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열띤 논쟁을 해왔다. 아무개는 육체라는 물질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영적 해방이라 말하고, 아무개는 돌이킬 수 없으며 허무한 일이라 일컫고 아무개는 육도환생의 한 과정이며, 이를 초탈하는 건 신만이 가능하다 말한다.

그리고 나에겐 저 모든 심오한 논쟁들이 쓸모 없었다

처음 죽음에서 벗어나 깨달은 것은 어둡다는 것, 처음 느낀 것은 추위, 나중에 느낀 것은 낯섬,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공포였다. 죽음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는 일단 죽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죽음은 무척이나 단순하기에 두렵다는 것을.

죽고 깨어나니 존나 어지럽고 구토가 치밀어올랐다.

“우웨에에엑!

“흐응… 꽤 멀미가 심하구나?”

이거 빠뜨린 부분이 있었네, 라고 그 목소리는 덧붙였다

내 텅 비어버린 머리 속을 관통하여 가득 채운 미성이었다. 눈을 돌려 미성의 주인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던 곳인데, 아무도 안보이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았고, 보여도 무서울텐데, 라는 걱정 중 소녀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소녀는 고고하게 날 보고 있었다. 순백을 연상시키는 소녀는 순백의 공간에 아주 잘 어울렸다.

좀 으스스했다.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소녀는 아름다웠다. 탐스러운 머리카락도, 고운 피부도, 고귀한 영애만 입을 옷도 하얀 눈이었다. 고결한 색이었다. 유일하게 검은자만 색이 있었다.

하얀 소녀는 말도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색한 적막이 우리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건 곧 내 착각이라 말하듯 소녀의 눈은 무관심했다. 정말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에게 먼저 말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 같아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난 죽었잖아. 그런데 내가 생각해온 저승의 모습과는 달랐다. 아, 저승사자도 없으니 그런가?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여긴 내 공간이야.”

소녀의 공간? 나 사실 죽은 줄 알았더니 납치된 거야?

더 커져가는 망상은 소녀의 말에 막혔다.

“내가 널 죽이고 데려왔지.” 소녀는 담담하게 사실을 뱉었다.

충격적으로.

처음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눈 뜨고 나서부터 온통 낯선 것 투성이었지만 소녀의 말만큼 이상한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있을 수 있나? 죽었는데 살아있을 수 있나? 같은 저편의 세상에서 아주 간단한 사실이 머리 속에선 논란이 되어버렸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기본개념이 내 안에서 꼬리와 꼬리를 물고 폭풍이 되어 난제가 만들어지다니. 생각이 더 진행되면 실타레가 될테니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어벙한 내가 불쌍했는지 소녀는 다시 사실을 전달했다.

“저쪽 세상에서 있던 널 죽여서 이 곳에 데려왔다고.”

“왜죠?”

이미 난 죽었고, 죽어버린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사람이 아닐 테다. 따지면 손해보는 건 나다.

근데 상대가 오히려 나에게 따져왔다.

“왜 그렇게 침착한데?”

“네?”

“아니 왜 그렇게 침착해? 내가 읽은 소설에서는 막 신이 나타나서 대뜸 널 죽여서 미안하구나! 하면 인간은 발끈해서 따지던데 말야.”

“어… 죽어버린 저와 대화할 사람은 사람이 아닐테고, 저보다 더 대단한 것일테니까요?”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심퉁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귀엽고 아름다운 것이 더 깝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만 무럭무럭 커질 뿐이었다.

“따져주면 안될까? 난 너가 따져주는 걸 계속 기다렸는데. 너 죽이고 뭐라고 변명할지 134개나 생각해냈고 심사숙고해서 딱 하나를 생각해놨는데… 이걸 한낱 망상따위로 버리기 싫어.”

그냥 미친년이었구나 씨발.