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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ta-nos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5 18: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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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꿈을 꾼 것 같다.

"이번엔 꼭 올 거지?"

"글쎄.."

"이제 올 때도 되었잖아. 벌써 10년이나 지났어. 애들이 네 얼굴 보려고 얼마나 기다리는지 알아?"

"애들한텐 잘 지낸다고 전해줘.."

"직접 와서 하라고! 아무튼 꼭 오는 거다? 나 애들한테 너 온다고 다 말해놨어. 꼭 와."

"자, 잠깐!"

할 말만 하고 멋대로 끊어버리는 바람에 이번엔 피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사실 나도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게 아니다. 동창회를 하면 이정연이 오니까. 무조건 오니까 피하는 거다.

이정연은 한때 내가 짝사랑했던 아이의 이름이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픔이 무뎌져야 하는데, 늘 정연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게 보통 짝사랑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이제 난 19살 여고생이 아니다. 그 후로 애인하나 못 사귀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는 어느 정도 갖춘 상태였다. 엄마부터 시작해 직장동료들이 선을 보지 않겠냐며 자주 묻고는 했지만, 연애는 나와 거리가 있는 일이었다. 나이를 삼십 먹은 지금, 사랑에 울고 웃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야 이왕 오는 거 이쁘게 하고 와」

"하여간 김다영 오지랖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영이는 졸업하고도 계속 연락을 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가끔 그 넓은 오지랖으로 내게 소개팅을 하지 않을 거냐며 물을 땐 피곤했지만, 어찌 되었건 내 소중한 친구라는 건 변함없었다. 게다가 다영이는 내 비밀을 아는 얼마 되지 않는 친구였다.

"야, 세빈아. 너는 기죽을 것 없어. 그게 뭐 어때서? 난 네 편이야."

어찌 보면 그 오지랖 때문에 내 비밀을 알아챈 걸지도 모른다. 다영이가 없었다면 난 벽장 안에 갇혀 나올 생각조차 못 했겠지.

"야! 어서 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서 다영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손을 흔들어대었다. 식당 안에 있는 모두가 나를 쳐다봤기에 고개를 푹 숙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야! 창피하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내 말에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뿐이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는 동창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식당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정연은 없는 듯했다. 안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애들이 한마음으로 "오~!"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인데 분위기 탓인지 평소의 주량을 훨씬 넘겼다. 슬슬 눈앞이 흐려지더니 머리가 아파졌다. 애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이정연이 보였다. 정말 이정연이 맞을까? 얼굴조차 뿌옇게 되어서 보이지 않는데..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이정연이 나오는 꿈을 꿨다. 이정연은 아직 다 피지 않은 담배를 아무렇게나 버려두고는 나에게 다가와 입술을 포개었다. 이정연과의 키스는 당연하게도 담배맛이 났다. 꿈속의 이정연은 내가 알던 이정연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래서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랐다.



...



"핫!"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우리 집은 아니란 건 뻔히 알겠고 다영이의 집도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정갈하게 놓인 수건을 보니 호텔인 것 같았다. 나름 성공한 직장인이지만 호텔은 늘 제 몸에 맞지 않는 사치라고 여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일어났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속옷 차림으로 창가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 체 나를 바라보는 이정연이 있었다. 이정연은 꿈속처럼 입에 담배를 물다가 나를 보며 서둘러 재떨이에 집어넣었다. 이건 꿈일까? 에이 설마.. 꿈이겠지.

그렇게 마음먹으니 서늘한 기운이 내 가슴께를 감쌌다. 나는 고개를 숙이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모습에 서둘러 이불로 몸을 감쌌다. 잠은 물론이고 숙취도 한 번에 달아났다.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창가를 바라봤다. 이정연은 없었다.

"휴.. 역시."

"뭐가 다행인데?"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두르는 이정연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정연은 얼굴을 찌푸리며 왜 사람을 귀신 취급하냐며 따졌으나,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경황이 없었다.

"너 설마 기억 안 나는 건 아니지?"

"뭐, 뭘?"

혹시 술에 취해 큰 실수라도 저질렀나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내 얼굴을 본 이정연이 배를 잡고 웃어대었다.

"농담이야."

벙찐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다 내게 입술을 맞대어오는 이정연에 깜짝 놀랐다. 이정연은 내가 놀라든 말든 신경 쓰지 않더니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는 나를 침대에 눕혔다. 입술을 떼내자 싱긋 웃어 보이고는 귓가에 조그맣게 소곤거려 간지럽혔다. 이정연의 말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나는 말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었다.

"그럼 슬슬 어제 못한 일을 마저 해볼까?"

하지만 이 모든 건 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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