 엘과 같이 자긴 하지만 성적인 의미는 아직까지 전혀 없었다.


엘의 배려심 덕에 소위 말하는 ' 퍼스널 스페이스 ' 는 언제나 지켜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말 잠만 잤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터치만 있었다.



" 그래 그런 거로 하자, 세상에 내 친구가 불륜을 저지르고 다니네. 그짓도 한 번 안해 본 얘가. "



앤의 표정이 복잡해지는 걸 보았는지 루시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뜨거운 홍차를 들이켰다.


루시의 필터 없는 단어설정에 앤은 질색했지만 루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앤이 생각하는 루시의 단점이 하나 있다면 루시는 얼굴이 두 개란 것이었다.


영업직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영업용으로 사용하는 귀여운 얼굴.


그리고 지금처럼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얼굴이 있었다.


영업용 얼굴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만 일반적인 얼굴은 다소 과할 만큼 언어 선택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잠시만이라도 만나자고 한 것도 어디까지나 앤의 부탁이었다.


앤은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 같이 쇼핑 좀 가 줘. "



앤은 스팸 조각을 씹으면서 정중히 부탁했다.



" 안그래도 그럴 거였긴 한데 뭐 옷 봐달라고? "



루시가 찻잔을 내리며 물었다.



" 옷도 옷이고...나 몸에 이것저것 달면 어울릴까? 너처럼... "



앤은 루시의 귓가를 가리켰다.


루시가 살짝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다.


그녀의 왼쪽 귀에는 푸른 색 귀걸이가 꿰어져 있었다.


루시는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 그렇게 대학교 다닐때 죽어라고 말해도 안 듣더니만 졸업하고 마트 다니니까 꾸밀 생각이 생기디? "



" 그렇지만...엘이 말해줬다고. "



앤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오른손이 슬쩍 올라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녀는 오늘도 남색 머리핀을 착용한 상태였다.



" 엘, 엘, 또 엘이군, 언제 한번 그 여자 얼굴을 좀 봐야겠어. 어떻게 생겼길래 이렇게 껌뻑 죽을까, 개 혹시 가슴 크냐? 너 그런 거 좋아하잖아. "



" 아니야아! "



앤은 배꼽에서부터 소리를 짜내어 윽박을 지르고 의자에서 반쯤 일어서서 상반신을 앞으로 일으켰다.


원래라면 루시의 볼을 잡아당겼어야 하나 시큰거리는 팔이 그 일만은 막았다.


루시는 한창을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배를 붙잡고 웃었다.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는 것조차 루시에게는 아주 큰 재미의 대상이었다.


호흡이 곤란해질 때쯤 웃던 루시는 힘들게 숨을 고르고 앤의 무릎 아래부터 머리까지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 너 고개 좀 들어봐. "



" 이렇게?...... "



루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녀의 눈매가 지적이게 변한 것을 보고 앤은 천천히 그녀가 하는 말대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녀는 일할 때면 누구보다 진지하기 때문에 앤은 그녀의 안목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하얀 앤의 목이 드러났다.


목의 뒤편은 여전히 패치가 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 부분은 잘 드러나지도 않고 앞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 상태였다.


목마저 붕대를 감으면 일을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앤은 한사코 의사에게 그것만은 거절한다고 부탁했다.



" 좋아. 초커 사러 가자. "



" 초커? "


한창을 뚫어져라 앤의 목을 쳐다보던 루시는 남은 치즈버거 조각을 입에 털어놓고 홍차를 마신 다음 지갑을 챙겼다.



" 넌 너무 밋밋해. 좋게 말하면 수수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무개성이야. 그 꼴로는 지나가던 발정난 여고생 하나도 못 꼬셔. "



앤은 계산하려 카운터로 향하는 루시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루시는 비명을 지르며 한쪽 발로 뛰어가면서도 자신이 한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 몸으로 퍼지는 통증에 앤이 눈을 질끈 감을 정도였다.


짧은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그 즉시 시내로 나가 액세서리점으로 향했다.


앤은 악세사리에 관심이 없어 머리에 차고 있는 남색 머리핀도 아무대서나 구한 것이지만 루시는 아무 가게나 가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몇 군데의 액세서리 가게를 지나친 다음 분홍색 간판이 달린 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루시는 앤의 팔을 잡아 이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온통 손님들로 가득했다.


머리핀부터 시작해서 카츄샤를 비롯한 머리띠, 귀걸이에 반지는 물론이요 여성을 위한 작은 패션 아이템이라면 이 곳에 모두 담겨 있었다.


한창 꾸미는 걸 좋아할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자신의 몸에 대 보면서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찾기도 했다.


가게의 내부는 기다란 L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루시는 앤을 구석진 곳까지 데려가 판매 물품을 살폈다.


앤은 자신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초커를 보았다. 장식이 달린 것, 그냥 끈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특이한 보석이 달린 것도 있었다.


루시는 그 중에서 세 개의 초커를 골라 앤에게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벨벳 소재에 하트 장식이 달려 있는 초커


두 번째는 견고해 보이는 버클이 달려 있는 초커


세 번째는 가운데에 조그마한 모조 진주 장식이 박혀 있는 초커였다.,



"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세 개 중에 뭐가 좋아? "



루시는 세 개를 나열해 보여주면서 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러나 앤이 생각하기에 이 초커들은 너무 아찔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끈으로 된 것이나 가벼운 프릴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루시의 선택은 하나같이 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 다들 좀 너무 과격한데...... "



" 지금 제대로 안 고르면 금요일날 그 언니인지 점장인지한테 욕 바가지로 먹는다. 이 안에서 확실히 골라. "



" 그럼...이걸로. "



루시의 단호한 태도에 앤은 손가락을 펴 가면서 고민하다 들어보고 거울에 대 보면서 그나마 나아 보이는 것을 집었다.


앤의 선택은 검은색 가죽띠 바닥에 작은 모조 진주 장식이 달린 초커였다.


루시의 미적 관점이 잠시 동안 고민하는 듯 했으나 그녀의 기준을 통과하고 곧 다른 곳으로 향했다.



" 그래 이거 고른 다음에...너 귀 뚫었어? 아니 됐다, 머리 하나도 넘기지도 않던 애가 뚫을리가 없지. "



루시는 앤을 내버려두고 반대편으로 뛰어가다 곧 뭔가를 집어들고 다시 앤에게도 돌아왔다.



" 이거 껴. 스프링식이라 귀 안 뚫어도 낄 수 있어. "



루시는 앤에게 귀걸이 한 쌍을 내밀었다.


그 귀걸이는 스프링 방식으로 밀어젖힐 수 있어서 굳이 귀를 뚫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었다.


초커에 달려 있던 진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짝이는 크리스탈이 따뜻한 가게 천장 조명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비춰졌다.


앤은 주섬주섬 귀걸이를 집고 자신의 왼쪽 귀에 매달아 보았다. 그리고 반대쪽에도 천천히 귀걸이를 매달았다.



" 괜찮아 보여? "



앤은 루시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루시는 앤의 크리스탈 귀걸이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마치 사진을 찍는 듯 손을 L모양으로 펴서 구도를 잡아 보았다.


아름다운 귀걸이가 조금 허전하다 싶던 그녀의 얼굴을 돋보여 주었고 머리핀으로 인해 머리칼이 넘어간지라 그녀의 귀가 아주 잘 보였다.



" 음 이제 좀 초등학생에서 벗어났군. 초커까지 하고 있으면 9학년 정도로는 보일 수 있겠어. "



" 나 지금 놀리니? "



앤이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대꾸했다.



" 너랑 원조교제하냐는 소리 듣기 싫거든? 기억 안나? 너 데리고 술 마시러 가다 경찰에게 잡힐 뻔 한 거, 이젠 너랑 유흥가 가기 무서워! "



말을 꺼낸 것은 앤이었지만 도리어 욕을 먹는 것도 앤이었다.


경찰에게 끌려가면서도 사정사정하던 루시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라 앤은 입을 다물고 귀걸이를 풀기 시작했다.


루시는 앤에게서 귀걸이를 다시 받아들고 직원 앞에서 물건과 카드를 내밀었다.



" 실례합니다 계산해주세요. "



" 왜 네가 계산해? "



앤은 루시를 밀고 자신의 지갑을 뒤졌다.


하지만 루시가 더 빨랐다.



" 이 언니가 성인식 선물로 산다. 남은 건 스팸이나 사먹어라. "



직원은 재빠르게 물건을 계산했다.


그런데 아까 앤이 고르지 않았던 2개의 초커도 같이 봉투에 담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앤은 자신이 잘못 보았나 싶어 영수증을 보았다.


역시나 영수증엔 초커 3개가 찍혀 있었다.



" 이것도 사는 거야? "



" 넌 속옷 한 세트만 사냐?, 잔말 말고 어서 껴봐. "



앤과 루시는 가게를 벗어나 골목길 앞에서 멈추어 섰다.


앤은 봉투 안에서 자신이 직접 고른 진주 장식이 달린 초커를 꺼내들었다.


그런 다음 초커를 집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앤은 두 팔을 올리려다 미묘한 감각이 들어 팔을 다시 내려야 했다.


통증이 생각보다 심했다.


살짝만 누르는 거라면 괜찮겠지만 팔을 뒤로 하는 동작이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앤은 곤란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미안 나...... "



" 가지가지 한다. "



루시는 하는 수 없이 앤에게서 초커를 다시 받아들고 그녀의 목을 천천히 둘렀다.


초커의 얇은 띠가 서서히 그녀의 하얀 목을 감싸왔다.


그녀의 목 뒤를 조심스럽게 감싸기 위해 루시가 팔을 뻗으려는 찰나 앤은 갑자기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 아앗...... "



앤은 골목길 벽에 몸을 기댔다.


루시는 자신이 아프게 했나 싶어서 손을 살짝 떼었지만 보이는 부위는 상처가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천천히 초커를 두르려 하니 이번에는 손이 살짝만 닿아도 앤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짧은 숨을 뱉듯이 들어올리는 것이 묘하게 남은 숨을 색색거리게 했다.


이쯤 되니 루시는 함부로 목을 두를 수도 없었다.



" 왜...왜 이상한 소리 내고 그래? "



" 나 ㅁ...목... "



앤은 어색하게 더듬으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오랜 친구 루시는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붉은 머리를 긁고 한숨을 쉬었다.



" 너 목 약하지......조금만 참아. 살살 해 줄게. "



" 으응...... "



앤은 두 눈을 감았다.


루시의 손이 바깥쪽부터 둘러지고 어깨 뒤에서 고스란히 두 손이 맞닫았다.


앤은 루시의 팔을 붙잡고 있었지만 강하게 힘을 쥘 수는 없었다.


점점 더 실이 다가올 때마다 애타는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빨리 해주면 좋으련만 그랬다가는 그건 그거대로 힘들 것 같았다.


끈과 끈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앤의 목에 서서히 올라왔다.


그러나 문제는 진주 장식이었다.



" 하아..... "



진주 장식이 그녀의 쇄골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자 그 미묘한 마찰감에 앤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자극이 있어서인지 앤은 다리가 서서히 풀리려고 했다.



" 가만히 있어, 몸 비틀지 말고. "



루시는 다시금 언급했다. 그녀의 두 다리가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아예 바깥쪽으로 눌러 주었다.


이제 완전히 끈을 채웠고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지극히 단순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고리가 걸리자 루시는 왼손을 빼다가 그녀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앤의 입에서는 또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참지 못했는지 골목길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이 슬쩍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그러나 골목길에 있는 루시에 가려져 앤은 잘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금방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사라졌다.


다만 크나큰 오해를 산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루시는 초커를 채우자 마자 두 팔을 황급히 떼었다.


앤이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 고마워... "



루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그 말에 대답하면 괜스레 루시가 더 부끄러워졌다.


어서 그녀는 앤에게 귀걸이를 다시 차라고 요구했다.


그 다음 루시는 앤의 손을 붙잡고 다른 가게로 향했다.


장식물이 정해졌으니 이제는 옷이었다.


루시는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앤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기 위해 방방곡곡으로 뛰어다녔다.


앤과 루시의 의견은 너무나 달랐다.


가령 앤은 아주 수수하고 몸을 가릴 수 있는 것을 원하는데 루시는 어떻게 해서든 앤의 이 체형을 바꾸고자 했다.


앤이 수술을 할 수는 없으니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루시는 앤과 몇 차례 동안이나 말싸움을 하다 결국 최종적인 결론을 내었다.


루시가 원하는 화려함의 정도가 10이었다면 앤은 3을 주장하였고 두 사람의 의견 절충안은 결국 7이었다.



" 좋아. 이제 진짜 성인으로 보여. "



루시는 갈아입기 불편한 앤을 위해서 최대한 그럴 필요가 없는 옷을 골라 주었다.


지금 앤은 회색 티를 안에 받쳐 입고 그 위에 도톰한 검은색 재킷을 걸친 상태였다.


그리고 평소에는 잘 입지조차 않는 무릎 정도 오는 스커트가 그녀의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루시는 더 짧은 스커트를 원했지만 너무 짧으면 그녀가 입은 상처가 다 보이기에 그건 루시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온통 검고 어두운 색 일색이지만 지금까지의 앤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예전에는 음침하고 어두워 존재감도 잘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은 확실하게 자기주장이 되는 머리칼에


아름다운 귀걸이, 그리고 하얀 목을 돋보이게 해주는 초커가 걸려 있었다.



" 그래? "



" 아직 약간 로리타 패션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훨씬 낫지. 약간 이렇게 해 봐. "



루시는 자신의 상의를 벌리면서 두 팔을 뒤로 빼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앤은 어색하게나마 그 행동을 따라했다.


재킷이 벌어지고 그 안에 감싸쥔 회색 상의와 그녀의 가냘픈 몸, 진주 장식이 달린 초커가 한 눈에 모두 들어왔다.


어색하기만 한 다리이지만 청바지가 아닌 스커트가 그녀의 각선미를 더 드러내게 해 주었고 붕대 때문에 티가 덜 나지만 전보다는 훨씬 더 그녀를 나이들어 보이게 해 주었다


루시는 다리도 살짝 모으라고 지시했다. 시키는 대로 다리를 약간 모으니 그녀 역시 천상 여자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 드디어 우리 유치원생이 재롱 부리는 법을 배웠군. "



루시는 턱을 괴더니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예술 박수를 쳤다.


앤은 다소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한 것만큼 변한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오늘 앤은 루시를 만날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오늘 정말 고마워. 이제 들어가 봐야할 것 같애. "


앤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루시를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미 저녁을 넘어 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도 검게 그슬리고 있었다.



"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들어가? 친구보단 애인이야? "



루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곧 능글맞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 오~그래, 내가 그걸 생각 못했네. 얼렁 동거인에게 달라진 네 모습을 보여주고 싶겠지. 그래 가 봐. 대신 오늘 밤 끝나고 연락해. 초커 바꿔 채워달라는 거 잊지말고."



한껏 간드러진 목소리에 앤은 진심을 담은 경멸의 눈초리를 루시에게 쏘아 붙였다.


아까와 똑같은 표정이지만 옷이 달라지고 장식이 달라지니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루시는 그런 앤의 표정조차도 코디네이팅의 완성이라고 여겼다.



" 그래 지금 그 눈빛이야. 그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라고. 얼마나 고혹적이야. 그정도면 애인 낚는 데 문제 없어. "



" 나 갈 거야. "



앤은 루시의 정강이를 다시 걷어찼다.


이번에는 반대편이었다. 루시는 대로변에서 정강이를 붙잡고 방방 뛸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앤은 횡단보도를 건너 그녀의 집을 향해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차도로 사라지기 전 루시는 앤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


상처를 입었다 해서 걱정하고 위로의 말을 잔뜩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루시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 진짜 많이 달라졌네...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던 애를 어떻게 저렇게 바꿨을까? "



루시는 친구의 갑작스런 변화가 놀라웠지만 거의 외톨이로 지내던 친구가 바뀌기 시작한 모습을 보는 것은 섭섭하면서도 몹시 행복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빙빙 돌리며 그녀가 내일 무슨 문자를 보내올 지를 기대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녕, 버터롤빵이라고 하는 백붕이야. 항상 많은 성원 보내줘서 고마워, 이번에는 마지막 주요 캐릭터 ' 루시 ' 를 등장시켰어.


2차창작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재미는 덜하겠지만 한사람이라도 재밌게 봤으면 큰 보람을 느꼈다고 생각해.


아 참고로 다음 편에 드디어 애정신 나올 것 같은데 이걸 얼마만큼 여기 수위가 얼마큼 함?...댓글로 대답해주면 ㄳ.


근데 기대는 많이 안하는게 나을수도 있음...이번 화를 보면 알겠지만 난 그렇게 애정신 우위가 높지가 않음.


그럼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올게. ㅂ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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