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여름.(치사카논)앱에서 작성

Nsa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6 13:03:30
조회 981 추천 25 댓글 2
														

viewimage.php?id=21b4dc3fe3d72ea37c&no=24b0d769e1d32ca73ced81fa11d02831edca684dcd73c50d611ea9794f01f84f2513a6c8ab2049b2aa9dedf2de416977ecbb654dedb70f82f3cd91d9c6dc8bb006ae5d74d8086a82d05b75b3f721b429c470f8e97c64164a58eaf6dd62895b5bfdf858b469b5b4564c

저번에 이어 이번에는 여름을 소재로 써왔어

—-

 여름이 부쩍 다가온 어느 휴일에, 진한 커피향과 달큰한 종류의 디퓨저의 향기가 섞이고, 여러 종류의 디저트의 향기가 은은하게 흐르는 카페에서 치사토와 카논은 창가쪽 자리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면서 각각의 방식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따스한 바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고, 뜨거운 바람이라 말하기도 애매한 어중간한 바람이 활짝 열린 창문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열풍은 장난스러운 성격을 가진 것인지 빠르게 내부를 휘젓고 다니면서 많은 이들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지나갔다.

 그 바람에 애써 정돈해둔 머리카락의 몇 가닥들이 또다시 삐죽삐죽 헝클어지자 치사토는 낮은 한숨을 작게 내쉬면서 들고있던 잡지를 내려두고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따사롭다 못해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과, 햇빛을 반사해서 계속 보고있기에는 눈이 부신 흰색 담벼락, 담벼락의 벽을 뒹굴거리며 올라가는 담쟁이덩굴과, 그 사이사이에 피어서 그 화려한 얼굴을 내비치는 장미는 여름이 오고있음을 눈부시게 선언했다.

“치사토 짱?”

 여름의 사절들이 발하는 눈부신 매력을 눈에 담고 있자니, 바로 앞에서 사근사근하고, 상냥해서 듣고 있다보면 졸음이 눈꺼풀 위로 쏟아질 것 같이 편안한 목소리가 치사토의 귀를 간질였다.

 주변에서 반사되어 모이는 햇빛의 탓인지, 사파이어 보다 더 밝게 빛나는 시원한 하늘색의 머리카락은 평소보다도 더 밝게 보여서, 그 빛깔이 바다와도 닮아있어 괜스레 더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카논의 바다같은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굽이쳐 어깨위로 떨어져 내리고, 머리카락의 색과도 닮은 옅은 하늘색의 셔츠와 깔끔한 흰색의 스커트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시원함을 자아내는 그녀는, 완연한 여름을 닮아있었다.

“응. 카논.”

 치사토와 눈이 마주치자 카논은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가볍게 끌어올렸다. 호선을 그리는 입술과 눈꼬리가 자아내는 부드러운 미소가 포근한 꽃처럼 피어난 것 같았다. 카논은 읽고있던 쪽에 하늘색 책갈피를 조심스럽게 끼우고 조금은 두툼한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밖에 재밌는 일이라도 있나 해서. 슬슬 나갈까?”

  계속 이곳에만 있기엔 아쉬운가봐. 치사토의 시선이 뜻하는 바를 그렇게 생각한 카논은 이슬이 아롱아롱 매달려있는 유리잔을 쥐어들고서 한모금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말했다.

 “응? 아니, 아무일도 없었어. 벌써 나가게?”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밖으로 나가자고 하다니, 카논은 여기가 마음에 안드는걸까, 그렇다면 조금 아쉬운데. 치사토는 눈을 여러번 깜박이더니, 카논의 미소에 보답하듯이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했다. 벌써 가기는 조금 아쉬웠지만, 카논이 가고싶다면 군말없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으응, 아니. 난 치사토 짱이 심심한 것 같아서.. 치사토 짱이 괜찮다면 조금 더 있자!”

  치사토가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카논은 조금 전보다 더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했다.

 “심심하지는 않지만.. 아, 그렇지. 카논. 괜찮다면 우리 이거나 같이 하지 않을래?” 

 카논의 밝은 미소가 괜히 귀여워서 치사토의 입꼬리는 어느새인가 더 짙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렇게 둘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겁지만, 조금은 더 재미있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치사토는 자신이 책상위에 내려둔 잡지에 시선을 보냈다.

 분명 이쯤에 있었는데.. 치사토는 잡지를 다시 집어들어서 빠르게 여러 면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넘기면서 그녀가 본 그 부분을 찾았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몇 번이나 바람을 타고 지나가자, 그제서야 그녀가 찾던 부분을 발견한 것인지 치사토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잡지를 뒤집어 카논에게 밀어주었다.

 “ ‘연인과의 애정이 더욱 깊어지는 간단한 질문들!’..? 이런 것도 있구나..”

 치사토가 밀어주는 잡지의 펼쳐진 쪽을 빠르게 눈을 굴려 간단히 읽어본 카논은 고개를 가볍게 주억거리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낮은 탄성을 내었다.
 
 “ 간단히 즐기기에는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카논?”
 “어떤 질문이 나올까.. 조금은 무섭긴 한데, 좋아! 같이 해보자. 치사토 짱.”

 그럴 줄 알았어. 흔쾌히 받아들여준 카논을 향해 치사토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잡지를 가운데에 두고서 나즈막히 첫 질문을 건냈다.

 “으음. 처음은 너무 쉬운걸? ‘연인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카논이지. 마츠바라 카논.”
 “그러게, 처음이라서 간단한 걸 넣어둔걸까? 애초에 이름조차 모르면 연인이라고 말하면 안되겠지만.. 앗. 그래서 내 연인의 이름은.. 시라사기 치사토.”

 이렇게 제대로 본명을 부르니까 뭔가 어색하다. 정말로 오랜만에 불러보고, 듣게된 서로의 본명이 어색한듯 끝말을 길게 늘이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한 카논은 볼을 가볍게 긁적거리면서 다음 질문을 눈으로 훑었다.

 “다음은.. ‘연인의 생일은 언제인가요?’ 이네. 치사토 짱의 생일은.. 으음. 4월 6일! 맞지? 치사토 짱?”

 다음 질문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조금, 아주 조금의 고민이 엿보였지만,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있게 말하는 카논이 귀여워서, 치사토는 무심코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 웃음을 손등으로 가볍게 눌렀다.  카논이 무리없이 자신의 생일을 맞추자 조금은 기쁘면서도 장난치고 싶은 치사토는 웃음을 조금 누르고 나서 표정을 가다듬고, 살짝 새침하게 말을 이었다.

 “정확해, 카논. 틀렸으면 조금 속상할 뻔했지만. 카논의 생일은 5월 11일. 바로 몇 일 전이었는데 잊어버릴리가 없지.”

 새침하게 말을 받아서 이어가는 치사토가 샐쭉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재밌고, 그러면서도 목소리에는 따뜻함과 장난끼가 녹아있는 것이 사랑스러워서 카논도 무심코 웃음을 소리내어 흘렸다. 

 “치사토 짱은 단번에 맞힐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어!” 
 “당연하지. 카논. 애초에 그 몇 일전의 일을 잊어버리는게 더 이상하겠어..”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생일인데. 카논. 말갛게 웃으면서 그 반짝거리는 자주색 눈으로 자신과 눈을 마주하는 카논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치사토는 머릿속을 차지하는 여러가지 잡생각이 파도에 쓸려나가듯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얗게 덧칠해지면서 멍해진 정신을 다시 차릴 때즈음에는, 이미 자신의 손이 카논의 말랑한 볼을 가볍게 꼬집어 당기면서 그 촉감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치, 치사토 짜앙..”

 대뜸 볼을 꼬집혀서 잡아당겨져, 조금은 얼얼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카논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치사토를 불렀다. 갑자기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아. 미, 미안. 카논. 그냥 무심코.. 카논이 너무 귀여워서..”

 치사토는 자신의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오는 카논의 볼의 부드러운 촉감과, 볼에서 느껴지는 그 체온이 손가락의 온도와 얽혀져서 뱀처럼 빠르게 손가락을 휘감아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뜨거운 온기가 손끝까지 휘감아 오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치사토는 황급히 손을 거두면서 드물게 당황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으으..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니까.”

 치사토가 잡고 있던 볼을 놓아주자, 카논은 이슬이 맺혀있는 유리잔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쥐었다가 손을 떼었다. 그리고 나서 이슬이 아롱아롱 매달린 손바닥을 쫙 펴서 자신의 볼을 가볍게 꾸욱, 누르며 얼얼한 볼을 살며시 문질렀다. 치사토가 조금 세게 당긴 것인건지, 아니면 치사토의 말을 들어서인지 카논은 자신의 뺨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으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 어디.. “

 볼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누르는 카논을 보면서 약간의 죄책감이 피어오른 치사토는 시선을 잡지로 돌리면서 화제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빠르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세 번째 질문을 읽자, 치사토는 옅은 숨을 들이쉬고는, 놀란 것처럼 잠시동안 숨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삼킨 숨을 다시 내뱉었다.

“..카논. ‘연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카논을 향해 내뱉는 그 짧은 질문에서, 치사토는 자신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가볍게 시작한 질문들인데 왠지 모르게 답을 기대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혹여나 카논의 입술 사이로 나온 답이 실망할 수도 있는 답이면 어쩌지, 불길한 생각이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드리워져 얼굴을 덮은 것 같았다. 느슨한 미소를 자아내던 입꼬리가 정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꾹 다물려지고, 나른하게 호선을 그리던 눈꼬리도 날이 서게 삐죽, 올라가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으응? 치사토 짱을 좋아하게 된 이유라..”

 하지만 카논은 치사토에게서 질문을 받자,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면서 치사토와 처음 만난 순간, 같이 보낸 시간, 특별한 일들.. 많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눈을 꾹 감고 생각하느라 조금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 치사토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지 눈을 살포시 뜨고 조금은 멋쩍은듯이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네..”

 카논의 입술에서 답이 떨어지자 치사토는 자신의 심장이 덜컥, 소리를 내면서 툭 떨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삐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자기 자신이 인형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려 미소를 지으려고 해도 딱딱한 나무라도 되어버린냥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뭐냐고,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답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충격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김빠진 바람 소리뿐이었다.

 “...”
 “으응, 분명 치사토 짱이라서 좋아하게 된 거야.”

 눈언저리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여름의 열풍이 쓰다듬고 지나간 자리라고 넘기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조금씩, 그 열기를 점점 더 키워갔다. 그동안 몇 년이나 해온 연기를 카논 앞에서 해보려고 해도 카논을, 이 아이를 앞에 두고서는 제 표정은 지나치게 솔직해지는 감이 있었다.

 “그으..래도 약간의 이유라도 있을 거 아니니? 막, 이렇게 대해서 좋다.. 라던가.”

 하아. 소리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깊은 한숨을 내뱉고 치사토는 눈언저리를 검지와 중지의 끝으로 가볍게 꾹꾹 누르면서 거칠게 흔들리는 마음을 겨우겨우 그 끄트머리만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한 마음으로 애써 입꼬리를 살짝만 겨우 비틀어 올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카논에게 말했다.

 “...으응.”

 카논은 치사토의 그 목소리가 어렴풋이 떨리고 있음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눈을 몇 번이나 꿈벅거리면서 그 이유를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아. 치사토 짱이 오해를 하고있구나. 바보같지만.. 사랑스러운 오해를.

 “치사토 짱. 치사토 짱.”

 카논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자, 그녀의 소중한 연인이 더욱더 사랑스러워져서 얼굴에 자연스럽게 깊은 미소가 떠올랐다.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치사토의 얼굴이 더 보고싶어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장난이나 칠까, 괜히 떠오르는 장난스러운 충동에 잠시동안 고민한 카논은 그 충동을 꾹꾹 눌러안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건 집에서 해도 충분하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필요없어. 치사토 짱.”

 여름의 장난스러운 열풍을 닮은 충동적인 장난끼를 억누른 카논은, 헛기침을 가볍게 몇 번 터뜨리고 나서 얼굴에 바다같은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술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치사토 짱은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랑 똑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해도 좋아할 수 있을거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치사토는 창틀 너머로, 슬슬 카페 안으로 수줍게 들어오기 시작한 뜨뜻한 햇빛이 마치 그들의 모습을 엿보기 위해 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제게 사근사근하게 말을 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은 태양이라도 질투할 만 하니까.

 “난 아닐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치사토 짱,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한게 치사토 짱이라 좋아하는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치사토 짱이 그러한 행동을 해서 그 행동들도 좋아하는거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야.”

 샐쭉한 눈으로 그림자의 끝에서 카논을 바라보는 태양의 시선이 그녀의 머리카락 끝자락에 닿자, 카논의 바다같기도 하고, 하늘같기도 한 은은한 머리카락은 보석처럼 무지개색으로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반짝이고 있어서 치사토는 그 모습을 보고,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다시금 확신했다.

 “내가 치사토 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단지 치사토 짱이라서 좋아하게 된거야.”

 이거면 설명이 되었을까? 살포시 마음 위로 떨어지는 포근한 미소와 함께 이어지는 카논의 말은 그 너울거리며 내려앉는 모습과는 다르게 치사토의 심장에 쿵, 하고 큼직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부끄럽네..”

 말을 마친 카논은 정말로 부끄러운 것처럼 볼을 검지로 가볍게 긁으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려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봉숭아 물이 드는 듯이 카논의 볼에 분홍빛이 돌기 시작하자,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있는 치사토는 그저 바보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낯뜨거운 말을 해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던 카논은 치사토에게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려 치사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멍하니 굳어버린 치사토의 얼굴을 본 순간, 카논은 무엇인가 잘못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꺼풀을 몇 번이나 달싹거리며 꿈벅이더니 이내 풋, 하고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몸을 잘게 떨었다.

 “치사토 짱. 정신차려!”

 마치 스스로의 시간에 갇혀서 멈춰버린 것처럼 멍하니 굳어있는 치사토를 보면서 웃음을 흘리던 카논은, 자리에서 일어나 치사토의 옆자리로 다가가서 풀썩 앉으면서 치사토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카, 카논?!”

 귓가에서 카논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가감없이 고막을 때리자, 치사토는 퍼드덕 몸을 떨면서 소리가 들린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심 그런 치사토의 반응을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검지를 들이대던 카논의 손가락 끝에 찔려 치사토의 볼이 푹 들어갔다. 치사토의 말랑한 볼을 찌른 카논은 그제서야 자신을 바라본 치사토와 눈을 마주하면서 햇살처럼 웃어보였다.

 “걱정했어, 치사토 짱. 기절한게 아닐까? 하고.”

 에헤헤, 나즈막한 웃음을 흘린 카논은, 치사토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가락을 거두었다.

 “나만 부끄러운 말을 하게 만들지말고.. 치사토 짱도 답을 들려주면 좋겠어. 치사토는 왜 나를 좋아하게 된거야?”

  카논이 손가락을 거두자, 그제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전히 이해한 치사토는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얼굴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 같아 치사토는 아직 내용물이 남아있던 유리잔을 강하게 쥐고서 단숨에 남은 음료수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러고도 진정이 되지않아서 차가운 유리잔의 온도가 남아있는 손으로 자신의 볼을 가볍게 감싸며 쓰다듬었다.

 “...”

 말없이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는 치사토를 보던 카논은 눈길을 잡아끄는 강렬한 색감에 우연히 치사토 너머의 창 밖으로 보이는 담벼락에 시선을 돌렸다. 뜨거운 햇빛을 반사하는 흰색의 담벼락을 감싸 안으며 피어난 붉은 장미의 색이 너무나도 강렬해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카논은 다시 치사토를 보고는 조용히 웃으며 생각했다. 치사토가 장미의 여름을 뺏어가서 희던 볼을 붉게 물들인 것 같다고.

 “..좋아… 있어.”

 치사토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더니, 카논은 치사토가 하는 말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치사토가 작게 말한 까닭도 있을테지만, 아무튼 듣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 카논은 조금 기죽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치사토 짱. 잘 듣지 못했어.. 한번만 더 말해주면 안될까?”

 그러자 카논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지는 못하고 그저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던 치사토가 고개를 휙, 돌려 카논을 바라보았다. 아직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치사토의 얼굴은 조금 더 장미의 여름을 빼앗은 것 같았다.

 카논이 미안한듯한 표정을 짓고있자 죄없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잘근, 씹으면서 끙끙대는 신음을 흘린 치사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카논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카논. 너의 이런 모습이 모두 좋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니?”

 나도, 카논 너라서 좋아하는 거야. 치사토의 마지막 말은 분명 사근사근거리며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어째서인지 카논은 그 마지막 말이 천둥처럼 크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얼굴에, 몸에, 여름이 담기는 것만 같은 열기가 성큼 다가왔다.

“으..응. 그렇구나..”

 분명 이번에 말한 것은 치사토이건만, 카논은 어째서인지 조금전보다 더욱 더 부끄러워졌다. 귓볼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잘 느껴져 카논은 괜히 스스로의 양쪽 귀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주물거려 열기를 빼내 붉어진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

“...”
“...”

 둘 사이에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분명 그들의 주변은 다른 사람들의 소음에 덮여 적당히 소란스러웠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서로의 숨소리마저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다는 착각이 들었다. 

“스, 슬슬 여름이 오는걸까. 많이 덥네. 카논.”
“으, 응! 그러게.. 많이 덥네.”

 생각이 고요한 침묵은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결론에 이르자, 치사토는 아무런 말이나 내뱉고 나서 후회했다. 뇌까지 여름에 익어버린게 아닐까 하고.

“...”
“...”

 결국, 말은 이어지지 못했고 또다시 고요한 침묵이 둘 사이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제가 말을 먼저 꺼내야 하는건가 속으로 엄청나게 고민하던 카논은 손가락 끝을 더듬는 무언가의 부드러운 촉감에 의해 고민에서 깨어났다.

 슬쩍, 눈만 옆으로 굴려서 바라본 손 끝은 치사토의 손 끝과 조심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풋풋한 접촉에 카논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올려 치사토를 바라보았고, 이미 한발 먼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치사토의 눈을 마주보게 되었다.

 많이 덥다고 말하고는 대뜸 손끝을 잡은 치사토는 카논의 자수정같은 눈을 마주하자, 그 깊은 눈빛에 담긴 여름에 홀린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며 소리없는 말을 건냈다. 

좋아해, 카논.

 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건만, 카논은 치사토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들리지 않는 고백에 담긴 감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맞닿은 손을 타고 흘러나오는 열기가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카논은 자신의 손끝을 풋풋하게 더듬는 치사토의 손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움직여 치사토의 손바닥 밑으로 들어가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사이에 그녀의 손가락을 채워넣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어져 있었던 것 마냥 깍지를 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어 흔들고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치사토의 분홍색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 그 안에 잠기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은 눈동자 속에 담긴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된 카논은 다시 한번 자각했다. 정말 여름을 닮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사랑해, 치사토.

 입술을 가볍게 달싹여 치사토가 한 것 처럼 소리없는 고백을 건냈다. 치사토의 그 눈동자가 놀란 것처럼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야 카논의 굳어있던 입꼬리는 다시 씰룩거리며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맞잡은 두 손의 온기가 합쳐진 마음의 열기는, 따사롭다 못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의 햇살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물론, 그녀들의 입술에도 여름이 그 온기를 남기며 스쳐지나갔다.

- dc official App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5

고정닉 1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6025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3235 25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435 14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895 32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356 25
1331450 공지 공지 [3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0336 43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899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1135 27
1464343 일반 ㅅㅍ)보통의 경음부 키큰 베이스 나중가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21 1 0
1464342 일반 스바모모 주식 아직 살아있나요?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21 3 0
1464341 일반 종트 한국에서 수입하는 곳 없냐? [1] ㅇㅇ(175.198) 23:20 15 0
1464340 일반 달달한 마히카노 [8] 백합백문학과교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9 35 4
1464339 🎥리뷰 미안하지만 나는 백합이 아니야(백합아냐) 후기 [1] 지나가던고양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9 20 0
1464338 일반 빻더락인가 그거 어디서봄 [2] 백나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9 27 0
1464337 일반 헤번레는 라노벨인만큼 피로감도 있는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4 38 0
1464336 일반 어느 방향으로 가든 해피엔딩이 요즘은 좋아 [3] ㅇㅇ(121.148) 23:13 50 0
1464335 일반 이번 분기 백갤은 전설이다 [10]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 110 3
1464334 일반 아베뮤지카애니 미리예상함 00006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 20 0
1464333 일반 빻더락 재밌는데? [2] ㅇㅇ(121.132) 23:09 53 0
1464332 일반 이콘 백붕이같아 [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 66 1
1464331 일반 토모아논도 아논소요처럼 야한 거 잔뜩 나와야한다고 생각해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 42 0
1464330 일반 아니 어째서 내 유튜브 추천 영상에 이런 노래가 [15]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 83 0
1464329 일반 다들 월요일 고생 많았어 잘쟈~ [14] 마후카나데나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5 44 0
1464328 일반 담분기는 사슴아이가 제일 인기많으려나 [5] 비고정닉네임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4 87 0
1464327 일반 오래기달렸다 [7] 00006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4 58 0
1464326 일반 늙고 병들고 지친 [17] ドル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2 118 0
1464325 일반 해파리 소설이랑 코믹스를 사든지 해야지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1 76 1
1464324 일반 이새키분명고양이아니야 [4] 네니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1 67 0
1464323 일반 생각해보니 얘네도 종트라 주목받지 못했어 [2] ㅇㅇ(125.177) 23:01 78 1
1464322 일반 정실갓컾 [8] 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0 64 0
1464321 일반 아니 미친 레이디 블랙 [4] kgban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9 60 0
1464320 일반 마리미떼되게재밋게봣는데 네니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8 28 0
1464319 일반 내년 1분기도 기대됨 ㄹㅇ [4] ㅇㅇ(211.206) 22:58 94 0
1464318 일반 이번회는 꼭 복습해야지 [2]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7 49 0
1464317 일반 니나 때리는 모모카 [2] Embri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7 63 0
1464316 일반 나네삐 고구마에 숨이턱턱 네니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6 15 0
1464315 일반 2025년 1월 두렵다 ㅜㅜ [10] 눈치99단무츠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6 107 1
1464314 일반 아베무지카가 망한 후 [1] 뒤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4 75 0
1464313 일반 소피요란 순애애낌 붐 와라 [3] 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2 43 0
1464311 일반 시즈루쨩 요카한테 어떻게 사과할까 [8]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0 94 0
1464310 일반 최근 씹덕질이 너무 즐거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0 75 1
1464309 일반 "잇챠잇챠! 내 손가락으로 임신해라! 요루!"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0 142 7
1464308 일반 충전하는 루리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7 50 0
1464307 💡창작 마히루를 추억하며 눈밭에 잠드는 카노의 이야기 [3] HiKe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7 137 12
1464306 일반 종트와 해파리가 13화였다면 [3] qzpwxo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7 101 0
1464305 일반 해파리는 처음부터 봤어야됐네 [4] 뒤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6 103 0
1464304 일반 오늘 니코동 접속 안 되던 거 해킹때문이었네 [3] μ’s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5 54 0
1464303 일반 헤번레 지워버릴까 매일 고민하는데 시키야나기 보고 참는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5 50 0
1464302 일반 아오 누워서 갤질하다 바로 숨 넘어갈뻔 했네 [16]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5 111 0
1464301 일반 다음주 막화니까 시즈요카 몬가 보여주겠지? [1] ㅇㅇ(125.177) 22:43 38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